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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63화 (62/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63화

63. 백상혁이요(3)

백도현이 풀지 못한 숙제 하나.

그게 바로 오승택의 행방이다. 오승택은 SG 반도체 공장에서 증발하듯 사라졌고 그 후로 백도현은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도 오승택을 찾을 수 없었다.

오승택의 행방이 향후 백도현의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그를 찾고 싶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반도체 공장 인근에서 상혁의 사진이 찍혔다.

그렇기 때문에 백도현은 툭 던지듯 상혁에게 물은 것이다.

“오승택?”

물론 상혁은 그런 떠보기에 넘어갈 정도로 어수룩하지 않았다. 아니, 정치력으로만 따지면 상혁은 지구의 그 누구보다도 노회했다.

괴팍한 마법사로 이미지를 쌓아 얻어 낸 이득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 상혁의 눈에 백도현의 수작은 그저 어린아이 놀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모르겠는데요. 그게 누굽니까?”

“온양에 있는 우리 공장의 경비팀장이었습니다.”

“큰 죄를 저지르신 모양이네. 사장님이 직접 찾는 거 보니까.”

“원래 반도체 쪽이 기술 유출에 민감합니다.”

백도현은 계속해서 상혁을 관찰했지만 별다른 것을 찾아내진 못했다. 상혁은 그런 백도현에게 어깨를 으쓱했다.

“어쩌나. 원하던 답을 못 얻으셔서.”

“또 다른 걸 제게 물으면 되시지 않습니까.”

이건 거래다. 그렇기 때문에 백도현은 자신의 질문 기회를 오승택으로 한 번 날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상혁은 그런 백도현을 보면서 장난스레 웃었다.

“이걸 또 어쩌나.”

상혁의 유들거리는 얼굴을 본 백도현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제가 사장님께 궁금한 게 없는데.”

거래의 결렬을 알리는 상혁의 말에 백도현은 벙 찐 표정을 지었다. 박정철의 뒤에서 이를 깨무는 소리가 들렸지만 상혁은 무시했다.

“……정말입니까?”

상혁이 더 이상 물을 것이 없다면 이 거래는 성립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백도현은 그냥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는 셈이다.

“네. 일개 고시생인 제가 SG전자 사장님께 무슨 별다른 질문이 있겠습니까. 그냥 만나 뵌 것만으로도 영광이죠.”

백도현.

상혁은 그가 뱀 같은 남자라는 것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음흉하기가 이를 데 없다는 것을 몇 마디 나눠본 것만으로도 꿰뚫어 보았다.

‘여기서 나중을 도모하는 게 후환이 없겠지.’

비록 상혁이 4서클에 도달했다고는 하나 백도현의 수행원이 너무 많았다.

음흉한 데다가 신중한 놈이다. 마치 왕이 행차하듯 수십 명의 수행원을 거느린 백도현이었기에 상혁은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기억을 조작하거나 환상을 심어 주려고 해도 지금 상혁의 마나로는 부족했다.

완벽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거대한 세력을 가진 적을 상대할수록 상혁은 이 철칙을 절대로 어기지 않았다. 그건 상혁이 가나안에서 깨달은 생존 수칙이자 본능이었다.

“그럼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10억.”

백도현이 상혁에게 말했다. 새로운 거래 조건이다. 질문 하나당 10억을 내겠다는 뜻이다. 상혁은 입술을 살짝 핥았다.

‘감당 가능한가?’

상혁은 백도현의 질문을 받고도 모른 체를 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백도현의 무엇을 자극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대신 여기서 일어서면 백도현이 다음에 보일 반응은 몇 가지로 축약할 수 있었다.

“저희 부모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상혁은 감당 못 할 일은 벌이지 않기로 했다.

“감당할 수 없는 돈은 받지 말라고. 그냥 평범한 대로 살겠습니다. 그럼 이만.”

상혁은 백도현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부모님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다.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없는 말까지 지어낸 상혁을 백도현은 더 이상 붙잡을 수 없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

여기서 백도현은 고민했다.

강제로라도 상혁을 붙잡아야 하는 것인가 하고. 하지만 이선호를 보니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을 잘 아는 이선호라면 지금 상황도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적법과 불법을 필요하다면 마음대로 넘나드는 자신을 상대해 본 이선호가 상혁 옆에 딱 붙어 있었다. 백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만나서 영광이었습니다. 이것도 기념인데 사진이나 한번 찍을까요?”

상혁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가 박정철의 눈초리에 어깨를 으쓱했다. 상혁이 이선호와 함께 나간 뒤 홀로 남은 백도현은 차갑게 식은 커피를 마신 뒤 웃었다.

“후후후.”

“사장님, 어떻게 할까요.”

백도현이 말이 없다는 건 고민 중이라는 뜻이다. 그런 백도현이 소리를 냈기 때문에 박정철은 기다리고 있다가 물었다.

“은밀히 데려올까요?”

물증이 없어도 심증만으로 상대에게 진실을 물을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것이 바로 백도현이다. 물론 법망의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안 들키면 장땡인 법이다.

그렇기에 박정철이 그렇게 하냐고 물었지만 백도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됐어요.”

“…….”

의외의 반응이었다. 박정철은 미처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멈칫했다.

“누구보다도 비정상이면서 정상인 척을 하고 있네요. 이 상황에서. 거래 결렬에 셀카라니.”

상혁은 백도현이 궁금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백도현은 그런 직감이 들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스무 살짜리가 긴장하기는커녕 주도권을 한 번 쥐고는 끝까지 빼앗기지 않았다.

10억이라는 돈에도 흔들리지 않는 스무 살짜리 고시생이라니.

그런 건 이 세상에 없었다. 대개 상혁 같은 부류는 두 가지뿐이었다.

미친놈이거나, 뭔가 한 수가 있거나.

“그중에서도 제일 무서운 건 미친놈이면서 한 수가 있는 놈이죠. 그런데 전 왠지 저 상혁이란 사람이 그런 부류일 것 같네요.”

백도현의 육감은 본능적이다. 그리고 백도현은 자신의 육감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 육감이 백도현을 지금의 자리까지 이끌었다.

“뇌물 액수를 물어본 것을 보면 누나와 깊은 관계인 모양이네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하세요. 그리고 지금부터 상혁에 대한 감시 인원을 세 배로 늘립니다.”

“세 배 말씀이십니까?”

“예.”

박정철은 확답에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되면 다른 쪽에서 감시 인원이 동원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는 것은 상혁이 그만큼 요주의인물이라는 뜻이다.

“백정연과 이선호가 붙었고. 오승택까지. 골치 아프게 생겼네요?”

그렇게 말하는 백도현은 오히려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즐거워 죽겠다는 백도현의 눈빛에 박정철은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백도현이 재미를 느낀 상대 중 백도현의 마수에서 빠져나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저 백도현의 눈빛은 어린아이가 개미를 손가락으로 짓눌러 죽일 때의 그 눈빛이었다.

“천안지청 일도 조사해 보세요. 저기 상혁이랑 엮어서.”

“예, 사장님.”

* * *

“대엽아.”

“잠이 오지 않으십니까.”

백성철은 기어코 백정연의 집무실 겸 스위트룸을 빼앗았다. 그 방의 바로 밑에는 상혁과 이선호가 묵고 있는 스위트룸이 있었다.

자신의 비서실장인 김대엽을 부르자 김대엽이 따뜻한 대추차를 들고 와서는 백성철 앞에 내려놓았다.

밤에 백성철이 잠을 이루지 못할 때면 늘 김대엽이 내놓던 바로 그 대추차였다.

후르릅.

대추차를 입에 머금은 백성철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여의사와 함께 잠자리에 들 때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그 표정에 김대엽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백성철은 잘 먹고, 왕성한 성욕과 머리만 대면 자는 수면욕을 자랑으로 삼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이 나이에도 왕성한 혈기를 부여해 준다면서 전경련에 나가면 늘 자랑거리로 삼기 바빴던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최고 권위를 가진 의료진들의 서포트와 온갖 산삼 등 몸에 좋은 보약들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백성철이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한다는 건 그걸 뛰어넘는 고민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상혁이란 아이에 대해서 조사를 해야겠다.”

“저녁에 그 무례한 청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김대엽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백성철에게는 이 나라의 대통령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모두가 다 그의 위엄 앞에 눈치를 보기 마련인데 오늘 호텔 로비에서 만난 상혁이란 청년은 그러지 않았다.

동등한 위치의 상대를 대하는 것 같은 태연한 태도.

그게 김대엽에게는 영 거슬렸지만 백성철이 기꺼워했기 때문에 내버려 두었다.

“그래. 참 내 젊을 때와 닮지 않았더냐?”

“회장님께서 훨씬 더 호연지기가 넘치셨고 헌앙하셨습니다.”

“크크크.”

김대엽의 아부에 백성철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아부란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들으니 썩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백성철은 따뜻한 대추차 한 모금을 더 마신 뒤 말했다.

“나와 참 많이 닮았어. 그런데 나와만 닮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구나. 왠지 모르지만 상혁이란 아이의 얼굴에서 그놈 얼굴이 보였다.”

“그놈이라면…….”

“막내.”

김대엽의 표정이 무섭게 굳었다. 백성철은 자신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핏줄도 용서하지 않았던 무서운 사람이다. 그게 지금의 그의 왕좌를 만들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백성철은 정말로 무서운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그런 경쟁자들이 모두 사라져 유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본능이 어디로 사라진 건 아니다.

그런 백성철의 입에서 제 동생이 나왔다.

“막내 도련님 말씀이십니까?”

백성철은 회장직과 아무런 관계없이 그룹에서 떠나 모든 걸 잊고 초야에 묻혀 살겠다는 막내마저도 암살자를 보내 무참히 살해했다.

사고로 위장하였으나 그게 백성철의 짓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 정도로 백성철은 무서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닮았어.”

“하지만 막내 도련님 부부에게 자식이 있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위장을 했다면?”

“…….”

백성철의 한참 어린 막냇동생은 전대 회장이 들였던 정부의 소실이었다. 그리고 영특함으로 어려서부터 주목을 받았는데 성인이 될 때쯤은 스무 살이나 많은 백성철이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니 만약 백성철의 성정을 눈치챘다면 그렇게 조치를 취했을 수도 있었다.

“나도 아네. 그냥 예민한 것일 수도 있지.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문제는 SG그룹의 정보망을 막내 도련님이 혼자서 피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백성철은 백성철이다.

모든 것을 잊고 초야에 묻혀 살아가겠다는 동생을 끝끝내 사람을 보내 죽인 것처럼 티끌 하나만큼의 의혹도 그는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도 하시게.”

“예, 회장님.”

그런 백성철 앞에 김대엽이 할 일은 고개를 숙이는 것뿐이었다.

* * *

“정말입니까?”

상혁은 오승택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 재밌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오승택에게는 웃을 일이 아니었다.

“저를 재우셨다구요? 그리고 그사이 방에 백도현이 들어갔다가 나갔구요? 그러다가 들키기라도 했으면…….”

“안 들켰잖아?”

“너무하십니다.”

오승택은 자신이 타의에 의해 잠든 사이 모가지가 달아날 뻔했다는 것에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혁은 스읍 하는 표정을 지었다.

“기어오르지 마라.”

“……예.”

지금 오승택과 상혁은 오승택의 소원을 위해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승택은 상혁에게 몇 번이고 되물었다.

“정말 어머니를 치료하는 게 가능한 겁니까?”

“그래. 네 동생만 있다면. 지금 당장 가능한 건 아니고.”

오승택은 희열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곧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이 가장 중요했다.

“너희 어머니를 모실 거다. 안전한 곳으로.”

“온양으로요?”

“너도 그렇지? 거기가 제일 안전하지?”

상혁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마법사의 집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란 것을 깨달은 기특한 오승택을 향한 웃음이었다.

“하지만 가능할까요? 거기 환경이 안 좋은데, 어머니와 동생이 잘 지낼 수 있을지…….”

오승택은 그곳이 안전하다는 것에는 동의했다. 상혁이 그곳에 마법을 깔아 놓은 건 몰랐지만 마법사인 상혁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 만한 환경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혁에게는 그것도 해결할 방안이 있었다.

“괜찮아. 곧 60억이 생길 거거든.”

“6, 60억이요?”

“그럴 일이 있어. 그럼 일단 계획한 대로 해. 알았지?”

상혁은 그렇게 말하며 오승택에게 작은 루비 귀걸이 하나를 내밀었다.

‘잘 쓰겠습니다, 대표님.’

신뢰의 의미라며 우선 보증서 대신 가지라고 준 백정연의 귀걸이. 상혁은 그곳에 마법을 새겨 오승택에게 주었다. 오승택은 긴장한 표정을 짓고는 침을 꿀꺽 삼킨 다음 몸을 숨길 생각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 어머니의 병실 앞을 지키고 있는 경호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백도현 개새끼!!”

타다다닥!!

그러고는 백도현에게 쌍욕을 날려 경호원의 주의를 끈 오승택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경호원들이 그런 오승택을 발견하고는 연락을 취하며 그 뒤를 쫓는 것을 보며 상혁이 여유롭게 상혁 어머니가 있는 병실의 문을 열었다.

드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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