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66화 (65/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66화

066. 진정한 마법사의 시작(1)

상혁은 인상을 쓴 채로 백도현을 쳐다봤다. 백도현은 그런 상혁을 보다가 이내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었다.

“있었어.”

“그럼 내가 내 방에 있지. 어디 갑니까?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무롑니까. SG전자 사장이면 남의 방에 막 문 따고 들어와도 되는 겁니까?”

상혁은 흥분한 듯 그렇게 말한 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당장 나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백도현은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승택과 상혁이 반드시 관계가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자신의 직감이 틀렸단 말인가?

“당장.”

상혁이 백도현을 향해 강하게 말했다. 그러자 박정철이 뒤에서 조심스럽게 백도현을 불렀다.

“사장님.”

그건 나가자는 소리가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즉, 강제로라도 백도현이 원한다면 그가 원하는 자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뜻이다.

경찰?

불러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박정철의 전화 한 통이면 경찰은 출동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백도현의 의지다.

“백도현!”

하지만 바로 그때 문가에서 뾰족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백도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그곳에는 화난 표정의 백정연과 이선호가 서 있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뾰족한 백정연의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그녀는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상혁과 이선호는 자신의 손님인데, 그걸 백도현이 무시해 버리고 자기 멋대로 굴었기 때문이다.

“하.”

백도현은 그 순간 공쳤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직감은 틀렸다. 오승택이 혼자 움직였을 리 없으니 반드시 조력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상혁이어야만 했다.

하지만 상혁은 이곳 방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우연이란 말인가.’

애당초 세 개 조가 돌아가면서 감시를 하고 있었다. 그걸 뚫고 나간다? 백도현이 그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박정철이 장담하기로는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그런데 그 감시조를 뚫고, 오승택과 함께 특별 관리 대상이던 오승택의 친모를 병원에서 빼낸 뒤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시간이 맞지 않는다.’

결국 자신이 헛다리를 짚었다는 뜻이다.

“너. 내 말 안 들려?”

백정연이 성큼성큼 다가와 백도현 앞에 섰다. 백정연의 등장에 박정철이 나지막이 신음을 흘렸다. 백정연은 박정철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사람이었다.

백도현과 동등한 선상에 놓여 있는 로열패밀리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은 SG호텔이다.

똥개도 제 앞마당에서는 먹고 들어간다고 제아무리 백도현이라고 해도 백정연이 이 안에서 마음을 먹는다면 그대로 끌려나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백도현의 명령을 받고 이선호를 끌어내던 경호원들이 이선호를 놓아준 것도 그 때문이다.

“누나.”

“누나라고 부르지도 마. 너 따위로 멋대로 구는 애를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까.”

백정연의 분노는 컸다. 백도현은 백정연이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는 바로 눈앞의 상혁과 이선호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시골로 쫓겨나듯이 도망간 변호사 하나도 고시에 실패한 백수가 SG호텔의 대표인 자신의 누나와 대체 어떤 접점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것에 대해 알아낼 시간은 없었다.

“백도현!”

“잠시 내가 착각했던 모양입니다. 상혁 씨가 이곳에 없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잘못 짚었…….”

짜악!

“아가씨!”

백도현의 고개가 옆으로 휙 하고 돌아갔다. 박정철이 기겁해서는 백도현의 어깨를 붙잡았다. 백정연이 백도현의 뺨을 때린 것이다.

백정연은 두 눈에 분노를 가득 담은 채 입술을 꼭 깨물었다.

“사과가 먼저지. 지금 그게 네가 취할 태도니? 그렇게 배웠어 너?”

남의 방에 마스터키를 들고 함부로 방문을 따고 들어갔다는 것은 호텔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큰 문제였다.

그게 설령 백도현이라고 할지라도 만약 이걸 기사화한다면 떠들썩해질 것이다. 그 가운데서 SG호텔의 명성이 추락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래 놓고서는 뻔뻔하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백도현의 뺨을 친 백정연이 고개를 돌려 상혁에게 허리를 깊숙하게 숙였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상혁도 백정연이 백도현의 뺨을 쳤다는 데 놀라기는 했지만 그걸 내색하지는 않고 불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로 넘어가죠.”

“감사합니다.”

백정연은 깔끔하고 담백하게 사과를 한 후 고개를 돌려 백도현을 쳐다봤다. 백도현은 뺨을 손가락으로 슥 만지고는 피식 웃었다.

“날 때린 거야?”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아야지. 네가 누구건 간에.”

“재밌어. 예전부터 누나는 그렇게 주변의 평판을 살폈지. 노블레스 오블리주인가 뭔가 하는 거. 그런데 그건 너무 옛날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아?”

백도현은 백정연을 비웃었다. 백정연이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 순간 백도현이 상혁을 쳐다봤다.

“우리가 왜 평민들의 눈치를 봐야 하지? 돈도 있고, 힘도 있는데. 우리가 선출직인가? 선거도 필요 없어. 세간의 여론? 필요 없어. 우린 필요악이니까. 우리 SG 없이 대한민국 경제가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너!!”

“백상혁 씨에게 묻죠.”

백도현이 백정연을 무시하고는 상혁을 쳐다봤다.

상혁은 화난 표정을 지은 채 백도현을 마주 봤다.

“내 진심 어린 사과 따위가 필요합니까? 그게 뭐 돈이 됩니까 밥이 됩니까. 그러니까 나는 내 방식대로 사과하죠. 그래. 얼마나 필요합니까?”

돈.

재벌이니 넘쳐 나는 돈으로 해결을 하겠다는 뜻이다. 백정연이 그런 상혁에게 화를 내려는 순간 상혁이 입을 열었다.

“100억만 주시죠. 그럼 넘어갈게요.”

백정연이 고개를 휙 돌려 상혁을 쳐다봤다. 100억이라니. 하지만 백도현의 반응이 더 의외였다.

“좋습니다. 그럼 그걸로 깔끔하게 넘어가는 걸로 하죠.”

“아 참. 세금이나 그런 쪽으로 문제없이 주시리라 믿습니다.”

“…….”

백도현은 고개를 끄덕인 뒤 바로 뒤로 돌았다. 이 방에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폭풍처럼 몰아닥친 백도현이 박정철과 함께 방에서 사라졌다.

“후우.”

이선호가 긴장이 풀리지 않은 표정으로 상혁에게 다가왔다. 이선호는 눈으로 상혁에게 많은 것을 묻고 있었다.

대체 언제, 어떻게 들어온 것이냐 같은 것들.

하지만 백정연이 있기 때문에 궁금증을 꾹 누른 티가 보였다. 상혁은 그런 이선호를 보며 웃은 뒤 황망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백정연을 쳐다봤다.

“아. 맞다. 그것도 알아냈습니다.”

“네? 무얼요?”

자신의 은인이자 손님이 상혁을 위해 동생인 백도현의 뺨까지 친 백정연이다. 하지만 그게 돈 100억이면 해결이 되는 일이었다는 것에 그녀가 반쯤 벙 찐 표정으로 상혁의 말에 반응했다.

“저한테 주신다고 하신 보수. 백도현 사장, 환경부랑 그쪽에 뇌물을 30억쯤 썼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60억 주시면 되겠습니다.”

백정연의 눈이 커졌다. 설마 지금 상황에서 돈을 챙기냐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상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손님.”

* * *

“어제 살 떨려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차에 올라타자 이선호는 비로소 밤새 품고 있었던 말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상혁은 그저 씩 웃어만 보였다.

“아니, 그렇게 귀신같이 들어와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대체 언제 어떻게 들어오신 겁니까?”

어젯밤 상혁은 백도현이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오기 10초 전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공간 마법을 익혔더라면 귀환길이 더 쉬웠겠지만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상혁은 플라이 마법을 이용해 미리 뚫어 놓은 창문의 구멍으로 다시 들어온 것이다.

어떻게 알았냐고?

간단했다.

알람 마법을 설치하고 나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도현이 그렇게 움직일 것도 상혁의 시나리오 안에는 있었다.

그래서 오승택에게 말해 호텔을 거쳐서 오승택이 도망가도록 도주로를 짜라고 말을 해 놨고, 오승택이 모는 트럭은 딱 적절한 시간에 호텔에 도착한 셈이다.

“그런데 대체 160억이나 되는 돈은 어디에 쓰려고 그렇게 모으시는 겁니까?”

다음 날, SG호텔에서 지난 며칠간 보냈던 꿈만 같은 시간을 뒤로한 채 상혁과 이선호는 온양으로 돌아오는 차에 올랐다.

그러면서 이선호는 백도현이나 백성철 회장과 다시 마주치는 것이 아닌가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백도현은 아침에 곧바로 상혁의 계좌로 100억이나 되는 돈을 꽂은 뒤 아무 말이 없었고 백정연도 보수 지급을 약속한 뒤 곧바로 떠난 것이다.

“왜요?”

“무척 큰돈이지 않습니까. 이제 그 돈이면 평생을 놀고먹어도 되실 만한 금액이니까.”

160억.

지난 하룻밤 만에 상혁이 벌어들인 돈이 그 정도 돈이었다. 물론 그게 일반인 기준으로 일평생 만지기도 힘들 돈이기는 했다. 하지만 상혁에게는 아니었다.

“더 필요합니다.”

“……그것보다 더요?”

“네.”

상혁의 태연한 대답에 이선호는 그게 농담인 줄 알고 상혁을 쳐다봤다. 하지만 상혁은 진지했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상혁이 거짓말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디에 그 많은 돈을 쓰시려고…….”

“집 고치려고요.”

“집이요?”

160억이면 집을 고치는 게 아니라 빌딩을 하나 살 수 있는 돈이다. 이선호는 상혁이 말하는 집이 다른 집이라 생각했다. 온양에 있는 다 쓰러져 가는 그 옛날 집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오승택 씨는 어디 갔습니까?”

“승택이요?”

화제를 돌린 이선호의 말에 상혁이 씩 웃었다.

* * *

멍.

오승택은 멍하니 허공만 응시하는 어머니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비록 원래 있던 병원이 아니라 좁은 운전석이었지만 그래도 오승택은 마음이 편했다.

“정말 아버지가 계시는 거야?”

“응.”

“상혁 씨가 확인해 줬고?”

“형님이 확인해 주셨어.”

오승택의 눈썹이 꿈틀했다. 오승환이 상혁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거슬린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지금 오승환의 말이 더 우선이었다.

“아버지…….”

오승택의 집안은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그저 평범한 집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그 충격으로 어머니까지 치매에 걸리면서 오승택의 집안의 불행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동생의 곁에 있었다니.

“그래서 어머니가 저렇게 허공을 보시는 거고?”

“모르겠어. 아마 그럴지도. 예전부터 엄마가 계속 어딜 보시나 싶었거든. 그런데 형님을 만나 뵙고 나니까 어머니가 아버지를 보고 계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혹시 어머니는 치매를 얻는 대신 오승환 곁에 있는 아버지의 영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얻은 것일지도 모른다. 두 분은 정말 많이 사랑하셨으니까.

“그런데 형.”

“응.”

“형은 괜찮아?”

오승택은 동생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씩 웃었다. 오승택은 언제나 강인한 형이었다. 어머니 병원비를 대기 위해 군에서 전역한 뒤 SG에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지금은 쫓기는 신세였으나 오승택은 어머니의 병세를 늦추거나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회를 잡았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내가 노예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오승택이 상혁에게 그 대가로 줄 수 있는 것은 자신밖에는 없었다. 오승택이 그렇게 마음먹는 사이 오승환이 오승택에게 말했다.

“형, 누가 오고 있는데?”

“누가?”

“모르는 사람이야.”

동생이 무당으로서의 재능이 있고, 그로 인해 아버지의 영혼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듣고 난 이후 오승택은 어려서부터 동생의 감이 왜 그렇게 뛰어났는지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그때도 아버지나 어머니가 온다는 것을 보기도 전에 미리 알곤 했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오승택이 조심스럽게 트럭의 사이드에 달린 거울로 바깥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오승택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

그곳에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쫓기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얼굴이 대단히 낯익었다.

“박선웅?”

지난번 한덕광의 일로 인터넷에 그 사실을 폭로하는 데 도움을 준 해커, 박선웅이 형편없는 몰골로 누군가에게서 쫓기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