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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79화 (78/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79화

079. 마법사도 모르는 게 있다(4)

“자. 입원은 시켰어.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돼?”

김지예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상혁을 힐끗거리면서 쳐다봤다. 사실 김지예 한 것은 그냥 문을 열어 준 것밖에 없었다.

그것 외에는 환자들이 알아서 허공을 날아와 병상 위에 누웠다. 백정연은 골치 아프다는 듯 인상을 썼다.

“신고 없이 들어온 환자들인데. 얼마나 입원시켜 놓을 수 있어?”

“SG에서 온 거라고?”

“어. 정확히는 그쪽에서 빼돌린 거지만.”

백정연은 상혁에게서 전후 사정을 듣고는 순수하게 분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성을 잃은 건 아니다. 그녀는 맹목적인 믿음이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때문에 따로 조사를 시켜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껏 상혁이 거짓으로 무언가를 말한 적은 없기에 백정연은 90퍼센트 이상의 확률로 상혁의 말이 사실일 것이라 믿고 있었다.

“인체실험이라면서.”

“응.”

“증거는?”

“저기 저 여자.”

백정연이 김지예를 한 병상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그 위에 누운 여자를 본 김지예의 눈이 커졌다.

“외국인?”

“사만다 허드야.”

“뭐?”

김지예의 눈이 더욱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영화 좀 좋아한다는 사람치고 사만다 허드를 모르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할리우드에 있어야 할 그녀가 인체실험 대상자였다니. 김지예의 눈이 흔들렸다.

“이거, 너무 큰일 아니야?”

김지예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것과 관련된 일이 그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을 말이다. 백정연도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도 그게 걱정이야.’

대한민국에서는 나름 한 자리를 차지하고 목소리 좀 낸다고 자부할 수 있는 백정연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사만다 허드가 연루된 인체실험을 본 순간 깨달았다.

이건 그녀의 선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대책은 있는 거지? 저 사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일을 벌인 건 아닐 거 아냐.”

상혁은 환자들을 병상 위에 눕혀놓고는 허물어지듯 소파 위에 늘어졌다. 코 고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단잠에라도 빠진 듯했다.

“아무리 우리 병원에 입원 환자가 적다고 해도 스태프들 사이에서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어. 10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잖아.”

하루아침에 갑자기 입원실이 꽉 찼다고 하는 걸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할 리 없었다.

게다가 신고 접수나 보호자 동의도 받지 않은 환자들이 100명이나 늘어난 셈이다. 김지예는 지금 자신의 의사 면허를 걸고 백정연을 도와주고 있는 셈이다.

“방법이 있을 거야.”

“넌 모르고?”

“나도 알면 좋겠다 얘.”

김지예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래도 의사다. 일어나는 김지예를 보며 백정연이 그런 김지예의 팔을 붙잡았다.

“어디가?”

“환자라면서. 돌봐야지. SG에서 돈 안 되는 환자들을 어떻게 처우하는지 알잖아?”

“…….”

SG로 된 모든 사업체는 백정연의 아버지인 백성철 회장의 운영 전략에 의해 돌아가는 곳이다. 그리고 SG종합병원은 환자를 치료한다는 그 궁극적인 행위보다는 이익을 높이는데 치중하는 병원 중 하나였다.

그 점을 꼬집는 김지예에게 백정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김지예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에 사업의 논리를 끼워 넣는 것을 혐오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중병이 있는 환자는 없을 겁니다.”

“엄마야!”

그때 백정연이 화들짝 놀라며 짤막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백정연이 옆을 휙 돌아보자 상혁이 예의 무표정한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어떻게 알아요? 마법을 쓰면 사람이 병이 있는지 없는지도 막 알아요?”

“그건 아닙니다. 단지 인체실험이란 게 최대한 정상인에 가까운 컨디션을 갖춘 사람에게 행해진다는 거라는 건 알죠.”

“어떻게요?”

상혁은 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당해 봤다고는 별로 말해 주고 싶지 않았다. 상혁이 답하지 않자 백정연이 심통 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에요? 저 사람들은 어떻게 하구요. 지금 이렇게 일 저지르고 그 대처 방안은 있죠?”

상혁은 자신에게 대처 방안을 묻는 백정연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대처 방안이요?”

“설마 없어요?”

“그걸 내가 왜 생각합니까.”

백정연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이 꼭 자신이 싼 똥을 네가 치워라, 하는 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백정연이 허리에 손을 척 얹었다.

“내가 그냥 노는 사람인 줄 알아요? 나도 바쁜 사람이에요. 그리고 지예도 바쁜 의사고. 댁이 부탁해서 이렇게 준비해 줬는데, 적어도 고맙다고 말하거나 도와준 우리에게 피해가 돌아오지 않도록 대처 방안은 마련해 둬야 하는 거 아니에요?”

상혁은 여전히 이상하다는 듯 백정연을 쳐다보다가 한마디 툭 던졌다.

“밥상을 차려 줬는데 떠먹여 주기까지 해야 합니까?”

“밥상이요? 이게?”

백정연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혁은 고개를 모로 꺾었다.

“동생인 백도현 사장과 경쟁 중 아니었습니까?”

“그런데요?”

“말했잖습니까. 이 사람들, SG병원에서 몰래 빼돌린 사람들이라고.”

“그게 무…….”

그 순간 백정연의 눈이 커졌다. 상혁이 한 말의 의미를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설마 병원장 따위가 환자들을 빼돌릴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최소한 오너 일가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도현이라구요?”

“나야 모르죠.”

상혁은 뻔뻔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조금만 정치와 권모술수에 익숙하면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무려 미군과 관련된 일입니다. 그 정도로 큰 건이라면 당신 형제 중 한 명이 연루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백정연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러고는 자책했다. 자신은 사업가다. 사업가는 항상 모든 걸 사업과 관련지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네요. 당신 말이 맞아요.”

“대처 방안은 그럼 당신이 생각해야죠.”

즉, 상혁의 말은 이걸 그녀가 형제들과의 전쟁에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기도 했다.

한 명이 아니라 거의 백 명,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대형 병원인 SG병원에서 무연고자 환자들을 빼돌린 중차대한 사건이다.

이게 이슈화가 된다면?

백도현이건, 큰오빠인 백이현이건 간에 살아남지 못한다. 설령 이게 백성철 회장의 짓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슈화를 안 시킨다고 해도 이걸로 자신에게 크게 유익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문제가 있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미국입니까?”

백정연은 고개를 순순히 끄덕였다. 그건 상혁이 아니라 세 살짜리 어린아이가 와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미국이 과연 이 일이 드러나는 것을 좋아할 것인가, 그게 문제였다.

“그게 문제가 됩니까?”

“미국과 우리나라의 관계를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대한민국에게 미국은 절대적인 우방이자 없어서는 안 될 동맹국이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함으로 인해 생기는 전쟁 억제력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미국의 우방국이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이 설명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과연 이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원할까?

“압니다. 아니까 하는 말이고.”

“…….”

“설마 이 일을 미국 모두가 찬성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

백정연의 머리가 재빨리 계산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온 답은 아니다, 였다. 백정연은 자신이 미군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서 미국 전체의 뜻이 그렇다고 오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럴 리가 없죠.”

“당연히 인체실험을 자행한 자들에게도 적은 있을 겁니다. 미국이란 큰 나라의 뜻이 하나로 모이는 건 벼락을 맞는 것보다도 더 희박한 확률이니까.”

“그렇죠. 맞아요.”

“미군도 마찬가지. 내가 다녀온 것은 비밀리에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거.”

상혁은 그녀에게 닥터 지펠의 노트북을 내밀었다. 엄밀히 말하면 사만다 허드에게 엘릭서를 주입했을 때 그걸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자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던 그 노트북이었다.

“인체실험 책임자의 노트북인 것 같았습니다. 이걸로 미국에 있는, 이 사건의 주동자들이 보고 있었어요.”

적의 적이 누구인지 찾기 위해서는 그 적이 누구인지 일단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추적의 실마리가 든 이 노트북은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백정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이 아주 무겁게 느껴졌다. 자칫하면 미국의 거물과 얽힐 수도 있는 중요한 증거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백정연이 상혁을 쳐다봤다.

“저 사람들을 구한 거죠? 굳이 그럴 필요 없었을 텐데. 내게 이런 것들을 주는 것도 그렇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백정연은 앞서 나가고 있는 오빠인 백이현이나 동생인 백도현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이런 확실한 무기가 필요했다.

물론 이 무기는 잘못 쓰면 그녀 자신을 파멸시킬 무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그리고 그 존재를 상대에게 알리는 것만으로도 국가 간에 핵을 가진 것 같은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상혁은 백정연의 질문에 고민하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누가 구하라고 해서. 그리고 댁이 SG그룹의 회장이 되면 내가 사는 것도 좀 편해질 것 같고. 보니까 SG와 내 인연이 보통이 아닌 것 같거든요.”

굳이 원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SG와 얽혔다. 그렇다면 껄끄러운 놈보다는 그나마 말이 통하는 이를 그 윗대가리에 앉혀놓는 것이 상혁의 입장에서도 편할 것이다.

“백도현인지, 그 늙은이인지는 모르겠는데 내 주변으로 감시를 늘렸어요. 뭐, 호텔에서 내가 마음에 안 들었나.”

상혁의 말에 백정연의 눈이 커졌다. 그랬을 것이라고는 백정연은 미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날 의심하는 사람과는 함께 할 수 없거든요. 그러니까 그걸 빨리 댁이 치우시라고요. 내가 나서면 일이 시끄러워질 것 같거든.”

상혁은 보라는 듯 병상을 가리켰다. 그러자 백정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을 크게 만든다, 그건 지금 저기서 빙글거리고 있는 상혁의 주특기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리고 두 명만 데려갑시다.”

“두 명이요?”

“내가 애초에 거기 간 것 자체가 아는 사람이 가 버렸기 때문이니까요. 그리고 한 명은.”

사만다 허드.

엘릭서 열화판을 몸에 주입한 외국인. 상혁은 그녀의 몸을 관찰해 볼 예정이었다.

“사만다 허드요?”

“유명합니까?”

“사만다 허드를 몰라요?”

백정연에게 그녀가 미국에서 유명한 연예인이란 것을 들은 상혁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사람이라면 자신이 붙잡아 놓을 수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릭서 열화판이 진짜 엘릭서랑 어떻게 다른지 관찰하기 위해서는 그녀를 옆에 두고 관찰해야만 한다.

“혹시 미국에 집 있습니까?”

상혁이 백정연에게 뻔뻔한 얼굴로 물었다.

* * *

“음, 음?”

전아영은 흔들리는 진동을 느끼고는 눈을 슬며시 떴다. 그러자 전아영의 눈에 자신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웬 남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꺄악!”

전아영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남자가 팔짱을 끼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괜찮은 모양이네.”

“어? 상혁 씨?”

“부모님이 걱정하십니다.”

전아영은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그녀가 기억하는 건 공장에 잠깐 쉬기 위해 사람이 없는 하적장에 갔다가 기절하는 것까지만이었다.

“여긴 어디예요, 병원?”

“사람이 피곤하면 말이야. 병원도 가 보고, 정 안 좋으면 쉬기도 하고 그래야지. 공장이 무슨 대단한 거라고 나가서 쓰러집니까?”

전아영은 놀란 듯 토끼 눈을 떴다. 생각해 보니 자신의 소식을 들은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할까 뒤늦게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어나요.”

“저 괜찮은 거예요?”

“안 괜찮습니다. 그 반도체 공장에서 이상한 중금속 들이마시고 해서 몸이 안 좋아졌답니다. 그러니까 내가 공장 때려치우라고 했죠?”

상혁의 말이 맞았다. 성장하면서 단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던 전아영이다. 그런 전아영의 건강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고 난 후 급속도로 나빠졌다.

“뭐 SG병원에서 급성백혈병이니 뭐니 했다고 할 텐데, 그거 오진입니다. 몸에는 이상 없어요.”

전아영의 뇌 속에 자리 잡고 있던 독성물질과 마나를 뽑아 낸 상혁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혈구가 제 면역체계를 파괴하고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머지 독성물질과 마나는 천천히 뽑아내면 된다.

실제로 전아영의 얼굴에는 혈색이 돌았다. 전아영은 간만에 자고 일어났는데 개운함을 느꼈다.

“빨리 가죠. 내일 되기 전에 온양에 가려면.”

“여긴 어딘데요?”

“서울이요.”

김지예의 병원은 서울에 있었다. 상혁의 말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온양에서 쓰러진 자신이 왜 서울까지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왜 여기 있는지 모를 상혁이 자신의 곁에 있어 주었다는 것이다.

상혁은 전아영의 앞에서 휘적휘적 걸으며 그녀가 쓰러지기 직전 보았던 것을 떠올리고는 사악하게 씨익 하고 웃었다.

‘아무래도 공장에 한 번 더 가 봐야겠어.’

엘릭서.

그것에 대한 단서를 쥐고 있는 놈들이 아무래도 온양 공장에 더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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