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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00화 (99/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00화

100. 날파리 주제에(5)

주드 포터는 미국에서 오랜 기간 에이전시를 운영했다. 30년 동안 운영한 그의 기획사는 현재 단 한 명의 연예인이 먹여 살리고 있었는데, 그게 바로 사만다 허드였다.

사만다와 주드의 인연은 깊었다.

사만다가 맨 처음 친구와 함께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덜컥 붙어 버린 것이 바로 주드의 기획사와 영화 제작사에서 열었던 오디션이었다.

그때 포터는 사만다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연기에 대한 재능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연기를 즐겼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처럼 그녀는 재능도 있었고 연기를 즐기기까지 했다.

그런 사만다가 성공 가도를 달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주드는 그런 사만다를 아버지처럼, 형제처럼 최선을 다해 그녀를 서포트했고 그녀는 말 그대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하지만 둘의 사이가 언제나 좋았던 것은 아니다.

이른 나이에 배우로서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을 정도의 성공을 거둔 사만다는 변하기 시작했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연예계가 아닌 정계.

그 위험한 행보에 주드는 크게 놀라고 걱정하며 사만다를 말렸지만 이미 자신을 여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만다는 주드의 그런 조언을 귀찮게 여겼다.

글레이저 가문.

사만다가 그곳의 장남과 연인 관계라는 소리에 주드는 자신의 정보망을 총동원해 글레이저 가문에 대해서 조사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간단명료했다.

사만다는 절대로 그 가문의 며느리가 되지 못하리라는 것.

사만다는 글레이저 가문을 빛내 줄 부속품에 불과하지 결코 그 부속품을 다는 주인이 될 수 없었다. 미국 정치 가문이 얼마나 냉혹한지 잘 알고 있는 주드는 사만다가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하고 또 걱정했다.

하지만 사만다는 그런 주드의 걱정을 그가 늙었기 때문이라고 치부하며 그와 갈라서겠다는 엄포까지 놓았다.

그리고 사만다는 더 이상 주드를 만나주지도 않았다. 주드가 매일 같이 찾아왔지만, 사만다는 사람을 보내 주드를 오히려 자신의 아파트에서 쫓아내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사만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고, 인체 실험의 희생자가 되었다.

“바보 같은 사람이에요. 그냥 날 포기했으면 될 텐데. 날 찾고 있었다고 했어요.”

사만다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표정으로 따뜻한 차가 든 컵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처연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말했다.

“전화하자마자 주드는 내 목소리를 알아들었어요. 내가 어디 있냐고 물었고, 복잡한 이유 때문에 한국에 있다고 했지만 주드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목소리였어요.”

“그래도 상혁 님의 말을 들으셨어야 합니다.”

오승택은 축 처진 강아지처럼 구는 사만다를 보며 어색한 영어로 그렇게 말했다. 오승택의 영어는 원어민 수준이 아니었고 그 때문에 사만다의 말을 드문드문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사만다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에게는 누구라도 대화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도 알아요. 하지만 이런 상황에 처하고 보니 주드가 가장 생각이 났어요. 내 가족보다도 더 가까운 사람이었으니까. 날 언제나 지켜 줬고. 글레이저 가문에 당하고 난 뒤에 생각해 보니 주드가 지금껏 나를 지켜 주고 있었어요.”

할리우드의 수많은 유혹으로부터 주드는 사만다를 지켜 주고 있었다. 단지 사만다가 그것을 몰랐을 뿐이다.

사만다는 절대로 자기 혼자 잘나서 그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다.

그녀가 그 자리에까지 오른 것은 주드의 보이지 않는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그녀는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감동적이긴 합니다만은. 일단 상혁 님의 기분을 풀어 줄 방법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상혁 님이라. 당신도 상혁에게 목숨을 빚졌나요?”

사만다는 오승택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녀의 미색은 이 세상 모든 남자들에게 통한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상혁이 이상한 것이다. 오승택은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와 제 가족 전체의 은인이십니다.”

“은인이라.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도 참 많이 입히고 다니네요. 나도 그런데.”

따뜻한 차가 들어가니 어느 정도 기운이 돌아오는 듯했다. 사만다가 자신의 말을 어기고 미국에 연락을 취했다는 말에 상혁이 사만다를 내보내겠다고 하는 바람에 오승택이 사만다를 자신의 방에서 임시로 데리고 있었다.

“나도 알아요. 상혁이 나를 구해 준 은인이라는 거.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거.”

사만다고 그걸 알고 있었다. 자신은 상혁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를 입었다. 하지만 자신을 찾아 헤매고 있을 주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만났을 때는 머리에 흰 머리도 거의 없던 주드다. 그런 주드도 이제는 완연한 노인이 다 됐다. 그럼에도 주드는 처음처럼 똑같이 사만다를 아끼고 걱정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사만다는 처연한 표정으로 오승택을 쳐다봤다. 그 어떤 남자라도 거부할 수 없는 마성의 눈빛이었다. 오승택은 침을 꿀꺽 삼켰다.

“가서 한 번 더 이야기를 해 보시죠. 차가운 듯 보이셔도 정이 많으신 분입니다.”

“그런가요?”

“예. 정작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가면 외면하진 않으셨거든요.”

오승택과 상혁의 첫 만남은 빈말로라도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간에 상혁은 오승택을 외면하지 않았다.

SG라는 거대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혁은 오승택을 숨겨 주었고 이제는 양지로 나갈 발판까지 마련해 주었다.

그러니 사만다에게도 그리 냉정하게만은 굴지 않을 것이다.

사만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승택에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차 감사합니다. 상혁에게 가 볼게요.”

* * *

상혁은 팔짱을 끼고 있었다. 무서운 눈으로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작은 주택의 외관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혁의 눈앞으로 붓 열댓 개가 허공을 날아다니면서 벽을 하얀 페인트로 칠하고 있었다.

서걱, 서거걱!!

위이잉!!

그런 상혁의 뒤로는 바람이 약하게 불면서 마당에 쌓인 먼지들을 쓸어 모으고 잡초들을 잘라 내고 있었고 더 뒤로는 갈라진 바닥에서 벽이 스르륵 올라오며 벽돌로 된 담장에 철썩철썩 달라붙고 있었다.

손 하나 안 대고 상혁은 마법으로 낡은 주택을 고쳐 놓고 있었다. 오래된 주택이라는 게 여실히 티가 났기 때문에 상혁의 염력에 페인트가 덧칠할 때마다 주택이 변화했다.

“마음에 안 들어.”

하지만 상혁은 깨끗하게 변해 가는 주택의 모습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었다.

“여왕처럼 떠받들어지던 여자라서 그런가?”

사만다 허드.

자신이 그때 그 자리에 없었더라면 열화판 엘릭서 복용 부작용으로 인해 죽었을 그 여자가 제멋대로 행동을 한 것 때문이다.

상혁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모르는 건가?”

사만다는 죽다가 살아났다. 그리고 그걸 사만다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본토의 권력자다.

그런데 그걸 아는 여자가 미국에 있는 자기 소속사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심지어 상혁은 그녀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까지 말을 했다. 애당초 아예 못 하게 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연락 한 통 때문에 그 사장이란 사람이 한국에 들어오겠다고 하는 걸 누님이 말렸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아예 미국의 권력자들에게 사만다 허드가 대한민국에 살아 있음을 광고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주드 포터의 갑작스러운 방한 일정은 이상해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엘릭서를 몽땅 잃어버리고 관련 인력들까지 모조리 죽은 미국의 권력자들이 과연 주드 포터라고 감시하고 있지 않을까?

“그럴 리 없지.”

상혁은 권력의 속성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권력을 위해 핏줄을 죽이는 건 애교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수많은 일들이 권력 때문에 벌어진다.

그런데 이건 권력을 등에 업은 불로불사 프로젝트다.

끼익.

그때 현관문이 열리고 사만다가 조심스럽게 걸어 나왔다. 상혁은 그런 사만다를 보고는 마법을 취소했다. 그러자 후두둑 하며 붓이 바닥에 떨어졌고 먼지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콜록, 콜록.”

상혁이 기침 소리를 내자 사만다가 고개를 돌려 상혁을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상혁은 냉기가 풀풀 날리는 얼굴을 한 채 사만다를 쳐다봤다.

“미, 미안해요.”

“…….”

“아버지 같은 분이라, 절 걱정하실 걸 알아서 전화할 수밖에 없었어요.”

“전 부모님이 안 계셔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

사만다는 발을 동동 굴렀다. 자신이 괜한 말을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사만다의 얼굴에도 상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런 식이면 곤란합니다. 아직도 할리우드 스타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래서 그렇게 멋대로 굴 생각이면 나가세요. 그리고 혼자 알아서 살아남으세요.”

사만다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엘릭서는 더 이상 그녀의 몸에서 유의미한 작용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

늙지 않는 건 지켜봐야 하고, 병에 걸리지 않는 것도 지켜봐야 한다. 그걸 제외하고 별다른 변화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러니까 화 푸세요. 네?”

상혁의 심하다면 심한 말에도 사만다는 화를 내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미안하다며 사과할 뿐이다. 상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의 행동거지 하나에 몇 명의 목숨이 달렸는지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적어도 당신의 목숨을 구해 준 나와 내 사람들까지 위험하게 만들지는 말라는 말입니다.”

“네.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

상혁은 등을 돌렸다. 사만다가 저렇게 나오니 마냥 화만 내고 있을 수도 없었다. 상혁은 사만다에게 말했다.

“당신이 말한 그 사장. 주드 포터란 사람. 그 사람이 도움이 될 거라고 한 근거가 정확하게 뭡니까?”

상혁이 관심을 보이자 사만다의 눈이 반짝거리면서 빛나기 시작했다.

* * *

카터는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하지만 도망치고 또 도망쳐도 자신이 죽인 원혼들은 불쑥불쑥 카터의 앞에 나타났다. 카터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원혼을 피해 또다시 도망쳤다.

“허억!!”

또다시 악몽이다.

악몽에서 깬 카터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카터는 한참을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두통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크으윽.”

카터의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손톱과 발톱이 쌩으로 뽑히는 고문도 웃으면서 받을 수 있는 카터가 고작 두통에 눈물을 흘릴 리 없었다.

그런 그가 눈물을 흘린다는 건 그가 그만큼 심적으로 막다른 길에 몰려 있다는 뜻이었다.

[며칠 동안 고생 좀 해. 악몽을 멈추고 싶다면 날 찾아오고. 물론. 나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되겠지? 그럼 그만 가라.]

그런 카터의 머릿속에서 상혁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다. 카터는 그것만이 자신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구명줄임을 깨달았다.

“그에게 가야 한다.”

카터는 초점이 풀린 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터는 그날의 일을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입에 아교가 붙은 듯 열리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기 때문이다.

금제.

상혁이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는 짧은 언령이 힘을 가지고 카터의 뇌리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터는 상혁에 대해서 말을 하려고 할 때마다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걸 CIA에서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풀려고 했지만 풀리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카터는 쇠약해져 가는 것을 느꼈고 이렇게 버티다가는 자신이 죽을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자 공포가 밀려왔다.

“죽고 싶지 않아.”

에이전트 카터. CIA 공작국의 비밀 요원으로 수없이 많은 비밀 작전들을 성공시킨 그였지만 카터는 죽고 싶지 않았다.

아니, 죽어도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명예로운 죽음까지는 바라지 않았으나 악몽에 시달리다가 시름시름 앓으면서 죽는 건 그가 그린 미래에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상혁을 찾아가는 것.

그리고 카터는 상혁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다짐한 카터가 CIA에서 감시하고 있던 대학병원의 병실에서 사라지자 다음 날 병원이 발칵 뒤집혔다.

“당장 찾아!!”

공작 국장 존 베리의 노성이 터져 나옴은 자명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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