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98화
098. 날파리 주제에(3)
“저 여자 좀 맡기겠습니다, 누님.”
“사, 사만다를?”
“네.”
상혁은 사만다를 백정연에게 맡기기로 했다. 사만다는 미국에 연락하고 싶다고 했지만 그건 상혁이 온양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온 뒤로 미루기로 했다.
상혁이 옆에 있어야 곧바로 대처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는데 사만다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
백정연은 자신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할리우드 스타인 사만다와 예상치 못했던 동거를 해야 한다는 것에 난색을 표했다.
불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혁이 일주일 내로 정리하고 올라오겠다는 말에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집은? 서울에 올라오면 묵을 곳이 필요할 텐데.”
백정연은 삼촌인 백성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애당초 백성운과 백정연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삼촌이라기보다는 오빠처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그가 횡액을 당했다는 것에 그녀도 많이 슬퍼했었다.
그 때문인지 백정연은 상혁이 20년 만에 알게 된 자신의 사촌 동생이란 것을 알게 된 후로 상혁을 살뜰하게 챙겼다.
마치 아들처럼.
“제가 알아서 찾아보겠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몇 군데 알아봐 주기는 할게. 뭐, 돈은 있을 테니까. 그렇지?”
자신에게 한 몫 단단히 뜯어 간 상혁이었기 때문에 백정연이 슬쩍 눈을 흘기며 말했다. 상혁은 어깨를 으쓱한 뒤 모르쇠로 일관했다.
“일주일이다. 딱.”
“네. 그리고 일주일 뒤에 이 변호사님도 다시 데려오겠습니다.”
“그건 좀…….”
백정연은 상혁이 이선호를 데려가겠다는 말에 처음으로 주저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 며칠간 이선호와 함께하면서 백정연도 이선호의 유능함을 충분히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니 빼앗기기 싫을 수밖에.
하지만 이선호는 자신의 사람이다.
“제 사람입니다, 누님.”
“그냥 해 본 말이야. 나도 가겠다는 사람 붙잡을 수는 없지. 애초에 너 때문에 온 사람이니까.”
상혁이 꽤 단호했기 때문에 백정연은 협상을 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뒤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백정연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상혁에게 말했다.
“대신 나중에 이 변으로 나만 공격하진 마. 알겠지?”
백정연은 백도현의 약점을 잡은 이선호가 얼마나 악랄해질 수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왜 백도현이 그렇게 이선호를 싫어하는지도.
제대로 배경도 없이 홀로 백도현을 상대로 소를 제기할 때도 끈질기게 매달려 백도현을 귀찮게 했던 이선호다. 그런 이선호에게 백정연과 제대로 된 증거라는 무기가 딱 갖춰지자 이선호는 무서울 정도로 백도현을 물어뜯었다.
오죽하면 이선호와 협상하려 했던 박정철이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흥분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갈 정도였다.
그런 이선호가 칼끝을 자신에게 돌린다?
“뭐 말은 해 볼게요.”
이렇게 말은 했지만 진짜 이선호에게 말은 하진 않을 것이다. 백정연도 나중에 사람이 바뀌면 똑같이 이선호의 표적이 될 테니까.
자신의 사람이지만 이선호가 해야 하는 일과 그러지 않은 일을 자신이 강제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권리도 없었고 말이다.
“그럼, 일주일 뒤에 뵙게요.”
그렇게 말한 상혁은 곧바로 오승택과 함께 온양으로 향했다. 온양으로 가는 길에 상혁이 오승택에게 말했다.
“하나씩 차례대로 하자.”
“…….”
오승택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가 핸들을 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는 것을 상혁은 느꼈다. 드디어 오승택 형제의 어머니를 치료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다시 말해 두지만 완치는 힘들어.”
알츠하이머, 소위 치매라 불리는 그 병을 완치하는 것은 마법으로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신의 힘을 빌려다 쓰는 신성력이라도 세월을 지우는 병을 고치는 것은 어려웠다.
최소한 주교급 이상의 신성력을 가진 신관에게 찾아가야 하는데 그들은 거의 한 왕국을 총괄하는 위치인지라 귀족도 백작급 이상이 아니면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마법으로 병의 진행은 늦출 수 있었다.
“그리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나아질 수도 있겠지. 사람의 몸은 불가해투성이니까.”
오승택은 어머니의 치매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만 해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상혁이 그렇게 해 준다는 것만 해도 대만족이었다.
“예.”
“만약 그 병이 발병한 데에 동기가 있었더라면.”
생물학적인 동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인 동기를 말하는 것이다. 오승택 형제의 어머니는 기구한 인생을 살았다. 그러니 더 이상 기억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그런 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물론 의학적인 접근이 아닌 감성적인 접근이었다.
그러나 때로 이성적인 과학만이 이 세상의 모든 논리를 대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동생에게 주요한 키가 있는 듯해.”
“……승환이가 보인다는 그 영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네 아버지의 영혼.”
오승택은 여전히 그것이 제 아비라고 믿지 않는 눈치였다. 하긴 그 누구더라도 믿기 힘들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혼이 동생에게 신내림 형식으로 붙어 있으니 말이다.
“직접 가서 부딪쳐 보면 알겠지.”
* * *
오승택 형제의 어머니는 오승환 곁에서 잘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상혁은 오승환이 동석하는 것을 허락했다.
하지만 오승택은 아니다.
“이번 치료로 최소 6개월은 병세를 늦출 수 있을 거다.”
오승환의 어머니는 상혁을 멀뚱멀뚱하니 쳐다봤다. 이미 알츠하이머가 깊을 대로 깊어져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혁은 오승택 형제의 어머니가 제정신인 것을 본 적이 한 번밖에 없었다.
‘고맙다고 했던가.’
그리고 그녀는 상혁에게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미몽에 빠져 있듯 흐릿한 상태에서도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고 있었다는 소리다.
또한 아들들에 대한 고마움이기도 했고.
상혁은 그런 오승택 형제의 어머니, 김경자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네게서 어머니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지?”
“예.”
그렇다는 건 김경자가 무의식중에, 미몽에 빠진 와중에 오승환을 지키고 있는 수호령, 아버지의 영혼을 느낀다는 뜻이다.
이성이 흐려졌을 때 역설적이게도 가장 보고 싶은 이를 느낄 수 있다는 건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졌다.
“네 아버지를 느끼는 모양이다.”
“저도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오승환은 놀라지 않았다. 그는 나이에 맞지 않게 차분하기도 했지만 수호령의 존재로 인해 그것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상혁은 슬쩍 웃어 보이고는 마나를 끌어 올렸다.
고오오오!!
1서클의 망각 마법이지만 상혁은 그 이상의 마나를 끌어 올렸다. 병세를 늦추기 위해서는 강한 마나로 머릿속의 망각을 망각 마법으로 몰아내는 수밖에 없다.
내가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망각하게 만들어야 수면 속에 잠겨 있던 의식이 부상할 것이다.
‘인간의 의식에 깊숙이 개입해야 된다. 그러니 최소 5서클의 마나를 끌어올려야지.’
만약 일반인에게 이 정도로 강한 망각 마법을 견디면 그건 망각 마법이 아니라 기억을 지우는 마법이 될 것이다.
사람을 백치로 만들어 버린다는 소리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미 망각에 잡아먹힌 김경자에게는 이 망각 마법이 자신이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망각하게 만드는 마법이 될 것이다.
5서클.
상혁의 손끝에 수인이 맺히면서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마나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오승환이 뒤에서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오승환은 느꼈으리라.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아버지인 수호령의 존재로 인해 상혁의 마나와 그 존재감을 느꼈을 것이다.
거대한 격.
대마법사의 영혼을 가진 상혁의 일부를 느꼈을 테니 오승환은 당연히 놀랐을 것이다.
“망각.”
파아앗!!
상혁의 오른 눈이 마나안으로 물들었다. 그러자 상혁의 손끝에 맺혀 있던 수인이 사라지면서 그 안에 있던 마나가 김경자의 머릿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마나는 김경자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희뿌연 기운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망각의 기운.
거쳐 온 세월을 잊게 만드는 잔인한 망각의 기운이 상혁의 마나와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김경자가 알츠하이머를 겪은 세월 동안 쌓인 망각의 기운은 쉽게 물러나지 않고 버텼다.
하지만 상대는 대마법사, 상혁의 마나다.
꾸물꾸물.
상혁의 마나는 망각의 기운을 물들이는 것처럼 서서히 밀어내며 망각의 기운을 마나의 색으로 물들였다. 상혁은 망각 마법으로 김경자의 머릿속에 있는 망각을 밀어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이미 사람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망각의 기운은 밀어 낼 수 없었다. 함께 살아가는 것만이 방법인데 상혁은 망각 마법으로 망각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망각하고 있다는 것조차도 망각하게 함으로써 망각의 기운을 상혁의 마나의 색으로 물들였다.
그렇게 망각의 기운이 상혁의 마나로 다 물들었을 때 사방에 차올랐던 빛이 사그라졌다.
깜빡.
그리고 김경자의 두 눈에 빛이 돌아왔다.
“엄마.”
“승환이?”
뒤에서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고 있던 오승환을 김경자가 정확하게 알아보았다. 영락없이 김경자가 정신을 차린 모습이었다.
그녀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내가 제정신인 거지? 꿈이 아닌 거지? 우리 아들 맞지?”
“엄마!”
오승환이 그녀를 안았다. 오승환의 목소리를 듣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오승택도 뛰어 들어왔다. 오승택은 김경자가 정상임을 한눈에 알아보고 세 모자가 부둥켜안았다.
그렇게 한참을 부둥켜안고 있던 감격스러운 모자 상봉은 금방 끝이 났다. 상혁이 있음을 다들 알아차린 것이다. 오승택과 오승환이 상혁을 향해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넙죽 절을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상혁 님!”
상혁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까닥여 바람 마법으로 둘을 일으켜 세웠다.
“말뿐만인 감사는 필요 없어. 오승택. 넌 앞으로 나를 보좌해라. 모든 잡일은 너한테 맡길 테니까.”
“예.”
오승택의 두 눈에 빛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건 상혁에 대한 경외로 부담스럽게 빛을 내고 있었다. 상혁은 부담을 꾹 누르며 오승환에게 말했다.
오승환의 뒤에 아우라처럼 드리워져 있는 실루엣도 격정적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자신의 아내가 정신을 차렸음에 기뻐하는 것이었다.
“넌 어머니 옆에 딱 붙어 있어.”
“저, 저도 상혁 님을 돕고 싶습니다.”
오승환은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이에 맞지 않던 차분함이 벗겨지자 한층 더 그 나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낫다. 그래야 병세가 더 늦춰질 거다. 그리고.”
상혁은 끝까지 말을 잇지 않았다. 하지만 오승환은 알아들었다. 김경자에게는 수호령의 존재를 밝히지 말란 뜻이었기 때문이다.
“예.”
그러자 이번에는 김경자가 일어섰다. 그러고는 상혁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승택과 오승환은 괜찮았지만 어머니뻘인 김경자가 그러는 건 상혁에게도 조금 부담스러웠다.
“감사합니다.”
“거래였습니다.”
“근래 몇 년을 들어 지금처럼 정신이 또렷한 적이 없습니다. 이게 다 은인 덕분입니다.”
김경자는 어떻게 그랬냐는 등 궁금증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이 그럴 처지도 아니고 그러는 것이 자신의 정신을 깨워 준 상혁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 것이다.
“6개월 동안은 그러실 겁니다. 하지만 차차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씩 또 잊어 가실 겁니다. 그러니 부단히 노력하십쇼. 바뀔 가능성이 있다면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경자는 다시 또 6개월 동안 천천히 주변의 것들을 잊어 갈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 시간은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 기적처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갚기 위해 소일거리라도 맡겨 주세요. 청소하고 밥하는 건 자신 있으니까요.”
김경자는 의욕을 드러냈다. 그러자 상혁이 오호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방에 있는 모두에게 말했다.
“그럼 같이 서울로 가실 준비하시죠. 집 청소하고 집밥 해 주시면 더 좋고. 오승환 너도 마찬가지다. 어머니 도와서 집이나 돌봐. 월급은 넉넉히 줄 테니까.”
집밥.
상혁에게는 그 어떠한 말보다도 울림이 큰 단어다. 집에 돌아왔을 때 차려진 따스한 집밥. 이걸 먹어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박선웅에게도 말해둬. 곧 서울에 집을 구하는 대로 이사할 테니까.”
이제 이 온양을 떠나 서울로 옮겨갈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