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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57화 (56/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57화

57. 영감이 기운도 좋다(2)

“자. 봐 봐.”

상혁은 마법을 펼쳤다. 그러자 오승환의 눈앞에서 상혁의 모습이 물감이 지워지는 것처럼 서서히 지워졌다.

하지만 그가 모시고 있는 장군님이 힘을 보태주는 순간 상혁의 모습이 보였다.

“보입니다.”

“거참 신기하네.”

상혁은 손가락을 튕기며 마법을 캔슬했다. 그러자 상혁의 모습이 다시 드러났다. 상혁은 오승환을 앞에 놓고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해 마법을 썼다.

하지만 오승환은 전부 다 꿰뚫어 보았다.

“일단 사람의 오감을 속이는 마법은 너한테 안 통한다는 뜻이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도 느낄 수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오승환은 대단히 희귀한 케이스였다. 흔히 말하는 신내림을 받지 않고 어느 순간부터 장군님이란 존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장군님이란 존재는 오승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승환은 그를 수호령쯤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럼 어디까지 내 마법이 통하나 보자.”

정신 마법.

상혁은 마나를 끌어올렸다. 오승환에게 오감을 속이는 마법은 통하지 않았다. 시각을 속이는 인식장애 마법은 물론 인비지블도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신성력 때문인지는 분석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다음으로 선택한 것이 오승환에게 직접 마법을 거는 것이었다.

“아프진 않은 거니까 긴장 풀고.”

“예.”

오승환은 하나도 긴장한 기색이 아니었다. 상혁이 그를 쳐다보자 오승환은 어깨를 으쓱했다.

“장군님이 계셔서.”

“그래? 어디 그 장군님이 강한지 이 대마법사님이 강한지 어디 한번 보자고.”

상혁이 손끝으로 마나를 뿜어내며 영창했다.

“블라인드.”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마법이었다. 오승환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흐려졌다. 상혁이 그런 오승환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이게 몇 개지?”

블라인드 마법에 걸리면 마치 불빛이 한 점 없는 방 안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난다. 상혁이 손가락을 흔든 순간 오승환의 고개가 상혁의 손을 따라 돌았다.

‘눈은 흐린데?’

오승환의 눈은 여전히 흐렸다. 눈이 흐리다는 건 초점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승환은 보고 있었다.

“셋이요.”

“……맞았어.”

거기에 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상혁의 블라인드 마법은 풀리지 않았다. 신성력과 마나는 상충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성력을 쓰는 신관에게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정신 마법이 걸리지 않는다.

신성력이 마나의 결집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오승환은 그게 아니었다.

“캔슬.”

다시 오승환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상혁은 다시 한번 더 시험해 보기 위해 손을 튕겼다.

“컨퓨전.”

1서클의 혼란 마법으로 방향감각을 잃게 하는 마법이다. 이 마법에 걸리면 상하좌우가 헷갈리게 되는데 잘만 쓰면 간단하게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오승환은 멀쩡했다. 그리고 단일 개체의 청력을 빼앗아 가는 데프 마법을 써도 마찬가지였다.

오승환에게는 오감을 속이는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성력이 있어 마법을 파훼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상혁은 눈을 반짝하고 빛냈다.

“재밌네.”

저런 현상을 상혁은 알고 있었다. 여기서는 무당이라고 부르지만 저런 식으로 신성력을 발휘하는 종족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고블린 대사제의 방식인가.”

가나안 대륙에는 인간과 어울려 사는 호의적인 이종족 외에도 인간에 적대적인 종족이 있었다. 그들을 통틀어 인간들은 몬스터라고 불렀는데 고블린이 그중 하나였다.

그들은 원시적인 부족 형태를 이루고 살아가는데 부족을 이끌어 나가는 고블린 족장과 고블린 대사제가 있었다.

고블린 족장은 압도적인 무력으로, 고블린 대사제는 고블린들이 신성시하는 조상의 영혼을 불러들여 자신과 합일하는 방식으로 주술을 썼다.

“그 장군님이란 귀신, 아무래도 너희 조상인 것 같은데?”

고블린 대사제들은 영혼과 반쯤 합일을 함으로써 고블린들에게 대단위 주술을 걸어 주거나 대단위 치료를 행했다.

그 말에 오승환의 눈이 커졌다.

“조상님이요?”

“응.”

상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마나안이 개안하면서 공중의 마나가 오승환 뒤에 후광처럼 버티고 선 영혼에게로 모여들었다.

“보여 줄게. 봐 봐.”

파아앗!!

오승환은 자신의 머리 위에서 불빛이 환하게 밝아 오자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상혁의 마나가 영혼에 색을 입혀가면서 장군님이란 영혼을 육안에 보이도록 만들자 오승환이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아, 아빠?”

“뭐야, 조상까지는 아니었네?”

* * *

오승택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예?”

“네 어머니를 고칠 방법이 있다고.”

“그, 그게 정말입니까?”

오승택은 아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선호가 놀라서는 오승택과 상혁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내 마법과 네 동생이 있다면 가능하겠어.”

“제 동생이요?”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오승택은 여기서 갑자기 왜 자신의 동생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혁은 오승환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현상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 동생의 비밀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그걸 내가 말해 주는 건 옳은 방법이 아니겠지. 네가 직접 물어봐라.”

“예.”

오승택은 어머니를 치료할 방법이 있다는 말 자체만으로도 기뻐했다. 그래서 그 비밀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상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호텔의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파바박!

오승택은 바람을 일으킬 정도로 재빠르게 숨었고 그걸 확인한 이선호는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방문을 연 이선호는 문 앞에 선 사람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당신은…….”

“오랜만입니다, 이선호 씨.”

그는 다름 아닌 백도현의 비서실장인 박정철이었다. 이선호는 갑자기 박정철이 나타난 것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 오해 마시길. 전 이선호 씨를 만나러 온 게 아닙니다.”

“그러면요?”

이선호가 그렇게 말하면서 뒤를 슬쩍 쳐다봤다. 상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박정철은 이선호 어깨너머의 상혁을 보더니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백상혁 씨.”

상혁은 대답하지 않고 이선호를 쳐다봤다. 그러자 이선호가 대신 말했다.

“백도현 사장의 비서실장인 박정철 씨입니다.”

“호오.”

상혁은 백도현이 직접 박정철을 보냈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며 눈을 반짝하고 빛냈다. 안 그래도 한번 정리하러 갈 생각이었는데 제 발로 다가온 셈이다.

반면 박정철은 이선호와 상혁의 관계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선호가 아니라 백상혁이 리더다?’

누가 보더라도 이선호가 한참 어린 상혁을 예우하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는 건 둘 사이의 균형의 추가 상혁 쪽으로 가 있다는 뜻이다.

‘진짜 뭐라도 있는 건가? 스무 살짜리 고시 포기생을 이선호가 예우한다니.’

상식적인 관계로는 성립이 불가능한 관계였다. 그 점을 박정철이 머릿속에서 기억해 두었다.

“박정철입니다. 저희 사장님께서 보내셔서 찾아왔습니다.”

“사장님이시면. 백도현 사장님이요?”

“예.”

박정철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상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절 왜요?”

“제가 사장님의 뜻을 어떻게 헤아리겠습니까. 백상혁 씨에게도 나쁜 제안은 아니실 겁니다. 사장님을 직접 뵙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박정철은 백도현이 상혁을 만나 주는 걸 마치 선심 쓰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상혁은 피식 웃었다.

“백도현이 무슨 왕자라도 됩니까?”

상혁의 삐뚜름한 대응에 박정철이 인상을 찡그렸다. 다른 건 참을 수 있어도 자신이 모시는 백도현에 대한 모욕은 참지 않는 박정철이다.

“아니. 지금 태도가 그러시잖아요. 대한민국은 만민이 평등한 민주주의 국가 아닌가? 그런데 무슨 꼭 왕족을 뵐 수 있는 대단한 기회가 생겼다고 하시는 것 같으니까.”

상혁은 이선호를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이선호는 통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람을 보고 싶으면 자신이 직접 와야지. 자기 비서 보내서 오라고 하면, 가야 하는 건 아니죠? 이동의 자유가 있으니까?”

“…….”

“그럼 답변은 드린 것 같고. 안녕히 가세요.”

상혁은 박정철의 어깨를 살짝 밀어 방 밖으로 내보낸 뒤 문을 닫았다. 문이 쾅 하고 닫히자 박정철의 두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가 사라졌다.

그렇게 박정철이 사라지는 것까지 확인한 이선호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선호보다 더 무서운 게 바로 저 사람입니다.”

“누구요. 아까 그 아저씨?”

“예. 백도현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사람입니다. 아마 지금까지 손에 묻힌 피만 해도 수십 명이 넘을 겁니다.”

“충신이라.”

상혁의 머릿속에 기사 놈이 스쳐 지나갔다. 근위대장이었던 소드마스터 놈. 그놈이 대대로 왕실에 충성을 다하는 충신이었다.

그러니 왕자가 왕국을 세운 대마법사를 죽이겠다는 미친 소리를 입에 담을 때도 말리지 않고 그저 묵묵히 도와만 주었겠지.

충신은 주군이 하는 일에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끼어들지 않는 것이 덕목이었으니 말이다.

“흐음. 백도현이 나를 찾았다라.”

“조금만 찾아보면 모든 일에 상혁 씨가 연관되어 있다는 걸 백도현이 놓쳤을 리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번 만나 보려고 한다?”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겠지요. 원래 백도현은 확실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일단 한번 만나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예?”

상혁이 초아의 머리를 긁어 주면서 어깨를 으쓱이고 말했다.

“어차피 오승택에게 약속한 걸 지키려면 백도현은 어차피 저와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치워 버릴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봐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태연한 상혁의 말에 이선호가 소름 끼친다는 표정을 지었다.

* * *

“왜 왔니?”

“만날 사람이 있어서. 오랜만에 만난 동생한테 너무 차갑다 누나.”

백도현은 언제나 그렇듯 웃었다. 백정연은 그가 자신이나 다른 가족들 앞에서 저렇게 웃는 모습 말고 다른 모습은 보여 준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건 일종의 가면이다.

자신의 본모습을 가리기 위해 그가 쓴 가면.

“선물은 잘 받았어.”

“그러게. 솔직히 좀 놀랐어. 그렇게 완벽하게 피해 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거든.”

상혁이 없었더라면 백도현의 술수에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다. 백정연은 하마터면 자신의 모든 꿈이 무너질 뻔했다는 것에 울화가 울컥하고 솟아올랐다.

“그걸 말이라고 하니?”

“호텔이 누나의 오랜 꿈이었지?”

백정연은 더 이상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괜히 흥분한 모습을 보여봐야 백도현을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상종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볼일만 보고 그냥 가.”

“누나, 나한테 숨기는 거 없어?”

백도현이 무심한 눈으로 백정연을 쳐다봤다. 그 안에 숨겨 둔 것까지 모두 다 알아내겠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백정연의 안방이다.

“다음부터는 약속을 먼저 잡고 와. 나도 바쁘니까. 나가는 문은 저쪽이야.”

백정연은 대답하지 않은 채 찬바람을 쌩쌩 풍겼다. 백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 후 말했다.

“맞다. 아버지가 SG충청병원에 와 계신대. 누나도 알고 있었어?”

“뭐?”

“몰랐구나? 그냥 그렇다고.”

백도현이 그녀의 집무실에서 나갔다. 백정연은 백도현이 사라지며 말한 것을 곱씹었다. 그러다 이내 그녀는 자신의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역겹네요, 아버지…….”

그녀는 백성철 회장의 은밀한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 비밀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하지만 그걸 백도현이나 오빠인 백이현은 모르고 있었다.

그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백성철 회장을 역겹다고 하게 된 것은 그것을 백정연에게 들켰다는 것을 안 후에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백성철 회장은 백정연에게 당당하게 요구했다.

[네 새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방을 항상 비워 놓으려무나.]

SG충청병원.

그곳에는 백성철 회장의 내연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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