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71화
071. 김칫국 드링킹(1)
쾅쾅쾅.
누군가 파란 대문, 상혁의 집에 찾아왔다. 하지만 뭐가 그리 급한 것인지 쉬지 않고 문을 두드리는 것을 보니 꽤 바쁜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누구세요?”
오승택이나 박선웅이 나갈 수는 없었다. 상혁은 짜증 어린 얼굴로 대문을 열었다. 한창 마법 연구에 푹 빠져 있었던 중인지라 방해가 그리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낯익은 얼굴이 보이자 상혁은 찡그렸던 인상을 폈다.
“상혁아!”
전광철과 최영숙이 거기 서 있었던 것이다. 전아영의 부모님이 그곳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상혁은 눈썹을 추켜세웠다가 다시 내렸다.
둘의 감정이 세차게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둘 다 눈가가 붉은 것이 조금 전까지 눈물이라도 흘린 모양이었다.
“여긴 왜…….”
전광철은 자신을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했지만 상혁은 그게 입에 잘 붙지 않았다. 예전에 아버지와 아는 사이였다고는 하나 어쨌거나 전광철은 상혁보다 한참 어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영숙은 상혁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둘이 찾아온 것이 의외의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변호사님 혹시 여기 계시는가?”
“예?”
상혁은 최영숙을 쳐다봤다. 이선호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최영숙이라면 이선호가 어디에 있을지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을 찾아오다니.
“저한테 말씀해 주지 않으셨어요.”
최영숙은 이선호가 자신에게 행선지를 밝히지 않았다고 했다. 상혁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선호의 됨됨이로 보아할 때 그가 왜 그랬는지 대충 이해가 갔다.
이선호는 상혁이 말해 준 대로 불법 의료 폐기물 처리에 대해서 자세한 사정을 알아내기 위해 다시 SG충청병원으로 향했다.
지금껏 SG를 수도 없이 상대해 본 이선호는 SG와 관련된 모든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최영숙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 일부러 자세하게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혹시 상혁이 네가 아는가 싶어서 말이다.”
전광철은 두 손을 꼭 모으고 있었다. 그게 상당히 급해 보였기 때문에 상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전광철이 말했다.
“아영이가, 아영이가 쓰러졌어.”
“네?”
상혁의 눈이 커졌다. 전아영이 쓰러지다니. 그 오지랖 넓은 여자가 쓰러지는 것이 머릿속에 잘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며칠 전 얼굴색이 좋지 않았고 몸속의 마나도 더 커져 있었기 때문에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기는 했다.
‘그래서 때려치우라고 한 것인데.’
결국 사달이 난 모양이었다. 그런데 병원으로 갈 것이지 왜 이선호를 찾는다는 말인가.
“그런데 병원에서 접견을 거부하고 있어. 내 딸인데, 병원에서 면회 허락을 해 주지 않는다는 말이야. 중환자실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광철이 거기까지 말하자 이해가 됐다. 아마 SG 쪽에서 손을 쓴 것 같았다. 전아영이 쓰러진 건 SG 공장에서 일한 것 때문일 가능성이 크니 아예 면회 자체를 막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법의 힘을 빌리기 위해 전광철은 이선호를 찾고 있었다.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전광철이 그렇게 말했다.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그렇다면야 안 알려 줄 이유도 없었다.
“SG충청병원에 가셨습니다.”
“SG충청병원?”
전광철이 놀란 표정을 상혁을 쳐다봤다. 그의 얼굴을 보고 상혁은 전아영이 어디에 입원했는지 알 수 있었다.
“SG충청병원에서 오시는 길입니까?”
전아영이 쓰러진 것이 SG 반도체 공장과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SG에서 전아영을 SG충청병원으로 데려간 것이다.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도 없이 말이다.
“어서 가야겠네. 고마워.”
전광철과 최영숙이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상혁은 흙먼지를 뿌옇게 일으키며 차가 멀어지는 것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알아서 잘하겠지.”
지구로 돌아온 뒤 이선호와 오승택을 제외하면 가장 친분이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전아영이었다.
하지만 상혁은 골렘 제작에 몰두하고 있었고 그 집중력을 깨고 싶지 않았다.
병원이니까, 알아서 잘할 것이다.
끼익.
상혁은 자신의 돌집으로 돌아왔다. 오승택과 박선웅은 바빴고 오승환도 치매 걸린 어머니를 돌보느라 바빴다.
“음.”
지하에 내려가기 위해 방을 가로지르던 상혁의 발에 무언가 툭 부딪쳤다.
“…….”
전아영이 가져다준 김치통이었다. 아직 살짝 덜 익어 상온에 놓으라고 해서 놓고 있었던 것인데 그게 딱 눈에 들어온 것이다.
상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아영 때문에 가는 거 절대 아니다 진짜.”
상혁이 SG충청병원까지 가는 건 전아영 때문이 아니었다. 아는 사람의 아들이라고 이것저것 챙겨 주었던, 딸과 똑 닮은 오지랖을 가진 전광철 때문이다.
김치와 밑반찬이 맛있었으니까.
“진짜 전아영 때문은 아니야.”
예전에 잠깐 도와줄까 하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이렇게 빨리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상혁이 휙 하고 몸을 돌려 문으로 걸어갔다.
* * *
[이 세상의 오염 중 가장 끔찍하게 심한 곳을 정리해 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환경단체인 블랙스미스 연구소죠. 그곳에서는 10대 최악의 오염지대를 뽑았습니다. 그곳의 평균 수명이 40세밖에 안 된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도 있죠. 그 외에도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등 방사능 유출로 인해 극심한 오염 피해를 호소하는 곳도…….]
상혁은 너튜브를 껐다. 지구로 돌아오니 가장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인터넷이었다. 그전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지구로 돌아오자 아예 새로운 세상을 개안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앉아서 전 세계의 정보를 볼 수 있는 편리함이라니.
물론 그중에서 진위를 가리는 것이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비싼 돈을 들여 정보조직을 고용할 필요 없이 인터넷으로 웬만한 것을 다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호기심 많은 마법사의 마음에 딱 들었다.
“외국에 나가야겠네.”
어찌어찌 4서클까지 올리긴 했지만 그 위로 더 올라가기 위해서는 외국으로 나가야 할 필요성을 느낀 상혁이다.
그렇게 너튜브를 보던 상혁은 버스에서 내렸다.
“차로 갈 때는 몰랐는데. 대중교통으로 오려니 영 머네.”
차라도 사야 하나, 라고 중얼거린 상혁은 SG충청병원을 올려다보았다. 동시에 주변을 슥 훑어보면서 히죽 웃었다.
“나한테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야.”
백도현이 세 배로 늘린 감시 인원들의 위치와 그 수가 상혁에게 또렷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게 백도현이 보낸 사람인지 상혁은 모르지만 자신을 감시하는 감시 인원이 늘어난 건 확실하게 느꼈다.
“흑태양파랑 조진만이는 잘 있으려나?”
그러고 보니 서울의 몇몇 노예들을 잊고 있었다. 아마 뱃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몰라 꽤 불안할 텐데 말이다.
그렇게 상혁이 병원 로비로 들어가기 위해 유리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때 상혁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지잉-!
상혁의 오른쪽 눈에 서기가 서리면서 상혁의 눈이 다른 차원으로 접어들었다. 마나안은 육안의 한계를 무시한다.
즉, 벽이 있어도 그 뒤를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마나안이다. 마나안은 마나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육안이 가려져도 마나안으로 마나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가나안의 인간들은 전부 다 몸속에 마나를 품고 있어 볼 수 있었고 지구는 모두가 다 오염되어 있어 그 마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방금 누군가 상혁을 감시하고 있었다.
‘외국인?’
상혁의 눈에 짙게 선팅이 된 차 안에 선글라스를 쓴 채 앉아 있는 외국인의 시선이 느껴졌다. 상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나만 감시하는 게 아닌 모양인데?’
외국인은 자신이 보일 것이라고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상혁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그리고 그 외국인은 드나드는 사람을 모두 다 기록하고 있었다.
‘드나드는 사람을 전부?’
그건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짓이다. 하지만 저렇게 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크로스체크를 한다면 훌륭한 방법이기는 했다.
일단 상혁은 수상함을 느끼며 병원에 들어섰다.
“전아영 환자가 입원한 병실을 알고 싶은데요.”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친구입니다.”
상혁이 그렇게 말하자 병원 직원의 안색이 바뀌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죄송하지만 중환자실에 있어 가족이 아니면 만나실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전광철과 최영숙도 막았다. 상혁은 거짓말의 냄새가 솔솔 났지만 여기서 드러내지 않고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알겠습니다.”
“네에.”
상혁은 자신이 돌아설 때까지도 병원 직원이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는 것을 알았다. 저런 말단 직원에게까지 SG가 무언가를 시켰다는 뜻이다.
‘전아영을 보러 오는 사람들을 체크하라거나, 그런 거?’
살짝 고개를 끄덕인 상혁은 중환자실로 가는 길을 살폈다. 그러고는 화장실로 살짝 들어간 뒤 마법을 걸고 다시 나왔다.
투명화가 된 상혁이 중환자실로 향했다. 그런 상혁의 눈에 전광철과 최영숙, 그리고 이선호가 들어왔다. 이선호가 잔뜩 화가 난 채로 씩씩거리고 있었고 전광철과 최영숙은 낙담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선호가 나섰어도 전아영을 보지 못한 것이다.
지잉-!
중환자실의 문이 열리고 의사가 나왔다. 상혁은 그 틈에 중환자실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몸에 정화 마법을 걸었다.
혹여라도 모를 균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전아영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애먼 사람을 병균에 시달리게 만들 수는 없으니 마법을 쓴 것이다.
상혁은 발소리도 거의 내지 않으며 전아영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때 중환자실의 반대편으로 병실 침대가 하나 굴러가는 것이 보였다. 의사가 그에 붙어 따라가면서 차트를 심각한 표정으로 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병원장님이?”
차트를 보던 의사는 중환자실에서 수술실로 곧바로 갈 수 있는 문 앞에서 다른 의사에게 말했다. 그러자 다른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 끝난 말이라고 하시네.”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백도현 사장한테 병원장님이 찍혔다는 게 사실인 모양이지?”
“몰라. 특별 관리 대상자가 감쪽같이 사라진 이후로 이상한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 그 외국인들은 또 뭐고. 무연고자들만 찾는 건 또 뭔데.”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 중 유의미한 내용들이 있었다. 상혁은 그것들을 기억해 놓으며 기척을 죽인 채 중환자실 병상을 슥 둘러보았다.
대화를 나누던 의사 둘이 병상을 끌고 사라졌다. 상혁은 그사이 다른 병상을 살폈지만 전아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상혁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의사 둘이 끌고 나간 병상.
그 병상에 전아영이 있었던 모양이다.
‘전아영을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지?’
전아영이 갑자기 쓰러진 것은 분명 SG 반도체 공장과 관계가 있었다. 그 때문에 인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밝혀내야 하는 SG측에서 전아영을 중환자실에서 빼낸다?
말이 되지 않았다.
‘외국인. 무연고자. 백도현.’
상혁은 조금 전 들었던 키워드를 떠올리며 발걸음을 빨리해 나간 두 의사를 따라갔다. 머지않아 따라잡은 상혁의 눈에 의사가 직접 병상을 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간호사는?’
간호사를 떼어 놓고 의사 둘이 직접 병상을 밀고 있다는 뜻이다. 상혁은 기척을 죽인 채 빠른 걸음으로 병상에 다가가 병상 위의 환자를 슬쩍 살폈다.
전아영.
그런데 병상에 환자의 이름이 붙어 있어야 하는데 거기는 신원미상이라고 이름이 붙어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고의적으로 처리해 놓은 것을 본 상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적장?’
게다가 병상이 향하는 곳이 하적장이었다. 중환자실에 있던 환자를 병상에 실어 하적장으로 나른다?
그렇게 하적장에 도착한 의사 둘은 시계를 보면서 무언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뒤 하적장으로 커다란 탑차가 들어오더니 후진으로 의사의 앞에 화물칸을 가져다 댔다.
끼익, 끼이익! 쿵!
화물칸이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자 안에 타 있던 외국인이 병상을 잡았다. 그것을 본 상혁의 눈이 살짝 커졌다.
‘외국인.’
어떠한 문양도 없는 검은색 일체의 옷을 입은 외국인이 병상을 그대로 끌어당겨 화물칸에 실었다. 기계처럼 움직이는 외국인과 그걸 지켜보는 의사들은 한마디도 서로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문이 닫히려는 순간 상혁이 화물칸 안에 자연스럽게 올라탔다.
부우웅!!
불청객이 화물칸 안에 탑승했다는 것도 모른 채 병원의 하적장에 들어왔던 커다란 탑차는 누구에게라도 들킬세라 얼른 병원을 빠져나가 어디론가로 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