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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02화 (101/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02화

102. 입성 준비(2)

“하아.”

상혁은 지구와는 다른 색인 붉은 달이 뜬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적월이 뜬다는 건 이곳에 죽었다 깨어나도 지구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물론 지구에서도 가끔 적월이 뜨기는 떴다. 하지만 여기서는 디폴트 값이 바로 저 적월이었다.

“마저 완성해야지.”

상혁은 궁상맞게 하늘이나 쳐다보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에 양 뺨을 짝하고 쳤다. 5서클에 오른 상혁은 오늘 처음으로 서번트 마법에 도전 중이었다.

상혁이 서번트 마법에 성공하게 된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골렘 마법을 완성시키는 것은 금방이었기 때문에 왕자는 상혁에게 없는 사비를 짜내어 연구 재료들을 지원했다.

그러나 왕자의 얼굴을 봐서라도 실패해서는 안 된다.

‘언젠가는 되돌아갈 수 있겠지.’

적월이 아니라 황월이 뜬 지구로. 상혁은 마흔을 훌쩍 넘겼지만 어떻게 된 것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지구가 그리워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젖은 이 감상도 내일이면 사라질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일이 또 생길 테니까. 자신을 믿는 왕자를 위해서라도 상혁은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일어나라. 나의 충실한 종이여.”

파아앗!!

왕자 측에 속한 대장장이들이 만든 서번트의 몸체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그 때문에 상혁은 직접 대장장이들에게 도면까지 그려 주면서 인체의 형태를 최대한 모방한 몸체를 만들어 달라고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이 목각 인형.

관절도 어느 정도 구동이 가능할 정도로 구현화가 되어 있는 이 목각 인형의 이마에 상혁이 준비한 마나석이 박혔다.

파아앗!!

그러자 눈 부신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쏟아져 나온 빛은 방을 가득 물들이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싹 사라지고 서번트 마법이 걸린 목각 인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삐그덕, 삐그덕.

관절 부위에서 삐그덕 소리가 나는 서번트는 안광을 번쩍 빛내더니 상혁 앞에 고개를 꾸벅 숙였다.

[마스터. 제 이름은 무엇입니까?]

서번트는 인공 생명체다. 마법에 의해 탄생한 생명체인 서번트는 거창하게는 생명체였지만 사실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편할 것이다.

성장이나 발전이 금지된 마법 인형.

상혁은 실험체나 다름없는 첫 번째 자신의 서번트에게 이름을 대충 지어 주었다.

“일호로 하자.”

[일호. 이제부터 마스터를 성심성의껏 보좌할 일호라고 합니다. 마스터.]

* * *

“일호.”

[예. 마스터.]

일호의 음성은 언제나 그렇듯 고저가 없었다. 하지만 일호는 무려 20년이나 상혁의 서번트로 활동했고 지금은 몸체가 다 썩어 들어 가 창고에 누워 있었다.

“20년이다.”

[전 세월의 흐름을 알지 못합니다, 마스터.]

“나도 알아. 그렇게 설명해 줬는데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상혁은 그런 일호의 몸체를 쓸었다. 여기저기 패이고 구멍 난 곳이 많았다. 상혁과 함께 전쟁을 전전하며 위험할 때마다 몸을 날려 상혁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초기 버전에, 그것도 나무로 만든 서번트였음에도 상혁은 일호를 버리지 않고 늘 함께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끝이다.

마나석의 수명이 다한 일호는 상혁이 보수를 하거나 살리려고 해도 더 이상 마나석 자체가 마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일호의 죽음.

상혁은 일호 다음으로 만들어진, 지금쯤이면 한 오백오십구호 정도가 됐을 다른 서번트들을 떠올리면서 피식 웃었다.

“정이 무섭다더니.”

예순이 넘은 상혁은 그런 일호를 쳐다보았다. 일호의 안광이 깜박이고 있었다. 언제나 또렷하게 들어오던 안광이 아니라 빛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스터. 기운 내십시오.]

“위로도 하네 이젠?”

[마스터께서 이럴 때 이리 말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랬지.”

상혁은 짧게 웃었다. 일호는 애초에 서번트다. 명령받은 것만 말을 하는 로봇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일호 뒤에 만들어진 수많은 00호들이 부서졌지만 상혁에게는 별 감흥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일호의 죽음은 다르다.

일호는 유일하게 가나안에서 상혁의 비밀을 아는 존재였다.

일란이 아니라 백상혁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것도 일호가 유일했고 상혁이 가나안이 아닌 지구에서 왔다는 걸 아는 것도 일호가 유일했다.

“너흰 수명이 다하면 어디로 가냐.”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알아. 너 붙잡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상혁은 피식 웃었다. 나이를 먹으니 감수성도 예민해지는 것일까. 예순이 된 상혁은 일호의 몸통에 묻은 먼지를 떼주었다.

“갈 때는 깨끗하게 가야지.”

[마스터.]

“응?”

[부디 소원을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상혁에게 있어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는 일호뿐이었다. 일호는 자신의 서번트이기 때문에 자신을 배신할 이유도 없었고 비밀을 다른 곳에 누설할 능력도 없었다.

상혁이 믿을 수 있는 완벽한 내 편.

[그럼 안녕히. 상혁 마스터.]

그런 일호가 그 말을 남긴 뒤 안광이 완전히 사라졌다. 상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일호의 이마에 박혀 있던 마나석을 빼내서는 품 안에 갈무리했다.

마나가 다 빠져나간 목각 인형은 볼품없었다. 상혁은 일호가 그런 꼴로 남은 것이 보기 싫었다.

“파이어.”

따닥, 화르륵!!

목각 인형이 거세게 불타올랐다. 상혁은 일호의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때가 됐으니 간 것뿐이다. 탓하려면 맨 처음 일호를 만들 때 1서클 마나석을 쓴 자신을 탓해야 한다.

이십 년 동안 일호는 상혁의 목숨을 다섯 번도 넘게 구해 주었고 상혁의 귀찮은 잡일을 모두 도맡았다.

상혁은 활활 불타오르는 일호의 몸을 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잘 가라. 내 유일한 벗.”

* * *

파아앗!!

지하실을 가득 채웠던 눈 부신 빛이 사라졌다. 상혁은 그 빛 때문에 괜히 예전의 기억이 났다는 사실에 씁쓸하게 웃었다.

서번트 마법.

이 마법으로 만들어진 인공 생명체는 주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을 바친다. 상혁이 가나안에서 만든 서번트만 해도 거의 천 기가 넘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일호의 생각이 났던 것일까.

“늙어서 그래. 늙어서.”

괜히 아프지도 않은 허리를 한 번 두들겨 본 상혁은 일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가나안의 일호와 이름이 같은 일호다.

서번트란 점도 똑같았고.

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목각 인형이 아니라 마네킹이라는 점. 그리고 맨 처음 서번트 마법을 시전할 때와는 달리 대마법사의 지식이 쌓여 마네킹 위로 인간의 모습이 덮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형상 변환 마법.

마법을 시전한 상혁이 생각한 대로 마네킹이 아닌 형상이 변환되어 고정되는 성질을 가진 마법이 마나석에 새겨져 있었다.

지구에서 활동할 서번트는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잘생기게 나왔네.”

상혁이 떠올린 건 어디 인터넷에서 봤던 아이돌의 얼굴이었다. 특정 인물을 떠올린 건 아니고 여러 얼굴을 합쳐서 최대한 잘생긴 얼굴로 뽑아 냈다.

대한민국에서는 예쁘고 잘생긴 게 최고였다. 그러니 자신의 옆에 있을 일호가 잘생겨서 나쁠 건 없었다.

‘목각 인형의 모습이 떠올라서는 절대로 아니야.’

상혁은 애써 사실을 부정했다. 20년이 지나는 동안 여기저기 썩고 낡아져 있던 목각 인형 일호. 그 모습이 떠오른 것은 절대로 아니라며 애써 부정한 것이다.

일호가 두 눈을 깜박였다. 그냥 불덩이 같은 것이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눈이었다. 상혁을 본 일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척.

“일호. 네 이름은 일호다.”

주인과 서번트의 군신 관계는 이름을 지어줌으로 인해서 완성된다. 상혁이 일호란 이름을 붙여 주자 일호의 고개가 깊숙하게 내려갔다.

[알고 있습니다, 마스터.]

“어?”

[다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마스터.]

상혁의 입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 * *

“어, 어?”

지하실에서 상혁이 웬 잘생긴 남자와 함께 올라오자 위에서 상혁을 기다리고 있던 오승택이 크게 놀랐다.

“누, 누구신지?”

“내가 말했잖아. SG 입성 준비를 하겠다고.”

“예?”

“내 사람이다.”

뒤를 돌아보며 일호를 확인한 상혁의 두 눈에 순간 복잡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지만 오승택은 그걸 미처 보지 못했다.

대신 그는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상혁 님의 사람?’

오승택은 일호를 보며 긴장했다. 오승택은 상혁에게 은혜를 갚고 싶었다. 자신의 능력이라면 상혁에게 중히 쓰일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혁이 자신의 사람이라 서슴없이 말하는 일호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건 오승택으로 하여금 긴장을 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일호라고 합니다.”

일호는 능숙하게 오승택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그런 일호에게서는 고위 귀족의 우아함 같은 것이 묻어 나왔다.

얼굴도 얼굴이지만 일호 자체가 상혁에 의해 최초 프로그래밍이 되기를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복잡한 귀족 예법 같은 걸 일호에게 다 떠맡겼기 때문인데 지구에는 없는 가나안의 예법이었다.

‘대체 어떻게.’

상혁은 잊었던 가나안의 예법을 보면서 일호를 향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가나안에서, 그것도 이미 10년 전에 떠나보낸 일호가 어떻게 다시 자신의 서번트가 되어 나타난단 말인가.

상혁이 가나안에서 일호가 죽은 뒤 서번트를 만들어 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일호가 되살아나는 일 같은 건 없었다.

‘아직도 내가 모르는 게 많군. 이 세상엔.’

세상의 진리를 조금 엿보았다 자신했던 대마법사였지만 상혁은 아직도 자신이 멀었음을 깨달았다. 여전히 자신에게 모르는 것들이 이 세상에는 많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상혁의 주름졌던 눈썹이 펴졌다.

‘그래도 일호라면 확실히 믿을 수 있지.’

무려 20년이나 곁에 두고 함께 살아왔던 일호다. 그런 일호는 상혁에게 있어 제2의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비록 서번트라고 해도 일호는 상혁이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존재였다.

“앞으로 함께 하는 겁니까?”

“그래. 그러니까 통성명이 나누고 있어. 참고로 일호는.”

상혁이 오승택을 보며 씩 웃었다.

“마법 생명체야. 인간이 아니란 뜻이지. 하지만 인간처럼 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거야. 내가 가장 믿는 사람이니까.”

마법 생명체라고 했으면서 상혁은 일호를 사람이라고 지칭했다. 일호가 어떤 것이든 간에 상혁에게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일호는 그런 상혁을 향해 깊숙하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마스터.”

“마스터 말고. 상혁 님이라고 불러.”

“예, 상혁 님.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탁?”

상혁은 의외라는 눈으로 일호를 쳐다봤다. 일호는 상혁에게 부탁을 하지 않는다. 상혁이 명령을 내린 것을 그저 수행할 따름이다.

차원을 거쳐 일호가 다시 상혁의 서번트가 되는 과정에 상혁도 모르는 무언가 있었던 것일까.

화악!

상혁의 오른 눈에서 마나안이 피어올랐다. 마나안은 마나로 된 모든 것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안. 그런 상혁의 마나안에 상혁의 눈에만 보이는 일호의 마나석에서 살짝 특이점이 보였다.

‘저건 뭐지?’

1서클 마나석은 말 그대로 1서클만큼의 마나 만을 품고 있기에 1서클 마나석이다. 퀘스트로 얻은 마나석을 상혁이 샅샅이 분석했기 때문에 저런 것이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상혁의 눈에 보이는 일호의 마나석에는 다른 무언가 이질적인 기운이 잠들어 있었다.

‘저게…….’

저 기운은 대마법사인 상혁도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상혁은 두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자신이 모르는 이질적인 기운이라니.

천계의 천사들이 사용한다는 신성력, 마계의 마족들이 사용한다는 마기까지 전부 다 꿰뚫고 있는 상혁이다.

그런 상혁에게 모르는 것이라면?

‘9서클!’

8서클을 넘어 9서클에 나아갈 수 있는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드래곤들이나 인간을 초월한 초월종들이 도달한 바로 그 경지.

물론 아직 상혁은 5서클일 뿐이다. 하지만 그 단초가 될 만한 것을 찾은 것만 해도 상혁은 만족이다. 그리고 저 이질적인 기운이 일호를 다른 서번트와는 다르게 만든 모양이었다.

“뭔데?”

“이 세상에서 마스터, 상혁 님을 보좌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 맞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지식을 학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발전과 개량이 금지된 서번트가 스스로 학습을 요구하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좁혀 떴던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차원이동도 있는데 서번트가 공부하겠다고 나서는 것쯤이야.

상혁에게 나쁜 일도 아니고 말이다.

“좋아.”

“감사합니다, 상혁 님.”

일호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제법 사이가 좋아 보이는 두 남자를 보면서 오승택만이 초조함에 입술을 잘근 물어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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