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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83화 (82/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83화

083. 돈으로 주쇼(3)

전아영은 침대 위를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취업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하고 이렇게 뒹굴거리는 것이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비록 안 좋은 일로 쉬게 된 것이지만 전아영은 간만의 휴식을 만끽했다.

“좋다.”

역시 일을 안 하고 놀기만 하는 것이 최고였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공장 때문에 병에 걸려 쓰러진 것이지만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지난한 싸움을 이어 나가야 한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전아영에게 그 길은 너무나도 멀게만 보였다.

그리고 상대가 무려 SG그룹이었다.

“이길 수 있을까?”

급성백혈병 소견을 받은 전아영이다. 서울에 있는 김지예의 병원에서 받은 소견인데 기적적으로 병의 진행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고 했다.

급성이면 대개 바로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관례지만 그녀는 소견만 받고 집에 있을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었다.

그녀에게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내린 김지예도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며 학계에도 보고되지 않은 케이스라고 했다.

백혈병은 백혈구가 몸의 면역체계를 공격하고 파괴하는 것을 뜻하는데 백혈병의 진행을 멈추는 방법은 낫는 것밖에는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전아영은 분명 백혈병에 걸려 있었다.

백혈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았기 때문인데 그렇게 높아진 백혈구가 다른 신체 기관들을 공격하지 않고 있었다.

전아영은 쓰러지기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뿐해진 몸을 내려다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 백혈병에 걸린 건 맞나?”

스스로 그런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침대에 딱 달라붙어 그냥 지금의 빈둥거림을 즐겼다.

똑똑.

왕! 와왕!!

누군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전아영은 사람이 와도 웬만해서는 잘 안 짖는 하양이가 왕왕거리며 짖는 것을 들으며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상혁 오빠?’

유독 하양이가 상혁에게만 짖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든 것이다. 그 마음에 그녀가 슬그머니 문을 열자 상혁이 떡하니 서 있었다.

“어, 어, 어어?”

전아영이 놀란 마음에 어버버거렸다. 지금은 해가 중천에 걸려 있을 때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 그녀는 혼자 있었고, 나가지 않으니 당연히 제대로 씻지도 않았다.

“자, 잠깐만요!”

쾅!!

그녀는 문을 쾅 닫아 버리고는 발을 동동 구르다 황급히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거울 속 자신의 몰골을 보고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꺄악! 이런 몰골이라니. 말도 안 돼!”

머리는 까치집이고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에 눈에는 눈곱이 껴 있었다. 거기에 얼굴은 씻지 않아 개기름까지 번들거리고 앞머리는 갈래갈래 떡져 있었다.

“기, 기다려요!!”

후다닥!!

전아영은 입고 있던 잠옷을 대충 벗어 던지며 문에다 대고 다급히 소리쳤다.

* * *

“역시. 젊음이란 좋은 법이지.”

상혁은 전아영이 자신을 보고 놀란 이유를 한눈에 알아챘다. 어릴 적 좋아하던 오빠 앞에서 추레한 몰골을 보이고 싶지 않아 하는 어린 마음이 느껴진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게 귀찮기는 했지만 마치 손녀의 재롱을 보는 것 같아 흐뭇한 마음이 든 상혁이다.

다 늙은 노인네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린 상혁은 자신을 보고 열심히 짖고 있는 하양이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넌 나한테 왜 그렇게 짖냐?”

왕! 왕와왕!!

“그것 때문에 그래? 집 못 지켜서?”

상혁은 전광철의 집에 들어왔을 때 유일하게 하양이에게만 걸렸다. 그 이후로 상혁을 볼 때마다 하양이는 원수를 보듯 짖어댔다.

이제 보니 그게 집을 제대로 못 지킨 자신에 대한 화풀이인 모양이었다.

왕! 왕왕!!

목이 터져라 짖어 대는 하양이를 뚱하게 보고 있던 상혁의 머리카락에서 뽀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초아가 튀어나왔다.

뽀르르!!

“너 잘 나왔다.”

뽀르르?

걸어 다니는 인삼 비슷하게 생긴 초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나뭇가지가 살랑거리며 상혁의 코를 간지럽혔다.

“나 말고. 가서 쟤 기분 좀 풀어 줘.”

뽀르르!

상혁이 하양이를 가리키자 초아가 하양이를 보고는 신기하다는 듯 나뭇가지를 살랑이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하양이도 짖는 것을 멈췄다.

초아를 보고 놀란 듯 하양이는 초아를 멍하니 쳐다봤다.

초아는 하늘을 살랑거리며 날아 하양이에게 다가갔다. 하양이가 움찔하자 초아는 더욱 조심스럽게 날았고, 하양이의 까만 코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앉았다.

킁킁.

하양이는 코를 벌름거리며 초아의 냄새를 맡으려고 했지만 정령에게 냄새가 있을 리 만무했다. 하양이가 고개를 갸웃하자 초아가 하양이의 눈을 나뭇가지로 가리고는 가지를 떨었다.

아마 웃는 모양이었다.

“동화 같네.”

그 모습이 마치 동화 속에서 나올 법한 모습이기 때문에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상혁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젖은 머리를 한 채 헐떡이고 있는 전아영이 보였다.

“웨, 웬일로 오셨어요?”

“아저씨가 한번 가 보라고 하셔서요. 제 이름으로 잠꼬대하신다고.”

“그, 그건!!”

전아영이 볼이 붉어졌다. 그녀는 뭐라고 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고는 상혁에게 말했다.

“그날, 상혁 씨 맞죠?”

“뭐가요?”

“나 알아요. 서울 병원에 가지 않았다는 거. 이상한 트럭에 탔었다는 거.”

전아영의 말에 상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럴 수 없었다. 그때 전아영은 분명 의식을 잃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기억한다?

‘무의식 속의 의식인가.’

무의식이라 생각하지만 그 안에서 가끔 의식이 깨어날 때가 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사람의 뇌는 그 찰나의 순간을 기억해 놓는다.

“나, 봤어요. 상혁 씨가 내 몸에 있던 무언가를 없애 주는 거. 그것 때문에 아프던 게 사라졌거든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마나를 느꼈다고?’

전아영이 느낀 건 상혁이 전아영의 뇌에 넓게 자리 잡고 있던 독성물질을 빨아들였을 때 뇌를 어루만졌던 마나를 느낀 것이다.

그렇다는 건.

‘마나 친화력이 높다는 뜻인가.’

가나안이었다면 마법사의 재능이 있어 마탑에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여긴 지구다. 상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알아요. 나도 말 안 된다는 거. 하지만 상혁 씨가 날 구해 줬다는 건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전.”

전아영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상혁을 보며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웃었다. 전아영이 그런 상혁에게 말했다.

“그럼 왜 오셨어요?”

상혁은 입맛을 쩝 하고 다셨다. 그녀를 구하는데 아무것도 안 했다고 우겼으면서 그녀가 쓰러진 공장에 외국인이 있었다는 걸 묻기가 애매해졌기 때문이다.

“하적장이에요. 공장 뒤편에 주차장과 연결되어 있는 곳이고. 그곳에 창고가 여러 개 있을 거예요. 그 안에서 사람이 나왔으니 그쪽에 무언가 있겠죠.”

상혁은 전아영을 힐끗 쳐다봤다.

“나도 보은해야죠. 목숨을 빚졌으니.”

“저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네. 알겠어요. 아 참. 돌아가실 때 반찬 싸 드릴게요. 가져가요.”

전아영이 안으로 들어갔다. 상혁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차라리 이전처럼 투덕거리는 것이 더 편했다. 알면서 서로 모르는 척을 하는 게 더 힘들고 어색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서울로 가야 하는데, 뭐.”

“서울 가세요?”

“깜짝이야.”

어느새 돌아온 전아영이 반찬 통을 들고 있었다.

상혁은 SG라는 범 아가리로 직접 걸어 들어갈 생각이었다. 뭐 상혁이란 드래곤이 범 아가리에 맞지도 않는 머리를 들이미는 꼴이 되겠지만 말이다.

그러면 어쨌건 여기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될지도 몰라서요.”

“그렇구나…….”

상혁은 그녀가 손에 든 반찬 통을 쳐다봤다. 그걸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제 겁니까?”

“네. 여기.”

전아영은 상혁에게 손에 든 반찬 통을 건네주었다. 상혁은 코를 긁적거린 뒤 그 반찬 통을 받아 들었다. 상혁의 식성이면 하루나 이틀 정도면 끝날 양이었지만 그 맛을 알았기에 상혁은 입맛을 다셨다.

“가기 전에 인사 한번 해요.”

전아영이 그런 상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상혁은 그 손을 잡았다. 그렇게 두 남녀가 어색하게 악수를 하고 손을 놨다.

그때 전아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양아. 그거 뭐야?”

상혁이 고개를 돌려 하양이를 쳐다봤다. 백구인 하양이의 머리 위에 초아가 앉아서는 나뭇가지를 살랑거리고 있었다.

상혁의 눈이 꿈틀거렸다.

“나뭇가지? 어머, 뭐야.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거야?”

뽀르르!!

초아가 놀라서는 하양이의 이마 위에서 날아올랐다. 초아는 놀란 마음 그대로 상혁에게 날아와 상혁의 머리카락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상혁은 전아영의 시선을 느끼고는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령 친화력.’

전아영은 마나 친화력이 높은 것이 아니었다. 정령을 본다는 것은 정령 친화력이 높다는 뜻이다. 상혁은 자신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보는 전아영을 보며 말했다.

“말했잖습니까. 나, 마법사라고.”

* * *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백정연은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고도 막아선 비서를 향해 도끼눈을 뜨고 쳐다봤다. 그녀의 눈이 얼마나 매서웠던 것인지 비서가 자신도 모르게 비킬뻔했다.

“비켜요.”

“먼저 약속을 하시고…….”

“아. 도현이는 그냥 막 나를 찾아와도 되고 나는 안 되고?”

백정연이 피식 웃더니 이내 단전에서 끌어올린 듯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당장 비켜서요! 그리고 도현이에게 가서 미리 알려요. 후회하고 싶지 않으면 빨리 문 열고 날 보는 게 좋을 거라고.”

그러자 비서가 움찔하더니 그녀의 기세에 밀려 옆으로 비켜섰다. 그런 백정연의 카리스마를 보고 그녀의 뒤에서 따라오던 이선호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좀 치십니다?”

“치긴요.”

백정연이 피식하고 웃었다. 그녀를 찾아온 이선호는 이번 백도현이 연루된 사건으로 어떻게 백도현을 압박할 수 있을지에 대한 청사진을 제대로 그려놓았다.

그녀가 하는 건 그 청사진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것뿐.

“이런 걸로 되겠어요? 진실이 세상에 밝혀지는 게 아니라서.”

백정연은 이선호에게 몇 번이나 물어봤던 것을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그녀가 아는 이선호는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백도현과 몇 년 동안 싸워 왔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을 찾아온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백도현을 누르고 백정연을 유리하게 해 줄 계략을 짜내는 것까지 도맡아 했다.

그건 지금껏 이선호가 걸어왔던 길과 다른 길이었다.

“괜찮다고 몇 번을 말씀드렸습니까.”

“그냥 신념을 바꾼 사람의 마음이 궁금할 따름이에요.”

신념.

백정연은 이선호가 신념을 바꿨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선호의 신념은 공익의 이익과 진실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선호는 피식 웃었다.

“생각하시는 게 맞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 세상에 제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도 필요하다는 걸 최근에 배웠을 뿐입니다.”

“다른 방식이요?”

“때로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할 필요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자신이 차악이라는 소리다. 최악은 백도현이라는 소리고. 백정연은 어려운 이선호의 말에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날 이용한다고 생각하면 됩니까?”

“제가 먼저 대표님께 제 이용 가치를 증명해 드렸으니까요. 서로가 서로의 목표를 위해 손을 잡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전 언젠가는 제 길을 다시 걸을 테니까요.”

이선호는 분명 그녀가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부드러워졌다.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뜻이다.

거센 바람이 불면 적당히 허리를 숙일 줄도 알고, 비가 오면 비를 피할 줄도 아는 그런 유연함.

“그 방식이 맞기를 바라죠.”

“아마 맞을 겁니다. 전 변할 수 없으니까.”

자신의 눈으로 상혁의 기적을 본 이상 이선호는 자신이 걷던 길을 이탈하여 변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껏 그가 봐 온 그 어떤 권력보다도 더한 진리를 부릴 줄 아는 사람이 자신의 뜻에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안 순간 그는 두려운 것이 없어졌으니까.

“그러니 대표님도 하시려던 것을 하시면 됩니다. 대표님을 위해서.”

“나만을 위한 게 아닙니다. 뭐, 그래도 지금은 그렇다고 하죠.”

백정연은 거침없이 사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백도현에게로 걸어가 그의 책상을 내리찍었다.

“백도현. 네가 꾸미는 일이 미국과 손을 잡고 인체실험을 하는 거였어?”

백정연의 입에서 나온 말에 백도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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