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96화
096. 날파리 주제에(1)
에이전트 카터.
그는 미 CIA 소속의 블랙 요원으로 무수히 많은 흑색 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CIA의 숨겨진 전설 중 한 명이었다.
전투 수행 능력 및 생존 능력이 그 어떤 요원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 미국의 007이라 불릴 정도였다.
그런 그의 뒤를 CIA가 막대한 자금력과 기술력으로 받쳐주니, 미국은 카터를 통해 얻은 이득만 해도 미국의 1년 예산을 가뿐히 뛰어넘는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사담 후세인 제거.
오사마 빈 라덴 저격.
솔레이마니 암살.
김정일 암살 미수 등등.
현대사에 굵직한 사건이었던 수많은 일들 뒤에는 에이전트 카터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한국에 파견된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비단 CIA의 전설일 뿐만 아니라 그 전에 글레이저 가문에 충성하는 개로 글레이저 가문에서는 그에게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그 때문에 그는 전 대통령인 프랭크 글레이저의 부탁을 받아 직접 대한민국으로 가는 미션에 자원했고 CIA에서는 그것을 승인했다.
준 전략 병기로 취급되는 그가 한국에 입국한다는 소식은 미국 내에서도 철저하게 특급 기밀에 부쳐졌고 그를 지원하기 위해 본토의 정보부에서 팀 2개 조, 그리고 동아시아 지부 전원이 동원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카터가 요구한 정보는 금세 그의 손에 들어왔다.
털썩.
“회사에서 알고 있었던 건 아닌 모양이군.”
그는 눈을 까뒤집고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중년 남자를 내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조금 전까지 그의 손에 머리카락이 붙잡혀 있었던 지라 그는 자신의 손에 묻은 남자의 머리카락을 털었다.
“따로 추적을 할까요?”
“그래야지. 그나저나 미군의 방비가 엉망이야. 전쟁이 있은 지 너무 오래되었으니까. 그렇게 한 곳에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지.”
미군에 비밀리에 드나들도록 선정된 탑차 업체에 대한 보안이 엉망이었다. 카터는 미군 기지에서 빠져나간 것으로 보이는 타이어 자국을 발견했고 그를 추적해 탑차 업체까지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는 기지에 드나든 탑차의 행방을 알기 위해 고문을 가했다.
그것도 타국의 민간인에게.
카터는 탑차 대여에 대해 비밀리에 알고 있는 것이 업체 사장인 박종국 한 명이란 것을 알아냈고 그로 인해 그를 납치하여 고문했다.
집 안에 수면 가스를 살포하여 가족들을 재운 뒤 박종국을 데리고 모처의 창고로 나와 그를 고문하여 정보를 알아내려 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얻어 낸 것이 없었고 탑차 업체 사장은 그렇게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치이익!!
그리고 그 시체마저도 CIA 요원들에 의해 훼손됐다. 강력한 염산을 부어 누군지 알아볼 수 없게끔 만든 시체를 CIA 요원들이 들고 나갔다. 카터는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은 뒤 CIA 요원에게 말했다.
“기지 주변으로 해당 타이어 자국과 일치하는 탑차가 찍힌 CCTV 영상은?”
“기지로부터 30km가량 떨어진 곳에 탑차가 찍힌 CCTV를 발견했습니다.”
기지로부터 30km나 떨어졌다면 좁은 대한민국 땅에서는 그 탑차가 그 탑차일 것이란 장담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CIA가 확신한 이유가 있었다.
“번호판이 일치합니다.”
기지로부터 반경 30km 안에 있는 CCTV 영상자료를 싹 다 수거하여 프로그램으로 검색한 결과 번호판이 일치하는 차량이 한 대 나온 것이다.
카터가 그를 쳐다보자 요원이 말했다.
“서울로 가는 방향이었습니다.”
“그럼 계속해서 확보할 수 있겠네?”
시골인 평택과는 달리 서울과 경기도의 CCTV 분포도는 미국 뉴욕에 버금갈 정도다. 거기에 차량에 설치된 블랙박스 영상까지 생각한다면 그 이상이다.
“예.”
“온양이란 곳에 있는 운송관리팀도 당했다지?”
“공장 전체가 폭파되었고 현장에 발파기가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 책임자가 발파한 뒤 모습을 감춘 것 같습니다만…….”
“발견되진 않았다?”
CIA 전문가들이 붙어서 운송관리팀의 팀장이 숀의 행방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개인이 CIA의 추적을 뿌리칠 정도로 완벽하게 숨을 수는 없을 테니 조력자가 있다는 뜻이다.
“SG는?”
“자신들도 당황스럽다는 반응입니다.”
“백도현이나 백성철 회장이 엘릭서에 대해 무언가를 아는 듯한 징후는?”
“조사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카터가 눈을 빛냈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작은 정보가 때로는 중요한 정보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기 때문에 CIA는 아주 작은 정보라도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백도현이 누군가를 계속해서 감시한 흔적이 보였습니다.”
“감시? 누구?”
“백성철 회장의 조카입니다.”
“조카가 있었다고?”
백성철 회장은 미국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는 사람이다. SG그룹이 미국 내에서 확보한 일자리나 그로 인해 가지는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의 회장들에 대한 동향은 CIA에서 가장 최우선적으로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백성철 회장에게 조카가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백성철 회장이 죽인 막냇동생의 자식이라고 하는데. 최근까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갑자기 나타났다고 합니다.”
“갑자기 나타난 조카?”
“그런데 백도현이 갑자기 나타난 조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조사를 한 지역이 온양입니다.”
“공장이 있는 곳이군.”
“예.”
카터는 냄새를 맡았다. 그의 본능은 백도현이 많은 정보를 수집해서야 지목할 수 있었던 그 실체에 대한 냄새를 순식간에 맡았다.
“그게 누구지?”
“백상혁. 올해 스무 살로 열 살 이후 보육원에 맡겨졌다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일단 리스트에 올려놓고 보류하지. 지금은.”
탑차가 어디로 갔는지를 찾는 것이 최우선이다. 카터는 몸을 돌리며 요원들에 명령했다.
“24시간 내로 서울 시내 어디로 탑차가 갔는지 찾아낸다. 빠르게 움직이도록.”
대답하는 CIA 요원들의 손발이 한층 더 빨라졌다.
* * *
“연락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상혁은 곧바로 온양으로 떠나지 못했다. 이제는 사촌 누나가 된 백정연이 하루를 묵어가라고 한 것도 있었지만 사만다가 미국에 연락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살고 싶다면서요.”
“네. 하지만 절 걱정하는 사람이 있어요.”
미국에는 사만다의 가족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만다는 성공하고 난 후 몇 달에 한 번씩 얼굴을 보는 게 고작이었지만 바닥으로 추락한 사만다는 가족이 가장 걱정됐다.
글레이저 가문이라면 후환을 없앤다고 가족에게까지 손을 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상혁은 그녀의 눈에 짙게 남은 미련을 보면서 하루 이틀에 설득할 수 없는 상태란 것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이해가 안 될지 몰라도 때로 인간은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럼 내 집에서 하루 있어.”
그때 백정연이 끼어들어 교통정리를 했다. 좋은 생각이었다. 사촌 누나의 집에 며칠 묵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백정연은 하루라고 했지만 사람 일이란 게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이 되는 법이다.
“그리고 제가 연락한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사만다는 그냥 가족에 대한 걱정만으로 자신을 살려 주겠다는 상혁 앞에서 고집을 피운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 사람은 바로 그녀가 속한 기획사의 사장이었다.
“돈을 믿습니까?”
상혁은 황당하다는 듯 사만다에게 물었다. 사만다와 기획사의 사장은 돈으로 맺어진 관계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돈으로 맺어진 관계만큼 그 신뢰 관계가 얇디얇다는 것을 상혁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확 재워 버려?’
이런저런 것 필요 없이 그냥 재워 버리면 깔끔하게 끝날 것을. 상혁의 눈이 가늘어지자 사만다는 얼른 입을 열었다.
“글레이저 가문에게는 중과부적이겠죠. 하지만 제가 언제까지고 당신 옆에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저도 저 나름대로 살 방법을 찾아야죠.”
사만다는 상혁에게 살려 달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혁의 옆에 평생 붙어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은 상혁에게 있어 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녀가 지금 현 상태를 추스를 때까지.
그 정도만의 시간이라도 상혁의 보호 아래 있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미래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흠. 그건 또 그러네.”
상혁은 사만다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상혁은 한 번 자신의 눈에 띈 그놈들을 그냥 잘 먹고 잘살게 내버려 둘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인체 실험한 놈들도 처리하고, 엘릭서를 얻어 마나도 늘릴 겸 겸사겸사 미국에 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도움이 많이 됩니까?”
“적어도 LA나 할리우드에서 포터의 말을 그냥 무시할 사람은 없어요.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할리우드에서 제작자 쪽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던 사람이니까.”
사만다는 1인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사만다가 속한 기획사에서 사만다가 가장 많은 돈을 벌어 오기 때문에 거의 1인 기획사처럼 변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기획사는 사실 30년 전부터 존재하던 역사가 깊은 기획사다. 그리고 그 기획사의 사장이 30년 동안 기획사를 운영한 포터였다.
그 정도로 오랜 기간 할리우드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그는 주변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이다.
아군이라곤 그밖에 기대할 수 없는 사만다였기 때문에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어느 정도의 도움은 될 것이다.
“넌 여기! 그리고 사만다는 날 따라와요!”
백정연은 자신의 집에 상혁과 사만다를 데려갔다. 백정연의 집은 한남동 한복판에 있는 단독주택이었는데 3층에 방이 여섯 개가 넘었다.
그런데 묘하게 엄격한 백정연을 보고 피식 웃은 상혁은 뒤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SG그룹이라. 본사에 나가기 시작하면 온양 집은 어떻게 해야 하지?”
한 달 안에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오승택 형제와 약속한 형제 어머니의 병세를 완화시키기 위한 치료 작업도 들어가야 하고 SG그룹을 무너뜨릴 준비도 해야 한다.
거기에 사만다와 미국에 있는 글레이저 가문과 그 옆에 기생하는 놈들까지.
또한 온양 집으로 돌아가 앞으로의 일을 도와줄 서번트와 골렘도 만들고, 세계가 내준 퀘스트도 완료해야만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6서클도.
“뭐, 이렇게 살 팔자였던가?”
가나안에서도 그랬지만 지구에서도 결코 평범한 팔자는 아닌 듯했다. 힘을 가지니 오히려 눈에 거슬리는 것이 더 많아지고 그래서 해야 할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아마 그건 상혁의 서클이 올라갈수록, 그래서 부릴 수 있는 마법이 더 많아질수록 그럴 것이다.
그리 낯선 상황은 아니다.
가나안에서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러다가 배신당하는 등신짓만 안 하면 되겠지.”
키득거리며 웃은 상혁은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감각이 예민해지면서 공중에 분포된 마나가 희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곳에 와서 눈을 떴을 때는 느껴지지 않던 공기 중의 마나였다.
하지만 가나안과 다른 점은 자연에 분포된 자연 상태의 마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건 공기 중에 떠도는 오염 물질에서 느껴지는 마나였다.
5서클에 도달하기 전에는 그 양이 너무나도 미미해 잘 느껴지지 않던 공기 중의 오염 물질 사이의 마나가 이제는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하나의 양은 적지만 대기에 존재하는 오염 물질의 양을 생각해 보면 공기 중의 이 마나야말로 상혁이 궁극에 달하기 위해서는 필히 거쳐 가야 할 목표였다.
단지 지금은 그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
그러나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눈앞에 두고 포기할 상혁이 아니다. 언제가 됐든 상혁은 반드시 방법을 찾을 것이다.
“인간 정화조에 인간 지렁이, 거기에 이제는 인간 공기청정기도 되겠네.”
자신의 몸으로 오염을 흡수하여 자연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니 궁극적으로 보면 상혁의 행동은 지구에 이로운 짓이다.
아마 상혁의 서클이 올라갈수록 상혁이 정화하는 지구의 오염 물질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걸 아니 세계도 상혁에게 접근한 것이리라.
띠리리!
그런데 그때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지도 않았지만 상혁은 그것이 자신을 또다시 귀찮은 일로 불러내기 위함이란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강한 힘에는 책임이 따르는 것이 아니다.
강한 힘에는 그냥 힘이 없었다면 못 본 체하고 지나쳤을 날파리들이 많이 보여 거슬리는 것뿐이다.
“여보세요?”
[크, 큰일 났어요. 병원에 이상한 사람들이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