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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92화 (91/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92화

092. 헛다리 짚기(2)

상혁은 왜 백이현과 백도현, 사이도 좋아 보이지 않는 형제가 굳이 이 자리를 만든 것인지를 깨달았다.

둘은 밥그릇 걱정을 하고 있었다.

20년 만에 그 존재를 안 백성철 회장의 조카에게 회사 하나 떼어 준다는 것에 백이현과 백도현은 차마 반기를 들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기에는 명분과 이유가 너무나도 완벽했다.

혈육의 정.

그것을 내세우는 백성철 회장에게 백이현과 백도현은 차마 자신의 세력권의 회사가 떨어져 나간다고 해도 안 된다고 할 수가 없었다.

상혁은 속으로 히죽 웃었다.

“글쎄요.”

하지만 겉으로는 모르겠다는 듯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백이현이 와하하 하고 과장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SG그룹에 어떤 회사들이 있는지 아직 제대로 파악도 못 했겠지. 내가 너무 성급했구나.”

백도현이 대범한 척하는 백이현을 보면서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그러면 이 사촌 형이 추천 하나 해 줄까? SG 중공업은 어떠냐. 꽤 건실한 회사고, 적자를 볼 걱정은 없는 회사로 알고 있다만.”

백이현의 표정이 슬쩍 썩었다. SG 중공업은 백이현의 SG건설과 함께 SG그룹의 1차 산업을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곳이었다.

동시에 백이현의 든든한 우방이기도 했다. 그러자 백이현이 질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난 SG 통신을 추천해 주고 싶구나. 상이 너도 많이 들어 봤을 게 아니냐. SG 통신. 알짜배기지. SG그룹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산업이기도 하고.”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3대 통신사 중 하나인 SG 통신. 그러자 이번에는 백도현의 얼굴이 썩었다. SG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사장인 백도현에게 SG 통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었다. SG전자의 핸드폰 사업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 바로 SG 통신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알짜배기 중의 알짜배기인지라 백도현이 애지중지하는 곳이었다.

“형. 그러면 조선은 어때? 요새 조선 경기 안 좋다면서?”

“그럼 너는 문화 쪽은 어떠냐? 듣자 하니 다른 기업에 경쟁에서 밀린다는 소리가 파다하던데.”

백이현과 백도현이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서로 으르렁거렸다. 상혁은 그런 둘을 보면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속으로 고소를 금치 못했다.

‘다 제 것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 발버둥 치는 꼴이 볼 만 하네.’

어차피 다 무너질 것을. 상혁은 헛된 싸움을 하는 두 형제를 보면서 나섰다.

“한 달 후에 회사에 출근하더라도 언제 회장님께서 그렇게 주실지 모르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두 형님은 그만 다투세요.”

“흠. 누가 다퉜다고.”

“그냥 괜찮은 회사를 추천해 주려고 한 것뿐이지.”

본의 아니게 상혁에게 자신들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토로한 셈이다. 그 점을 뒤늦게 깨달은 둘의 표정이 못 먹을 것을 먹기라도 한 듯한 표정으로 변했다.

“형님들의 염려는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먼저 공부를 조금 해 봐야겠습니다.”

백이현이 민망한 듯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백도현은 곧바로 상혁에게 말했다.

“회장님 말을 흘려듣지 말거라. 특히 이선호의 일은 더더욱.”

혹여나 상혁이 이 상황에서도 이선호와 가깝게 지내겠다고 하면 곤란해지는 것은 백도현이다. 쥐뿔도 없을 때도 몇 번이나 백도현을 귀찮게 했던 이선호다.

그런 이선호에게 이제는 상혁이란 빽이 생긴다면?

‘귀찮아지지.’

아무것도 없던 때라면 모를까 상혁이 있다면 아무리 상혁에게 권력이 없다고 해도 그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까다로워질 것이다.

백도현은 돌아가는 즉시 내부 단속을 단단히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상혁에게 경고했다.

“오승택 역시 마찬가지다. SG전자의 기밀을 빼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그놈을 왜 네가 그리 감싸는 건지 알 수가 없어.”

그 일에 회장이 끼어들었다고 예상했기 때문에 백도현은 상혁을 크게 압박하지 않았다.

괜히 상혁까지 적으로 만들어 버리면 자신의 행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백도현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혁은 그저 한마디만을 했다.

“예.”

백도현은 상혁이 이선호와 오승택을 버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렇기에 그는 인상을 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정도면 충분히 어울려 준 것 같으니 먼저 일어날게.”

“도현아.”

백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백이현을 빤히 쳐다봤다. 자신을 붙잡지 말라는 말을 눈으로 하고 있는 셈이었다. 백이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너무 상처받진 마라. 널 싫어해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 사회성이 없는 놈이야.”

백도현이 나가자 백이현은 상혁의 잔에 막걸리를 따라 주었다. 그새 조금 소화가 된 것인지 한 사발 따라진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이 마치 곰을 연상시켰다.

“예.”

“아마 이 집안은 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를 거다.”

백이현은 차 속에서 상혁과 대화를 나눈 것으로 상혁과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것인지 돼도 안 되는 조언을 해 준답시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말만 계속해서 해 댔다.

꼰대가 이런 건가 싶어 백이현이 하던 말을 듣던 상혁은 자신도 가나안에서 저런 백이현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우린 재벌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이란 게 없을 거다, 그러니 너무 실망하지는 말고, 네 앞길은 앞으로 네가 잘하고, 주위 사람을 잘 들여야 한다는 둥.

“혹여 사람이 필요하다거나, 도움을 받고 싶다면 언제든지 말하거라. 내 발 벗고 나서서 널 도와줄 테니까.”

백이현이 자신만 믿으라는 듯 곰처럼 가슴을 탕탕 두드려댔다. 상혁은 그런 백이현을 보면서 속으로 조소했다.

‘누구한테 올가미를 씌우려고.’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상혁을 감시할 사람들을 주변에 보낼 것이고 그가 도와준 것이 다 빚으로 남아 언젠가는 갚아야 할 날이 오게끔 만들 것이다.

순수한 호의? 가족에 대한 걱정?

그런 것 따위는 이 집안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인 백성철부터가 제 자식들을 견제하는 사람인데 그 아래에서 자란 아들들이 정상일 리 없었다.

“참. 너한테 누나도 있다.”

백정연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러자 상혁은 고개를 모로 꺾었다.

‘어떻게 이런 집안에서 그런 성격의 여자가 태어나지?’

백정연도 분명 정상은 아니었다. 자신을 사회지도층으로, 다른 사람을 이끌어야 할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는 선이란 것이 있었다.

사회지도층으로서의 책임과 규칙을 철저할 정도로 지키려고 하는 등 백 씨 형제와 비교하면 같은 핏줄을 타고 태어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달랐다.

“뵌 적이 있습니다.”

“아. 호텔에 간 적이 있다고 했지.”

백이현이 씩 웃었다.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이현이 그러면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상혁을 향해 말했다.

“그럼 이만 일어나지. 이래 봬도 가정이 있는지라 오래 나와 있을 수도 없거든. 동생도 불편하고 피곤할 것 같고.”

“예, 감사했습니다, 형님.”

“큭큭. 꼬박꼬박 형님이라고 불러 주는 동생이 생겨서 좋기는 좋아. 그래. 기분이다. 동생이 생긴 김에 이 형님이 선물 하나 해 주마.”

상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선물이라니?

“내일이면 알 수 있을 거다. 준비하려면 꽤 바쁘게 움직여야 할 테지만.”

호탕하게 웃은 그가 손을 흔들며 차를 타고 사라졌다. 닭볶음탕 집에 오승택과 단둘이 남은 상혁이 피식하고 웃었다.

“데리고 왔으면 다시 태워 주기라도 해야지.”

“택시라도 부를까요?”

오승택이 상혁에게 물었다. 상혁은 어깨를 으쓱한 뒤 오승택에게 아직 열려 있는 닭볶음탕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술이나 한잔하지?”

그 말에 오승택이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 * *

[예?]

“그렇게 됐습니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네요.”

[자, 잠시만요. 그럼 대체 이게…….]

이선호는 쉽사리 할 말을 찾지 못하고는 버벅거렸다. 말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저 정도라면 그 충격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냥 가볍게 생각하시죠. 뭐 그런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으니.”

[달라질 것이 없다니 그게 말이 되겠습니까? 허, 이러면…….]

“그럼 나중에 오시면 뵙겠습니다.”

[그, 백 대표님께 말씀드리지 않으셔도…….]

“아마 아실 겁니다.”

SG그룹의 정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백정연도 SG의 오너 일가이니 이 소식을 벌써 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당황하고 있겠지.

“이선호 변호사님.”

[네, 상혁 씨.]

“앞으로도 저 좀 도와주시죠.”

어제의 상혁과 오늘의 상혁은 신분 자체가 달라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도와달라는 말의 의미도 달라졌다. 상혁은 침묵하는 이선호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SG그룹이 없어져야 할 것 같은데, 변호사님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예??]

이선호가 딸꾹질하기 시작했다. 상혁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예상도 못 했을뿐더러 그런 것치고는 너무나도 폭탄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SG그룹의 핏줄이란 것을 알게 된 상혁이다.

그런데 그룹을 망하게 해야겠다?

“그럴 일이 있습니다. 어제 확실해졌거든요. SG그룹. 해체해야겠습니다.”

이제 허무맹랑한 소리로만 치부할 수 없게 됐다. 상혁은 SG그룹의 핏줄이었고 거기에 마법사였다. 이선호는 진짜로 상혁이 그렇게 할 것만 같아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그, 그게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니고…….]

“그러려고 백도현 때리고 그러시지 않으셨습니까. 백도현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SG 전체의, 정확히는 그 사장과 회장이란 사람이 문제더군요.”

이선호는 할 말을 잃었다. 상혁이 어제 만나고 온 사람이 백성철 회장과 두 형제란 것을 눈치챈 것이다.

그런 이선호에게 상혁은 생각할 시간 따위를 주지 않았다.

“그러니 계속 제 사람 하시는 걸로 합시다. 그럼.”

뚝.

어차피 이선호와 상혁의 목표는 유사했다. SG그룹이 무너지면 백도현도 모든 것을 잃고 무너지는 것이다. 이선호의 적이 백도현이니 상혁이 목표를 향해 걸어가다 보면 이선호도 백도현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백정연한테는 한 말을 지키지 못하겠네.”

그녀가 SG그룹의 회장이 되면 좋겠다는 건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SG그룹은 그 전에 무너져 없어질 테니까.

“폭풍에 휘말리지 않는 정도만 해 주는 걸로 하지.”

백정연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SG그룹이 무너져도 백정연의 것들은 지켜 주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그때 상혁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김지예였다.

“여보세요?”

[그 사람 일어났어요.]

“사만다 허드?”

[네. 그런데…… 뭐 지금 상황이 좀 이상하니까 빨리 오세요.]

김지예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딱 끊었다. 사만다 허드가 이제 정신을 차린 것이면 그때 실험실에 끌려갔던 사람들 중 가장 늦게 깨어난 셈이 된다.

실제 엘릭서를 주입했으니 그 후폭풍 때문일 것인데, 상혁은 흥미가 돋는 것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상혁 님.”

그런데 그때 밖에서 오승택이 상혁을 불렀다. 상혁이 문을 열자 오승택이 손에 이상한 키 같은 것을 들고는 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 누가 호텔 주차장에 차와 이 키를 맡기고 갔습니다.”

“차랑 키?”

비싼 차였다. 굳이 가격을 따지자면 억대를 넘어가는 정도? 상혁은 피식 웃었다.

“백이현의 선물인 모양이군.”

선물을 해 주겠다고 하더니 상혁이 차가 없다는 것을 알고 차를 선물한 모양이었다. 상혁은 서울에 온 김에 묵고 있던 호텔까지 백이현이 알고 있었다는 것에 SG그룹의 정보력을 새삼 실감했다.

그렇게 말한 상혁은 오승택에게 말했다.

“어디 좀 가자.”

“예, 준비하겠습니다.”

오승택은 곧바로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혁이 자신의 동아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였다.

그리고 상혁을 태운 차가 김지예의 병원을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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