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87화
087.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2)
10년, 아니 상혁의 나이가 20살이니 20년 만에 돌아온 SG그룹 로열패밀리의 핏줄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까.
상혁은 오는 내내 의식 하나를 분할해 그쪽으로 계속해서 머리를 굴렸다.
그런 일을 처음 겪는 건 아니었다.
가나안에서는 어느 집안의 귀족이 급사했는데 사생아가 후계자가 되었다더라, 아니면 왕실의 누가 밖에서 평민 하나를 주워 왔는데 그게 왕실의 핏줄이라더라 등등.
거기에 상혁도 일란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가나안에서 오십 년을 살아왔다. 자신이 일란이 아니라 상혁이라는 건 상혁의 주군이었던 삼왕자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지구로 돌아오고 나니 갑자기 자신이 웬 재벌집의 핏줄이었단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시골에서 살다가 돌아가셨지만, 사실은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재벌가의 회장의 막냇동생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회장이 자신의 진정한 핏줄도 모른 채 20년간을 살아가고 있던 상혁을 불러들였다?
말이 20년이지 사실은 70년이나 마찬가지다.
가나안에서 보낸 50년이란 세월 동안에도 상혁은 자신이 재벌집 핏줄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재벌 회장, 가나안으로 따지면 한 왕국의 왕실이나 공작 정도 됐을 그런 집안에서 갑작스럽게 자신을 찾는다?
이건 100퍼센트, 아니 120퍼센트 어떠한 의도가 숨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거기에 상혁은 어떠한 모습으로 반응을 해야 할까.
순응? 반항?
둘 다 아니었다.
“그냥 개썅마이웨이로 간다는 걸 보여 주는 거지. 20년을 따로 살아와 놓고 핏줄은 지랄.”
상혁은 게이트를 뛰어넘으며 따라오는 가드들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줬다. 그러고는 헤이스트가 걸린 상태로 가드들을 재빨리 따돌렸다.
“부르는 건 너네 마음이지만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내가 정해야지.”
그래서 당당히 백도현이 보낸 감시조를 두들겨 패고 서울로 올라왔다. 아마 그 소식은 백성철의 귀에도, 백도현의 귀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상혁에게만 비서실장을 보낸 것을 보면 백성철은 상혁의 존재를 자식들에게 밝히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그걸 상혁은 그냥 초장부터 판을 엎어 버렸다.
무슨 꿍꿍이를 벌이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거기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그냥 판을 뒤집으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상혁이 그냥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그런 온순한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도 필요했다.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 반쯤 미친놈.
딱 그 정도로 상혁은 자신의 첫인상을 핏줄이라 부르는 양반들에게 보여 줄 생각이었다. 애당초 상혁은 SG그룹 일가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 늙어서 죽기 직전의 노인네가 여자를 끼고 다니질 않나, 백도현이란 놈은 사람을 인체실험으로 내다 팔고 회장 자리에 미친놈이질 않나.’
자신의 부모님과 같은 핏줄이면서 그런 식으로 사는 놈들을 상혁은 자신의 친인척이라고 인정할 마음이 요만큼도 없었다.
“SG그룹이 뿌린 피와 원한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듯한데 말이야.”
그런 업보를 자신이 왜 짊어져야 한단 말인가. 백성철이건 백도현이건 자신을 이 아수라장으로 부른 건 자기네들 마음이지만 그 안에서 그들의 꼭두각시처럼 움직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니 초장부터 아예 꿈 깨라고 하는 수밖에.
타다닥!
상혁은 헤이스트와 점프 마법을 섞어 쓰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그러니 당연히 상혁을 추격하는 가드들은 상혁이 지나간 다음에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잠시 뒤에는 그래도 학습 능력이 있는 것인지 아예 한참 위에서부터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등신들.”
이렇게 무단으로 침입하는 사람에 대한 대비가 저렇게 허술하다니. 사방에서 포위해 오는 것도 아니고 대체 위아래로 포위를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덜컥.
그냥 문을 열고 나가면 되는 것을.
상혁이 비상계단을 벌컥 열고 나온 곳은 웬 사무실의 한복판이었다. 상혁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쳐다보다가 익숙한 브랜드를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스텔리아도 SG꺼였어?”
상혁이 가장 사랑하는 인공적인 맛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 그중에서도 버거 체인인 스텔리아의 로고가 떡하니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SG식품이라 쓰여 있는 것을 본 상혁은 그 아래 속한 수많은 브랜드들을 보면서 휘파람을 휘익 하고 불었다.
“다 공짜로 갈 수 있는 건가?”
쫓기는 와중에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지만 상혁은 태연했다. 어차피 한번 똥을 싸질러 보자고 깽판을 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잡혀도 그만, 안 잡혀도 그만.
20년 만에 돌아온 회장의 조카인데, 뭐 어쩌겠는가.
덜커덩!
상혁이 나온 비상계단이 벌컥 하고 열리면서 가드들이 뛰어나왔다. 그러고는 상혁을 보고는 달려들었다.
“잡아!!”
우당탕탕.
꺄악!!
가드들이 거칠게 달려드는 모습에 여기저기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상혁은 콧방귀를 한 번 픽 뀐 후 손가락을 튕겼다.
티가 나지 않는 마법은 상혁이 아는 마법 중에 백 가지가 넘었다.
미끄덩!
달려오던 가드들이 마치 만화영화 속 한 장면처럼 동시에 미끄러져서는 공중에 붕 떴다.
마찰 계수를 줄이는 그리스 마법.
가나안에서는 기사가 아니라 용병도 안 걸릴 마법이지만 지구에서는 거의 천하무적 수준의 위력을 발휘했다.
우당탕탕!
가드들이 미끄러져서는 그 관성으로 여기저기 캐비닛과 책상을 덮치면서 사무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상혁은 본의 아니게 화를 당한 SG식품 직원들에게 속으로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한 뒤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저기요.”
“네, 네?”
상혁이 말을 걸자 놀라서 그 자리에 굳어 있던 직원이 화들짝 놀랐다.
“회장실은 꼭대기에 있나요?”
“회, 회장님이요?”
“아니, 약속이 있어서 왔다는데 안 믿어 주잖아요?”
상혁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상혁에게 직원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꼬, 꼭대기 층이 그룹본부이긴 한데…….”
“콜. 그러면 됐지.”
띵!!
마침 엘리베이터가 딱하고 도착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상혁은 층수를 쭉 둘러보고는 인상을 살짝 썼다.
“뭐, 회장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나? 분명히 131층까지 있었는데.”
겉에서 슥 훑어본 것만으로 이 건물의 꼭대기가 131층이란 걸 알아낸 상혁이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로 올라갈 수 있는 건 125층까지만이었다.
그 위의 6층은 아무래도 다른 곳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룹본부라더니. 경비가 철저하네.”
그렇게 중얼거린 상혁은 125층을 꾹 눌렀다.
* * *
“그게 무슨 소리야?”
김대엽은 회장실에 있다가 비서실의 연락을 받고는 급히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131층에 회장실이 있었고 130층에는 비서실이 있었는데 백성철 회장의 비서실에 일하는 비서만 해도 100명이 넘어 한 층을 통째로 쓰고 있었다.
“그, 로비에서 실장님을 찾던 사람이 있었는데 갑자기 게이트를 뛰어넘었다고 합니다.”
“누군데?”
“누군지 밝히기도 전에 갑자기 뛰어들었다고…….”
“가드들은 뭘 한 거야!”
김대엽은 화를 버럭 냈다. 이건 그룹본부가 있는 본사가 뚫린 일이다. 그런 만큼 이 문제는 가드들에게 온전히 책임이 전가될 수밖에 없었다.
“얼굴 띄워!”
“예!”
누군지는 몰라도 자신을 찾아온 놈이란다. 하지만 SG그룹의 비서실장이자 백성철 회장의 오른팔인 김대엽의 이름을 팔아서 만나려고 하는 사람은 하루에도 열 명씩 있었다.
그래서 약속을 잡지 않으면 그렇게 입구에서 막히곤 했는데 대부분 그냥 돌아간 것과는 달리 100명 중 한 명꼴로 난동을 피우는 놈들이 있었다.
팟!!
그 순간 로비의 CCTV에 찍힌 상혁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화면에 나타났다. 상혁의 얼굴을 본 김대엽의 눈이 커졌다.
“이, 이분이시라고?”
“예. 여기…….”
비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영상을 틀어 주었다. 그리고 분명히 영상 속 주인공은 상혁이 맞았다. 김대엽은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주변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 연락해! 혹시라도 터럭 하나 상하게 하면 안 된다고! 회장님 조카분이시다!!”
순간 비서실이 터질듯한 긴장감으로 차올랐다.
그런데 그때 비서실로 전화 한 통이 울리더니 비서 하나가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그 125층에서 그분을 잡았다고…….”
“이런 썅!”
욕을 웬만해서는 거의 하지 않는 김대엽이 욕을 내뱉으면서 바람처럼 125층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김대엽이 사라지고 난 뒤 비서실에 남은 비서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회장님의 조카라고?”
* * *
“와, 이건 인정.”
상혁은 가드들이 동시에 덮치는 바람에 여기저기 구겨지고 엉망이 된 행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서는 손뼉을 쳐 주고 싶었지만 억센 손길에 의해 손목이 묶여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시끄러워!!”
퍽!
가드 중 하나가 상혁의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상혁은 그걸 맞고는 자신이 대체 몇십 년 만에 맞은 것인지 가늠해야만 했다.
생각해 보니 머리를 얻어맞은 지 40년도 넘게 지났다. 인체실험이 끝나고 일란이 된 뒤에는 누군가에게 맞을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런 짓을 벌였는지. 쯧.”
또 다른 가드가 지나가면서 상혁을 보고는 중얼거렸다. 가드들의 눈초리는 곱지 않았는데 상혁처럼 신원미상의 침입자를 125층까지 올려보낸 것에 대해 책임 논의가 이뤄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가드들이 책임을 뒤집어쓸 것이다.
상혁이 잡힌 방법은 간단했다.
125층에 도착하자마자 그곳에 대기하고 있었던 가드들이 몸을 날려서는 상혁을 그대로 덮친 것이다.
한두 명이라면 모를까 거의 열 명이 한꺼번에 몸으로 누르니 아무리 상혁이라고 해도 쉽사리 움직일 수 없는 건 자명했다.
대놓고 마법사란 걸 드러낼 것이었으면 모를까 그게 아닌 이상 스트렝스와 헤이스트를 써도 역부족이었다.
“아니, 근데 나 진짜 그 실장이란 양반이 아는 사람이라니까?”
“시끄럽다고 했지! 하루에 너 같은 놈이 몇 명이나 오는 줄 알아?”
상혁은 이들을 걱정해 한마디를 해 주었지만 그런 상혁의 배려는 무참히 짓밟혔다. 가드 중 한 명이 또 때리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리려는 찰나 다른 가드가 전화를 받고서는 소리쳤다.
“비서실장님이 내려오신답니다.”
“그 양반이?”
“망했네.”
비서실장이 내려온다는 소리에 가드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보아하니 꽤 무서운 사람으로 군림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상혁은 손이 뒤로 묶인 채 바닥에 퍼질러 앉아서는 히죽거리며 웃었다. 머리가 까치집이 되었지만 소정의 목적은 달성했다.
건드리면 손해 보는 미친놈.
그런 인상을 심어 주는 데 김대엽이 확실히 방점을 찍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후다닥!
“실장님! 12층에 침입한 신원미상의 침입자를…….”
김대엽이 재킷 옷자락을 휘날리면서 가드 중 상급자를 그대로 지나쳤다. 가드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대엽을 쳐다봤다.
백성철의 오른팔인 김대엽이 저렇게 꼬랑지에 불이 붙은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을 다들 처음 봤기 때문이다.
“어, 어서 풀어 드려!!”
김대엽은 상혁의 바로 옆에 있는 가드에게 소리쳤다. 김대엽이 그렇게 소리치자 가드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가 상혁의 손목을 묶은 케이블타이를 끊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김대엽이 상혁을 살피면서 그렇게 말하자 가드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무언가 잘못 돌아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김대엽이 저렇게 설설 길 정도의 사람이라니.
김대엽이 스스로를 낮추는 건 백성철과 그 가족들 앞에서밖에 없었다.
가족들.
그 순간 가드들의 얼굴이 전부 다 창백하게 변했다.
상혁이 손목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김대엽을 보고는 씩 웃었다.
“오라고 해서 왔는데. 연락이라도 하고 왔어야 합니까?”
상혁은 그렇게 화려하게 SG그룹 전체에 자신의 등장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