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76화
076. 마법사도 모르는 게 있다(1)
“으, 으윽.”
지펠이 신음을 내면서 눈을 떴다. 자신이 얼마나 기절해 있던 것일까. 10분? 아니면 하루?
확실한 것은 천장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자신을 덮쳤고, 그로 인해 자신이 정신을 잃었다는 점이었다.
눈을 뜨니 익숙한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는 건 자신이 기절한 것이 오래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우우웅!!
그런데 그런 지펠의 귀에 기이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좇아 고개를 돌린 지펠은 웬 처음 보는 남자가 사만다 허드의 배에 손을 올려놓고 눈을 감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 누구시오!!”
천장을 무너뜨리게 한 장본인이라면 큰일이다. 지펠은 호출 버튼을 찾기 위해 팔의 고통을 꾹 참고 비척거리며 일어나 상혁에게 소리쳤다.
그런데 그런 지펠의 몸이 덜컥하고 멈춰 섰다. 그건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우우웅!
기이한 공명음과 함께 사만다 허드의 몸에 주입한 엘릭서의 영롱한 빛깔이 상혁의 손을 통해 상혁의 몸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어떤 특수한 장치를 쓴 것이 아니다. 그냥 맨손을 가져다 댄 것뿐인데 괴한이 엘릭서를 추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엘릭서 프로젝트가 들통났나?’
맨 처음 지펠이 한 생각은 그것이었다. 미국 정계와 재계에서 방귀 좀 뀐다는 양반들이 자금을 댔음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가 은밀하게 진행된 이유는 그들에게도 정적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정적들이 이런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음을 알았다면 얼마든지 훼방을 놓을 수 있었다.
‘아니, 아니야.’
하지만 지펠의 감은 그게 아니라고 신호를 보냈다. 사람의 몸에서는 이런 공명음 같은 것이 날 수 없었다. 그리고 저 남자는 분명 엘릭서를 흡수하고 있었다.
지펠의 눈에 바닥에 떨어진 주사기가 눈에 들어왔다. 엘릭서가 들어간 주사기였다. 만약 저 남자가 이 엘릭서를 노리고 침입한 것이라면 지펠에게는 그게 필요했다.
‘살아야 해.’
이런 은밀한 곳에서 이뤄지는 실험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처한다면 미국의 거물들은 자신을 부정하고 외면할 것이다.
그때 상혁의 몸에서 푸른빛이 새어 나오다가 뚝 멈췄다. 지펠은 그 모습을 보고 헛숨을 들이켰다.
“눈치가 빨라.”
눈을 감고 있던 상혁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지펠은 한국어를 쓰는 남자를 보면서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는 사람의 몸에서 빛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국방의학연구소에서 슈퍼 솔져의 혈청 같은 게 개발됐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했다면 머리통에 이게 박혔을 텐데.”
화르륵!
상혁의 관자놀이 옆으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불화살이 장전됐다. 그걸 본 지펠의 눈이 더욱 커졌다.
‘……!?’
저건 무엇일까. 마치 마법 같았다.
마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지펠이나 그는 직관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지펠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 누구십니까.”
단박에 지펠의 말투가 변했다. 상혁은 조소를 머금으며 사만다 허드의 배에 대고 있던 손바닥을 뗐다.
“이게 뭔지 궁금할 텐데 모른 척도 하는 건가?”
“…….”
“마법이야, 어때?”
진짜 마법이라니. 지펠은 지금껏 그가 알았던 상식들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자신이 꿈을 꾸는 게 아닌 다음에야 그건 현실이었다.
과학을 공부한 그는 이 세상에 과학이 알아낸 것보다 아직 알아내지 못한 것이 많음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신의 존재도 믿었다.
과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굵직한 과학자들이 유신론자라는 것을 떠올려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마법이라니.
“정말 마법입니까?”
“한번 시험해 보고 싶어? 네 몸으로?”
따악.
상혁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지펠의 눈앞이 까맣게 멀었다. 지펠이 당황하며 손을 휘저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던 눈이 보이지 않았다.
지펠은 공포에 젖어 허공에 대고 빌었다.
“죄, 죄송합니다. 믿겠습니다. 그게 마법이란 걸 믿겠습니다.”
지펠이 앞으로 털썩 쓰러졌다. 시야가 돌아왔다. 그는 탈골된 팔의 고통도 느끼지 못한 채 숨을 헐떡이면서 고개를 들어 상혁을 쳐다봤다.
상혁의 오른눈이 마나안으로 반짝였다. 상혁은 고개를 숙여 공포에 질린 지펠의 머리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우웅!!
지펠의 눈이 풀렸다. 공포에 질려 있는 사람의 정신 방벽은 지금처럼 가볍게 뚫린다. 상혁은 빙긋 웃으며 그런 지펠에게 물었다.
“여기서 벌어지고 있었던 일의 전말. 그리고 이 엘릭서의 열화판까지. 아는 것에 대해 모두 말해.”
눈의 초점이 사라진 지펠의 입이 열렸다.
* * *
“아니. 환자를 왜 못 보게 하는 겁니까! 보호자가 입원한 환자를 못 보다니. 의료법 위반인 거 압니까 이거?”
이선호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 통에 주변의 시선이 쏠렸다. 하지만 이선호나 전광철, 최영숙은 주변의 시선을 조금도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전아영.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을 병원에서 숨긴다는 것이 너무나도 수상했기 때문이다.
“중환자실에 면회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선호를 대하는 의사는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이선호가 코웃음을 쳤다.
“면회 가능 시간에 왔는데 별의별 이유를 대면서 응해 주지 않은 건 당신들입니다. 안 되겠네요. 경찰을 불러야지.”
이선호는 경찰을 부를 기세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의사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해 보세요.”
“뭐요?”
“변호사니까 잘 아시겠네요. 해 보시라구요.”
이선호는 멈칫했다. 그러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SG와 경찰. 그 유착 관계는 이선호가 질리도록 경험해 본 것이었다.
지금 의사는 SG를 믿고 있었다. SG 앞에서는 경찰이란 이름도 무소용이었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인가?’
하지만 강력한 패일수록 자주 꺼내면 그 빛이 바래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웬만큼 SG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경찰도 움직이기 마련이다.
반대로 경찰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전아영에게 일어난 일이 SG가 직접 경찰에 압력을 넣을 정도의 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때 이선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상혁이었다. 이선호는 항상 이렇게 꽉 막힌 듯한 막다른 길에서 자신을 구원해 줄 누군가를 기다려왔다.
이선호의 눈에 희망의 빛이 깃들었다.
* * *
“예. 알겠습니다. 대의를 위한 일인데 그 정도에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예.”
백정연은 전화를 끊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호텔과 리조트를 운영하는 그녀는 사실 이런 전화를 받을 필요가 없었지만 최근 들어 그녀에게는 전화가 쏟아졌다.
“마도구란 거.”
자칭 마법사라고 했던 상혁이 만들어 주고 간 정화 마도구 때문이다. 그녀는 상혁이 만들어 주고 간 마도구로 태안 앞바다를 정화했다.
그리고 그 오염도를 매일 체크를 하며 변화를 기록했고, 그것을 그녀가 최근에 연이 닿은 이탈리아 대사를 통해 슬쩍 흘리자 그가 러시아와 연결해 준 것이다.
그녀는 상혁에게 빚을 갚고자 했다.
‘돈이 많이 필요한 듯했으니까.’
마침 상혁에게는 사실로 밝혀지기만 한다면 돈을 갈퀴로 쓸어모을 마도구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러시아 쪽에서 관심을 보였다.
환경오염.
러시아는 자존심이 강한 나라라 국제 사회에서 환경 문제가 대두되면 러시아는 문제가 없다며 자신하지만, 사실 그들 내부에서도 가장 골치를 썩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환경오염 문제였다.
다름 아닌 핵 방사능 때문이다.
체르노빌뿐만 아니라 소련이던 시절 냉전체제에서 승리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실행했던 핵 실험으로 인한 오염이 심각했다.
그런데 정화 마도구가 등장했다.
맨 처음 그들은 반신반의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리고 복잡한 설비가 아니라 마도구 하나가 그걸 할 수 있다는 것에 반신반의했지만 태안 앞바다가 실제 수치상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관심을 가졌다.
이후에는 일사천리였다.
러시아를 버릴 생각이 없는 다음에야 러시아의 핵폐기물과 그로 인한 방사능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였으니까.
그때부터 러시아 대사관뿐만 아니라 러시아 정부에서도 그녀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백정연은 마도구의 개발자가 상혁이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 사실을 아는 것은 백정연과 상혁뿐이니 백정연만 입을 다물면 그들이 상혁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을 가능성은 적었다.
그녀는 어느새 상혁의 대변인이 된 것이다.
“이제 그가 필요해.”
백정연은 어느 정도 협상이 무르익고 진전된 것을 느꼈다. 그럼 이제부터 필요한 것은 상혁과의 조율이다. 그런데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상혁이었다.
“마침 전화하려고 했는데 전화를 주셨네요.”
백정연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했다. 상혁 덕분에 그녀가 돌파한 위기가 한두 개가 아닐뿐더러 그로 인해 기회가 그녀에게 찾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정연의 목소리가 금세 뾰족해졌다.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예요, 대체? 평택이라니? 미군기지요??”
* * *
띠리리릭!
전화기가 신경질적으로 울어 댔다. 박정철이 전화를 받고는 백도현에게 전화를 넘겼다.
“네, 요한 대령님.”
[큰일 났습니다, 미스터 백. 문제가 생겼어요. 평택에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대형 화재가 벌어졌는데 연구소에도 침입자가 들었습니다.]
“뭐요?”
백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실험에 가장 중요한 실험체를 제공한 것은 바로 자신이다. 그런데 거기서 사고가 나다니.
“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한 겁니까?”
[SG그룹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실험체들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리고 설비를 다시 구축할 장소와 자금이 필요합니다.]
“이…….”
백도현의 얼굴이 붉어졌다. 일을 처리한다고 한 사람이 실패해 놓고 자신에게 요구하는 꼴이 우스웠기 때문이다.
[만약 미스터 백의 지원이 늦어져 이번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면 미스터 백도 그 후폭풍을 감당하실 수 없을 텐데요?]
무엇보다도 미 합참의 수뇌부에서도 모르고 진행되는 일이다. 그곳에는 몇몇 골수 군인들이 있기 때문에 아예 기획 단계부터 그들을 배제한 것이다.
미국의 거물들이라면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충분했다. 그러니 일이 실패하고 나니 한국의 눈과 합참 수뇌부의 눈까지 피해야 하는 이중고가 닥쳤다.
“범인은요?”
[미스터 백입니다.]
“나요?”
[현장에서 미스터 백을 봤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미친…….”
백도현은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이 용의자라니. 이게 무슨 방귀 같은 밀이란 말인가.
[말도 안 된다는 것 압니다. 하지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추가 조사가 필요할 텐데…….]
백도현은 인상을 썼다. 자신의 얼굴을 한 범인이란다.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한 현상에 백도현은 이마를 짚었다.
백상혁.
이 순간 왜 또 그가 떠오르는 걸까.
[자, 잠깐. 뭐라고? 그, 많은 실험체가 대체 어디로 가!!]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통화를 하던 중 당황한 요한 대령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백도현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속적으로 터지고 있었다.
[미스터 백. 연구소에 있던 실험체들이 전부 다 실종 상태라고 합니다.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뭐요? 뭐가 사라져?”
백도현은 또다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누가 사라지다니. 100구가 넘는 실험체가 어떻게 사라질 수가 있단 말인가.
“내부에서 혹시 실험에 대해서 알고 움직인 것 아닙니까?”
[실시간 감청 중이었습니다. 합참에서도 전혀 이 사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사령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대체 일 처리를!!”
까드득.
백도현은 이를 갈면서 분노를 터뜨리려다가 가까스로 참았다. 여기서 분노를 터뜨린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백도현은 박정철에게 말했다.
“들었죠? 어서 움직이세요. 동원할 수 있는 건 모조리 동원하고. 입단속 제대로 하시고.”
“예, 도련님.”
백도현이 박정철에게 지시를 내린 후 요한 대령에게 말했다.
“이 일에 대해서 반드시 원만하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겁니다. 요한 대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