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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60화 (59/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60화

60. 영감이 기운도 좋다(5)

후욱

“이곳이 연화향의 모든 음식이 만들어지는 곳입니다.”

유명인 셰프는 주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상혁에게 자신의 안방을 소개했다. 상혁은 기름 냄새와 강한 열기가 얼굴로 훅하고 느껴지자 빙긋 웃었다.

유명인 셰프의 팔 이곳저곳에 나 있는 저 상처들은 그가 이곳에서 기름과 불에 맞서 치열하게 싸워 왔다는 것을 뜻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그렇게 치열한 싸움을 해 왔던 유명인이 음식에 마약을 넣지 않았다는 것이 이제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훌륭한 곳이군요. 모두 셰프님의 제자들입니까?”

“제자가 아니라 동료들입니다. 누가 누굴 가르치겠습니까. 서로 가진 지식과 노하우를 주고받으며 발전해 나가는 것이겠지요.”

주방 안의 셰프들은 그들이 맡은 일이 무엇이건 간에 유명인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유명인은 그런 존경심을 받을 만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경력이 가장 많다고 해서 꼭대기에 앉아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다른 셰프들이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도록 끊임없이 예시를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형한 안광을 발휘하는 유명인의 눈빛이 퍽이나 상혁의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유명인이 상혁에게 주방 내부를 천천히 안내를 해 주면서 한 바퀴 돌았다. 상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주변을 살피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곳, 어디엔가 불법 약물이 있었다.

‘유명인이 모르게 넣을 정도면. 요리가 다 나온 다음에 나가는 과정에서 넣는다는 뜻이다.’

상혁은 주방 안에는 범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복잡하고 정신없는 주방 안에서는 유명인의 눈을 피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 주방은 완벽하게 유명인 셰프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대표님의 손님들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유명인이 상혁에게 슬쩍 먼저 말을 건넸다. 주방을 소개하던 것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상혁은 그가 직접 나와 안내까지 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참 좋은 분이시지요. 제가 이곳으로 올 때 그분이 무엇을 약속하셨는지 아십니까? 저를 믿고 따라오는 후배들에게까지 전부 다 사택을 제공하고 요리 이외에 신경 쓸 것이 없게 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걸 실천하셨고요.”

연화향 같은 고급 레스토랑은 호텔의 경쟁력이자 호텔의 얼굴이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백정연의 투자는 확실히 파격적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쁜 선택은 아닌 듯했다.

유명인이 백정연을 생각하는 것이 꽤 각별했기에, 백정연은 남들과 다르게 투자금을 조금 더 써서 사람의 마음을 확실하게 샀기 때문이다.

“그렇습니까? 전 그분을 안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잘.”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유명인이 그런 상혁에게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오늘 처음 뵙지만 염치없게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저한테요? 대표님이 아니라?”

“예. 전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음. 그러시죠.”

상혁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유명인이 무언가를 이렇게 조심하는 모습에 흥미가 돋았다. 유명인은 주변을 살피더니 주변이 소란스러운 것을 보고는 상혁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이려고 했다.

“셰프님.”

누군가 그를 부르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아! 지배인님! 손님. 이분은 저희 연화향의 홀 서비스부터 시작해 안살림을 도맡아 해 주시는 최주호 지배인님이십니다.”

주방과는 맞지 않는 정장을 입은 지배인은 바늘 하나 들어갈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인상을 하고 있었다.

상혁은 그 순간 유명인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는 것을 눈치챘다.

홀 서비스 및 총괄 관리를 도맡는 지배인.

“외부인은 함부로 주방에 들어오면 안 되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 지배인이 상혁을 보고서는 위아래로 훑고서 냉담하게 유명인에게 말했다. 유명인은 그런 지배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표님의 손님이십니다. 대표님께서 특별히 각별하게 대접을 해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게 손님들에게 내가는 음식이 오가는 주방까지 들이라고는 하시지 않았을 겁니다.”

지배인은 필요 이상으로 공격적이었다. 좋게 말하면 그가 FM에 충실한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지배인은 마치 유명인이 앞에 있기 때문에 일부러 트집을 잡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상혁은 그에게 불쑥 물었다.

“혹시 홀에 나가는 음식을 지배인님이 마지막으로 체크하십니까?”

지배인이 상혁을 감정 없는 눈으로 지그시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말을 섞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상혁이 피식 웃었다.

“와. 대표님 이름도 안 먹히는 곳이 SG호텔에 있었네. 당신 여기 직원 맞아요?”

“주방은 티끌만 한 병균이나 먼지도 용납할 수 없는 곳입니다. 연화향의 총괄 관리직을 맡은 제 눈앞에서는 더더욱 용납할 수 없는 일이고요.”

“그래서요?”

“일단 나가 주십시오. 대답은 바깥에서 하겠습니다. 그리고 무례도 바깥에서 사과하겠습니다.”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그는 백정연의 손님인 자신이 유명인과 함께 있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는 말투였다.

상혁은 그 순간 보이지 않는 힘의 균형을 알 수 있었다.

총지배인과 총괄 셰프.

연화향을 양분하는 두 개의 파벌이 존재하고 있으며 알게 모르게 서로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사이라는 것을 말이다.

상혁은 유명인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하시려고 한 말씀이 무엇인지는 대충 알겠습니다. 자세한 건 대표님께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상혁은 지배인이 귀를 쫑긋거리며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상혁이 유명인과 나눈 대화 중에 특별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려던 찰나에 지배인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쨌건 상혁은 지배인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밖에 나오자마자 지배인이 뒤를 돌아서는 90도에 가깝게 허리를 숙이고는 말했다.

“무례에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총괄 관리자로서 부득이하게 강압적으로 요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그렇게 굴었던 것은 음식의 퀄리티를 무결점으로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상혁은 그런 그에게 다시 한번 더 물었다.

“음식이 마지막으로 나가기 전에 지배인님이 최종적으로 확인하시는 거, 맞습니까?”

“예. 제가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상혁의 눈이 빛났다. 그런 상혁의 두 눈은 지배인의 양손으로 향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손가락.

보랏빛으로 살짝 변색이 되어 있는 그 손가락에서 마나의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 * *

“흠. 안 오는군요.”

“이제라도 제가 가서 직접 백상혁을 찾아보겠습니다.”

“아니야. 안 들어오진 않을 겁니다. 우리가 오리란 걸 예상하고 있었던 걸 보면 말입니다. 느지막이 등장해 자신에게 주도권을 가져오고 싶은 것이겠지요.”

“…….”

박정철은 그런 상혁을 떠올리면서 살기를 품었다. 백도현은 의자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문 따요.”

“지금 말입니까?”

“네. 안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졌어. 날 궁금하게 한 죄라고 생각하죠 뭐.”

되도록 신사적으로 나가려고 노력했었던 백도현이다. 하지만 그 기다림이 한 시간이 넘어가자 슬슬 인내심이 바닥이 났다.

그래서 그도 상혁에게 경고를 할 생각이었다.

자신에게 수작을 부리려고 했으니 너도 긴장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 흔적을 남겨 놓을 생각이었다.

저벅, 저벅

박정철은 문을 간단하게 마스터키를 이용해 땄다. 그리고 그 안에는 침대 위에 이불까지 걷어차고 오승택이 신나게 수면 마법에 취해 잠을 자고 있었다.

그간 잠이 부족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에 오승택은 코까지 골면서 완전히 무방비하게 자고 있었다.

그곳으로 백도현이 들어왔다. 하지만 백도현이나 박정철, 그리고 그의 수행원들은 오승택이 침대 위에 보란 듯 널브러져 있어도 알아보지 못했다.

인식장애 때문이다.

백도현은 주변을 휘휘 둘러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별것 없네요.”

“흔적만 만들어 놓겠습니다.”

“그러세요.”

백도현은 피식 웃었다. 그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사람을 풀어 찾고 있는 오승택이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자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그때 밖에서 비서진 중 한 명이 다급히 뛰어들어왔다.

그리고 백도현의 눈이 커졌다.

“회장님이 호텔에?”

* * *

백정연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백성철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백성철 뒤에 경호원들 사이에 서 있는 여의사를 쳐다봤다.

“하.”

“뭐 하느냐? 어서 방으로 안내하지 않고?”

백정연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졌다. 하지만 백성철은 유들유들하게 웃었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 때문에 백정연이 화내지 못한다는 것을 뻔뻔하게 이용하는 백성철 회장이었다.

“정말 구제불능이시네요.”

“남이 하지 말란다고 못 할 나더냐? 그런 성격이었으면 SG를 세우지도 못했단다.”

백성철은 그렇게 말하고는 턱짓을 했다. 진짜로 SG호텔에 방을 만들라는 뜻이다. 백정연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얌전히 쉬다가 가세요.”

“오냐.”

그렇게 대답한 백성철이 눈을 가늘게 좁혀 뜨면서 백정연을 쳐다봤다.

“스위트룸. 사람이 있더구나.”

상혁과 이선호를 말하는 것이다. 백정연은 이미 그것까지 백성철이 알고 있다는 것에 인상을 썼다.

“제 손님입니다.”

“그래? 같은 층에 누가 있으면 곤란하니 빼서 아래로 내리거라.”

“회장님!!”

백성철 회장은 안하무인이었다. 어차피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안에서 모든 것은 그의 말대로 이뤄져야만 했다.

“내 말에 얌전히 따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네 밑의 사람들이 내 말을 따르면 괜히 내일부터 불편해질 텐데. 아랫사람들을 생각하거라.”

어차피 백정연 아래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백성철이 그들보다 위에 있었다. 그러니 백정연이 반대를 해도 그들은 어차피 움직일 것이다.

그걸 배려라고 해 주고 있는 백성철을 보면서 백정연은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진짜로 이러실 거예요?”

“손님? 언제부터 스무 살짜리가 손님이 되었느냐? 노망이라도 든 것이야? 마흔이 넘은 애가 스무 살짜리를 들인 것 자체가 이야기가 나돌 문제다.”

“하…….”

“그리고 우리 회사랑 악연인 변호사가 왜 네 손님이냐? 응?”

백성철은 상혁과 이선호까지 전부 다 조사를 끝마친 상태다. 그리고서는 저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는 것이다. 백정연이 이를 악물고 있을 때 백도현이 로비에 도착했다.

“회장님.”

“백 사장.”

백도현이 수행원들과 함께 백성철 회장 앞에서 인사했다. 사람들은 주변에서 백성철과 백도현을 알아보고는 수군거렸다.

대한민국의 재벌왕이라 불리는 백성철과 그 아들이 한자리에 모인 진귀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 사업부에 일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태안에서 무슨 일이지?”

“잠시 볼일이 있어서 내려왔습니다. 평택 공장에 시찰을 왔다가 누나 얼굴이나 보고 가려구요.”

“호오. 남매 사이가 끈끈하구나.”

백도현과 백성철은 웃는 얼굴로 거짓말을 했고 그것을 알아챘으면서도 맞장구를 쳐주었다. 백정연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성질 같아서는 당장에 둘 다 꺼지라고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많았다. 내일 뉴스에 콩가루 집안이란 것이 소문이 나지 않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유 셰프 아직도 있지?”

그때 백성철이 화제를 돌렸다. 백정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성철이 씩 웃었다.

“네 손님들 내보내는 동안 식사나 해야겠다. 오랜만에 그 친구 짜장면이 당기는구나.”

“…….”

“뭐 하느냐? 가서 자리 만들어 놓지 않고. 가서 바로 먹을 수 있게 주문을…….”

백성철 회장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연화향 쪽에서 로비가 떠나갈 것 같은 고함과 함께 유명인 셰프가 누군가의 멱살을 붙잡고 질질 끌고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총지배인이었다.

“내 식당에서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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