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74화
074. 김칫국 드링킹(4)
“으흠.”
[으악, 저, 저리가! 으아악!]
지훈은 상황실 안에서 악몽을 꾸는 이들이 내지르는 소리를 들으며 무표정하게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나이트메어.
걸린 사람이 가장 공포스러워하는 것이 꿈에서 나오게 해 주는 마법이었는데 이 마법은 수면 마법과 매우 궁합이 잘 맞았다.
거기에 마법에 대한 면역력도 없으니 제아무리 용병이라고 해도 버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깔끔하게 상황실을 지워 버린 상혁이 화광이 충천하여 붉게 달아오르는 밤하늘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여기서 어디로 가면 제대로 내가 원하는 게 나오려나?”
길잡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그건 애당초 바라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지금 상혁은 다른 곳이 아닌 일반인이 들어올 수 없는 군사지역에 들어와 있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평택이었네.”
태안에서 평택까지 꽤 먼 길을 화물차를 타고 온 셈이었다. 상혁은 부대 도처에 눌어붙은 불 때문에 시끌시끌한 것을 느끼며 코를 벌름거렸다.
“마나야.”
서울에서도 느끼지 못한 진한 마나의 향이 공기 중에 느껴졌다. 상혁은 일단 이 짙은 마나향의 근원을 찾기로 했다.
“미군 부대라고 하더니. 무슨 거의 마을 수준이네.”
상혁은 혀를 내둘렀다. 미군 기지라고 해서 군인들만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하나의 마을처럼 민간인들도 꽤 거주하고 있었다.
아마 파병 나온 군인들의 가족들인 것 같았다.
“스읍, 하아!”
상혁은 코를 벌름거리면서 마나를 고리에 차곡차곡 쌓았다. 그렇게 나아가던 상혁의 앞에 철조망이 떡하니 나타났다. 철조망이 있다는 건 들어가거나 나가는 걸 막겠다는 뜻이었다.
즉, 비밀스러운 곳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상혁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쇼크.”
빠지직!!
빨간 불이 들어와 있던 CCTV가 퍽 하고 나갔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감시초소가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하이드.”
간단하게 그림자 마법으로 자신의 모습을 지운 상혁이 철조망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 고압 전력이 상혁의 몸을 관통했다.
빠지직!
철조망에 고압선까지 깔려 있었다. 웬만한 사람은 단박에 기절시키거나, 심한 경우 죽을 수도 있을 정도의 고압 전류였다.
하지만 상혁은 간지럽다는 듯 팔뚝을 툭툭 쳤다.
“짜릿하네.”
마나를 치환하여 순수 상태의 원소를 구현하는 것이 바로 마법사다. 그렇기에 마법사는 자신이 주 장기로 삼는 마법의 원소에 대한 저항력이 높았다.
불을 다루는 화염 마법사에게 화염 마법으로 공격하는 것이 바보 같은 짓이란 것은 가나안에서는 상식이다.
그렇다면 모든 원소를 다루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인간의 뇌는 유한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의 뇌는 무궁무진하지만 그걸 꺼내다 쓸 수 있는 건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천차만별로 차이가 났다.
그리고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한 개, 혹은 많아야 두 개 정도의 원소밖에 다루지 못했다.
아니, 어떤 마법사는 아예 원소 마법을 하나도 다루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나는 다르지.’
하지만 그중에서도 상혁은 달랐다. 당연했다. 마나안이란 것을 보유한 8서클 대마법사였기 때문이다.
쿼드러플 캐스팅에 있어 상혁이 대마법사로 유명했던 것 중의 하나는 상혁이 6원소를 다루기 때문이다.
불, 물, 바람, 흙으로 대표하는 네 개의 속성을 뛰어넘어 뇌전과 암흑까지 다뤘다.
파괴마법 중 가장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원소는 뇌전과 불이다. 특히 뇌전을 다룰 줄 아는 마법사는 지극히 적어 뇌전 마법만 다뤄도 가나안에서는 몸값이 일반 마법사에 비해 3배 정도가 비쌌다.
뇌전 마법을 상혁이 다룰 수 있다는 뜻은 간단했다.
상혁은 손가락에 파고든 전류를 손을 몇 번 털어 내는 것만으로 견뎌 냈다. 그런 뒤 상혁은 고민 없이 땅을 향해 마법을 사용했다.
“디그.”
최소한의 마나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것. 무한하지 않은 마나를 가진 마법사는 늘 해야 하는 고민이다. 그리고 상혁은 1서클 디그 마법으로 간단하게 철조망을 무력화시켰다.
끼이익!
디그 때문에 땅이 움푹 파이자 철조망이 끼익 소리를 내면서 뒤로 넘어갔다. 그 위를 넘은 상혁은 점점 더 공기 중의 마나가 짙어지자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SG공장의 폐수 이상이야.”
5서클로 올라가는 실마리가 잡힌 셈이다. 더 이상 공장의 오수나 폐수 정도로는 서클의 마나를 늘어나게 할 수 없었다.
훨씬 더 농도가 짙은 마나가 필요했는데 의외의 장소에서 그 실마리를 발견한 것이다.
정 없으면 외국으로라도 나갈 생각을 하고 있던 상혁에게는 마치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상혁은 하이드 마법으로 자신의 모습을 그림자 속에 감춘 채 허가를 받지 않은 인력의 출입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는 건물에 도착했다.
뒤에서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불을 끄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지만 상혁의 주변은 고요했다.
그러나 이 고요함도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군 기지가 아무리 허술하다고 해도 출입 금지 구역의 철조망이 넘어지고 CCTV가 고장 난 것을 금방 파악할 것이기 때문이다.
“디텍트.”
쏴아아-!!
감지 마법을 쓴 상혁의 눈이 살짝 커졌다. 콘크리트로 외적인 미관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티가 나는 3층 건물 안에 상혁이 예상한 것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상혁의 눈에 금세 이채가 흘렀다.
“운이 나쁜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상혁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늘 영 운이 없으시네. 미군이.”
상혁의 다리가 땅을 박찼다. 그러자 점프 마법을 사용한 상혁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렇게 벽에 매달린 뒤 점프 마법으로 몇 번을 박찬 상혁의 모습이 건물의 옥상 위로 사라졌다.
* * *
“여기서 왜 너가 나와?”
상혁은 씩 웃었다. 오늘 자신에게 운이 따른다는 느낌이 들더니 정말로 제대로 운이 따랐다. 상혁은 건물 바깥의 소각장으로 보이는 곳으로 우르르 들어가는 약 상자를 보고는 눈을 반짝하고 빛냈다.
[SG충청병원]
평택에 있는 미군기지의 소각장에 왜 SG충청병원이란 이름이 쓰인 약 상자가 있을까. 답은 금방 나왔다.
“미군이랑 SG그룹이랑 무언가 있다는 뜻이네. 그러니까 서로 환자도 주고받고, 약도 대신 태워 주고.”
그렇다는 건 SG충청병원 하적장에 아무런 표식도 없이 그냥 며칠이고 서 있던 그 탑차가 향하는 곳이 바로 평택의 미군기지였다는 뜻이다.
어쨌거나 저 약 상자가 소각장 안으로 우르르 들어간다는 것은 퀘스트 장소가 가리키는 곳이 바로 이곳, 미군기지였다는 뜻이다.
“첫 번째 조건은 저 소각장을 통째로 태워 버리면 될 일 같고.”
1000톤의 약품을 소각하고 정화하는 일은 일단 눈에 보이는 것들만 해치워도 1000톤의 일부는 처리가 가능할 것 같았다.
그리고 전국에 깔린 것이 SG병원이니 정 안 되면 돌아다니면서 게릴라전을 펼치듯 공략해도 된다.
하지만 문제는 두 번째 조건이다.
“18헥타르를 정화하라니.”
그것도 미군기지가 포함된 주변의 토양을 18헥타르의 크기로 정화하라는 뜻이다. 18헥타르는 여의도만 한 크기다.
그 정도 되는 땅을 한 번에 정화하려면 못 해도 7서클 이상의 고서클 마법사가 되어야 한다.
‘아니, 천천히 하면 되긴 하는데.’
지금처럼 미군기지가 있다면 그것도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상혁은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가능해 보이는 퀘스트 앞에서 눈을 반짝였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 마법사였으니 불가능할수록 도전 의식이 더욱 불타오르는 법이다.
“어쨌거나 잘된 일이잖아. 한꺼번에 다 해결할 수 있게 됐으니까.”
간만에 자신에게 인체실험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해 준 미군을 뒤엎어 버리고 거기에 퀘스트까지.
상혁이 손가락을 튕겼다.
화르륵!!
그러자 불씨가 날아가 쌓여 있던 약 상자 위에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쌓인 약 상자 위에 불을 지른 상혁이 한 번 더 손가락을 튕기자 활활 타오르던 소각장에도 불씨가 옮겨붙었다.
저런 약품은 고열에 소각한다고 해서 정화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마법사의 불꽃만이 저것을 완벽하게 연소시킬 수 있었다.
그게 아닌 그냥 평범한 불은 장담하지 못할 성분의 화학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게 저 안에 가득 쌓여 있을 것이고.’
저 소각장 안에서 약품을 태우면서 생긴 기체가 공기 중에 녹아들면서 미군기지와 그 주변의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한, 가장 농축된 오염물질은 소각장 안에 잠들어 있었다.
상혁은 그 어마어마한 크기를 짐작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5서클.
소각장 안에 지금껏 미군과 SG가 결탁하여 남몰래 태우고 남은 오염물질만 흡수해도 5서클을 넘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번 침을 삼켜 보인 상혁은 고개를 돌렸다.
‘다시 오면 돼.’
군 기지였지만 상혁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드나들 자신이 있었다. 미군이란 것이 까다롭기는 하지만 결국 똑같은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라면 반드시 구멍은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마법사는 아주 작은 틈도 커다란 구멍으로 만들 수 있었다.
상혁은 3서클의 윈드 커터 마법으로 딛고 선 건물의 바닥을 원형으로 잘라 냈다. 그러자 사람이 들어갈 법한 구멍이 뚫렸다.
스르륵
낙하 속도를 낮춰 주는 마법으로 고양이처럼 3층 복도에 상혁이 내려섰다. 탐지 마법으로 안을 살폈을 때 꽤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복도에서 눈에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일단 대가리 먼저 잡아야지.”
상혁은 마법을 꼼꼼하게 신경 써서 시전해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해 놓은 다음 복도를 걸었다. 대개 이런 곳의 관리자가 상주하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맨 꼭대기.
상혁은 3층을 쭉 살폈다. 청력 증가 마법과 탐지 마법을 병행해 가며 뒤진 상혁이지만 3층에는 그들이 몰래 외부에서 들여온 환자들의 상태를 체크하는 사람 몇 명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전부 다 환자였다.
‘95명.’
3층에만 95명이나 되는 환자가 있었다. 상혁은 그 숫자를 기억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는 찰나, 아래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는 인식장애 마법을 시전했다.
“CCTV가 고장 났다고?”
“응. 아무래도 밖에 난 불 때문에 합선이 된 모양이던데.”
“멍청한 놈들. 대체 어떻게 관리를 하길래 군 기지에 불이 나는 거야? 깡그리 다 옷을 벗어야 정신을 차리지.”
올라오는 사람은 역시나 둘 다 백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상혁의 바로 옆을 지나치면서도 그곳에 상혁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인식장애와 하이드 마법이 완벽하게 상혁을 숨겨 준 것이다.
“야. 1호 봤어?”
“봤지. 몸매 죽이던데. 내가 영화 보고 뻑 갔었는데. 그럴 만해.”
“큭큭큭.”
둘이 나누는 대화 내용이 퍽 저열했다. 하지만 상혁은 표정 하나 찌푸리지 않은 채 그들의 대화를 귀담아들었다.
모든 것이 다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사만다 허드를 여기서 볼 줄이야. 그런데 왜 여기까지 온 거야?”
“쉬잇! 그 이름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누가 있다고. 그리고 다들 알잖아. 쉬쉬거리는 거지. 어쨌거나 왜 여기까지 와서 저 꼴인 건데?”
“워싱턴 거물 정치인의 이거였다는데?”
그중 한 명이 새끼손가락을 들고 말했다.
상혁은 1호의 이름이 사만다 허드라는 것까지 알아냈다. 그리고 둘의 대화를 들어 보니 꽤 유명인인 모양이었다.
‘연예인?’
연예인, 그것도 미국에서 사만다라는 여자를 잡아 왔다는 것을 들으면서 상혁이 눈을 빛냈다. 저들의 구조가 복잡할수록 아주 작은 균열이 큰 균열이 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이 인체실험이 미국 본토에서도 누군가의 묵인하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에 상혁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재밌네.”
그렇게 중얼거린 상혁의 귀가 번쩍 뜨일 만한 정보가 남자들의 입에서 나왔다.
“닥터 지젤이 계속 거기만 있는 게 수상하지 않아? 우리한테 못 본 척하라고 해 놓고서는 자기가 방을 거기 옆으로까지 옮겼잖아. 흑심 있는 거 아니야?”
“아서라. 닥터 지펠이 뭐가 아쉬워서. 여기 일만 마무리 되면 본토로 돌아가서 펜타곤 의학연구소장이 된다는 사람인데.”
“하, 자기가 여기 헤드면 단가. 난 못 믿겠어 그 양반.”
상혁의 눈이 반짝였다.
닥터 지펠. 그리고 사만다라 불린 1호 실험체가 있는 방 바로 옆으로 자신의 연구실을 옮겼다라는 것까지.
스르륵
상혁의 신형이 다시 그림자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