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64화
64. 백상혁이요(4)
“오셨어요.”
오승환이 자리에서 일어나 익숙하게 상혁을 반겼다. 마치 상혁이 이곳에 올 줄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 오승환의 뒤에서는 여전히 그 신성력의 덩어리가 느껴졌기 때문에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네?”
“아빠가 말씀해 주셨어요.”
오승환의 뒤에 붙은 저 신의 존재는 바로 오승환의 친부였다. 정확히는 지박령과 신내림 중간의 단계였다. 자신의 가족을 너무나도 사랑한 친부의 혼이 지상을 떠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다 무당과 비슷한 체질을 지닌 오승환에게 깃든 것이다.
흔히 신내림을 받으면 신병 같은 것이 생겨 앓는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오승환에게 일어나지 않은 건 친부의 혼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승환의 친부는 가족들의 곁에 있고 싶을 뿐이지 무언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어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받아들인 거냐?”
“음…… 그러니까.”
오승환이 상혁을 쳐다보면서 우물거렸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것이자. 상혁은 피식 웃었다.
“형이라고 해.”
사실은 형이 아니라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맞지만 그래도 젊어진 김에 젊게 살면 좋지 않은가. 상혁이 그렇게 말하자 오승환이 활짝 웃었다.
“형이 말씀해 주신 이후부터 확실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거든요. 나도 바보가 아닌데 아빠를 어떻게 잊겠어요.”
“너무 빠지지는 마라.”
상혁이 해 줄 수 있는 충고는 그게 전부였다. 신내림 비슷하게 받은 오승환이 친부의 혼과 너무 친해지게 되면 그도 바라지 않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빙의 같은 그런 일.
‘가나안에서는 고스트가 인간의 몸을 탈취하기 위해 그런 일을 벌이곤 했는데…… 일단 친부라니까.’
오승택의 어머니를 치료하기 위해서라도 형제 친부의 혼은 반드시 필요했다.
“어머니는?”
“주무세요.”
다행히 오승택의 친모는 잠들어 있었다. 치매 환자인 만큼 밤낮이 뒤바뀌어 있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오늘은 때가 딱 맞은 모양이었다.
“자. 나가기 전에 할 말이 있어.”
“나가요, 저희?”
“알고 있을 텐데. 감시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오승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혁이 말한 것처럼 오승환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친부의 존재가 그 사실을 알려 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형 때문인가요?”
“어. 지금 네 형이 밖에 있던 놈들을 유인했어. 그러니까 다시 돌아오기 전에 나갈 거야. 일단.”
상혁은 형광등을 켜는 스위치 위에 손가락을 가져가 댔다. 그러고는 가볍게 마나를 끌어 올리며 쇼크 마법을 시전했다.
빠지직!!
무영창으로 시전된 마법에 빠지직하고 정전기가 튀는 소리를 내면서 상혁의 마법이 내부에 있는 전기 회로를 망가뜨렸다.
일종의 과전압이 주입되면서 그 안의 회로가 홀라당 타 버린 것이다.
단순히 병실 안의 회로만 태운 것이 아니었다.
텅, 텅, 텅, 텅!
아예 한 층의 전기가 한순간에 나가 버렸다. 주변에 깜깜한 어둠으로 뒤덮였다. 불을 꺼 놔도 희미하게 들어오는 등마저도 완벽하게 빛이 나가 버렸다. 그러자 병실 안에 들어오는 것은 창문 밖에서 들어오는 가로등의 불빛뿐이었다.
“앞은 보이지?”
“네.”
상혁이 이럴 수 있었던 건 오승환에게 감각 계통을 속이는 마법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승환은 육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암흑 속에서도 주변을 분별할 수 있었다.
“어머니 업어.”
“예.”
“그 상태로 천천히 걸어나갈 거야. 그러니까 서두를 필요 없어. 그 누구도 우리를 보지 못할 테니까.”
상혁은 서두를 생각이 없었다. 저들이 오기 전에 호들갑을 떨며 서둘러 병원에서 빠져나간다? 애초에 그런 건 상혁의 계획안에 없었다.
신중하지만 천천히, 그리고 완벽하게.
“하이드.”
3서클에 기척을 지워 주는 마법이 상혁과 오승환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우웅!!
인식장애 마법이 펼쳐지면서 상혁과 오승환 주변을 마나가 한 번 더 휩쓸고 지나갔다. 상혁은 굵직한 4서클의 마나 고리에서 마나가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 정도가 최선이네.”
사람에게 거는 마법이 아니라 공간 자체에 건 마법이다. 단일 개체가 아닌 공간에 거는 건 마나를 몇 배는 더 잡아먹는다.
만약 마나의 실을 꼬아 만든 고리가 아니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마법이다.
상혁은 생각을 세 개로 쪼갰다. 마법 두 개를 항시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쪼개야만 한다. 그 상태로 상혁은 문을 열었다.
투명 마법인 인비지블까지 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걸 공간에 거는 건 상혁의 현재 마나로는 무리다. 5서클은 되어야 이만한 공간에 걸어 보는 시도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자.”
“네.”
오승환은 곤히 잠든 어머니를 업고 군말 없이 상혁의 뒤를 따랐다. 상혁은 오승환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하나도 말해 주지 않았고 오승환도 묻지 않았다.
그저 절대적인 신뢰를 보일 뿐이다.
“근데 왜 하나도 안 물어보냐.”
“뭘요?”
“어디로 가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상혁은 한순간의 정전에 혼란에 빠진 병원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밤이라서 다행이었다. 근무하는 간호사나 의사의 수가 적고 사람이 없어 복도에서 사람과 부딪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귀인이시니까요.”
“속도 편하다.”
상혁은 피식 웃었다. 그러나 때로는 백 마디의 말보다 그런 직감이 효과적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상혁의 마나는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계획대로라면 목표 지점까지 도착하는 데 무리는 없었다.
공간 자체에 인식장애 마법을 걸었다고는 하나 주변에 사람이 적은 탓에 마나 고리가 버틸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 정확하게 들어맞은 것이다.
상혁은 혼란에 빠진 간호사들과 의사들을 지나쳤다. 컴퓨터에 전화기까지 먹통이 돼 버려서 휴대폰을 붙잡고 악악대는 모습이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상혁은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아래층으로 향했다.
“쇼크.”
파바밧!!
그리고 그곳에서도 소규모 정전이 일어났다. CCTV가 터져 나간 것은 물론이다. 그렇게 상혁과 오승환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여기로 나가요?”
“밖에 나가면 트럭이 있어. 그걸 타고 나갈 거다.”
오승택이 이미 짜 놓은 도주로였다. 병원에서 한곳에 모인 폐기물이 나가는 곳으로 낮에는 사람이 지키고 있지만, 밤에는 사람 없이 문만 잠가놓는다는 것을 알아내고 오승택이 계획했다.
“형은요?”
“저 앞에.”
상혁이 손가락을 들어 저 앞을 가리켰다. 문이 잠겼다는 의미로 빨간색 불빛이 보이는 곳에 오승택이 있었다.
물론 인비지블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를 발동한 상태여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승환도 오승택을 발견했다.
“형!”
오승환이 그를 부르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오승택의 얼굴이 나타났다. 오승택은 날 듯이 달려와 오승환을 끌어안았다.
“승환아.”
“형, 괜찮아?”
형제의 뜨거운 재회를 잠시 지켜보던 상혁은 손을 뻗었다. 전자 잠금장치로 허가된 출입 카드를 가지고 있어야만 열리는 문이다.
하지만 상혁 앞에서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쇼크.”
상혁은 언락 마법을 쓰지 않았다. 그렇게 해도 문은 열리겠지만 저곳에 어떤 기록이나 흔적이 남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간단히 부숴 버리는 것이 최고였다.
빠지직!!
스파크가 튀면서 빨간불이 꺼졌다. 그리고 문이 스르륵 열리자 오승택이 오승환을 품에서 떨어뜨려 놓으며 말했다.
“나가면 트럭이 있습니다. 그곳에 타면 됩니다.”
“키는?”
“여기.”
오승택은 미리 키까지 구해 놓은 모양이다. 바깥으로 나가자 커다란 트럭이 세워져 있었다. 뒤에 냉동고 같은 것이 달린 트럭이었는데 그걸 본 순간 상혁이 자리에서 멈춰 섰다.
“어?”
“왜 그러십니까?”
“저거 무슨 용도로 쓰는 트럭이지?”
상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상혁은 트럭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름 아니라 트럭 뒤에 달린 냉동고 같은 커다란 카고에서 커다란 마나가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 며칠간 계속 여기 서 있기만 했습니다.”
“폐기물 수거용 트럭도 아니야?”
“예.”
오승택은 왜 그러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뒤를 힐끗거리면서 쳐다보는 것이 어지간히도 불안한 듯했다.
“운전은 네가 해.”
“그럼 상혁 님은…….”
애초에 운전석에는 세 명이 타면 많이 탄 것이었다. 그런데 인원은 넷이니 어차피 한 명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뒤에 타지.”
“짐칸에요?”
“확인할 게 있어. 언락.”
달카닥!
짐칸을 잠가놓은 자물쇠가 달카닥하고 열림과 동시에 상혁이 훌쩍 짐칸에 올라탔다.
* * *
“회장님이요?”
“예.”
박정철의 보고에 백도현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름 아니라 회장 직속 비서실을 통해 박정철에게 백성철 회장의 지시로 상혁에 대한 뒷조사가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왜? 무슨 이유 때문이죠? 회장님이 상혁에게 관심을 가지실 만한 이유가?”
하지만 그 이유는 비서실도 알지 못했다. 백도현을 턱을 쓰다듬었다.
“삼촌은 알고 계시겠네요.”
“김 실장님 말씀이십니까?”
김대엽은 아주 오래전부터 백성철 회장의 심복이었다. 그 때문에 어릴 때 백도현을 비롯한 형제자매들은 그를 삼촌이라 부르기도 했었다.
그는 백성철 회장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분신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요. 하지만 삼촌이 회장님의 명령을 어디 발설하고 다닐 사람은 아니지. 상혁이라. 내가 모르는 게 뭐가 있었나?”
고아에 고시생 출신. 그마저도 실패하고 다시 고향으로 최근에 내려갔음.
이게 전부였다.
“지극히 평범한데 말이에요.”
상혁의 과거는 지극히 평범했다. 그냥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그런 것이 정상이었다.
“부모도 평범했죠?”
“예. 그냥 평범한 이력에 출신이었습니다.”
“내가 못 본 걸 회장님은 보셨다라. 이거, 흥미가 팍팍 생기는데요?”
박정철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럴 때 자신이 뭐라고 해야 하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재조사에 들어가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지금 백상혁은?”
“방에 있습니다.”
상혁에 대한 감시를 세 배로 늘렸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날아서 나가지 않는 이상 무조건 박정철의 레이더에 걸리게 되어 있었다.
“스읍. 회장님까지 관심을 가지시니까. 누나에 이어서. 그러면 다시 자리를 만들기도 어려울 테고.”
박정철이 즐겨 하는 방식을 쓰는 것도 무리다. 주시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모를까 백정연에 이어 백성철까지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덕광이는요?”
“줄곧 모르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진짜 모르는 것 같습니다.”
“같아요?”
백도현의 목소리가 뾰족해지자 박정철이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같아요는 필요 없어요. 확실한 게 좋으니까. 그런데 한덕광이가 한 짓이 아니라면 누굴까요. 그래 놓고서는 아직까지 잠잠하다라.”
“그보다 러시아 쪽에서 압박이 거세졌습니다.”
“대금을 내놓으라는 거죠.”
백도현은 골치 아프다는 듯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안팎으로 난리가 자꾸만 일어나니 흰머리가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노화에 가장 안 좋은 게 스트레스인데 말이다.
“감사과에 더 이상 압력을 가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한덕광에 대한 처우를 결정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한덕광이의 말에 따르던 조폭 놈은 백치가 돼버렸고, 한덕광은 검찰 자료보관실에 있던 약도 잃어버리고 오히려 모든 게 탄로 나고.”
게다가 그 약은 요긴하게 쓰일 곳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완전히 엎어지는 바람에 백도현도 드물게 난처해진 것이다.
“한덕광이 조사하던 농약 사건의 변호사로 이선호가 갑자기 나타났다라. 거기도 백상혁이랑 연관이 있네요?”
백도현은 언제 찡그렸냐는 듯 방글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그 사이로 뱀처럼 눈알이 사이하게 번뜩였다.
그런데 그때 박정철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백도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박정철이 핸드폰을 꺼내 들어 스피커 모드로 바꿨다.
[실장님. 큰일 났습니다. SG충청병원에서 감시하고 있던 오승택 친모와 그 동생이 사라졌습니다. 감쪽같이요.]
백도현이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웃었다.
“가 봅시다. 상혁 방에. 마스터키 준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