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85화 (84/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85화

085. 돈으로 주쇼(5)

“뭐!!”

콰앙!!

백도현의 손에 바로 며칠 전 새로 사다 놓았던 백자가 와장창하고 깨져 나갔다. 요새 백도현의 사장실 안에는 집기들이 사흘 이상을 버티는 것이 몇 개 없을 정도였다.

“다시 한번 말해 봐요.”

“SG 온양 공장에 원인불명의 화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박정철은 고개를 숙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백도현은 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린 후 박정철에게 물었다.

“거기 있던 미국 애들은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

백도현의 이가 으득 갈렸다가 다시 풀어졌다. SG 반도체 공장이 불타오른 것도 커다란 타격이다. 당장 파운드리 라인 중 하나가 멈추면 그만큼 다른 공장에 부하가 걸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반도체가 SG그룹의 중요한 먹거리란 것을 생각해 보면 이번 일은 회장을 노리는 백도현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될 일이다.

“연락은요?”

미국 측에서의 연락을 뜻하는 것이다. 엘릭서 프로젝트, 미국에서 SG그룹에 연락해 은밀하게 추진되고 있던 일들이 며칠 사이에 연달아 엎어졌기 때문이다.

“없습니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요구할 때는 언제고 일이 이렇게 되니까 입을 싹 닦아?”

결국 백도현의 입에서 쌍욕이 터져 나왔다. 그는 SG 온양 공장의 사고도 미국이 벌인 일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연락이 안 됩니까?”

“……예.”

거기에 엘릭서 프로젝트의 연락책이 됐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부 다 연락이 끊겼다. 당장 주한미군에 있던 요한 대령은 물론이고 워싱턴 쪽의 사람들도 연락이 끊긴 것이다.

“산 겁니까 죽은 겁니까.”

“그것까지도 잘…….”

“후우. 아는 게 없군요.”

“죄송합니다, 사장님.”

미국이 벌인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아무리 SG그룹이라고 해도 알아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대놓고 벌이는 일도 아니고 이번 엘릭서 프로젝트처럼 암중에서 은밀하게 진행되는 일이면 더더욱 그렇다.

“하. 공장은 터졌는데 피해배상을 요구할 상대는 없고. 그렇다는 이야기네요, 지금?”

“현장감식반의 입에는 자물쇠를 걸어 놨습니다.”

“그래야죠.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야지. 보험 청구하는 쪽으로 하고, 뉴스도 적당히 막으세요.”

“예. 사장님.”

백도현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냉정을 되찾았다. 분노는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확보한 엘릭서 프로젝트 관련자들 신상, 넘겨요. 워싱턴 로비스트들 다 동원해서라도.”

“예.”

거기에 그냥 당하고만 있을 백도현이 아니다. 엘릭서 프로젝트가 극비라지만 그는 이미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적어도 같이 죽을 수 있는 정도의 자료는 확보해 놓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연락 다시 오면 배상 받아 내고요.”

“예. 사장님.”

“그리고 입조심 잘 시켜요.”

백도현이 무서운 눈을 하고 박정철을 쳐다봤다. 심기가 제대로 꼬인 그의 신경을 거슬렀다가는 박정철이라도 내일 당장 변사체로 발견될 수 있었다.

박정철을 살려 두는 이유는 그가 유능하고 쓸모가 많기 때문이다. 박정철은 식은땀으로 등줄기가 척척해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이나 아가씨의 귀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백도현의 경쟁자들.

그들의 귀에 이번 일이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백도현은 누나인 백정연을 떠올리고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백정연이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걸까요?”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있습니다만 유추할 만한 증거조차도 없어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백정연이 나도 모르는 사람들을 데리고 있었다?”

백정연은 이선호와 함께 쳐들어와 백도현에게 그가 인체실험을 하지 않았냐면서 증거들을 나열했다. 그리고 그 증거들은 전부 다 백도현이 빼도 박도 못할 것들뿐이었다.

“그 증거들로 인해 내가 회장이 될 수 있는 기한이 최소 3년 정도는 늘어났어요.”

결국 백도현은 그 증거 앞에 인정할 수 있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백정연이 그걸 백도현에게 들고 온 것은 결국 원하는 것이 있어서란 뜻이었기 때문에 백도현은 결국 그녀의 요구사항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선호는 왜 백정연에게 붙었고?”

“…….”

“콧바람 한 번이면 날아갈 개미들 앞에서 내가 한 말을 부정하고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도 모자라서 대체 내가 왜!”

백도현은 박정철의 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백도현의 두 눈에 핏줄이 툭툭 불거져 나와 있었다.

“이딴 수모를 겪어야 하는지 알아 오세요. 그리고 백정연에게 준 것들을 어떻게 하면 다시 가져올 수 있는지 알아 오시고.”

“사장님.”

박정철은 그런 백도현을 말리려고 했다. 위험천만한 것을 알지만 지금 백도현은 극도의 흥분 상태였다.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건 지금 백도현에게 결코 좋은 사인이 아니었다.

“병원이에요. 병원. SG병원이 백정연에게 넘어갔지요. 그년의 호텔과 병원이 좋은 궁합을 낸다는 걸 모르겠습니까?”

백정연은 백도현에게 이번 일에 대해 입을 다무는 대가로 병원을 인계받았다. SG병원도 백도현이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호텔 사업은 병원과 아주 좋은 시너지를 낼 것이다.

의료대국 대한민국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잔말 마시고.”

백도현이 박정철의 얼굴 앞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대고는 으르렁거렸다.

“병원을 다시 찾아올 방법. 그리고 지금 우리가 왜 일어났는지 전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들이 어떻게 일어난 건지. 알아 오세요.”

박정철은 고개를 깊숙하게 숙였다. 부디 백도현이 시간이 지나면 머리를 차갑게 하고 다시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밖에는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예, 사장님.”

* * *

“오승택. 박선웅.”

“예?”

“움?”

오승택과 박선웅이 동시에 대답했다. 상혁은 양 볼 가득히 무언가를 쑤셔 넣고 우걱거리고 있던 둘을 보고는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뭐 먹냐?”

“아, 아무것도 아님다.”

“우우움!!”

둘은 상혁의 관심을 철저히 거부했다. 하지만 이미 상혁의 코는 냄새를 맡았다.

“내놔.”

“우이씨.”

상혁의 먹성은 이미 돌집의 거주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바가 있었다. 상혁은 그냥 살아 있는 메뚜기 떼였다. 그의 왕성한 먹성은 사람의 것으로 믿겨지지가 않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승택과 박선웅은 결국 상혁에게 밥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 셋이 모이자 경쟁적으로 밥과 반찬이 비어 가기 시작했다. 특히 상혁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오승택과 박선웅이 난리를 피우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상혁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더 없냐?”

“그걸 다…….”

결국 남자 셋의 레이스는 밥통이 다 비고 나서야 그쳤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박선웅은 밥이 없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그대로 숟가락을 내려놓고 뒤로 뻗어 버렸다.

급히 먹느라 몰랐는데 먹고 나니 배가 터질 것처럼 불러 왔기 때문이다.

상혁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막 한 밥솥 하나를 한 끼에 비워 놓은 사람치고는 뻔뻔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밥통 두 개 사다 놔.”

“여부가 있겠습니까아…….”

오승택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오승택을 힐끗 본 상혁이 입을 열었다.

“너. SG에서 더 이상 쫓기지 않아도 되는 방법 있는데 어때. 관심 있어?”

“예?”

오승택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는 표정이었다. 그가 알기로는 그걸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설마 백도현을…….”

“원래 계획은 그거였는데.”

그런 명령을 내린 백도현을 날려 버리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상혁은 손을 휘휘 저었다.

“다른 방법이 생겼거든.”

그러자 오승택의 눈이 반짝였다. 아무리 상혁이라고 해도 오승택은 백도현을 없애는 건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다른 방법이라니.

“뭡니까?”

“뭐긴. SG로 들어가는 거지.”

“예?”

오승택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 * *

쿵쿵쿵쿵.

오승택은 살면서 과연 지금처럼 심장이 크게 뛴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생각해 봤다. 죽을 둥 살 둥 하는 특수부대 훈련에서도 이 정도로 심장이 뛰어 본 적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승택은 그런 티를 내지 않기 위해 혼신의 연기를 다했다.

“준비는?”

“저, 정말 그게 사실입니까? 그러니까 그게…….”

“몇 번을 이야기해. 사실이라고. 직접 왔다가 가기까지 했다니까. 왜 싫으면 여기 있던가.”

“아, 아닙니다!”

“마법사를 의심하는 거 아니다?”

화륵.

상혁이 한쪽 눈에서 푸른 마나를 뿜어내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걸 본 오승택은 상혁이 마법사란 것을 새삼 떠올리고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다 방법이 있겠지.’

그리고 그때 상혁은 마나안으로 주변에 숨어 있는 감시조란 놈들을 훑어본 후 히죽 웃었다. 아마 이놈들은 백성철이 보내서 온 놈들은 아닐 것이다.

백도현.

그 신중하고 의심 많은 놈이 붙여 놓은 감시조일 것이다. 그리고 상혁은 저놈들을 이용해 아주 화려하게 자신의 등장을 알릴 생각이었다.

“야. 나와 봐.”

오승택과 함께 파란 대문으로 그냥 걸어 나온 상혁은 주머니에 양손을 꽂고는 껄렁껄렁하게 골목에 주차된 차창을 똑똑 두드렸다.

선팅이 워낙 짙게 되어 있어 눈을 가까이 가져다 대지 않으면 안이 보이지 않는 차였다.

“새끼들. 잠복을 하려면 제대로 하지. 차도 좀 바꾸고. 백도현이가 이 차로 너희들 돌려 쓰래?”

마법사의 기억력과 통찰력은 범인의 그것을 아득하게 뛰어넘는다. 그리고 상혁은 저 차의 번호판을 이 마을에서 거의 30번도 넘게 봤다.

같은 차로 이 마을을 그냥 뱅뱅 돌던 차란 뜻이다. 즉, 감시조였다.

“어쭈?”

그런데 그때 상혁이 피식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손에 스톤스킨 마법을 걸고 스트렝스를 건 체로 차창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와장창!!

“커, 커헉!”

퀘스트 보상으로 인해 2가 된 근력은 일반인의 최소 두 배의 근력을 보장한다. 그리고 거기에 스트렝스까지 쓴 상혁의 주먹은 차창을 종잇장처럼 뚫고 그 안에서 테이저건을 들고 있던 놈의 멱살을 붙잡아서는 끄집어냈다.

“집주인이 말하잖아. 차 빼라고.”

우득!

그리고 상혁은 차 문을 뜯어내다시피 열었다. 차 문이 손 모양으로 우그러진 것이 오승택의 눈에 들어왔다.

꿀꺽.

오승택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렇게 잠복하고 있던 두 놈을 뽑아 낸 상혁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감시조를 보면서 빙긋 웃었다.

“서울 좀 가자. 너네 보스가 나 좀 보자고 했거든. 백도현이 말고 진짜 보스.”

그 말에 감시조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그들의 차에 올라탄 상혁에게 오승택이 물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라면 가서 뭐라고 하실 겁니까?’

오승택의 말에 상혁이 히죽 웃었다.

“뭐든지 돈으로 달라고 할 건데?”

“돈이요?”

* * *

“……데려와.”

백도현의 눈가가 잘게 경련을 일으켰다. 스트레스 때문이다. 야심차게 추구하던 일들이 연달아 엎어진 것도 모자라 백도현이란 놈이 또다시 등장했다.

그것도 숨어 있던 감시조들에게 직접 접촉했다는 것이다.

백성철 회장이 보자고 했으니 서울로 안내하라면서.

‘회장님은 다 알고 계셨던 건가?’

상혁이 감시조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건 백성철 회장 때문이란 것이 확실해졌다. 거기에 오승택까지 상혁이 데리고 있었다. 박정철이 사람을 풀어 그렇게 찾아다녔던 오승택이 말이다.

‘회장님.’

그 역시도 백성철 회장과 연결이 된다. 백도현은 자신이 회장의 손에서 놀아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를 으득 깨물었다.

하지만 그를 왜 백성철 회장이 부른 것인지 모르니 백도현은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이 섰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박정철을 불러들였다.

“박 실장님. 회장님이 백도현을 부르셨답니다. 무슨 이유인지 압니까?”

그러자 박정철이 멈칫했다. 그것을 본 백도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박정철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뭡니까?”

“그. 저도 믿기지 않아서 알아보고 있던 중인데 말입니다.”

“말입니다?”

“예. 그 상혁이, 백성운 도련님의 아들이란 말이 회장님 비서실에서…….”

“뭐요?”

백도현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눈을 부릅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