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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91화 (90/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91화

091. 헛다리 짚기(1)

타악.

백성철은 상혁과 함께 두 아들을 모두 다 내보냈다. 볼일은 다 봤으니 이제 알아서 하라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그 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백성철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오직 상혁만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SG그룹.’

마치 제 자신이 거대한 공룡인 것처럼 굴고 있지만 그 속은 저열한 벌레 한 마리에 불과한 백성철이다.

그 벌레가 쌓아 올린 자신의 제국을 상혁의 손으로 무너뜨릴 때, 그때까지 상혁은 이 분노를 차갑게 식힌 채 머릿속에 넣어 둘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SG그룹 사람이다.’

상혁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뇌었다. 이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선 철저한 SG그룹의 사람이 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혁에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오승택이 다가왔다. 오승택이 상혁에게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을 건 또 뭐가 있을까. 큰아버님을 뵌 것인데.”

상혁이 싱긋 웃자 오승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무언가 불편한 것인지 어딘가를 계속해서 힐끔거리면서 곁눈질을 했다.

상혁이 그곳을 쳐다보자 그곳에는 박정철이 서 있었다. 오승택을 쫓던 것이 백도현이니 박정철이 오승택을 알아보고 노려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척.

상혁은 보라는 것처럼 오승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 모습에 박정철이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그런데 그때 상혁의 어깨에 커다란 손이 턱 하고 올라왔다.

“사촌 동생아.”

SG건설의 백이현 사장이었다. 묵직하고 뜨거운 손이 어깨 위에 올라왔다. 상혁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자 그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새롭게 사촌 동생이 생겼으니 오늘 이 기쁜 날을 그냥 보낼 수는 없지. 같이 술 한잔 어떠냐? 사촌끼리의 우애도 다질 겸 말이다.”

그는 상혁의 등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전혀 모르는 듯했다. 그저 그는 핏줄을 만나 반갑다는 기색이 한가득이었다.

상혁은 고개를 돌려 백도현을 쳐다봤다.

“형님은 안 가십니까?”

“형님?”

백도현은 불쾌하다는 티를 팍팍 냈다. 그는 시종일관 상혁에게 못마땅했고 상혁에게 적대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상혁이 나타난 후로 그가 겪은 일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됐다.

후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던 백도현에게 연달아 사건과 사고가 터졌으니 말이다.

“도현아. 같이 가자. 간만에 형제도, 사촌도 뭉치는 자리가 아니냐.”

백이현은 금방 의리라고 외칠 것만 같았다. 그런 백이현의 말에 백도현이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였다. 그냥 갈 줄 알았기 때문이다.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는 모양이로군.’

상혁은 백도현의 성격이 자신이 예상한 대로란 것을 눈치채고는 고소를 금치 못했다. 답이 확실하게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신중한 성격은 물론 철저히 득실 관계를 따져 행동을 결정하는 것까지 딱 상혁이 예상한 대로였다.

“내가 좋은 곳을 알고 있다. 가자.”

백이현이 앞장서고 백도현과 상혁이 그 뒤를 따랐다. 주차장에 내려가자 백이현이 상혁을 보며 말했다.

“타고 온 차가 있어?”

“없습니다.”

“그럼 내 차를 같이 타고 가자.”

백이현이 자신의 차를 가리켰다. 재벌이라면 흔히 최고급 세단 같은 것을 타고 다닐 줄 알았는데 백이현의 차는 딱 보기에도 백이현과 딱 이미지가 맞아떨어지는 거대한 트럭 같은 차였다.

“험비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이걸 육군용 장갑차로 탄다고도 하던데.”

거의 무슨 탱크 같은 커다란 차였다. 백이현이 씩 웃으며 차 자랑을 했지만 그런 그의 자부심과는 달리 험비의 승차감은 별로였다.

왜 백도현이 같이 타고 가자는 것을 거절하게 제 차를 탔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기다.”

그렇게 도로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험비가 우렁찬 배기음과 함께 도착한 곳은 남한산성 꼭대기에 있는 한 닭볶음탕 집이었다.

“여기가 기가 막히거든.”

백이현은 줄곧 오는 차에서 상혁에게 시시콜콜하게 여러 가지를 물었다. 그러고는 상혁이 살아온 과정을 들으면서 같이 안타까워하고 슬퍼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백이현은 전혀 의외의 선택에 씩 웃으면서 험비에서 내렸다.

“왜. 뭐 근사한 양식이라도 먹을 갈 줄 알았나?”

백이현이 스테이크를 써는 시늉을 하면서 상혁에게 물었다. 상혁은 그때 백도현이 뒤따라 도착해 차에서 내리면서 인상을 팍 찌푸린 것을 물끄러미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현 형님은 좋아하시지 않는 것 같아서.”

백이현과 백도현, 그리고 상혁의 나이 차이는 스무 살만큼이나 났다. 하지만 상혁은 넙죽넙죽 형님이란 소리를 가져다 붙였다.

어차피 이들을 대하는 건, 그리고 앞으로 SG그룹에서 상혁이 보일 모습은 하나부터 열까지가 다 연기다.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 연기하는 것쯤 상혁에게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뽀르르.

그런 상혁의 분노를 느낀 초아가 열심히 상혁을 위로했지만 상혁의 심장은 여전히 차갑게 두근거렸다.

“푸하하. 맞아. 저 녀석은 이런 곳 안 좋아하지. 으슥하고 비밀이 많은 곳을 좋아하니까. 그래도 이런 곳에서 얼큰한 닭볶음탕에 막걸리 한 잔이 맛있는 것도 알아야 아랫사람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상혁의 눈이 남몰래 살짝 가늘어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백이현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여우 같은 곰.’

백도현은 백이현과 상혁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기분이 나쁘면 인상을 찌푸렸고 적개심이 서린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건 백도현이 백이현과의 경쟁 앞에서 앞서 있다고 자신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혁은 백이현을 보면서 생각했다.

‘백도현보다 이자가 더 위험한 자다.’

재벌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소탈하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백도현에 대한 은근한 비방까지.

상혁은 이게 다 백이현이 의도했던 바라는 것에 전 재산을 걸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한 가지다.

백이현의 저 모습이 전부 다 연기라는 것. 백이현은 어쩌면 백도현보다도 더 용의주도하고 자신의 모습 태반을 숨기고 살아가는 위험한 자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백도현에게 밀리는 것도 백도현을 방심하게 하기 위함이겠지. 백성철은 백도현을 견제하고 있었고, 백정연도 백도현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으니까.’

만일 상혁의 가정이 사실이라면 백이현은 무서운 사람이었다.

자신이 몸을 낮추는 대신 경쟁 우위에 선 동생인 백도현이 사람들의 비난받이가 되도록 물밑에서 작업을 했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재밌었다.

어차피 무너질 제국을 얻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두 형제를 보며 상혁은 물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냉수가 목을 타고 내려가자 찌릿하면서 속이 풀렸다. 상혁은 자신이 오늘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쓰게 웃었다.

아닌 척을 해도 긴장했던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 속에 혈육의 정이란 것이 있었던 것처럼.

“목이 타지? 나도 회장님 만나고 오면 늘 그랬거든. 물 많이 마셔라.”

백이현이 자상한 사촌 형처럼 장난스레 웃으며 상혁을 팔꿈치로 툭 쳤다. 그는 툭 친 것이지만 맞는 사람은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충격이었다.

“꼭 이런 곳에 와야 해?”

“왜, 여기가 어때서. 여기 오기 힘든 곳이야.”

“…….”

뭐라고 한마디 한 백도현은 상혁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고는 상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상혁이 콧잔등을 살짝 찌푸리자 백도현이 상혁에게 말했다.

“SG 온양 공장. 그리고 병원에 있던 오승택의 가족. 전부 다 회장님이 시켜서 한 짓이었어?”

“…….”

상혁은 백도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에 속으로 고소를 금치 못했다. 백도현의 얼굴은 확신에 차 있었다. 그렇다는 건 이미 답을 내려놓고 있다는 뜻이다.

상혁에게 물어보는 건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상혁에게 그건 나쁘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상혁은 고개를 살짝 꺾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좋아. 알았어.”

그게 끝이었다. 하지만 백도현은 마치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 혼자 생각하고 그렇게 답을 내린 걸 진짜로 믿어 버리는 부류다.

한마디로 자신을 과신하는 그런 인간.

이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의 손바닥 위에 돌아간다고 착각하는 인간이 바로 백도현 같은 인간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불쌍한 인간이기도 했다.

이 세상에 그렇지 않다는 걸 본인만 빼고 모두가 다 알고 있는데 자신 혼자 자신만의 세상에 빠진 불쌍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나왔다.

“이 남한산성을 넘어가는 길을 우리 SG건설에서 깔았지. 그러다가 안 곳이야. 여기서 단체 회식을 수도 없이 했었지.”

닭볶음탕은 빨간 것이 먹음직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상혁은 또 먹을 것 앞에서 빼는 인간이 아니었다.

“잘 먹겠습니다.”

백이현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상혁이 어려워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전투적으로 먹을 것에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백이현이 씩 웃었다.

“좋아. 어디 한번 먹어 볼까?”

상혁은 닭볶음탕을 먹는 순간 옆의 백이현과 백도현을 순간 잊었다. 그 정도로 확실히 맛있었다. 백이현이 괜히 자신만 믿으라면서 데려온 곳이 아니었다.

상혁과 백이현이 먹는 사이 백도현은 고고하게 팔짱을 끼고 앉아 수저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마치 이런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는 그런 티를 팍팍 냈다.

SG그룹의 형제가 들어오자 식당은 빠르게 사람들을 내보냈다. 그 때문에 주변이 텅 비었다. 그럼에도 백도현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천지인 모양이었다.

후르릅!

빨간 국물은 닭기름과 어우러져 딱 먹기 좋을 정도로 진하고 자극적이었다. 거기에 야들야들한 살코기는 부위를 막론하고 먹으면 입 안에서 육즙과 국물이 팡팡 터졌다.

거기에 중간중간 들어간 감자 같은 부속 재료들까지.

드륵!

순식간에 닭볶음탕이 바닥을 드러냈다. 4인분을 시켰는데 사실상 상혁 혼자 순식간에 3인분을 먹어 치웠다. 그걸 본 백이현의 눈에 호승심이 깃들었다.

“4인분 더!”

백이현도 먹는 거라면 어디서 뒤처진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한 운동량과 식욕을 자랑하는 그였다.

하지만 상대가 상혁이었다.

한 시간 후.

“끄, 끄어어억.”

백이현이 반쯤 죽겠다는 얼굴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에 반해 상혁은 여전히 닭볶음탕을 입안에 쑤셔 넣었다. 오죽하면 백도현이 상혁을 보면서 질릴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둘 다 사람이야?”

상혁이 혼자 몇 사람 몫을 먹었다. 백이현은 간신히 따라 먹고는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괜히 상혁을 따라가려다가 목까지 닭이 차오른 것이다.

톡 치면 살코기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백이현이 씩씩거리면서 가쁘게 숨을 쉬는 사이 상혁은 볶음밥 다섯 공기까지 먹고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잘 먹었습니다.”

상혁의 완벽한 승리다. 백이현은 그런 상혁을 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은 뒤 시켜놓은 막걸리를 마셨다. 닭볶음탕을 경쟁적으로 먹느라 정작 막걸리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끄어어억!!”

백이현이 크게 트림을 하자 백도현이 구역질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깔끔을 떠는 백도현답게 백이현과는 도통 형제가 맞질 않았다.

어쨌거나 상혁은 한 끼 만족스럽게 때웠다는 것에 백성철을 만나고 더러웠던 기분이 약간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자기 파괴적인 일은 삼가야겠지.’

백성철을 파괴해야지 그 복수심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상혁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입을 쩝쩝거렸다.

“앞으로 한 달 동안 뭘 할 생각이지?”

백도현이 상혁에게 물었다.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백성철이 상혁에게 준 유예기간은 한 달이다.

“주변을 정리해야겠지요.”

“…….”

“하고 싶으신 말씀을 하시면 됩니다.”

상혁은 백도현에게 그렇게 먼저 말했다. 그러자 백도현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백이현이 킬킬거리면서 웃었다.

“죽상을 하면서도 지금까지 앉아 있었으니 모를 수가 없지.”

“시끄러워. 형도 마찬가지잖아.”

백이현이 끄응 하는 소리를 내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백이현이 상혁에게 말했다.

“회장님께서 네가 시험을 통과하면 회사를 맡기신다고 하셨지. 혹시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말해 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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