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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97화 (96/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97화

097. 날파리 주제에(2)

[기다리세요. 곧 가겠습니다.]

김지예는 전화를 끊었다. 병원에 누군가 찾아와 다짜고짜 환자 명부를 확인하겠다고 하는 사람의 말에 김지예는 상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일이 있을 경우 상혁이 곧바로 알려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비키세요!”

“당신들 이거 영업 방해야. 당신들 영장 있어?”

병원장인 김지예가 병원 입구에서 밀고 들어오려는 사람들 앞을 막아섰다. 경찰들이 그런 김지예의 일갈에 움찔했다.

“후회하게 될 거야. 어?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한성그룹 김지예야.”

한성그룹이란 말에 경찰들이 더욱더 함부로 나서지 못하고는 주춤거렸다. 김지예는 자신이 팔고 싶지 않아 하던 집안의 이름까지 팔면서 버텼다.

상혁이 데려온 새로운 환자들은 어딘가 말 못 할 비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그 환자 중에는 미국의 할리우드에 있어야 할 사만다 허드까지 있었기 때문에 무언가 거대한 음모의 톱니바퀴가 돌아가고 있음을 김지예는 직감했다.

“서장 누구야! 서장 불러 와!”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김지예다. 그러면서 잔뼈가 굵은 김지예의 일갈에 어린 경찰들이 움찔하면서 겁을 집어먹었다.

병원장이란 것도 부담스러운 직책이었는데 심지어 한성그룹 일가라니.

재벌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는 공권력이라도 재벌들을 보면 일단 피해 가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런데 윗선의 명령으로 이곳에 온 경찰들의 얼굴에 윗선에 대한 원망이 서릴 무렵 그들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물러서.”

그때 김지예의 눈에 저 뒤에 경찰 간부로 보이는 남자와 그 옆에 선 외국인이 눈에 들어왔다.

외국인이라니. 김지예가 눈을 찌푸린 순간 외국인과 김지예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외국인, 카터가 빙글거리며 웃었다.

“미스 킴?”

“여기 한국이다. 한국말로 해. 이 새끼야.”

김지예의 입이 걸걸해졌다. 당연히 김지예는 영어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여긴 김지예의 안방이었고 김지예는 기세에 밀리지 않기 위해 일부러 거칠게 반응했다.

그러자 카터는 놀랐다는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작게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뒤, 언제 웃었냐는 것처럼 얼굴을 싹 굳힌 카터가 경찰 간부에게 뭐라고 말했다.

“김지예 원장님!”

“누구시더라?”

“서장입니다.”

김지예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 경찰 서장. 서장이나 되는 사람이 외국인을 하나 데리고 와서 외국인의 부하처럼 구는 건 대체 무슨 꼴이란 말인가.

“실종 신고가 된 사람들이 환자로 입원해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조사를 위해 나왔으니 순순히 협조해 주시죠.”

“영장은요?”

김지예는 실종 신고된 환자라는 소리에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자신도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환자들이 다수 입원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건 상혁이 데려온 환자들과 연관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란 소리다.

저들을 막으려면 결국 법에 기대야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지예는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법원에서 저들에게 영장을 내줬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 것이다.

“여기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서장은 영장까지 준비한 상태였다. 영장이 있다면 저들을 막을 명분이 없었다. 김지예가 이를 꽉 깨물고는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렇게 들어오지 못하고 있던 경찰들이 들어오려는 순간 김지예가 경찰 한 명과 일부러 어깨를 부딪치면서 뒤로 넘어졌다.

“아아아악!!”

어깨에 살짝 부딪혀 뒤로 넘어진 것이지만 마치 비명은 팔다리가 하나 잘려 나간 듯한 그런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어쩔 줄을 몰라 했고 경찰들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경찰이, 경찰이 의사를 친다!!”

그러자 경찰들 사이에서 당황이 번져 나갔다. 거의 억지에 가까운 방법이지만 김지예는 어떻게든 시간을 벌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영장까지 있는 경찰들을 잡아 세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들어가!”

서장이 김지예가 꾀병을 부린다는 것을 알고는 경찰들을 압박해 안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때 그런 김지예에게 외국인, 카터가 다가왔다.

“너, 뭐야.”

김지예는 경찰을 움직인 외국인을 보면서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카터는 어깨를 으쓱했다.

“한국어는 몰라서.”

“한국에 왔으면 한국어를 배우는 건 국룰이지.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고 했잖아?”

카터는 영어로 했고 김지예는 지지 않고 한국어로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카터는 암고양이처럼 사나운 김지예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밤길 조심해요.”

카터는 김지예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경고했다. 엘릭서 프로젝트는 알아서 안 될 사람이 알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알게 된 사람들은 반드시 100퍼센트의 확률로 죽는다.

자신 같은 사람들이 죽이러 오니까.

자신이 내리는 죽음은 재벌이건 일반인이건 모두 다 공평했다. 공통점이라면 자신이 왜 죽는지, 어떻게 죽는지 모르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한다고나 할까.

김지예의 관자놀이가 불룩 튀어나왔다.

“너 이 새끼. 나 협박해?”

“워, 워. 진정하시고.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잘 있으셔야지. 근데 저 환자들, 누가 데려왔습니까?”

카터는 다 안다는 듯 김지예에게 말했다. 카터는 탑차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거의 100km 반경 이내에 수천 대의 CCTV 영상자료를 전부 다 조사했다.

그 결과 탑차들은 여기, 지예병원에 도착했다. 김지예가 병원장으로 있는 곳이니 최소한 김지예가 이번 사건에 대해서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환자들이 아파서 들어오지, 누가 데려와. 왜, 너도 환자 한번 돼 볼래? 네발로 들어올지 구급차가 데려올지 보면 되겠네.”

김지예는 사납게 카터에게 말했다. 카터가 하는 영어를 김지예는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터는 김지예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로 그녀가 사나운 말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CCTV, 블랙박스, 저들이 타고 온 탑차. 전부 다 내가 확인했는데, 그게 확인이 안 돼.”

카터는 김지예를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운전한 사람이 안 찍혔거든. 탑차들의 운전석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였단 말이야. 그런데 그건 말이 안 되잖아. 안 그래요?”

지예병원에 도착한 탑차들 중 사람이 타서 운전한 탑차는 한 대밖에 안 됐다. 나머지는 바인드 마법으로 묶어서 질질 끌고 온 것에 불과했다.

그러니 그 지점이 카터에게는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은 것이다.

“무슨 말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네. 탑차? 구급차가 아니고? 미쳤나 진짜.”

김지예는 끝까지 모르쇠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카터는 그런 김지예를 보며 다 안다는 듯 싱긋 웃더니 병상에 걸터앉아서는 팔짱을 꼈다.

“어디. 뒤져 보면 나오겠지요. 실종 신고가 된 환자들을 감금해 놓았다는 사실이 뉴스에 나면 어떻게 되려나?”

김지예는 저들이 꽤 단단히 준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이를 으득 깨물었다. 만약 정말 여론전으로 나온다면 지예병원에는 씻을 수 없는 타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후.

“없습니다.”

“수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경찰들이 일제히 빈손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그것을 본 김지예의 입가에는 미소가 서렸고 카터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그럴 리가. 분명 여기로 탑차가 향하는 것이 찍힌 CCTV가 있는데.”

카터는 부하 요원의 보고에 버럭 성을 내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몸을 휙 돌려 김지예를 쳐다보자 김지예가 히죽거리면서 웃었다.

“왜. 이제 한국어로 말을 할 생각이 좀 드는 모양이지?”

“어디에 숨겼어.”

“하여간. 이래서 미국 놈들은 마음에 안 든다니까. 여긴 대한민국이야 새끼들아. 왔으면 한국말로 해.”

카터는 김지예에게 물어보는 것을 포기하고는 서장을 쳐다봤다. 서장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한 채 난처한 표정으로 카터를 쳐다봤다.

“진짜 없는 겁니까?”

“지금 제 부하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겁니까?”

서장은 카터의 추궁에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레 자신이 웬 외국인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던 찰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지휘를 받아 한성그룹의 오너 일가인 김지예의 병원을 급습했는데 그마저도 허탕을 친 것에 불과하다니.

“당신이야말로 어떻게 된 겁니까? 분명하다면서요. 그런데 실종 신고가 된 환자는 무슨.”

“이봐요! 서장!”

지이잉!!

그때 서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을 받은 서장은 눈이 커지더니 허리가 부러져라 구십 도로 허리를 숙였다.

“처, 청장님! 예, 예! 알겠습니다! 곧바로 철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사과드리는 것은 물론이구요. 예!”

서장은 전화를 끊고는 카터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고는 카터를 슥 외면하고는 서둘러 김지예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벼, 병원장님.”

“왜요. 우리 비서실에서 어디 청장한테라도 전화한 모양이지?”

한성그룹이다. SG그룹에게 밀려 오랜 기간 1위로 올라서진 못했지만 꾸준히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큰 그룹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 한성그룹이다.

그곳에서 김지예에게 일어난 사달을 몰랐을 리 없다.

김지예가 하도 회사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싫어해 직접 오진 않았지만 대신 비서실에서 경찰청장과 통화를 한 모양이었다.

“저건 뭡니까?”

김지예는 완벽하게 저자세로 나오는 서장에게 카터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카터는 얼굴이 일그러진 상태였는데 그의 뜻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C, CIA입니다.”

“CIA?”

김지예의 머릿속에 한 여자의 이름이 떠올랐다. 사만다 허드. 김지예는 상혁이 데리고 온 환자들과 사만다 허드가 미국과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 전에 김지예는 더 궁금한 것이 있었다.

‘왜 아무것도 없다고 했지?’

경찰들이 아무것도 없다면서 그냥 돌아 나온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 위에는 환자들이 있었다. 사만다 허드는 백정연의 집으로 갔지만 대부분 무연고인 환자들은 위층에 있었다.

아까는 카터가 화를 내라고 일부러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어 보였는데, 경찰들이 빈손으로 내려오다니.

‘이게 무슨 귀신의 조화야.’

김지예는 거듭 죄송하다고 하며 경찰들을 통솔해 얼른 병원에서 후퇴하는 서장을 쳐다봤다. 어쨌거나 다행히도 김지예가 생각한 최악의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 거슬리는 것은 여전히 카터, 서장이 CIA라고 했던 그 인간이 자신의 앞에 있다는 점이었다.

“다음에 나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카터는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적어도 가면은 그러한 가면을 썼다. 하지만 김지예를 쳐다보는 카터의 눈 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아마 자신이 김지예에 의해 놀아났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지가 쳐들어와서는 빈손으로 돌아간다고 화를 내는 카터의 모습에 김지예는 어이가 없어졌다.

“이 새끼가.”

“입을 조심하세요.”

상대가 재벌 집안의 딸이었음에도 카터는 거침없었다. 애초에 미국이란 나라가 주는 힘이 그렇기 때문이다. 미국의 안보를 위해 작전 중이라면 그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 엘릭서의 실패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김지예가 필요했다.

“너 이…….”

스윽.

그때 일어나려는 김지예의 어깨를 손 하나가 뒤에서 튀어나와서는 지그시 눌렀다. 김지예가 뒤를 돌아보자 상혁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곳에 서 있었다.

“위에 있는 애들을 돌려보내긴 했는데.”

“당신이?”

김지예의 눈이 커졌다. 경찰들이 빈손으로 내려온 것이 상혁 때문이라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김지예는 상혁이 예사 인물이 아니란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조금 멀더라구요. 택시가 안 잡혀서. 참. 택시비 좀 내주시죠?”

상혁의 말에 김지예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상황에 택시비나 걱정하다니. 하지만 더 어이가 없는 건 카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신은 또 누굽니까?”

“내 눈을 똑바로 봐.”

상혁이 카터의 눈앞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카터는 인상을 쓰며 뒤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무슨 일인지 그의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

“사람을 많이도 죽였네. 원혼들을 주렁주렁 많이도 달고 왔어. 그러니까.”

따악-!

악몽이 카터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상혁은 초점이 풀린 카터를 보면서 빙긋 웃었다.

“며칠 동안 고생 좀 해. 악몽을 멈추고 싶다면 날 찾아오고. 물론.”

상혁이 카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되겠지? 그럼 그만 가라.”

그러자 카터가 초점이 풀린 눈으로 등을 돌려 지예병원을 빠져나갔다. 김지예는 상혁이 말 몇 번으로 카터를 돌려보내는 것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대체 당신 뭐 하는 사람…… 아니. 됐어요. 관심 안 가질래. 그냥 이 일이나 확실하게 처리해요. 복잡한 건 딱 질색이니까.”

김지예는 빠질 때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필요 없는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귀찮은 게 싫다는 이유 때문이다.

상혁은 그런 김지예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해결해 드리죠. 그 전에 택시비 좀…….”

지갑을 들고나오지 않아 택시비에 비굴해지는 상혁을 보면서 김지예는 도저히 상혁이란 사람에 대해 감을 잡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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