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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88화 (87/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88화

088.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3)

“그러니까 제 아버지가 여기 회장님의 막냇동생이다?”

“예.”

“뭐.”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상혁을 본 김대엽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스무 살짜리에게는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은 혼란이 보이는 것이 정상이었고, 김대엽도 그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상혁의 얼굴에서는 그 어떠한 혼란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건 상혁이 평정을 가장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백성철의 곁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본 김대엽은 20대 청년에게서 저러한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바로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흔들릴 것 같지 않은 부동심.

마치 수십 년을 수행한 고승에게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러한 부동심을 상혁은 가지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그리고 그건 김대엽의 상식 바깥의 일이었다. 10년 동안 절에 들어가 수행을 닦았다고 해도 저 나이에 저런 부동심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러나 또 불심이 깊다고 하기에는 그 말투나 언행이 방자하기 그지없었다.

막무가내.

천둥벌거숭이.

상혁이 오늘 보인 모습은 딱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난사람은 난사람이라는 것.’

앞으로 그게 좋은 쪽일지 나쁜 쪽일지는 지켜보면 되는 일이다. 김대엽은 후줄근한 츄리닝 차림인 상혁에게 말했다.

“회장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상혁은 코웃음이 터져 나올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그래. 백성철이 김대엽에게는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정의 아버지나, 형제로서는 아닌 듯했다. 그것 하나만큼은 상혁은 확실할 수 있었다.

“그러니 도련님께도 좋은 기회가 되실지도 모릅니다.”

“도련님 말고.”

상혁은 도련님이란 소리를 듣자 팔을 벅벅 긁었다. 아무래도 그런 호칭에 알레르기가 있는 듯싶었다. 하지만 김대엽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불러 드리지 않으면 제가 혼납니다.”

“내가 싫대두요?”

“회장님의 명령은 절대적입니다. 그 어떠한 것 앞에 우선시 되는 것이 회장님입니다.”

김대엽은 확실히 백성철의 충복다웠다. 아마 백성철이 그더러 죽으라고 해도 그는 그럴 이유가 있겠거니 라고 생각하며 죽을 위인이었다.

한마디로 백성철이란 주제에 대해서는 무언가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이란 뜻이었다.

“근데 왜 좋은 기횝니까?”

상혁은 주변에서 자신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을 느끼며 김대엽에게 불렀다. 김대엽은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었다. 직원들에게 상혁이란 존재를 보여 주기 위함이란 것을 상혁은 눈치챘다.

“SG그룹은 대한민국 1위 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입니다. 그런 곳의 오너 일가가 된다는 것인데, 좋은 기회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요? 그게 좋은 기횐가? 난 아닌 것 같은데.”

상혁의 말에 김대엽이 고개를 돌려 상혁을 쳐다봤다. 그는 상혁을 한낱 철부지의 반항쯤으로 치부하는 듯했다. 그가 뭐라고 생각하건 말건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대단한 대기업의 총수시라는 분이. 내 아버지가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모르는데. 우리 아버지는 백성철 회장의 가족이 아니었습니까?”

“그건…….”

김대엽이 말끝을 흐렸다. 상혁의 말에 한 방 얻어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혁의 추가타는 이어졌다.

“아. 혹시 알았나? 알고 있었는데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돌아가신 거면 알고 있었는데도 모른 척을 한 거고? 에이, 설마 그럴 리가. 가족인데요. 안 그래요?”

상혁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부모님.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상혁에게는 60년이 흘렀다. 60년은 한 아이가 태어나 환갑을 치를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는 뜻이기도 했다.

열 살 때 조실부모한 상혁은 그 당시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무던히도 방황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부모님을 잃은 충격과 그로 인한 방황도 결국 보육원에서의 고단함에 기억 속 한편으로 밀어 놓았다.

그러고는 악착같이 살았다.

조실부모하고 기댈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고아가 인생 한번 바꿔 보겠다고 고시원에 틀어박혀 9급 공무원 준비만 했다.

그때는 공무원이 되면 인생이 바뀔 것이라고 믿었으니까. 아니, 인생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고는 가나안에 떨어졌고, 그곳에서 50년을 보냈다.

왜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하게 늘어놓냐고?

그 시간 동안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법사가 된 이후로는 어릴 적의 기억들이 더 선명하게 떠오르곤 했고 잊히지도 않았다.

인생 유일하게 행복했던 10년의 유년 시절.

그런데 그 부모님이, 아버지가 재벌집 오너 일가였단다.

그것도 그냥 그저 그런 대기업도 아니고 대한민국 1위 기업인 SG그룹. 그곳의 회장의 막냇동생.

거의 뭐 대한민국을 손바닥 위에 놓고 쥐락펴락한다는 SG그룹 회장의 막냇동생이였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와 결혼한 어머니는 비명횡사하셨다.

두 분을 덮친 자동차에 의해 차 사고로.

부검도, 뭐고 아무것도 없이 두 분의 사인은 그렇게 종결지어졌다. 음주운전에 의한 사고사. 그렇게 운전자는 살인 혐의로 붙잡혀 들어가서는 몇 년 형을 살다 나왔을 것이고 한 아이는 고작 10살에 천애 고아로 살았다.

그걸 백성철이 몰랐다?

SG그룹이 몰랐다?

‘내가 등신이냐? 그걸 믿게?’

백성철과 김대엽이 간과한 것은 상혁이 그냥저냥 힘들게 살아온 스무 살짜리 고시생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상혁은 전직 대마법사에, 온갖 정치적인 권모술수와 수만 명이 피를 흘린 대전쟁을 종결지은 한 왕국의 개국공신이었다.

구린 냄새?

그냥 슥 지나가면서 맡아도 풀풀 풍겨져 올라왔다.

‘차라리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너희들의 신상에 좋았을 것을.’

괜히 어쭙잖게 상혁이 백성운의 아들이라고 접근한 백성철과 김대엽의 어수룩함에 상혁은 속으로 그들을 비웃었다.

그들은 드래곤을 자기네들의 집으로 끌어들인 셈이다.

진실이 어디에 있건 간에 자신은 무조건 밝혀낼 것이다. 부모님의 죽음, 그리고 그 배후에 대하여 상혁은 마나에 걸고 진실을 밝혀낼 것임을 맹세할 수도 있었다.

60년?

오랜 세월이 지나지 않았느냐고?

정말 사고로 돌아가셨다면 그랬겠지. 하지만 냄새가 나지 않는가.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할 정도의 권력을 쥔 SG그룹 회장의 막냇동생이 사고사로 죽었고, 그 아들이 살아 있었다는 것도 백성철은 몰랐었다?

‘부모님은 도피하셨던 거겠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남은 답은 오직 하나. 부모님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셨던 것이다.

“하하핫. 장난입니다. 장난. 두 분이 돌아가신 지도 오래되었으니 해 본 말이구요. 설마 정말 그러셨겠습니까?”

상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면서 김대엽의 어깨를 툭툭 쳤다. 하지만 김대엽은 상혁과 함께 웃을 수 없었다.

상혁이 그 말을 한순간 김대엽은 순간적으로 칼을 삼킨 것처럼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서늘함을 느꼈다.

스무 살.

부모를 일찍 여의고 힘들게 살아온 세상 물정 모르는 고시생 하나를 데려와 백도현을 견제하는 말로 사용할 생각이던 상혁이 위협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이유를 김대엽은 단어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건 어떠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결론이 나온 것이 아닌 육감의 경지에 있는 것이었으니까.

‘아니지. 고작 스무 살일 뿐이다. 제아무리 용이라고 해도 아직은 이무기에 불과한 셈이니까.’

하지만 김대엽은 자신의 육감이 보낸 경고를 무시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될 수 없었다. 설령 상혁이 부모의 죽음에 대해서 알고 있어도 상관없었다.

상혁은 고작해야 아무런 힘도 없는 스무 살짜리 고시생이었으니까.

그런 그가 갑자기 SG그룹의 오너 일가의 일원이 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으니까.

‘그래도 주의 깊게 살펴봐야겠어.’

경각심을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한 수확이다. 적어도 김대엽은 그렇게 생각했다. 동시에 김대엽은 상혁이 충분히 비범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날카로운 칼은 조심해서 써야지. 아니면 확실한 칼집을 구해 놓던가. 손에 쥐고 휘두르는 사람이 다치지 않게.’

“우리 비서실장님. 표정이 너무 안 좋으시네. 제가 설마 그렇게 생각하겠어요? 그러실 거였다면 절 안 부르셨겠지. 흐하하핫.”

상혁은 과장된 동작으로 배를 움켜쥐고는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주변에서 더 많은 시선이 쏟아질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상혁은 어느 순간 웃음을 뚝 멈추고는 김대엽에게 말했다.

“아참. 제가 데려온 사람이 하나 있거든요.”

“오승택 씨입니까?”

“오, 아시는구나?”

상혁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그 친구가 백도현 사장이랑 트러블이 있어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했거든요. 내 사람이니까 말씀 좀 잘해 주세요.”

“…….”

김대엽은 아무 말 없이 전화기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몇 가지 지시를 내린 후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더니 그 안에서 경호원들에게 팔이 잡혀 있던 오승택이 상혁을 보고서는 눈을 크게 떴다.

“잡혔어?”

“…….”

상혁이야 마법으로 피했다지만 오승택에게 그런 재주는 없었다. 상혁은 김대엽을 바라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야. 너도 인사드려. 백도현 사장이랑 문제 해결해 주실 분이시다.”

오승택은 얼떨결에 고개를 꾸벅 숙였다. 누가 됐든 백도현의 문제만 해결해 주면 못 숙일 고개가 없었다. 김대엽은 가타부타 말도 하지 않은 채 상혁에게 말했다.

“이제 올라가시죠.”

“회장님 뵈러요?”

“예.”

그러자 오승택이 옆에서 바짝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백도현도 아니고 갑자기 백성철로 뛰자 절로 긴장한 것이다. 상혁은 그런 오승택의 등짝을 내리쳤다.

짜악!

“어차피 넌 볼 기회도 없어. 밖에서 기다려야 할 텐데.”

“아픕니다.”

김대엽이 먼저 엘리베이터에 타고 상혁이 그다음으로 오승택과 함께 올라탔다. 상혁이 예상한 대로 125층부터는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었다.

즉 누구든 백성철을 보기 위해서는 125층에서 내려 한 번 이상 엘리베이터를 갈아타야 한다는 뜻이었다.

숨 막히는 침묵이 엘리베이터 안에 흘렀다. 상혁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는 김대엽 대신 코를 벌름거리며 깊게 호흡을 했다.

“공기 질이 아주 좋네요.”

“청정기가 달려 있습니다.”

“그건 좀 아쉽네.”

김대엽은 고개를 갸웃했다. 공기가 깨끗하면 좋은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상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쉬이 상혁과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다.

상혁은 콧잔등을 찡긋했다.

‘보충할 마나가 없네.’

공기가 깨끗했다. 그 전에, 상혁은 공기 중에서 마나를 느끼고 있었다. 그전에는 전혀 없던 현상이 그에게 갑자기 일어난 이유는 간단했다.

[이름 : 상혁

직업 : 5서클 마법사

상태 : 근력/2, 민첩/2, 체력/2, 마나/501]

5서클 마법사.

4서클 후반대에 머물러 있던 상혁의 마나가 500을 넘어서 순식간에 5서클에 도달한 것이다.

열화판 엘릭서.

SG공장에서 도주하려 했던 운송관리팀의 팀장에게 얻어 낸 007 가방 안에 있던 열화판 엘릭서를 복용하자 마나가 5서클을 돌파한 것이다.

그러자 그간 닫혀 있던 감각이 열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공기 중의 마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공기 중에 오염된 성질, 즉 매연과 미세먼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상혁은 심장에서 세차게 회전하는 다섯 개의 마나 고리를 느끼며 뒷짐 지는 척하며 아무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허공에 수인을 그리기 시작했다.

고위 마법사 소리를 듣기 시작하는 5서클부터는 영창이 아니라 수인이 더 중요했다.

순식간에 수인을 맺은 상혁이 13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엄지와 검지를 문질렀다.

두웅-!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법이 펼쳐졌다.

‘백 회장. 당신은 어떤 환상을 보길 바랄까?’

상혁의 심장에서 빠져나간 마나가 회장실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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