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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84화 (83/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84화

084. 돈으로 주쇼(4)

뽁뽁뽁뽁.

상혁은 무표정하게 시럽의 펌프를 미친 듯이 눌러 댔다. 그러자 투명한 시럽이 마구마구 컵 속으로 사라졌다.

‘이 정도는 돼야지.’

뭐든지 달큰하게 마시는 게 최고인 법이다. 상혁은 마은빈의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미친 듯이 시럽 통에서 펌프질을 해 댔다.

“저렇게 하면 그냥 설탕물을 마시는 게 낫지 않니?”

“…….”

마은빈이 그런 상혁을 보고 피식 웃으면서 전아영에게 넌지시 말했다. 하지만 전아영은 넋이 나간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채 마은빈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얘, 얘!”

마은빈이 두 번은 더 부르고서야 전아영이 고개를 돌려 마은빈을 쳐다봤다. 그런 전아영을 보며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너 오늘 상태가 영 아니다? 아직도 몸 안 좋아?”

마은빈도 전아영이 일하던 도중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은빈이 혹시 하는 표정으로 전아영을 쳐다보자 전아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런 거.”

“그런데 왜 그렇게 멍 때려?”

“그냥.”

전아영은 진실을 밝힐 수 없었다. 차마 그녀에게 상혁이 마법사란 소리를 들어서 그랬다는 걸 어떻게 말하겠는가.

‘이상한 나뭇가지…….’

하양이의 머리 위에 올라가 있던 초아까지 본 후였다. 그리고 그 초아는 하늘을 날아 상혁의 머리카락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상혁은 다시 한번 더 말했다.

자신이 마법사라고.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농담으로 생각해 웃고 넘겼으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본 이상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다면 모든 것이 설명이 된다.

자신이 찰나의 순간에 봤던 상혁의 얼굴, 그리고 자신이 병원에 갔던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다는 그 모든 것이 설명되는 것이다.

‘마법사라면 모든 게 설명이 돼. 그런데 마법사라는 게 설명이 안 된다고!’

전아영은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하지만 보는 눈이 있어 머리로 올라가려는 손은 간신히 붙잡고는 상혁을 멍하니 쳐다봤다.

‘어릴 적 같은 동네에 살았던 오빠가 마법사라고?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그런 마법사? 막 불이랑 바람 나가는 그런 마법사?’

전아영이 혼란스러워할 때 마은빈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전아영에게 말했다.

“상혁이 온다. 그럼 나 일어선다. 좋은 시간 보내~”

마은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상혁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 그런 마은빈을 보고 고개를 갸웃한 상혁은 시럽으로 인해 수위가 상승한 아메리카노 컵을 내려놓았다.

“커피 잘 마시겠습니다.”

“네. 뭐…….”

전아영은 자신이 왜 상혁에게 카페에 가자고 한 것인지도 이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마법사면 마법사지, 왜 가려는 그를 카페로 가자고 했던 것인가.

“설명을 듣고 싶습니까?”

“설명이요?”

“내가 마법사라는 거?”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전아영이 더 놀라서는 주변을 살폈다. 혹시나 들은 사람이 있을까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주변에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쩌려고 그런 걸 막 말해요!”

“왜요.”

상혁이 뚱하게 말하고는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시럽을 왕창 넣은 커피의 단맛이 찌릿거리면서 머리까지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상혁의 표정이 슬쩍 풀어졌다.

‘역시 단 게 최고야.’

이 인공적인 단맛. 꿀이나 과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설탕의 극강의 단맛. 상혁은 스트레스가 쫘악 풀리는 것을 느꼈다.

“마법사인 걸 다른 사람이 알면 어떻게 하려고요!”

“글쎄. 뭘 어떻게 할 수 있는데요?”

“그…….”

전아영이 입을 딱 다물었다. 마법사라는 게 불가해한 것이라 자기가 호들갑을 떨기는 했지만 상혁의 말대로 생각을 해 보자 할 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마법 쓰는 거 봤습니까?”

“못 봤죠. 그런데 그 나뭇가지는…….”

“초아라고 합니다. 풀의 정령.”

들썩.

초아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상혁의 머리카락을 헤치고는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나뭇가지 모양이지만 그게 고개처럼 전아영의 눈에는 보였다.

“힉.”

“들어가 있어.”

뽀르르.

초아가 다시 상혁의 머릿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전아영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고는 상혁에게 말했다.

“그래도 막 이상한 사람 귀에 들어가면 잡아다가 실험도 하고, 아니면 방송에 막 나오거나 뭐 이상한 사람으로 손가락질을…….”

“나한테요?”

상혁은 피식 웃었다. 4서클 마법사. 그것도 엘릭서 덕분에 5서클에 근접해 있는 마법사인 자신을 두고 그런 일이 벌어진다?

“이 세상, 그렇게 녹록치 않습니다. 증거도 없잖아요. 내가 말로 한 것 빼고는.”

“그…….”

“초아는 아무나 함부로 못 봅니다. 댁이 특이한 거지.”

정령 친화력은 인간 중에는 백만 명의 한 명꼴로 가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나안에서는 세기마다 한 명 정도가 나오면 많이 나오는 편이었다.

정령은 대부분 엘프나 이종족의 전유물인 경우가 많았다.

‘나도 하나 가졌으면 했는데, 불가능했지.’

대마법사인 상혁도 정령과 계약하는 건 불가능했다. 차원을 찢고 정령계로 넘어간다면 모르지만 그건 9서클, 아니 10서클에는 도달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게 됐으면 진작에 돌아왔어.’

차원을 찢을 수 있었다면 진작에 지구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런 상혁을 보며 입을 우물거리던 전아영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럼 저도 초아…… 그런 거…….”

“못 다룹니다.”

상혁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령과 계약에 정령 친화력이 필요하지만 소환하는 데 필요한 건 마나다.

이 지구에는 마법사가 탄생할 수 없었다.

전아영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런 전아영의 상태 따위는 무시한 채 상혁이 전아영한테 물었다.

“그럼 이제 다 물어본 겁니까?”

“네. 가시려고요?”

“가야죠.”

전아영은 상혁이 공장으로 갈 것임을 알았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공장에 볼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전아영은 궁금증을 누르며 상혁에게 주머니에 있던 것을 내밀었다.

“이건?”

“출입증이에요. 아직 될지는 모르겠는데.”

공장에서는 전아영이 쓰러진 후 연락 한 번 오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아마 공장이 전아영을 그냥 퇴사 처리시켰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안 되면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돼요.”

“개구멍이 있습니까?”

“개구멍까지는 아니구요. 이런 거 가지고 다니는 거 불편해하시는 분들이 다니시는 문이 있어요. 그냥 열리거든요.”

“보안이 상당해 보이던데.”

그런 문이 있었을 줄이야. 상혁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원래 사람은 편한 길을 찾기 마련 아니겠어요. 조이고 누르는 게 더 심할수록 말이에요.”

상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반찬 통을 흔들어 보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잘 먹겠다고 전해 주십쇼.”

“네. 그리고 감사했어요.”

“감사요?”

“지금 제 몸.”

전아영이 어깨를 빙빙 휘둘러 보였다. 가볍다는 뜻이다. 상혁이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상혁 씨 덕분이라는 거 알아요.”

“…….”

그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나, 하고 중얼거린 상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는 돌아서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그냥 오빠라고 불러요.”

“네 오…….”

오빠라고 부르려던 전아영의 눈이 커졌다. 상혁이 기억하고 있었다. 전아영이 고개를 들어 상혁을 쳐다보자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마법사라서 재주가 많아요. 사실 내 기억은 아니고 그쪽 기억인데 그, 머리 쪽 좀 만지다가…….”

“꺄아아아아!!”

전아영이 소리를 지르자 상혁은 얼른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상혁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면서 전아영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망했어…….”

* * *

“철수 준비는?”

“막바지입니다.”

“서둘러. 언제 여기까지 화가 미칠지 모르니.”

“예!”

엘릭서 프로젝트 운송관리자인 숀은 CIA 요원이다. 그는 미 중앙정보국에서 비밀리에 파견된 요원으로 엄밀히 말하면 CIA가 아니라 거물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그림자였다.

그런 그가 운송관리자 역할을 맡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CIA 소속으로 여러 비밀 작전을 성공한 그는 각 국가를 무사히 통과하는 여러 방법의 베테랑이었고 그 때문에 엘릭서를 한국으로 이송하는 데 있어 가장 적합한 경험을 가진 인재였기 때문이다.

턱, 턱.

그는 직접 엘릭서나 중요한 약물을 이동용 급랭 장치에 옮기고 나면 마무리를 지었다. 그가 급랭 창고에 점착 폭탄을 붙이고는 점화장치를 설치한 후 선을 길게 이었다.

“서류는?”

“파쇄 후 소각 완료하였습니다.”

“좋아.”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엘릭서를 무사히 운송하는 것이지만 만약의 사태에는 이 공장을 통째로 폭파하는 한이 있더라도 증거를 남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리고 미군기지에 커다란 화재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그와 엘릭서 프로젝트의 운송관리팀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필요한 서류와 자료를 챙긴 뒤 SG 반도체 공장을 통째로 날려 버릴 수 있는 화력의 폭탄을 설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것이 준비되자 운송관리팀이 숀의 뒤로 모여들었다. 숀이 인원을 확인했다.

“일곱. 이탈자 없고 전원 이상 유무 보고.”

“이상 무!”

이상 무란 소리가 돌아왔다. 그렇게 모든 인원이 자리에 모인 것을 확인한 숀이 고개를 끄덕인 후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들고 옆에 있던 팀원의 가슴팍을 쐈다.

퍽!!

소음기가 부착된 권총이 불을 뿜었다. 심장에 붙이고 쐈기 때문에 팀원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즉사했다.

그런 숀의 행동에 팀원들이 놀라기도 전에 숀이 빠르게 움직였다.

탕! 타다다당!!

7발.

숀은 신기와도 같은 사격술로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고 한 발로 한 명씩 숨통을 끊어 놓았다. 그렇게 자신의 팀원을 모조리 자신의 손으로 죽인 숀이 중얼거렸다.

“임무 완료.”

그가 받은 임무 중에 팀원들이 몰랐던 임무는 비상사태 발생 시 숀을 제외한 모든 인원의 말살이었다.

어차피 공장 전체를 날려 버리고도 남을 화력의 폭탄을 부착했으니 시체들이 생겨도 뼛조각 하나 찾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네이팜.

백린탄이라고도 불리는 네이팜을 원료로 하는 고열의 소이탄이 폭탄 안에 내장이 되어 있었다. 권총을 자신의 허리춤에 꽂은 숀은 007가방 크기의 이동식 급랭 장치를 확보한 후 움직였다.

“작전시간 21시 57분. 오차 시간 10분 내외. 점화장치, 발화장치 설치 완료. 생존자 전무. 탈출 및 소각 작전 시작.”

자신이 죽인 팀원의 핏물이 묻은 급랭 장치를 들고 공장 밖으로 나온 숀이 손에서 기폭 장치를 꺼내 들었다.

한 번.

꾹 누르기만 하면 저 공장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날아가 버릴 것이다.

휘익!!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나더니 숀의 손목이 뚝 하고 떨어졌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그 냉철하다는 CIA 요원인 숀이 멍하니 떨어지는 자신의 손목을 쳐다봤다.

“끄아아악!!”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잘린 손목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지자 숀이 피가 뿜어져 나오는 손목을 움켜쥐고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어이구. 딱 봐도 나 수상한 놈이다, 하는 놈이 알아서 기어 나왔네.”

둥실!

숀의 손에 들려 있던 기폭 장치가 둥실 떠올랐다. 그것을 워터 마법으로 묻은 피를 씻고 난 다음 손에 든 상혁이 숀을 보면서 씩 웃었다.

“자자. 우리 나눌 이야기가 많으니까 죽으면 안 돼. 응?”

냉혹한 미소를 머금은 상혁이 손가락을 튕겼다.

캄(calm), 진정 마법.

그리고 파이어.

화르륵!!

치익!

“끄, 끄아아악!!’

생살이 불로 지져지는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 덕분에 손목에서 콸콸 쏟아지던 피가 멈췄다.

그 정도 고통이라면 쇼크사를 할 법도 하건만 숀은 정신을 잃을 수도 없었다. 그건 그가 강대한 정신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상혁이 건 진정 마법.

그 진정 마법이 숀으로 하여금 쇼크사하지도, 정신을 잃을 수도 없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예방주사를 마친 상혁이 정신을 놓은 채 빌빌거리고 있는 숀의 손에서 급랭 장치를 뺏어 든 후 그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피 냄새가 아주 지독하게 나. 네놈. 사람을 많이도 죽여 본 솜씨던데.”

상혁은 진작에 공장에 도착해 있었다. 그러고는 숀이 제 부하들을 죽이는 것도 전부 다 지켜보았다. 숀이 사람을 죽일 때 보인 눈빛은 상대를 사람이 아니라 가축, 아니면 더미쯤으로 여기는 얼굴이었다.

그러니 상혁도 손속에 자비를 둘 필요가 없었다.

“아주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아. 응? 그러니까.”

상혁이 기폭 장치를 숀의 멀쩡한 손에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숀의 엄지로 기폭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백도현도 너만큼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그치?”

툭.

기폭 장치를 땅에 떨어뜨린 상혁이 숀의 뒷덜미를 쥐고는 플라이 마법으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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