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94화 (93/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94화

094. 헛다리 짚기(4)

사만다 허드는 열다섯 살에 스크린에 데뷔했다.

학교를 다니던 중 꽤 제작비가 큰 영화의 청소년 단역을 뽑는다는 공고가 사만다가 다니던 학교에 붙었고 친구들과 우르르 지원해서 얼떨결에 붙은 것이 연예계 생활의 시작이었다.

그녀의 연예계 생활은 순탄했다.

남들은 다 겪는다는 무명 시절을 겪지 않고 청소년 단역으로 출연하게 됐던 영화에서 여주인공의 친구인 조연급의 배우가 사고를 당해 나오지 못하게 되면서 사만다가 그 자리를 꿰찼다.

아마 그녀는 연기에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있었던 모양이다.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사만다는 무서워하지 않았고 대본 속 캐릭터가 되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에 흥미와 재미를 느낀 것이다.

열 살 때부터 시작한 교회 성가대에서 배운 발성 때문에 사만다는 딕션과 발성도 그 나이대에 비해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렇게 감독은 사만다 허드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녀에게 눈도장을 찍어 놓은 뒤 자신의 다음 작품에 사만다 허드를 여주인공으로 발탁한다.

그리고 그 영화가 크게 히트하면서 사만다 허드는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18세 미만 라이징 스타 1위로도 뽑힌 그녀는 첫 주연작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으면서 그 연기력을 입증하게 된다.

채 성인이 되기도 전에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의 여주인공이 된 사만다 허드는 그때부터 들어오는 작품을 골라서 할 수 있을 정도의 유명세를 얻게 된다.

그리고 성인이 된 순간 제약이 사라진 사만다 허드에게 거의 미국의 모든 감독들이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하며 그녀는 모든 감독들의 뮤즈가 된다.

그렇게 2년 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또다시 3년 뒤인 25살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명실공히 성적으로도, 연기력으로도 자신이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임을 증명한 사만다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곧게 뻗은 탄탄대로는 쉽게 꺾이지 않을 것 같았다. 성공을 거듭한 그녀는 어느새 주변에 바람만 불어넣는 이들이 벌떼처럼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여왕처럼 떠받들어 주었다.

백성도, 영토도 없는 여왕 행세였지만 사만다는 그런 그들의 사탕발림에 넘어갔다. 하지만 외적으로 사만다는 계속해서 성공을 거듭했다.

10억 불 클럽, 아카데미 위원 위촉,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5인…….

사만다 허드는 불과 서른이 되기 전에 그 수많은 수식어들을 자신의 이름 앞에 달았다. 그러면서 사만다는 단순히 연예계를 넘어 미국 정계와 재계에까지 인맥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남자도 여럿 사귀어 보았던 그녀지만 사만다 허드는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은 욕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퍼스트 레이디 같은.

때마침 그녀에게 접근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녀의 야망을 이뤄 주겠다며 그녀에게 그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윌리엄 글레이저.

워싱턴 주 3선 의원인 그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유력 정치 가문인 글레이저 가문의 장남으로 사만다에게 깊은 호감을 드러내면서 사만다와 윌리엄은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윌리엄 글레이저는 전 대통령이자 뉴욕주 6선 상원의원이었던 프랭크 글레이저의 아들로 그들은 부시 가문에 이어 두 번째로 부자(父子)가 대통령을 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윌리엄 글레이저는 정치인들 중 호감형에 젊고 능력이 빼어나 대중들의 인기가 높았고 무엇보다도 전 대통령이자 뉴욕에 뿌리 깊은 영향력을 가진 부친의 존재로 인해 무리 없이 미래의 대통령 후보로 꼽혔다.

그 때문에 사만다는 윌리엄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미국의 여성들 중 가장 존귀한 퍼스틀 레이디가 될 수 있을 것이란 달콤한 상상에 빠졌다.

윌리엄 글레이저가 자신 소유의 보트에서 여성 네 명을 불러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짓을 벌이는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의 호감형 이미지는 철저한 계산 아래 만들어진 이미지였고 그가 사만다에게 접근한 것도 미국인들의 선망의 대상인 그녀를 정복하고 싶은 것뿐이란 것을 사만다는 그때 깨달았다.

그리고 그 요트에서의 일을 빌미로 윌리엄을 협박하였는데.

‘맨해튼에 있는 내 아파트에 들어갔다가, 그 뒤로는 정신을 잃었어.’

사만다 허드는 자신의 손목을 매만졌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뇌를 절제술로 잘라 낸 것처럼 그 뒤로의 기억이 거의 없었다.

중간중간.

아주 잠깐 자신이 수술대 같은 곳에 누워 있고, 자신이 비행기로 어딘가로 실려 갔으며 주삿바늘이 파고드는 섬뜩한 느낌 정도만 생각이 날 뿐.

“말 안 할 겁니까?”

사만다가 기억을 반추하는 건 상혁의 목소리에 의해 끊겼다. 사만다는 상혁을 보며 말했다.

“제가 뭘요?”

“댁 살려 준 사람인데, 미국에서 유명한 배우란 당신이 왜 여기까지 팔려 와야 했는지. 그 이유요.”

“그걸 말해 주면 뭐가 좋은데요?”

한국이라니. 사만다는 자신이 왜 한국으로 오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협박을 한 자신을 글레이저 가문에서 처리하려고 했다는 것뿐이었다.

“답답하네. 이게 물에서 건져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건가? 확실히 황당해.”

그렇게 중얼거린 상혁은 사만다의 몸을 가리켰다.

“댁의 목숨값이라고 칩시다 그럼.”

“내 목숨값…….”

사만다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자신이 이렇게 깨어나지 못 할 수도 있었다니. 새삼 어깨가 부들거리면서 떨리며 공포가 덮쳐왔다.

이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 내일의 해가 뜨는 것을 볼 수는 있을까?

“쯧.”

상혁은 혀를 차면서 사만다의 머리 위에 제 손바닥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사만다는 자신의 온몸으로 따스한 온기가 퍼져 나가면서 몸의 떨림이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머릿속까지 평온해졌다.

“어떻게 한 거죠?”

사만다는 상혁을 신기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진정 마법으로 사만다의 패닉을 없애 준 상혁은 코웃음을 쳤다.

“지금 그쪽은 나한테 질문을 할 권리가 없어요. 내가 묻는 거에나 대답해 주지?”

자신은 사만다 허드였다.

연예계에 데뷔한 뒤로 근 15년을 여왕처럼 떠받들어진 그녀에게 귀찮다는 듯 귀를 후비적거리면서 건성으로 말하는 상혁의 모습은 퍽 신선하기까지 했다.

아니, 아마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이기 때문에 신선하게 느껴진 것이리라. 15년 동안 여왕처럼 떠받들어진 사만다의 성격은 좋은 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었다.

‘난 그냥 체스 말이었어. 쓰다가 필요 없으면 그냥 분질러 버릴 수 있는.’

사만다는 자신이 신기루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은 여왕이 아니었다. 여왕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은 그냥 광대에 불과했다.

진짜 권력자가 한마디 하면 그냥 모가지가 날아가 버릴 수도 있는 그런 불쌍한 광대.

자신이 광대인 줄도 모르고 살아온 광대가 바로 사만다 본인이었다.

“그걸 왜 아시려구요?”

“왜냐고?”

당연히 엘릭서 때문이다. 뭐 하는 놈들이길래 열화판이나마 엘릭서를 만드는 것인지.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었다.

인체 실험하는 게 괘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사만다에게 말할 의무는 없었다.

“그냥요. 궁금해서?”

“……아무리 목숨을 구해 주셨다고 해도 제 비밀을 그렇게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죄송해요.”

사만다는 깔끔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혁은 그런 사만다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배우라면서요?”

“네.”

더 이상 사만다는 자신이 배우라는 것을 자랑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처음 본다는 듯한 상혁의 반응에 의아한 것도 사실이었다.

주변을 보니 여긴 대한민국인 것 같은데, 사만다가 알기로는 자신이 출연한 히어로물이 대한민국에서 인구의 20퍼센트 넘는 천만 명이 봤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방한을 한 효과가 있다면서 흡족해하는 제작사 사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상혁은 그런 자신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런데 아직도 자기가 주인공인 줄 아시는 모양인가 보네요?”

“네?”

사만다는 슬슬 기분이 나빠졌다. 상혁이 자신을 도발하듯 말하는 것이 마치 자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인공이라니. 대체 어느 영화 속 주인공이 이런 꼴을 당한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면 지금 당신은 비밀을 숨길만 한 여유가 없다는 걸 아셔야 할 텐데.”

“……네?”

“당신. 군부대에 잡혀 있었어요. 미군 부대. 세계 최강의 군대를 자처하는 거기로 납치됐었다고. 거기서 죽자고 살려 나왔다니. 뭐?”

“뭐라구요?”

사만다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자신이 납치되었고, 거기서 무언가를 당했다는 것만 알 뿐, 군까지 동원되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사만다는 수긍하는 눈빛을 띠었다.

‘글레이저 가문이라면.’

글레이저 가문은 미국 정계에서 유독 국방성과 연이 깊은 곳이다. 그런 글레이저 가문에서 나섰다면 군이 나서는 건 당연한 일이다.

상혁은 그런 사만다의 눈빛을 유심히 살폈다.

‘놀랐지만 수긍했다? 미군을 동원할 정도의 누군가를 알고 있는 모양이군.’

그리고 그녀는 아마 그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거나 버려졌을 것이다. 상혁은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하지만 이내 눈을 피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됐습니다. 말하지 않고 싶다는 거 억지로 털어놓게 할 생각도 없고. 조금 돌아가죠 뭐. 산 채로 인체 실험을 당했는데도 그들이 무섭다니까요.”

상혁은 일부러 그녀가 인체 실험에 강제로 동원당했음을 슬쩍 흘렸다. 아무리 강대한 적이라고 해도 산 채로 자신을 실험하려고 했다면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역시.

상혁은 사만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봤다.

‘10년을 용병으로, 노예처럼 살았던 나도 분노했는데.’

억눌려 살고 맞으며 사는 것에 더 익숙했던 가나안에서의 상혁도 분노했었다. 그러니 사만다도 분노하는 게 당연했다.

자기 자신의 존엄과 자유를 잃는 건 인간에게 있어 축생이나 다름없는 수치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건 됐고.”

“나한테 무슨 짓을 했죠?”

상혁은 그런 사만다를 보고는 씩 웃었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문을 연 뒤 그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지예를 불러들였다.

“이제 들어가도 되나요?”

김지예는 어딘가 삐친 듯한 표정이었다. 상혁이 자신의 코앞에서 문을 쾅 닫아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지예가 들어왔다.

“이분은?”

“당신이 납치된 부대에서 가지고 나온 USB 속의 파일이죠. 난 전문의가 아니니까 전문가를 모셨고. 말씀해 주세요.”

김지예는 사만다를 보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미군은…….”

그녀의 몸에 HIV를 포함해 서른 여 개가 넘는 병원균이 주입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녀가 죽을 뻔했다는 것과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금은 몸속의 그 균들이 소멸되었다는 사실까지.

김지예는 의사의 명예를 걸고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사만다에게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이미 당신의 몸에 안착한 그 병균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어요. 가여운 당신을 위한 신의 배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지금 당신의 몸은 깨끗해요.”

상혁은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열화판 엘릭서. 그 엘릭서를 상혁이 흡수하는 과정에서 사만다의 몸에 주입되었던 병균들이 다 치료된 것이라고.

열화판이긴 하지만 엘릭서의 효능이 있다는 것을 사만다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실험 데이터는 내 손에 있고.’

상혁은 온양 공장의 엘릭서 운송관리팀을 덮치면서 열화판 샘플 두 개와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챙겼다.

그러나 그걸 당장 써먹을 수는 없었다. 상혁에게도 그 분야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터.’

열화판 엘릭서에 대해 상혁이 통달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진 않았다. 마법사에게 공부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이 필요에 의해서라면 상혁은 더더욱 자신이 있었다.

그때 사만다가 김지예에게 말했다.

“잠시 저분이랑 단둘이 대화하고 싶어요.”

김지예는 자신의 병원인지 다른 사람의 병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그러자 사만다가 상혁을 보며 말했다.

“절 살려 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