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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72화 (71/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72화

072. 김칫국 드링킹(2)

삐익- 삐익- 삐익-

간헐적으로 울려 퍼지는 심전도 장치 외에는 조용하기 그지없는 화물칸. 상혁은 이 화물칸이 꽤 공을 들여서 만든 화물칸이란 것을 깨달았다.

‘소리도 별로 안 나네.’

화물칸은 운전 시의 충격과 소음에 무방비한 곳이었다. 애초에 사람이 타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방음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상혁이 탄 이 화물칸은 그런 것이 없었다.

환자들.

화물칸에 두 눈을 감고 죽은 듯이 누워 있는 환자들이 한 명도 아니고 대여섯 명은 됐기 때문이다. 그들을 안전하게 이송하기 위함인 듯했는데 상혁이 보기엔 그게 마치 도축장으로 가기 전에 도살될 가축들에게 잘해 주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새였다.

상혁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간단했다.

‘사람을 짐승 보듯 보는 눈인데.’

저런 눈은 상혁에게 있어 익숙한 눈이다.

노예로 팔린 상혁을 샀던 마법사. 인체실험 대상이 필요해 살아 있는 상혁을 마법 실험체로 썼던 그 마법사의 눈이 딱 저랬다.

상혁의 머릿속에서 악몽과도 같은 그때가 떠올랐지만 상혁은 환하게 웃었다. 상혁은 이제 그 기억을 떠올리고도 웃을 수 있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 마법사를 죽이고 복수했으니까.

50년 동안 가나안에서 구르면서 길러진 상혁의 질긴 정신력은 그 트라우마를 이겨 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더럽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오랜만에 머리에 스팀 나게 만드네.”

상혁이 인비지블을 풀었다. 그러자 돌아다니면서 정신을 잃은 환자들을 체크하던 외국인이 놀라서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들었다.

“뭐, 뭐야! 웬 놈이냐!!”

뭐 대충 그런 식으로 소리친 것 같았다. 상혁은 통역 마법을 쓸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을 겨눈 거무튀튀한 권총을 보며 상혁은 손가락을 까닥였다.

“큭?”

외국인의 손에 들린 권총이 마치 자석에 이끌리기라도 한 듯 상혁의 앞으로 날아왔다. 외국인의 얼굴에 당황이 내려앉았다.

“내가 너 때문에 지금 기분이 상당히 더러워졌어.”

사람을 짐승처럼, 물건처럼 보던 놈이다. 그 눈빛만으로도 상혁은 저 외국인이, 그리고 그 뒤에 있을 놈들이 무슨 연유에서 병원에서 사람을 빼돌리는지 알 수 있었다.

놈들은 실험을 하려는 것이다.

그것도 지금 시대에 살아 있는 사람으로.

‘뒤처리는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하는 거지? 병원에 입원한 기록이나 내역 같은 건 전부 지워 버리려나. SG라면 그럴 만한 힘이 있는 대기업일 테니까.’

그런 실험을 하는 이유는 아마 백만 가지쯤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백만 가지 전부 같은 인간을 실험실의 쥐새끼처럼 여긴다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자비란 없다.”

상혁의 손가락 위로 작은 불화살이 피어올랐다. 마나로 만들어진 불꽃은 똑같은 마나로 밀어내거나 시전자가 마나를 거둬들이지 않는 이상 꺼지지 않는다.

그래서 1서클이라도 마법사의 마법이 마나가 없는 일반인에게 위험한 것이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 가장 큰 것이 작열통인 건 알려나?”

상혁이 손가락을 흔들자 불화살이 외국인을 향해 날아들었다. 동시에 외국인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애초에 여러 목적을 가정하고 만들어진 화물칸의 방음 성능은 뛰어났다. 바로 운전석에서 운전하는 운전사에게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타닥, 탁.

상혁은 매캐하게 타는 냄새가 화물칸 안에 가득 차는 것을 보면서 이 외국인들의 운명을 결정했다.

“다 죽자 그냥.”

* * *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하시오.]

“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령을 믿지.]

요한 대령은 미국에서 걸려온 전화를 끊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긴장했던 것인지 등줄기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요한 대령은 눈을 반짝하고 빛냈다.

‘이번 일만 무사히 처리한다면 내 미래는 창창하겠군.’

주한미군 소속 특수목적을 띈 부대의 수장인 요한은 어서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군에서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주한미군에서 일정 기간 근무하는 것은 의무였지만 그는 한국이 싫었다.

‘여름에는 죽도록 덥고, 겨울에는 미치도록 춥고. 거기에 음식도 입에 안 맞고.’

한국의 기이한 기후와 입맛 때문에 그는 한국에 적응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하지만 그는 군인이고, 야망이 컸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렇게 버틴 그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엘릭서.”

프로젝트 엘릭서.

우연히 미 국방연구소에서 개발된 신물질이 인간의 노화를 늦추고 인간이 현재 겪고 있는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자 미국의 거물들이 움직여 프로젝트 엘릭서를 만들고 비밀리에 전 세계에서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한국도 그중 한 곳이었다.

프로젝트 엘릭서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의료 설비와 기술이 갖춰진 곳이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후보지 중 대한민국이 딱 적격이었다.

미국에 협조적인 정치권과 수출에 의존하는 특성 때문에 미국의 입김이 가장 강하게 발휘될 수 있는 나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일본이 있었다.

그 때문에 이번 프로젝트는 한국과 일본, 동아시아 국가 두 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는데 프로젝트 엘릭서가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다시피 미국의 거물들은 이번 프로젝트에 깊게 관여했다.

프로젝트의 진행을 빌미로 그간 자신을 귀찮게 했던 이들을 처리하는 건 아주 작은 편린에 불과했다.

“닥터 지펠. 1호의 상태는 어떻소?”

요한 대령은 자신에게 직접 다이렉트로 전화한 거물을 위해 직접 닥터 지펠의 의학실을 찾아가 그에게 물었다.

그에게서 다이렉트로 연락을 받을 수 있는 건 미국에서도 손가락에 꼽혔다. 그런 그가 요한 대령에게 직접 전화했다는 건 그만큼 그가 신경을 쓰고 있다는 뜻이었고 요한 대령은 아주 티끌만큼의 변수도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이상 없습니다. 가수면 상태로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엘릭서-001이 나오는 순간 곧바로 주입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놓은 상태입니다.”

“좋습니다.”

요한 대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밝은 불빛 아래 나신으로 누운 1호라 불린 실험체를 쳐다봤다.

1호는 요한 대령에게 꽤 낯익은 사람이었다. 아니, 비단 요한 대령뿐만이 아닐 것이다. 모든 미국인에게 1호는 한 번쯤 봤던 얼굴일 것이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전광판에, 포스터에, 제품에 수도 없이 붙어 있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욕심을 품으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

요한 대령은 1호 실험체가 맨 처음으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이송된 이유를 잘 알았다. 그건 거물이 보내는 경고였다.

자신의 권력을 보여 주는 것임과 동시에 과도한 욕심을 품으면 그 누구도 이런 꼴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경고가 실린 셈이다.

‘사만다 허드.’

미국 최고의 여배우가 수술용 침대에 나신을 드러낸 채 누워 있었다.

“아, 그리고 드릴 말씀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프로젝트 엘릭서의 시동을 걸 1호를 확인한 요한 대령이 나가는 뒤를 닥터 지펠이 뒤늦게 따라붙으며 질문했다.

그사이 1호, 사만다 허드의 손가락이 살짝 움직였지만 그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음. 너무 감정적이었군.”

상혁은 파이어 애로우를 이용해 잿가루로 만들어 버린 외국인의 잔해를 보면서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그래도 명색이 8서클 대마법사였는데 순간적으로 너무 감정적으로 굴었다.

“이렇게 쉽게 보내서는 안 됐었는데 말이야.”

만약 감정적으로 굴지 않았더라면 상혁은 일단 그 외국인을 제압해 모든 정보를 토해 내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 뒤 세뇌를 걸든, 최면을 걸든 해서 목적지에 도착해 은밀하게 이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체실험을 당할 때의 그 더러운 기억이 떠올라서인지 자신도 모르게 감정적으로 굴었다.

뒤가 없는 것처럼 아예 깡그리 태워 버렸기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한 후가 문제다. 화물칸에 외국인이 없는 순간 저들은 경계 태세로 접어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대가리를 붙잡아야지.”

이렇게 비밀리에 추진되는 실험 같은 경우에는 대놓고 진행할 수가 없기 때문에 경계 태세가 아무리 삼엄하다 하더라도 4서클 선에서 정리가 가능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비밀 목적을 가진 조직의 경우에는 대가리를 붙잡는 것이 가장 양질의 정보를 뽑아낼 수 있는 지름길이다.

“일단.”

상혁은 파리한 인색의 전아영을 내려다보았다. 자기 부모님이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도통 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수면제를 넣었나?”

가는 동안 이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인지 화물칸의 환자 모두가 쥐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상혁은 자신의 손을 전아영의 가슴팍에 내려놓았다.

“거. 일부러 만지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쇼.”

그렇게 중얼거린 상혁은 전아영의 몸속에 있는 마나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웅웅웅!!

맨 처음 이선호의 몸속에서 그를 중독시킨 독을 뽑아낼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4서클인 지금 상혁의 마나는 마치 빨판이 달린 것처럼 전아영의 몸속에 있는 마나에 찰싹 달라붙었다.

‘세포들이 몸을 공격하고 있다.’

급성백혈병.

상혁은 전아영의 몸속의 세포들이 날뛰는 것을 느꼈다. 마나가 뇌로 가는 신호를 교란해 백혈구로 하여금 적아를 가리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일단 진정시키고.’

상혁은 자신의 마나를 아주 넓게 퍼뜨렸다. 심장의 고리가 끊임없이 회전하며 상혁의 웅혼한 마나를 전아영의 몸 안으로 집어넣었다.

‘뇌까지 건드려야겠네.’

반도체 공장에서 들이마시고 피부로 스며든 인체에 유해 한 성분들 안의 마나가 뇌로 가는 신호를 교란하여 급성백혈병을 일으켰다. 이걸 멈추기 위해서는 뇌까지 뻗친 마나를 깨끗하게 흡수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일단 급한 곳부터.’

하루 만에 전아영의 몸속의 마나를 빨아들이는 건 무리였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상혁은 마나를 전아영의 머리 쪽으로 이동시켰다.

‘별론데.’

사실 타인의 마나를 머리에 받아들인다는 건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다. 뇌라는 예민한 장기가 있는 것을 떠나 내가 원치 않은 기억을 상대가 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상혁은 전아영이 허락하지 않은 기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 제 살을 뜯어먹는 백혈구를 말려야 한다. 상혁은 두 눈을 딱 감고 심장의 고리를 세차게 회전시키며 전아영의 머리에 침투한 마나와 독성을 순식간에 빼냈다.

1초.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상혁은 전아영의 머리에 파고든 마나와 독성을 빼냈다.

또옥!

상혁의 손끝으로 빨아들인 독성이 배출됐다. 하지만 상혁은 그 찰나의 순간에 전아영의 기억의 일부를 의지와 상관없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첫사랑이야?”

* * *

“사만다 허드입니다.”

“미국의 배우?”

“예.”

백도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요한 대령의 요구가 SG전자의 이익과도 부합하여 그를 돕고 있었지만 백도현은 미국도, 요한 대령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주시하고 있던 도중 놀라운 첩보가 입수된 것이다.

“납치라도 한 모양이지?”

“예.”

“굳이 그런 위험을 요한 대령이 감수할 필요는 없지. 이건 부탁이야. 미국의 누군가 사만다 허드를 프로젝트에 끼워 넣은 셈이지. 죽을 걸 알고.”

백도현은 턱을 쓰다듬었다. 요한 대령에게는 목줄을 채워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 도중에 생각보다 굵직한 첩보가 들어온 것이다.

“누가 그런 부탁을 했을까?”

할리우드의 인기 여배우를 남몰래 납치하고, 그 여배우를 한국까지 이송해 프로젝트에 넣어 차도 살인을 하려고 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요한 대령이 그 부탁을 거부하지 못한 것을 보니 거물인 모양이었다.

“알아보겠습니다.”

“조심히. 꽤 거물인 듯하니까. 한국도 아니라 미국이면 활동에 제약이 많이 생기잖아.”

미국은 SG의 홈그라운드가 아니다. 박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박정철이 연이어 말했다.

“백상혁이 SG충청병원으로 간 모양입니다.”

“왜?”

“SG 반도체 공장에서 쓰러진 직원과 관계가 있는 모양입니다. 이선호도 직원의 부모와 함께 SG충청병원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다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상혁에 대한 정보는 실시간으로 박정철에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유의미하게 보고할 일이 생길 때마다 그가 백도현에게 보고하는 형식이었다.

“나오지 않고 있다…….”

백도현은 검지로 이마를 톡톡 두드리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병원 안까지 들여보내.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 곧바로 확인해.”

느낌이 싸했다. 박정철은 백도현의 말에 토를 달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곧바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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