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01화
101. 입성 준비(1)
뽀르르!!
“진정해.”
뽀르! 뽀르르!!
상혁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초아를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초아는 서울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하긴, 자신 같아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자연계 정령인 초아가 매연과 아스팔트로 가득한 서울을 좋아하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마당도 있잖아?”
뽀르르!!
초아가 하늘로 뽀르르 날아오르자 마당의 풀잎들이 손을 흔드는 것처럼 좌우로 흔들거렸다. 상혁은 초아가 그에 보라는 듯 뿌듯해하자 손가락으로 초아의 풀잎을 간질여 주었다.
마당에 걸터앉아 있던 상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그러고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서서는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가릴 것도 필요하겠네.”
이곳에 지하가 있다는 것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일 필요까지는 없었다. 나중에 간단하게 보안 마법을 걸어 놓기로 한 상혁은 축축한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창고였나?”
구기동에 있는 이 작은 주택은 차로 들어올 수도 없는 곳에 있었다. 차를 가지고 있다면 옆에 공영주차장이나 바깥 골목길에 세워 놓고 들어와야만 했다.
그만큼 사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적었는데 그 때문에 개보수도 되지 않은 티가 역력하게 났다. 지어진 후로 단 한 번도 손을 댄 적 없는 것 같은 지하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스멀거리며 피어올랐다.
“파이어.”
본래 마법사의 던전은 마법진과 함정이 즐비해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침입하지 못하게 만들어 둔 곳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의 축축함은 그런 던전과 어느 정도 닮아 있었다.
“시멘트에도 이렇게 이끼가 낄 수 있구나.”
습한 탓에 이끼가 낀 시멘트벽을 보며 상혁은 혀를 내둘렀다. 이끼가 낀다는 건 그만큼 통풍이 잘 안 된다는 뜻이었다.
“클린.”
사아아악!!
상혁이 손가락을 한 번 딱 하고 튕겼다. 그러자 청소 마법이 펼쳐졌지만 이끼가 낀 시멘트벽은 굳건했다.
“뭐야. 버텨?”
상혁은 이끼가 청소 마법에 버텼다는 것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랜 기간 이 공간의 터줏대감이었을 이끼들이 클린 마법을 무시해 버린 것이다.
“클린!”
상혁이 클린 마법에 2서클 정도 되는 양의 마나를 쏟아 넣자 그제야 이끼들이 후두둑 힘을 잃고 떨어져 내렸다. 상혁은 혀를 내두르며 손바닥 위에 조명 삼아 둥둥 뜬 파이어 마법으로 공기를 달구며 문에 손을 얹었다.
파스스!
상혁이 지하실 문을 열자 페인트칠한 것이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서자 거미줄과 함께 습기 냄새가 퀴퀴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최 원래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기 힘든 폐기물들이 그 안에 가득했다.
보아하니 전 주인은 위에서 쓰지 않는 수많은 짐들을 이곳에 처박은 모양이었다. 페인트 통이나 장판 자투리, 아니면 처박아 놓고 까먹은 정원용 가위나 넉가래 같은 것들이 즐비했다.
“휘유.”
상혁은 손사래를 치며 피어오르는 먼지에 인상을 있는 대로 썼다. 그러고는 서둘러 마법을 시전했다.
“윈드! 윈드 커터!!”
서걱, 서거거걱!!
이 폐기물들은 재활용도 불가능할 정도로 습기와 방치에 의해 녹슬고 썩어 있었다. 그 때문에 아예 그냥 분쇄해 버리고 한 상혁이 마법을 사용하자 바람 마법에 폐기물들이 지하실 한가운데로 모이더니 분쇄기에 들어간 것처럼 갈리기 시작했다.
드득, 드르르륵!!
철이고 고무고 절삭력을 가진 바람 앞에서는 거대한 믹서기에 들어간 것처럼 수십, 수백 조각으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파이어 볼.”
그리고 마무리는 전소.
“스읍.”
고무나 플라스틱 등을 불태우자 당연히 유해 한 가스가 가득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상혁에게는 그게 보약이나 다름없었다.
“괜찮네.”
방금 쓴 마나를 간단하게 충전한 상혁은 생각보다 큰 지하실의 전경에 턱을 괴었다.
“2층, 3층으로 내려가기도 쉽겠는데?”
어차피 이 주택의 소유는 오롯이 상혁의 명의였다. 이 아래로 던전을 뚫어서 내려가도 위에서 다른 사람들이 모르면 그만이다.
상혁은 쓸 만한 장소를 얻었다는 것에 턱을 쓰다듬은 뒤 바깥으로 나가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온 다음 바닥에 대고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작은 간단하게.”
스윽, 스으윽
시멘트 바닥이지만 상혁이 나뭇가지에 마나를 불어넣자 마나로 된 선이 바닥에 그어지기 시작했다.
표면이 어디든 마나로 된 선을 그을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마법진의 기초이자 시작이었다. 그리고 상혁은 거침없이 바닥에 마법진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고 마나 고리에서 마나가 지속적으로 빠져나갔지만 꾹 참았다.
30분 정도 허리도 펴지 않은 채 쉴 새 없이 마법진을 그린 상혁이 마지막으로 점 하나를 찍고는 바닥에 손을 얹었다.
마법진은 일회성으로 쓰고 끝나는 마법을 상시적으로 유지할 수는 없을까 하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인으로 맺어야 하는 것을 마법진으로 바닥에 그리고, 마나를 불어넣으면 그때부터 마법진은 활성화된다.
물론 마나석을 설치하지 않는 이상 불어넣은 마나가 소진되면 비활성화가 되지만 마법진의 개발로 인해 마법사들의 삶이 완전히 180도 뒤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적어도 마법 하나는 마법진만 있으면 항상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집중.”
파아앗!!
바닥에 손을 얹은 상혁이 시동어를 외치자 바닥에 그린 마법진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빛은 상혁이 그린 길을 따라 천천히 원을 그리며 돌았고 상혁이 마지막으로 찍은 점에 마나가 도달한 순간 빛이 뿜어져 나왔다.
집중 마법.
1서클 마법으로 사람의 집중력을 소폭 보조해 주는 효능이 있는 이 마법을 상혁이 가장 먼저 이곳에 새긴 이유는 간단했다.
달그락
상혁은 품속에서 마나석을 꺼내 들었다. 마정석은 지금 곧바로 쓰지 않을 것이다. 정제하는 과정에서 그 크기가 줄어 1서클이 될까 말까 한 마정석을 지금 쓰는 건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 마정석은 퀘스트를 완료한 뒤 받는 10개의 마정석과 함께 정제할 예정이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마나석에 집중하는 것이 맞았다.
“형태 변환과 서번트 마법을 동시에 새기려면 간당간당 하겠는데.”
마나석의 크기를 가늠한 상혁은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하지만 과연 불가능하냐고 물어보면 그건 또 아니었다.
“대마법사니까.”
상혁은 마나석을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염력 마법으로 그것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마법진 중앙에 마나석이 공중에 떠오른 채 고고하게 영롱한 빛을 사방으로 뿌렸다.
달칵
상혁은 품속에서 손바닥만 한 케이스를 열었다. 그 안에는 작은 정과 끌이 들어 있었다. 상혁은 손 길이만 한 정과 끌을 인터넷으로 샀다.
인터넷에는 정말 없는 것이 없었다.
“가나안처럼 서번트나 골렘의 관절 구동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그게 좋기는 하네.”
지금 상혁의 방 안에는 마네킹 하나가 분해된 채 짐 속에 처박혀 있었다. 그것 역시 인터넷으로 산 마네킹이다.
1서클에 달하는 변환 마법과 서번트 마법을 마나석에 새기면 마네킹은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과 똑같은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다.
가나안이었다면 굳이 사람의 형태를 취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지구에서는 그것까지 신경을 써야만 했다.
지이잉
상혁이 양손에 든 정과 끌이 미약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윈드 마법을 최소로 시전하여 절삭력만 높여 정과 끌에 부여한 것이다.
“오랜만에 하는데 괜찮으려나?”
상혁이 직접 작은 마나석에 마법진을 새기는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게다가 1서클밖에 안 되는 마나석에 새기는 건 더더욱 오랜만이었다.
대마법사가 된 뒤로는 마나석 아까운 줄 모르고 아티팩트를 만들고 골렘과 서번트를 만들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1서클 정도밖에 안 되는 마나석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끌어내야만 했다.
사각 사각
집중력을 최고조로 끌어 올린 상혁은 마치 외과 전문의가 수술을 집도하듯 양손에 정과 끌을 든 채 작은 마나석의 표면을 세심하게 깎기 시작했다.
* * *
“밥…….”
“네!”
오승환이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나는 사만다를 보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애어른 같은 오승환이었지만 그런 오승환도 사만다의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이 벌렁거렸다.
‘사람이 뭐 저렇게 예쁘냐.’
사만다는 오승환이 그렇게 생각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오승환을 지나쳐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쪼르르 김경자에게 달려가서는 그녀가 상을 차리는 것을 도왔다.
“이러지 않으셔도 된다니까요.”
“아니에요.”
사만다는 이런 한국식 문화가 처음에는 어색했다. 하지만 이 집에서 생활한 지 일주일이 지나는 지금은 오히려 같이 한 상에서 모여서 먹는 이 분위기를 좋아했다.
따듯한 집밥.
사만다는 한식도 입에 너무나도 잘 맞았기 때문에 밥을 먹는 게 요새 가장 큰 낙 중 하나였다. 비록 김경자와는 말이 한마디도 통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묘하게 대화가 통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김경자가 정성스레 차린 아침 식사가 준비됐다. 그리고 식탁에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오승택, 오승환. 이선호. 사만다. 김경자.
드르륵.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앉은 상혁까지.
여섯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말 그대로 같이 밥을 먹는다는 의미인 식구가 되었다. 이선호는 아직 백정연을 도와 백도현을 압박하는 일이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서둘러 먹는다면서 와구와구 먹었다.
“변호사님, 좀.”
“으허헛.”
상혁이 그런 이선호를 구박했지만 김경자의 손맛에 이선호도 푹 빠진 터라 절대로 아침을 거르지 않았다. 상혁은 냉면 그릇에 수북하게 담긴 밥을 순식간에 해치워나갔다.
사만다는 맨 처음 상혁이 먹는 양을 보고 기겁했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 많은 음식들이 어디로 사라지는지는 의문일 따름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오승환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어머니인 김경자 때문에 늘 그녀 곁에 붙어 있던 오승환은 그만뒀던 학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서울에서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승택이나 김경자나 그런 오승환이 그러기를 바랐기 때문에 세 모자의 사이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저도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한 다섯 명이 먹을 양을 해치운 상혁까지. 상혁이 얼른 비우고 바깥으로 나가자 사만다는 오승택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상혁 씨는 또 오늘도 지하로 가는 건가요?”
“네.”
오승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의 개인 비서처럼 대소사를 챙기게 된 오승택은 사만다의 유일한 말동무이기도 했다.
“대체 맨날 지하에서 뭘 하는 걸까요?”
“글쎄요. 제가 물어봤을 때는 SG에 들어갈 때를 준비한다고 하셨습니다.”
“SG…….”
사만다가 SG를 모를 리 없다. 그녀의 핸드폰도 SG에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혁이 SG의 로열패밀리란 것을 오승택을 통해 처음 들었던 그녀는 맨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믿었다.
맨 처음 눈을 떴을 때 봤던 한 눈에도 우아함이 넘치는 백정연을 보기도 했고.
그랬으니 이제 믿어야 하지만 이런 낡은 주택을 사서 매일 지하로 내려가는 상혁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준비라. 큰 회사에 입사하는 건데. 뭘 준비한다는 걸까요, 도대체?”
재벌 4세의 준비물.
사만다는 머리를 아무리 굴렸지만 아무런 답도 얻을 수 없었다.
* * *
끼긱, 끽.
파스슥.
마나석 끝에 살짝 선이 가면서 가루가 바깥으로 흘러나오다가 공중에서 사라졌다. 상혁은 지금 네 개의 마법을 동시에 운용 중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이마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마나석을 고정하기 위한 염력 마법.
정과 끌에 시전한 윈드 마법.
집중력을 끌어 올리기 위한 집중 마법.
그리고 티끌만 한 이물질도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상시 시전해 놓고 있는 클린 마법까지.
간만에 쿼드러플 캐스팅을 했던 터라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제아무리 저서클이라고 해도 쿼드러플 캐스팅은 어려운 법이었다. 상혁은 이마의 땀을 슥 닦아낸 다음에 히죽 웃었다.
“완성이다.”
반짝거리며 빛을 내고 있는 마나석의 표면은 그 어떠한 예술 작품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세밀하고 섬세한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인해 황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값비싼 보석처럼 보이지만 이 마나석은 상혁이 지구에 온 뒤 처음으로 자신이 완벽하게 믿을 수 있는 서번트를 만드는 데 들어갈 마나석인 셈이다.
“일호.”
벌써 이름까지 지어 준 상혁은 옆에 가져다 놓은 마네킹을 보며 그 이마에 마나석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 크기의 구멍을 판 다음 그곳에 마나석을 달칵하고 끼웠다.
우우우웅!!
그와 동시에 상혁의 전신에서 농밀한 마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5서클에 달한 마나 고리가 움직이자 향긋한 마나향이 지하실에 가득 차올랐다.
오른쪽 눈에 마나안을 담은 상혁이 마네킹의 이마에 손을 올려 두고는 눈을 번뜩였다.
“일어나라. 일호.”
내 충실한 종이여.
그 순간 마네킹의 이마에 박힌 마나석이 눈 부신 빛을 사방으로 뿜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