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73화
073. 김칫국 드링킹(3)
움찔.
전아영은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전아영이 처음으로 느낀 것은 너무 아프다는 것이었다.
‘아파.’
온몸이 마치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왜 그렇게 아픈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걸 의사나 간호사에게 듣기도 전에 이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병원에 이송된 그녀는 그 즉시 중환자실로 갔어야 할 정도다.
띠- 띠- 띠-
전아영의 귀에 심전도 기계가 간헐적으로 소리를 내는 것이 들렸다. 그녀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병실에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가느다란 무의식 저 너머에서 누군가 곁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따스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손이 자신에게 닿았을 때 전아영은 무의식 속에서 시원함을 느꼈다.
“으, 으음…….”
그녀의 의식이 점점 수면 위로 부상했다. 전아영은 눈앞이 뿌옇고 흐릿하다는 것을 느끼며 힘겹게 눈을 떴다. 머리가 몽롱하고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하지만 정신을 잃기 전 느꼈던 그 끔찍한 무력감과 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비록 몸은 구타를 당한 것처럼 아팠지만 오히려 그것이 역설적으로 몸에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빠직.
화악!!
그때 전아영의 시야에 빠직하는 소리와 함께 빛이 번쩍인 뒤 그대로 사그라졌다. 그러자 전아영의 눈에 초점이 잡히며 주변의 사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눈에 사람의 실루엣이 들어왔다. 그런데 하나의 실루엣이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잠시 뒤 더 또렷해진 눈으로 그녀는 실루엣을 쳐다봤다.
어떤 남자의 등이었다.
그때 그 남자의 등이 얼굴을 돌려 전아영을 쳐다봤다. 그 순간 그녀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벌써 일어났어?”
커다랗게 보였던 남자는 상혁이었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이 느꼈던 그 따스함의 주인공 역시 바로 상혁이었다는 것을 곧바로 깨달았다.
상혁이 그녀의 이마 위에 손을 올렸다.
“더 자라.”
전아영의 눈이 다시 스르르 감겼다.
* * *
“어우, 깜짝이야.”
스르륵 다시 눕는 전아영을 보면서 상혁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고는 손바닥을 내리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왜 벌써 깨?”
전아영의 몸속의 신호를 교란하고 있던 오염물질을 일정 부분 흡수하는 데 성공한 상혁이다. 뇌까지 뻗친 유독물질을 간신히 없애는 데 성공했으니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다.
전아영의 몸은 급성백혈병으로 인해 일종의 전시체제에 들어가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 의식을 놓아 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백혈구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던 뇌 속의 유독물질을 제거했으니 급한 불을 끈 셈이다.
“적어도 여섯 시간은 못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상혁의 계산이 틀렸다는 건 전아영이 특별한 체질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신기하네.”
이선호도 그렇고, 전아영도 그렇고. 거기에 오승환까지. 이상하게 주변에 마나가 한 톨도 없는 지구임에도 불구하고 기이한 체질을 지닌 이들이 많았다.
어쨌거나 상혁은 자신의 발치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외국인을 발끝으로 툭 찼다.
“얜 아니네.”
상혁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열린 화물칸의 문을 다시 닫았다. 그러고는 단단하게 마법으로 문을 잠갔다.
쿵!
그곳은 거대한 하적장이었다. 그런데 상혁은 이상한 부분들이 눈에 보였다. 외국인이 나타났을 때부터 대충 짐작은 했는데 도착한 탑차의 화물칸을 연 외국인이 군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서 확신했다.
“미군 부대?”
상혁은 발걸음 소리를 낮추고는 운전석 쪽을 힐끗 쳐다봤다. 다행히 운전사는 먼저 내린 모양이었다. 상혁은 마법에 기절한 외국인을 발로 쭉 밀어서는 차 밑으로 밀어 넣은 뒤 주변을 살폈다.
“보급 부댄가?”
꽤 큰 규모의 부대임은 틀림없었다. 상혁이 타고 온 탑차 외에도 거의 10대에 달하는 탑차들이 주르륵 서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눈을 감은 상혁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눈을 떴다.
“이 새끼들. 잡아 온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네. 여기 탑차에 모두 다 전아영 같은 환자들이 타고 있다고?”
수십 개의 생명 반응이 화물칸 안에서 느껴졌다. 전부 다 인체실험 대상자라는 뜻이다. 상혁은 이곳의 책임자를 꼭 만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건 절대로 평화로운 방법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일단 시끄럽게 만들어야겠지.”
이곳이 만약 진짜 미군 부대라면 그게 보급 부대라고 해도 4서클인 상혁 혼자서 정면으로 들이박기에는 무리다.
물론 마법을 적절히 이용하면 마법이란 걸 꿈에도 모를 미군 부대를 암살자처럼 활보하고 다니는 것은 문제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상혁은 마법사다.
암살자의 방법은 마법사의 방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닐아.”
부스럭.
상혁은 품에서 손바닥 크기만 한 약통에 압축된 비닐 골렘을 약통의 뚜껑을 열어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히죽 웃으며 다시 한번 더 눈을 감았다.
“어디가 좋으려나.”
상혁은 감지 마법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갔다. 창고 크기에서 조금씩 벗어나며 감지 범위를 늘려 나가던 상혁의 눈썹이 순간 꿈틀거렸다.
“아니 잠깐만. 이거.”
상혁은 자신이 잘못 느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순간 여기가 가나안인 줄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잘못 착각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무슨 놈의 마나가 공중에 막 떠다녀?”
상혁이 코를 킁킁거렸다. 공기 중에 마나가 떠다니고 있었다. 대마법사인 상혁이 다른 곳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던 그 마나가 공기 중에 떠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재밌는 곳이네.”
상혁의 기대가 한층 더 깊어졌다.
* * *
“3호 차는 왜 정차 중이지?”
“마이클 일병이 갔습니다.”
“하, 나. 그 새끼. 또 뺑이 치는 거 아니야?”
미국은 모병제다. 그러나 미국은 늘 군인이 되려는 자원자들로 넘쳐 났다. 군인에 대한 대우가 무척 좋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양질의 인재가 군인이 되는 건 아니다. 마이클 일병이 딱 그렇게 군인이 된 사람 중 하나였다.
고문관.
그렇기 때문에 엘릭서 프로젝트의 중간 관리자 중 하나인 마샬 하사는 인상을 팍 썼다.
“지난번에도 저렇게 꾸물거리다가 실험체 하나 잃었잖아. 다른 사람 보내. 그 새끼 쓰지 말라니까.”
“옙.”
다른 이들도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마이클 일병은 제대로 일을 할 줄도 모르면서 자신을 일에서 배제하면 윗선에 곧바로 항의하는 고문관의 표본이었다.
하지만 그가 중요한 프로젝트에 참가한 이유는 유사시에 써먹을 고기 방패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나마 가장 쉬운 업무 중 하나로 탑차가 도착하면 실험체들을 거기서 내리는 일을 시켰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 때문에 마샬 하사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빨리빨리 하자고. 실험체들을 연구원들에게 넘기기만 하면 우리 일은 끝이니까 말이야.”
사실 미군들이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들도 프로젝트의 주체가 아니라 조력자에 불과했기 때문에 실험체를 연구원들에게 넘기면 끝이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군인도 아니었다.
“하. 진짜. 마이클 그 새끼. 앙토니 이사 빽으로 들어온 놈이라 쫓아낼 수도 없고. 제기랄. 군이나 여기나 더러운 건 마찬가지군.”
미군이 그런 위험성을 떠맡을 리 없었다. 그 때문에 미군이 책임지기로 한 건 그들에게 미군 전투복을 지급해 주고 미군 베이스의 작은 일부분을 떼어 주는 것까지였다.
만약 의혹이 불거져 나온다면 미군은 강력하게 자신들과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미 입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 미군복을 입고 있는 이들은 미군이 아니라 용병이었다.
일병 딱지를 달고 있는 마이클은 진짜 미군에 있다가 부적응자로 쫓겨난 뒤 PMC의 이사인 앙토니의 빽으로 들어온 놈이었다.
“에이씨.”
마이클 때문에 퇴근이 늦어지자 마샬 하사의 얼굴에 불만이 팽배해졌다. 하지만 그러느라 그는 미처 보지 못했다.
지직, 지직!
CCTV가 출력되는 화면에 조금씩 노이즈가 끼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이다.
팟!! 파바밧!!
그리고 잠시 뒤 하적장의 모든 CCTV가 동시에 팍하고 꺼졌다. 그 소리에 놀란 마샬 하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상사태다!!”
원인이 뭔지 그딴 것 따위를 규명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용병들은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그냥 곧바로 외부에 알리기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몸에 밴 습관대로 움직였다.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무슨!”
하지만 연결이 모조리 끊겼다. 하적장과 그 뒤의 상황실을 연결하는 모든 전기 배선이 깔끔하게 타 버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땅속에 매설된 전선까지도 싹 다 타 버렸다. 그 순간 하적장은 완벽하게 고립된 것이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 상황실의 문을 열고 걸어 들어왔다.
빠지직!!
양손에 전류를 휘감은 상혁이 기절한 마이클과 용병 하나를 상황실 안에 던져놓은 채 자신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이들을 향해 말했다.
“물어볼 게 있는데 답해 줄 사람?”
상혁은 히죽 웃었다. 마샬 하사는 그런 상혁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슬금슬금 움직여 비상벨을 누를 수 있는 위치로 움직였다.
빠지직!
상혁의 손에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전류가 일렁이는 것을 보며 마샬 하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슈퍼 솔져? 초능력자? 뭐야 저게.’
상혁의 정체 때문에 마샬 하사의 머릿속에 복잡해졌다. 하지만 지금 이 사태를 외부에 알려야 한다.
“아. 아마 바깥의 지원이나 도움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건 미안하지만 안 될 것 같아.”
퍼엉-!!
밖에서 무언가 펑 터지는 소리가 났다. 상혁이 그 소리를 들으며 히죽 웃었다.
“우리 비닐이가 제 한 몸 희생해서 멋들어지게 태우는 소리거든.”
웨에에에엥-!!
마샬 하사의 표정이 변했다. 이 사이렌 소리는 화재 발생 시 울리는 사이렌 소리다. 그러니까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눈앞의 미친놈이 미군 부대에 불을 질렀다는 뜻이었다.
“역시, 이 세상에 잘못된 발명은 없어. 내가 비닐이를 만들고는 이마를 탁 쳤거든. 실패작이라서. 그런데 다 쓸모가 있지 뭐야.”
비닐 골렘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가볍다는 것이다. 또한 비닐로 만들어졌기에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것도 가능했다.
그래서 상혁은 열기구의 원리로 비닐 골렘 안에 마나로 만든 불을 가득 채워 넣었다. 그러고 나서 바람 마법으로 띄우자 비닐 골렘은 불이 가득 찬 열기구처럼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마나로 만든 불이 비닐에 옮겨붙을 걱정은 할 필요 없었다. 애초에 상혁이 비닐로 골렘을 만든 건 약봉지에 들어 있던 약 때문에 봉지에 옅게 마나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부대 한복판에서 펑.
“마나로 만든 불이야. 소화기나 물 따위로는 꺼지지 않아. 그러니까 내 말인즉슨.”
상혁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마샬 하사의 손이 굳었다. 비상벨을 누르기 바로 직전에 상혁의 염력 마법에 손이 붙들린 것이다.
“너흴 도와주러 올 사람은 없어. 우리들끼리 아주 찐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뜻이지.”
따악-!!
상혁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얼어 있던 상황병들이 스르륵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하지만 딱 한 명, 마샬 하사만큼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고꾸라지는 건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였다. 마샬 하사는 이를 딱딱 떨기 시작했다.
“넌 말이야. 뭘 제일 무서워하니?”
“으, 으으…….”
다가오는 상혁에게서 마샬 하사는 공포감을 느꼈다. 그리고 마샬 하사 앞까지 다가온 상혁이 히죽 웃었다.
그러더니 상혁의 입이 귀까지 찢어져 올라갔다. 동시에 상혁의 얼굴 위로 알록달록한 물감이 덮이더니 입고 있던 옷이 우스꽝스러운 신발과 커다란 색동옷으로 바뀌었다.
그건 광대였다.
“하하하, 광대를 무서워하는구나?”
“으아, 으아아…….”
광대 공포증.
상혁이 광대처럼 웃으며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손에 커다란 톱이 들렸다. 마샬 하사는 그 모습을 보면서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부아앙!!
그리고 상혁의 손에 들린 전기톱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