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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86화 (85/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86화

086.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1)

상혁의 주먹이 뚫어 반쯤 간신히 매달린 차창이 차가 달리는 속도에 따라 퍼덕거리면서 애처롭게 휘날렸다.

그 문으로 들어온 바람을 맞던 상혁은 고개를 돌려 복잡한 표정의 오승택을 쳐다봤다.

“왜. 걱정되냐?”

“그, 하신 말씀이 전부 사실입니까?”

“왜. 내가 백성철 그 노친네의 조카라는 거?”

끼익!

그 순간 차가 흔들렸다. 차가 반쯤 옆 차선으로 끼어들었다가 간신히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온 것이다. 상혁이 앞 좌석에 손을 딱 얹고는 운전사를 보면서 으르렁거렸다.

“야. 운전 똑바로 안 해?”

“죄, 죄송합니다.”

상혁의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자신이 감시하던 이가 백성철 회장의 조카라니 저리 놀랄 만도 했다. 그리고 그건 오승택도 마찬가지였다.

“모르지. 아마 사실일걸? 비서실장이란 양반이 와서 이야기하고 갔으니까.”

SG그룹의 정보력은 국정원의 정보력을 뛰어넘는다. 그러니 비서실장이 직접 상혁을 찾아왔을 정도면 그 말이 사실이라는 뜻이다.

“그럼…….”

“왜. 싫어? 이게 제일 확실한 방법인데.”

오승택은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상혁이 백성철의 조카가 된다는 것은 그가 SG그룹의 로열패밀리 일원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오승택은 백도현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백도현과 상혁이 같은 선상에 서는 셈이기 때문이다.

아들과 조카라는 차이가 있지만 오승택은 그간 보아 온 상혁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충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었다.

“싫으면 말해. 없던 일로 해 줄게.”

“아, 아닙니다.”

오승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그에게 있어 행운이었다. 애당초 처음부터 오승택에게는 상혁만이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잡은 동아줄이 갑자기 그 동아줄이 황금 동아줄이 돼 버렸다.

SG그룹 로열패밀리라니.

“물론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지.”

“예?”

“백도현의 수작에서 벗어나려면 내 밑으로 들어와야 하잖아. 공식적으로.”

그러자 오승택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가 곧바로 상혁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도련님.”

“도련님? 콱 씨!!”

상혁이 손을 들어 올리자 오승택이 움찔했다. 상혁의 주먹이 차창을 두부 뚫듯 뚫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상혁은 손을 내리고는 팔을 벅벅 긁었다.

“그렇게 부르지 마라. 소름 돋는다.”

“그, 그럼 뭐라고…….”

“상혁 님이라고 불러.”

원래라면 상혁을 마법사님으로 부르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상혁이 마법사란 걸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니는 셈이다. 오승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상혁이 로열패밀리가 맞다는 걸 증명하게 되면 오승택뿐만 아니라 동생도, 치매 걸린 어머니도 다시 정상적으로 바깥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상혁이 만들어 준 돌집이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외부의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마법사의 결계 아래서 평온한 수면을 취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승택은 그간의 정신적인 피로가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깥을 마음대로 나갈 수 없다는 건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젊은 자신이나 동생은 몰라도 언제 아플지 모르는 치매 걸린 어머니는 언제든 병원에 갈 수 있어야 하는데 SG 때문에 그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야 너. 이번에도 차 흔들리면 죽을 줄 알아.”

“예…….”

상혁이 운전사한테 경고를 준 후 손바닥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상혁의 손바닥에서 밝게 빛나는 아지랑이 같은 것이 쭈욱 일어났다.

“이, 이게 뭡니까?”

“말로만 맺는 계약은 이제 질색이거든. 계약이란 건 확실히 증거가 있어야 하잖아.”

가나안에서 얻어맞은 뒤통수가 아직도 얼얼했다. 그렇기 때문에 상혁은 확실한 것을 원했다.

“따라 해.”

“예. 예.”

“나 오승택은 지금 이 시간부로.”

“나 오승택은 지금 이 시간부로.”

상혁의 손바닥 위에 꼿꼿하게 선 아지랑이가 슬쩍 거리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상혁을 영혼의 주인으로 인정합니다.”

“상혁을 영혼의 주인으로 인정합…… 니다?”

오승택이 더듬거리며 마지막 말을 내뱉는 순간 빛이 터져 나오면서 상혁의 손바닥 위에 서 있던 아지랑이가 오승택의 몸 안에 자리 잡았다.

“히익!”

오승택은 빛무리가 자신의 몸속으로 사라진 것에 자신의 몸을 더듬었지만 구멍은 없었다. 상혁은 손바닥을 탁탁 친 다음 오승택에게 말했다.

“이제 넌 내 부하다.”

“그, 그런데 주인이라는 게…….”

“주인의 뜻을 몰라?”

상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오승택에게 되물었다. 하지만 오승택은 몰라서 되물은 것이 아니었다. 주인이라니. 자신의 영혼의 주인이라니.

“영혼의 계약이라는 마법이다. 5서클 마법사만 시전할 수 있는 마법이니까 영광으로 생각하도록.”

“여, 영혼의 주인이라면서요.”

“그래. 나한테 네 운명을 맡기겠다는 뜻이지. 즉, 만약 네가 날 배신하려고 할 경우.”

상혁이 히죽 웃으며 오승택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손을 모아서는 펑 하는 입 모양을 내며 말했다.

“거기 있는 심장이 이렇게 팡 터진다는 뜻이지.”

영혼의 계약.

5서클 마법 중 하나로 일종의 언령 계약이었는데 기밀이 많고 비밀이 많은 마법사들이 자신의 비밀이 흘러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걸어 두는 마법이었다.

가나안에서는 마탑 안이나 주로 귀족가, 혹은 왕족들이 운영하는 정보조직 내에서 금제를 걸어 두기 위한 방식으로 사용이 되는 마법이었다.

마법의 효능은 딱 하나.

영혼의 주인으로 인정한 이에게 절대로 배신행위를 하지 못 하게 하는 것이었다.

“네가 인정한 거잖아. 나를 영혼의 주인으로.”

그건 마법의 대상자가 상대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체결되지 않는 계약 마법이었다. 그런데 그게 체결되었다는 건 오승택이 상혁을 영혼의 주인으로 인정했다는 뜻이다.

“그래도 그게 영혼이라니…….”

“왜. 싫어? 날 모시겠다는 게 거짓말이었어? 그럼 지금이라도 풀어 줄게. 아니, 어차피 죽을 건데 죽여 줄까?”

타다닥!

상혁의 손바닥 위에서 불똥이 파바박 거리면서 피어올랐다. 그러자 오승택이 입을 딱 다물고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 아닙니다. 말이 헛나왔습니다.”

“그렇지?”

씩 웃은 상혁이 주먹을 쥐었다. 그러고는 뒷좌석에 머리를 기대면서 오승택에게 말했다.

“그 마법이 좀 마나를 많이 잡아먹는 마법이거든.”

“예?”

“그래서 좀 잔다고.”

“예, 예. 알겠습니다. 도착하면 깨워 드리겠습니다.”

상혁이 씩 웃었다. 그러고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

* * *

끽!!

차가 멈춰 서면서 약간 앞뒤로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숙면을 취한 상혁이 개운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

달칵.

옆에 아무도 없어 고개를 갸웃하려는 찰나 상혁이 탄 뒷좌석의 문을 오승택이 열었다. 상혁이 씩 웃자 오승택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도착했습니다.”

“나도 알아. 서비스가 제법인데?”

“아닙니다.”

상혁이 차에서 내리고는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그러자 고개를 뒤로 꺾어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SG그룹이야?”

“예. 본사를 비롯하여 계열사 다섯 개가 함께 쓰고 있는 곳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입니다.”

“그래 보이네.”

서울의 상징적인 트레이드 마크이자 건설비만 4조 5천억이 넘게 들었다는 바로 그 건물이다. 상혁은 인생이 참 요상하다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내가 재벌집 핏줄이라고?’

온양의 파란 대문집에서만 평생을 살았고, 그다음에는 보육원과 고시원을 전전하던 자신이다. 그런데 지금 상혁은 SG그룹의 핏줄이 되어 있었다.

만약 상혁이 마법을 익히지 않은 평범한 20대 청년이었다면 과연 지금 어땠을까.

‘잔뜩 쫄아서 벌벌 떨고 있겠지.’

보나 마나 그랬을 것이다. 상혁이 맨 처음 가나안에 갔을 때 딱 그랬으니까. 지금 상혁이 여유로울 수 있는 건 그에게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50년이란 세월과 마법이란 힘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혁을 만든 건 마법이다.

핏줄 따위가 아니라.

‘난 내 부모님의 자식이다. 하지만 SG의 자식은 아니지.’

상혁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거침없이 로비로 향했다. 오승택이 그런 상혁의 뒤에 바짝 따라붙어 걸었다. 그렇게 상혁이 로비를 가로질러 안쪽으로 향하자 출입증을 찍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게이트 쪽에서 사람 하나가 나와서는 손을 들어 올렸다.

“방문하셨습니까?”

“오라고 해서 왔습니다.”

상혁의 신색을 아래위로 살핀 가드가 고개를 돌려 턱짓으로 안내원이 앉은 데스크를 가리켰다.

“일단 저쪽에 가서 방문 목적을 말씀해 주십시오. 위쪽에 연락이 되면 방문증을 내어 줄 겁니다.”

“흐음. 뭐, 그러죠.”

상혁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데스크로 향했다. 그리고 데스크로 가서는 한쪽 팔을 얹고는 안내원에게 말했다.

“김대엽이란 사람이 찾아서 왔습니다.”

“예? 어디에 근무하시는 누구신지 알 수 있을까요?”

안내원은 친절했다. SG의 얼굴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눈 속에는 감출 수 없는 피로가 짙게 배어 있었다.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비서실의 김대엽입니다. 백성철 회장이 찾는다고 저한테 왔던데요.”

“비서실의 김대엽…… 예?”

상혁이 말한 직원의 이름을 컴퓨터에 치던 안내원의 눈이 커졌다. 백성철과 김대엽이란 이름이 어딘가 익숙했는데 김대엽이란 얼굴을 딱 치자 그녀로서는 모를 수 없는 사람의 얼굴이 딱 떴기 때문이다.

“비서실장님이요?”

그러자 옆에 있던 안내원과 게이트 쪽에 있던 가드의 귀가 쫑긋했다. 상혁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

안내원은 말없이 상혁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상혁에게 말했다.

“이런 걸로 장난치시면 안 돼요.”

“진짜 오래서 왔다니까요.”

이런 일이 제법 재밌었다. 상혁은 이런 걸 오십 년 전에 영화나 드라마로만 봤었다. 그런데 그게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일 줄이야.

“계속 이러시면 사람 불러서 내보낼 수밖에 없어요. 예?”

“아. 못 믿으시는 거구나.”

“죄송합니다. 뒤에 사람이 계셔서.”

그게 끝이었다. 상혁은 뒤로 쫓겨났다. 오승택이 그런 상혁에게 말했다.

“전화번호 같은 거 없으십니까?”

“없어. 그런 거.”

“그러면 정말 무작정 오신 겁니까?”

“왜 이래.”

상혁이 턱짓으로 로비 밖에서 자신을 힐끔거리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이를 가리켰다. 그것을 본 오승택의 눈이 커지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 백도현.”

“그래. 내가 타고 온 차가 누구 찬데. 내가 말하는 게 백도현 귀에 안 들어갔을까? 그놈도 바보가 아닐 텐데. 그러니까 그놈이라도 뛰어오겠지.”

한마디로 백도현을 불러다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패로 쓰겠다는 뜻이다. SG전자의 사장을 그런 식으로 써먹겠다는 상혁의 배짱에 오승택은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 계속 여기 계실 겁니까?”

“아니. 나도 인상 한번 찐하게 남겨야 하지 않겠어?”

“예?”

상혁은 로비를 다시 가로질렀다. 그러고는 통유리로 된 로비의 유리창을 고개를 꺾어 올려다봤다. 건물의 5층까지 중앙이 개방된 형태로 통유리가 거기까지 이어져 있었다.

“으흠.”

상혁은 목을 한 번 점검한 다음 어깨를 좌우로 꺾고 발목을 풀면서 이리저리 몸을 풀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게이트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오승택! 알아서 쫓아와라!!”

“이, 이!!”

오승택은 눈치가 빨랐다. 상혁이 뛰는 것을 보고 주변을 휘휘 살피더니 어디론가로 몸을 날린 것이다.

상혁이 달려오는 것을 본 가드가 긴장한 표정으로 상혁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이때 퀘스트 보상으로 2가 된 민첩이 효과를 톡톡히 발휘했다.

종이 한 장 차이.

민첩이 1이었다면 그냥 잡혔을 상혁의 옷자락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가드의 손을 그대로 빠져나간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는 더 쉬웠다.

“헤이스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상할 정도로 빨리 가드를 따돌리면 눈에 띌 것 같아서 가드를 넘자마자 헤이스트를 쓴 상혁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상혁의 몸이 쭈욱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자, 잡아!!”

우르르!!

그런 상혁을 향해 여기저기서 경비를 서고 있던 가드들이 뛰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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