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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62화 (61/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62화

62. 백상혁이요(2)

“으, 으하하하핫!!”

하지만 이내 백성철은 대소를 터뜨렸다. 주변에 경직되었던 공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풀렸다. 백성철은 유쾌한 듯 웃으며 상혁을 쳐다봤다.

“이 백성철이에게 그렇게 물은 사람은 자네가 최초네그려! 으하하핫! 기개가 넘치는 친구야!!”

“아.”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 표정이 어찌나 태연하던지 마치 옆집 할아버지 이름을 들은 듯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상혁의 태도에 백도현은 눈을 빛냈고, 이선호와 백정연은 기겁했다.

‘그냥 평범한 놈은 아니군.’

백도현은 그런 상혁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태연하기 그지없는 상혁의 태도를 보며 과연 보통 놈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괜히 이리저리 얽히며 내 귀에까지 이름이 들어온 게 아니었어.’

동시에 그건 백도현의 찜찜하던 예상을 현실화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백도현은 긴장하지는 않았다.

‘어디서 굴러온 놈인지는 몰라도 나에겐 안 되지.’

기껏해야 스무 살짜리 고시생일 뿐이다. 어디 뭐 숨겨진 핏줄도 아니고, 다른 재벌가 자제도 아닌 그냥 딱 스무 살짜리 고시생,

물론 숨기고 있는 비밀은 있어 보였으나 백도현이 움직일 수 있는 권력에 비하면 그냥 보름달 앞 반딧불에 불과한 정도다.

지금껏 형체가 모호했으나 이제 상대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났으니 백도현에게 상혁은 긴장해야 할 상대가 아니었다.

“내 이름을 밝혔으니 이제 되었나?”

백성철이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 내면서 상혁에게 물었다.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이 정도로 눈물까지 흘리시고. 늙으면 눈이 짓물러 그럴 수도 있다고 하니 못 본 걸로 해 드리겠습니다.”

그런 상혁의 말에 백성철의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얼굴이 싸늘해졌다. 백성철이 오냐오냐해 주니 상혁이 선을 넘어 건방지게 군다고 느낀 것이다.

하지만 백성철은 손을 들어 올렸다.

“애가 한 소리에 그렇게들 발끈할 것 없네. 내가 늙은 거, 모르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흠.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오해하셨다면 죄송합니다들.”

백성철의 말에 상혁은 자연스럽게 이어 말했다. 백성철은 그런 상혁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려 백정연을 쳐다봤다.

“데리고 있을 재미는 있는 아이구나.”

“회장님.”

“왜, 아니라고 할 작정이냐? 흐흐. 그러기에는 이 아이에게 있는 게 배짱밖에 없으니까. 집안이라도 그럴듯했다면 아니겠다고 하겠다만은…….”

백성철은 상혁의 아래위를 죽 훑었다. 상혁은 그런 백성철의 눈길에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런 백성철 같은 늙은이들을 상혁은 치가 떨리도록 많이 봐 왔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다고 믿는 늙은이들.’

그런 이들을 가나안에서는 귀족이라 불렀다. 그리고 상혁은 가나안의 대마법사로 수도 없이 많은 사교 파티에 나가 그런 귀족들을 상대해 봤다.

‘그리고 그런 늙은이들 중 내 앞에서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드는 늙은이들은 없었지.’

왕국을 세운 공신 중 하나인 대마법사 앞에서는 제아무리 고귀한 귀족이라고 해도 얄짤 없었다. 무엇보다 마법사는 괴팍해도 되는 족속이기 때문에 대마법사인 상혁은 가장 괴팍한 마법사 중 하나였다.

그런데 지구에 오니 그럴 수 없었다.

‘근질근질하네.’

4서클.

상혁은 백성철을 보면서 괜히 속이 베베 꼬였다. 자신을 아이니 뭐니 취급하면서 앞에 대놓고 관찰하는 듯한 저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상혁의 앞을 백정연이 가로막았다.

“제 손님이세요. 그러니까 회장님이어도 그런 무례한 말씀은 그만둬 주시지요.”

“손님이라.”

백정연은 사사로이는 백정연의 딸이나 공적으로는 SG호텔&리조트의 대표다. 그래서 백성철도 백정연이 정색하고 나오자 더는 딸을 대하듯 말할 수 없었다.

“인정하지. 내 무례했다는 걸. 미안하네.”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백성철이 그런 상혁을 보면서 씩 웃었다.

“기개는 참 마음에 든다는 말이지. 마치 내 어릴 적을 보는 것 같아…….”

그렇게 중얼거리던 백성철의 표정이 순간 슬쩍 변했다. 그러고는 눈을 좁혀 뜨고는 상혁을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닮은 것도 같은데.”

백성철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상혁은 그 소리를 들었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저 나이대의 늙은이들은 대개 혼잣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게 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생긴 버릇이었다.

“자네. 혹시 아버지가 계신가?”

그런데 백성철은 난데없이 상혁에게 아버지의 유무를 물었다. 상혁은 인상을 살짝 썼다.

‘아버지라.’

칠십 년이란 세월을 살아온 상혁에게 상혁이 열 살 무렵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까마득한 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기억이 무뎌지진 않았다.

양친을 한순간에 잃었으니까.

“제가 그걸 말씀드려야 할 의무가 있는 겁니까?”

“없지. 아니, 내가 아는 누군가와 닮은 것 같아서.”

백성철은 자신이 과민했다 생각하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백정연이 그런 상혁에게 말했다.

“올라가세요. 유 셰프와 연화향의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백정연의 말에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때 백도현이 불쑥 끼어들었다.

“찾아오라고 해서 직접 찾아왔습니다. 그러니 잠깐 시간 좀 내주시죠?”

상혁은 분명 백도현에게 자신을 오라 가라 부르지 말고 찾아오라고 했다. 그래서 직접 왔다는 말에 상혁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 오늘따라 인기가 너무 많네.”

“저도 함께 가시죠.”

백도현의 접근에 이선호가 딱딱한 표정을 짓고는 끼어들었다. 백도현은 그런 이선호를 슬쩍 보고는 고개를 까닥였다.

“오랜만입니다.”

“친한 사이도 아니고. 인사는 접어 두시죠.”

“여전히 까칠하시고.”

“사장님이 감옥 가는 걸 보는 게 제 소원인지라.”

백도현을 보고 전투태세에 돌입한 이선호는 투지가 넘실거렸다. 백도현은 이선호의 얼굴에서 그 어떠한 병마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중독에서 벗어났나?’

하지만 그걸 물어볼 수는 없었다. 백도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같이 자리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관심 있는 건 여기 백상혁 씨라.”

그때 상혁이 고개를 돌려 백정연에게 말했다.

“대표님.”

“네?”

“보수 약속하셨던 거. 잊으시면 안 됩니다?”

상혁은 백도현을 힐끗 쳐다보며 백정연을 돌아봤다. 백정연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백도현이 쓴 뇌물의 두 배.

백정연은 지금 상황에서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 그럼요.”

“오케이. 그럼 갑시다.”

“1층 로비에 카페가 있습니다. 제가 거기 커피를 좋아하거든요. 누나가 비싼 원두를 써서. 가시죠.”

박정철이 말없이 앞으로 나서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이선호는 상혁을 보호하듯 백도현과 대신 눈싸움을 하며 말없이 걸었다.

상혁은 그런 백도현을 슥 쳐다보다가 코를 벌름거리고는 고개를 뒤로 살짝 돌렸다.

‘마나?’

뽀르르!

초아가 상혁의 품에서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초아는 인간을 무서워했다. 초아가 무서워하지 않는 유일한 인간은 상혁이었다.

풀의 정령인 초아에게 있어 인간은 자연의 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초아가 고개를 내밀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른 인간을 쳐다본다는 건, 초아도 상혁과 비슷한 걸 느꼈다는 뜻이다.

오염.

상혁에게는 마나.

초아는 세계의 의지가 오염 정화를 위해 오염 탐지기의 역할로 상혁에게 붙여 준 정령이다. 그러니 오염을 탐지하는 것에서는 초아가 상혁보다 더 능력이 탁월했다.

그런 초아가 상혁과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향하는 곳은 백도현의 비서, 혹은 경호원으로 보이는 이었다.

‘왜 마나가 느껴져?’

상혁의 코가 씰룩였다. 마나의 향기를 맡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카페에 도착한 상혁은 그러고 나서도 백도현이 아니라 마나의 향기가 나는 비서를 계속해서 쳐다봤다.

“왜. 우리 강 비서한테 관심이라도?”

공교롭게도 그 비서가 여자였기 때문에 백도현이 이죽거리면서 상혁에게 물었다.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네요.”

“오, 진짜? 상남자네요. 강 비서. 어때?”

백도현은 강 비서에게 피식 웃으면서 의사를 물었지만 대답을 기대한 것 같지는 않았다. 강 비서라 불린 여자가 대답하기도 전에 백도현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기 때문이다.

“우리. 거래 하나 합시다.”

“거래?”

이선호의 눈가에서 백도현을 향한 적개심이 아직 빠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선호는 무슨 개수작이냐는 표정으로 백도현을 쳐다봤다.

“이 변한테 하는 소리 아니니까 끼어들지 마시고. 저기 백상혁 씨도 어른이니까 직접 말하는 겁니다.”

백도현은 말하기 전에 이선호에게 끼어들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그에 이선호가 뭐라고 하려던 찰나 상혁이 이선호를 제지했다.

“괜찮습니다.”

“상혁 씨.”

씨익.

상혁은 이선호의 우려에도 그를 보면서 씩 웃었다. 그가 누군지 잊지 말라는 듯, 그렇게 지은 미소에 이선호는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자신의 옆에 있는 상혁은 이선호가 상식으로 재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백도현 역시 사갈 같은 존재였고 이선호가 그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노파심은 어쩔 수 없었다.

“예. 마음대로 하십쇼.”

“삐지셨어요?”

“아닙니다.”

이선호가 뒤로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걸 보면서 백도현이 눈을 빛냈다.

“두 분, 많이 친해 보시이네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같이 사신다고?”

상혁이 씨익 웃었다. 지금 백도현은 자신이 이선호를 감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제 입으로 털어놓은 셈이다.

상혁의 웃음의 의미를 안 백도현도 따라 웃었다.

“이 변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

이선호는 인상만 쓴 채 백도현의 말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선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SG의 힘은 그게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으니까. 더불어 백도현은 상혁에게 넌지시 경고를 한 셈이다.

백상혁, 너도 감시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그것을 눈치챈 상혁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럼 거래는 받아들이신 걸로?”

“일단 들어보죠.”

상혁이 씩 웃었다. 백도현이 마주 웃어 보이자 상혁이 말했다.

“대신 질문은 제가 먼저.”

“그럽시다.”

백도현이 여유롭게 등받이에 몸을 파묻었다. 상혁이 그런 백도현에게 가장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얼마나 줬습니까?”

“예?”

백도현의 눈이 커졌다. 상혁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혁은 조곤조곤한 어조로 폭탄을 떨어뜨렸다.

“왜. 여기 대표 있잖습니까. 환경부랑 그쪽에 뇌물을 얼마나 퍼 줬는지 말입니다.”

이선호의 눈이 커졌다. 설마 간이라도 좀 볼 줄 알았는데 바로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줄이야.

백도현을 보니 그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씩 웃었다.

“세게 나오시네.”

“거래라고 해서.”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거래는 주고받는 것이다. 백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이 센 것을 물어보면 자신도 센 것을 물어볼 수 있다.

그렇게 이해한 백도현은 뒤에서 움찔거리는 박정철을 제지한 채 손깍지를 끼고는 말했다.

“30억.”

“휘유.”

그러니까, 제 누나를 공격하기 위해 30억이나 되는 거금을 썼다는 소리다. 아마 전방위로 뇌물을 뿌렸을 테니 그 정도 금액이 나오는 것이리라.

SG호텔의 환경관리팀의 관리자, 그리고 환경부 장관과 그 휘하의 조사팀까지.

‘그럼 60억이네.’

상혁은 씩 웃었다. 백정연에게 그 두 배를 받기로 했으니 상혁이 받을 수 있는 돈은 60억이다. 그리고 상혁은 그 돈을 다 받아 낼 생각이었다.

‘던전이나 마탑 짓고, 골렘이랑 인형들 만들 재료들까지 수급하려면…….’

계속 강조하듯 마법사는 돈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60억이란 돈이 어마어마한 거금이라고는 하나 상혁이 원하는 수준으로 마법사의 장비들을 구축하려면 그 돈도 부족할지도 모른다.

가나안과 지구의 화폐 단위와 물가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마법사가 비싸다는 건 변함 없는 사실이니까.

“그럼 이제 내가 묻겠습니다.”

“그러시죠.”

백도현이 눈을 빛냈다.

“오승택 어디 있습니까?”

이선호의 두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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