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61화 (60/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61화

61. 백상혁이요(1)

유명인 셰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당장에라도 사람 두엇은 찜쪄먹을 것 같은 무서운 눈빛으로 총지배인을 노려보았는데 총지배인은 겁에 질려 턱을 달달 떨었다.

“셰, 셰프님. 그,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이딴 걸 잘도 내 음식에!!”

유명인은 말을 다 잇지 못하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유명인의 어깨를 상혁이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잠시 진정하세요.”

그러면서 진정 마법을 쓰자 유명인의 두 눈에서 일어나던 불길이 순간적으로 잡혔다. 통제하지 못하는 분노보다는 그 분노를 통제하는 것이 때로는 더 무서운 법이다.

그리고 지금, 분노를 통제하게 된 유명인은 총지배인에게 있어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후, 제가 너무 흥분했군요.”

“아닙니다. 그러실 만했죠.”

마약 같은 중독성을 자랑하는 음식이 있다는 건 알지만 진짜로 음식에 극소량이라지만 마약을 넣었을 줄이야. 만약 상혁이 그 사실을 알아내지 못했다면 유명인은 평생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저, 전 그저 매출을 증진시키기 위해 한 것일 뿐인…….”

“하.”

상혁의 두 눈에 기이한 빛이 일렁였다. 그걸 본 순간 총지배인은 맹수를 눈앞에서 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쓸데없는 개소리를 하는 놈의 입을 막는 데는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피어 마법.

4서클에 올라선 심장의 마나 고리가 거세게 돌아갔다. 피어 마법은 보는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는 드래곤 피어를 동경한 어느 한 고대 마법사가 만든 마법이었다.

말 그대로 눈을 마주친 이의 혼을 빼앗는 공포를 심는 마법. 상대의 감정을 좌지우지해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 4서클은 되어야 구사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심하면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공포에 의한 심장마비로 죽일 수 있는 마법이기도 했는데 그 때문에 상혁은 지금 대단히 섬세히 마나를 조절해야만 했다.

‘잘못 쓰면 그냥 죽어 버리니까.’

마나에 대한 면역이 아예 없는 지구인들에게는 마법을 쓸 때마다 무척이나 조심해야만 했다. 그 때문에 총지배인이 심장마비에 걸리는 일은 없었다.

그저, 지렸을 뿐.

“윽.”

상혁이 더럽다는 얼굴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상혁이 유명인에게 이 사실을 알려 준 방법은 간단했다.

‘그냥 쫓아가기만 했으면 되니까.’

유명인은 주방에서는 곧 왕이다. 거기에 총지배인 혼자 이 일을 했을 리 없으니 마약을 꺼내 들고 그에게 협력한 사람을 찾으면 끝나는 일이었다.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명예가 실추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유명인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중국 요리의 대가로 그가 그간 쌓아 왔던 모든 명예가 한순간에 몰락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벌어진 일을 회피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냥 작은 문제도 아니고요. 무려 마약 문제인데.”

그것도 레스토랑을 찾은 사람들에게 몰래 마약을 먹인 중차대한 사건이다. 이 일이 언론에 보도된다면 유명인의 셰프 경력은 끝장이다.

사람이란 게 원래 간사해서 유명인이 직접 하지 않은 짓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더 이상 유명인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정 안 되면 중국으로 가면 됩니다. 그곳에는 저를 찾는 사람이 꽤 있으니까요. 문제라면…….”

유명인은 소란에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자신의 스태프들을 쳐다봤다. 자신의 이름 아래 모여든 저 사람들까지 중국에서 받아 줄지는 의문이었다.

“저를 보고 모인 사람들인데.”

“자, 그럼 이렇게 합시다.”

상혁이 박수를 짝하고 쳤다.

“저한테 오세요.”

“예?”

“요리가 상당히 괜찮았거든요. 구내 레스토랑을 맡아 주세요.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저를 위해서 요리해 달라, 이 말씀입니다.”

“아…….”

상혁이 사는 곳은 더 허물어져 가는 온양 촌구석의 슬레이트로 된 옛날 집이다. 이선호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상혁을 쳐다봤지만 상혁은 뻔뻔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히익.”

상혁의 말에 유명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인은 상혁이 누군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른다. 하지만 유명인은 남자였다.

은혜를 입으면 그것을 갚을 줄 아는 의리 넘치는 남자. 그리고 그의 감이 말했다. 백상혁, 이 남자라면 따라가도 된다고.

“대신 제 사람들도 부탁드립니다.”

“얼마든지요.”

이선호가 뒤에서 히익 소리를 내면서 어떻게 할 것이냐는 눈으로 상혁을 쳐다봤지만 상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이건 상혁에게 있어 당연한 일이었다.

가나안에서 상혁은 대륙 최고의 대마법사였고, 그의 마탑 안에는 상혁을 위한 모든 것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중 먹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였다.

물론 그 어떠한 가나안의 셰프들도 지구의 음식을 그리워하는 상혁의 입맛을 충족시켜 준 사람은 없다. 하지만 가나안 기준으로 산해진미를 즐긴 상혁이었다.

그러니 여기서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마탑, 아니 던전만 만들어도 되니까.’

그리고 그걸 만들어 줄 사람은 따로 있었다.

“상혁 씨! 이게 무슨 일이에요?”

백정연.

상혁의 마탑, 혹은 던전을 만드는데 물주가 되어 줄 사람이 나타났다. 상혁은 백정연에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유명인에게 일어난 일을 굳이 다들 들을 수 있게 떠들어댈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네에?”

그리고 백정연은 대경실색했다. 마약이라니. 그것도 호텔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녀가 직접 두 발로 뛰어 초빙한 유명인의 레스토랑에서 말이다.

유명인이 셰프 모자를 벗어 손에 쥐고는 백정연에게 다가와서는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전부 다 제가 책임지고 호텔에는 피해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백정연은 말을 더듬었다.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호텔 안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고 대체 누가 상상이나 해 봤겠는가.

그런데 그때 백성철 회장이 끼어들었다.

“유 셰프.”

“회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상혁이 백성철을 슬쩍 쳐다봤다. 백정연의 옆에 웬 늙은이가 있어서 궁금했는데 백성철이라니. SG그룹이 회장이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돈 많은 늙은이.’

상혁이 백성철을 보고 느낀 것은 딱 그 정도가 다였다. 백성철이 웃으면서 유명인에게 말했다.

“오랜만이지. 그러니까 태안으로 가지 말고 서울에 있으라고 내 몇 번이나 말을 했는데 말이야.”

“…….”

다른 때 같았으면 웃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되지 못했다. 백성철은 싸늘한 눈으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총지배인을 쳐다봤다.

“마약이라. 아주 재밌게 돌아가. 그걸 자네의 음식에 넣었다? 내가 먹어 본 자네 음식은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였는데 말이야.”

유명인의 어깨가 움찔하고 떨렸다. 서울에서도 백성철은 유명인의 레스토랑에 자주 찾아갔다. 백성철은 유명한 중식 애호가였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거 아닌가, 자네?”

그리고 백성철은 예리하게 유명인을 쳐다봤다. 백정연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유명인을 쳐다봤다. 안 그래도 최근 들어 연화향의 매출이 떨어지고는 있었다.

근소한 차이라고는 하지만 최근 3개월간 지속적으로 매출이 줄었다. 동시에 컴플레인 등이 평소보다 10퍼센트 정도 늘어났다고 하지만 그냥 넘겼었다.

유명인이니까.

하지만 백성철이 유명인의 아픈 곳을 찌른 모양이었다.

“냄새가 더 이상 맡아지지 않습니다.”

“그랬군.”

셰프에게 있어 후각을 잃는다는 것은 대단히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음식은 단순히 맛뿐만 아니라 향도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향신료를 많이 쓰는 정통 중식 같은 경우에 후각을 잃었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그나마 연화향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운영이 가능한 건 그가 유명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랬나?’

아마 매출이 줄어드니 총지배인은 그 매출을 살려 보고자 중독성이 있는 약을 넣은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어떤 미친놈이 음식에 약을 넣어.”

백성철이 노한 목소리로 말한 것에 상혁은 속으로 픽 하고 웃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감히, 감히 연화향을, 내 호텔을!!”

백정연이 두 주먹을 꾹 쥐고는 부들거리며 떨었다. 총지배인은 거의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백성철을 본 순간 자신에게 더 이상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호오. 의외로 날카로운 늙은이네.’

상혁은 백성철을 조금의 긴장감도 없이 응시했다. 지금 보니 비슷한 연배였기 때문에 상혁이 백성철 앞에서 주눅이 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다른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도현이구나.”

백도현.

백성철 회장의 삼남이자 SG전자 사업부의 사장으로 상혁과도 제법 인연으로 얽힌 백도현이 떡하니 등장한 것이다.

‘이게 웬 떡?’

상혁은 백도현을 보고는 두 눈을 치켜떴다. 안 그래도 조만간 백도현과 얽힌 복잡한 일들을 한 번 깔끔하게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당사자가 눈앞에 나타나다니.

이게 무슨 예상치 못한 선물이란 말인가.

힐끗.

그런 상혁을 백도현이 지나가는 척하면서 쳐다봤다. 그런데 그때 백정연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백도현을 견제했다.

“내 호텔이야. 내 레스토랑이고. 내가 해결해.”

“누나는 언론과 접점이 없잖아. 그러니까 사업을 하시는 분이 너무 깨끗하기만 하셔도 안 좋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너.”

백정연과 백도현이 첨예하게 날을 세우고 있는 동안 상혁은 머릿속으로 딴생각을 했다.

‘얼마나 썼을까.’

백정연은 상혁에게 백도현이 환경부 등에 뿌린 뇌물의 두 배를 보수로 준다고 약속했다. 물론 여기서 그 정확한 액수는 상혁이 직접 알아내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만 말이다.

일종의 백지수표였지만 백정연은 영악하게도 상혁이 그런 걸 알아낼 리 없다고 생각해서 일종의 제한을 걸어 둔 셈이었다.

물론 그런 상혁에게는 이선호가 있었다. 하지만 이선호가 아무리 백도현에 대해서 잘 알고 유능하다고 해도 백도현 본인보다 더 잘 알까.

그런데 상혁의 눈앞에 백도현이 나타났다.

‘알아내면 되겠네.’

상혁이 씩 웃었다. 그때 백성철이 불쑥 끼어들어 두 남매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그사이의 긴장감을 흩트려 놓았다.

“그런데 저 친구는 누구냐?”

백성철이 상혁에게 관심을 드러낸 것이다. 그 순간 백정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백성철은 상혁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백성철은 지금 아예 모르는 척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꿍꿍이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게요. 누나. 저분은 누구?”

상혁은 픽 하고 웃었다. 그러자 백성철의 눈가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자신을 모르는 대한민국 사람은 없다. 그런데 자신 앞에서 저렇게 배짱 좋게 웃는다?

“모르는 척하시긴. 백도현 씨. 비서실장이란 분을 통해 저를 만나고 싶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이선호의 얼굴에 긴장감이 흘렀다. 백도현이 그런 이선호를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정철의 말이 맞았다.

‘이선호보다 위다.’

그런 상혁에게 백도현이 고개를 까닥 숙였다.

“맞습니다. 저는 상혁 씨 얼굴을 알고 있습니다. 장난 한번 쳐 본 것이지요.”

“아는 사이더냐?”

백성철이 말하자 백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요새 제 귀에 이름이 자꾸 들리길래 어떤 분이신지 한번 만나 뵈려고 했습니다.”

“네 귀에 이름이 들린다?”

재벌들의 정보력은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다. 그리고 그들이 귀에 들리는 건 대부분 중요한 정보인 경우가 많았다.

이미 한 번 걸러져서 위로 올라오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백도현이 상혁의 이름을 자주 들었다는 건 적어도 상혁이 그냥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거기까지.

백도현은 상혁에 대해서 그 이상으로 백성철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부자 관계라고는 하지만 이 거대한 SG그룹이라는 제국 안에서는 평범한 부자관계란 존재하지 않았다.

서로 먹고 먹히는 경쟁 관계일 뿐.

“이름은?”

백성철이 그런 상혁에게 물었다. 분명 백상혁이란 이름이 보고로 들어올 테지만 상혁에게 백성철이 직접 이름을 물었다는 건 의미가 다르다.

그 의미를 눈치챈 백도현과 백정연의 눈가가 잘게 떨렸다.

백성철이 관심을 가진다.

그게 그 둘에게 어떤 식으로 돌아가게 될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상혁은 피식 웃으며 백성철을 쳐다봤다.

“백상혁이요. 그러는 어르신은 누구십니까?”

백성철을 비롯한 그곳에 있는 모두의 눈이 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