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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53화 (52/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53화

53. 발 담근 마법사(3)

상혁은 스스로의 내부를 관조했다. 마법사에게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상혁은 맨 처음에 바짝 말라 쩍쩍 갈라졌던 토양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토양은 존재하지 않았다.

윤기가 촉촉하게 흐르는 질 좋은 토양이 있었고 그곳에 어느덧 사람 무릎 정도 높이까지 올라올 정도로 성장한 묘목이 푸르름을 내뿜고 있었다.

마법사로서의 기초를 다지고 마법이란 새싹을 틔운 수준이 지금 상혁의 수준이다.

묘목에서 두근거리며 실시간으로 생장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저 묘목은 나중에 하늘을 찌를 정도로 거대한 나무가 된다.

마법이란 나무가 최소한 어느 정도 자랄지 상혁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한 번 키워 본 나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더 크고 찬란하게 꽃 피우게 만들기 위해 상혁은 여러 노력을 하고 있었다. 상혁이 내부를 관조하며 궁리하는 것도 그 노력 중 하나였다.

“토양은 완성이 됐어. 그러면 이제 저 새싹이 크기 위해 필요한 건 딱 하나.”

햇빛.

모든 식물을 햇빛이 있어야 무럭무럭 자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햇빛이 필요하다. 상혁은 자신의 내부에 해를 띄우기로 했다.

“너무 뜨겁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차갑지 않은. 따뜻하게 온도를 유지해 줄 수 있을 정도의 해.”

3개의 고리 위로 뒤덮인 아흔아홉 올의 마나 실들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둡던 내부가 밝아지면서 어슴푸레하게 저 멀리서 동이 터오는 것 같은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해돋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생명이 태동하는 시간은 해가 중천에 뜨기 직전의 바로 그 시간. 그러니 해를 너무 띄워서도 안 된다.”

상혁은 홀로 중얼거리며 심상 속에 해를 띄우기 시작했다. 자신의 고리에 뿌리내린 저 작은 새싹이 무럭무럭 클 수 있도록 상혁은 조심스럽게 해를 밀어 올렸다.

“됐나.”

상혁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심상 속에서 어떤 것을 구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심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지금 상혁이 구현한 것은 해였다.

모든 에너지의 근원, 인간이 티끌보다도 더 작게 보이는 은하수에서 가장 큰 에너지를 품은 근원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대마법사의 정신력과 집중력이 상혁에게 그걸 가능케 만들었다. 그리고 상혁은 사위가 따스한 햇볕으로 찬 것을 느끼며 기분 좋게 웃었다.

너무 뜨거워 새싹과 비옥한 토양이 마를 정도는 아니면서 적당히 따뜻해 새싹이 생장하기에 딱 좋은 빛과 온도.

상혁은 심상 속 발전한 자신만의 텃밭을 내려다보며 빙긋 웃었다.

“후으읍!!”

쏴아아아!!

그 순간 상혁의 주변으로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건 심상이 아닌 현실이었다. 상혁은 바닷속에서 홀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넓은 바다로 흘러나간 SG호텔의 오수.

그 오수를 겉으로만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그 안에 탄 화학 약품이 섞여 바다 전체에서 마나의 향기가 짙게 났다.

40만 리터.

상혁은 마지막으로 남은 그 40만 리터를 채우고 마지막 한 올의 마나 실을 꿰어 4서클을 완성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었다.

꿈틀!

해가 떠오른 순간 웅크리고 있던 새싹이 꿈틀하고 움직임을 보였다. 상혁은 마나안을 돋워 새싹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상혁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해가 없는 공간에 웅크리고 있던 새싹이 서서히 이파리를 쏟아지는 햇살을 향해 들어 올리고 있었다.

줄기가 펴지고, 접었던 이파리가 펴지며 새싹이 기지개를 켜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파리가 완전히 햇빛을 향해 펴졌을 때, 그때 비로소 새싹은 한 단계 더 생장할 준비를 마쳤다.

상혁의 마나안이 빛을 피워 올렸다. 오색찬란한 서기가 상혁의 마나안에서 피어오름과 동시에 상혁은 마나 고리가 태동하고 있음을 느꼈다.

4서클.

마지막 한 올의 마나 실이 고리에 자리를 잡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한 올의 마나 실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고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백 올의 마나 실을 베베 꽈서 만든 마나 고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웅웅웅웅!!

크기가 작았던 3서클까지의 고리와는 돌아가는 소리부터가 달랐다. 상혁은 4서클을 뜻하는 네 번째 고리가 다른 고리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느꼈다.

상혁의 몸에서 번쩍거리며 푸른 마나가 쉴 새 없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고리가 회전하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고리가 다른 고리들과 함께 융화되기 시작했다.

고리는 절대로 홀로 독존하는 존재가 아니다.

고리가 몇 개가 이건 모든 고리들은 서로가 서로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유일하게 생물체 중 드래곤만이 그런 법칙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무한한 마나의 덩어리인 하트를 품고 있기 때문에 고리 따위가 필요 없었다.

하나 드래곤을 제외한 모든 종족은 고리를 만든다. 상혁은 네 번째 고리가 존재감을 강력하게 드러내며 자리 잡는 것을 느꼈다.

“됐다.”

상혁이 물속에서 부드럽게 손을 휘젓자 상혁의 몸 주변으로 마나를 흡수하기 위해 휘몰아치게 만들었던 소용돌이가 딱 멈췄다.

동시에 물속에서 뇌성이 치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소용돌이가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에어로 봄.”

공기를 압축시켜 폭발하게 만드는 마법이었다. 파이어 볼에 비할 수 없는 위력의 광역 마법이 물속에서 터진 것이다.

4서클 마법을 시험 삼아 시전해 본 상혁은 숨기지 못하고 환하게 웃었다.

“4서클이 아니라 5서클 마법사에 준하는 마나량인데?”

인생 2회차밖에 할 수 없는 이론을 그대로 적용시킨 것이 주효했다. 상혁의 고리가 품고 있는 마나량은 그냥 4서클이 아니라 거의 5서클에 준하는 마나량이었다.

고리가 많아질수록 마나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고, 안정화될 것이라는 예상이 적중했다.

“이 사실을 들고 가나안으로 돌아간다면 마법계의 일대 혁명이 일어날 텐데.”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잠시 후 상혁의 몸이 투명해진 상태로 물속에서 솟아올랐다.

플라이, 인비지블.

4서클 마법을 더블 캐스팅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상혁의 마나량은 4서클의 그것을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마냥 좋은 것도 아니지.”

상혁은 더블 캐스팅으로 4서클 마법을 사용하자 마나가 급속도로 줄어드는 것을 느끼며 마법을 해제하고는 물 위에 우뚝 섰다.

“마나를 채울 방법이 없으니까.”

마나 통이 커졌다는 건 마법을 많이 쓸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건 가나안에 있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나를 어디서든 회복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 지구에서는 아니다.

휘리리릭!

상혁이 바닷물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바닷물이 똬리를 틀 듯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치솟았다.

가벼운 손짓에 바닷물이 품고 있던 마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나를 흡수하는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진 것이다.

하지만 이내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정도로는 이제 간에 기별도 안 차네.”

이제 이 정도 오염으로는 마나가 더 이상 상승하지 않는다. 소모한 마나를 조금 채울 수 있을 정도.

하지만 4서클의 마나 통을 다 채우기 위해서는 어제와 오늘 했던 것처럼 공장 세 개 분량의 오·폐수를 다 흡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간 낭비다.

“다른 오염원을 찾아야겠군.”

하지만 지구의 오염은 거의 무한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수가 흘러나가 물이 오염된 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퀘스트 완료.]

그와 동시에 상혁의 눈앞에 세계의 의지가 보낸 메시지가 들어왔다.

[이름 : 상혁

직업 : 3서클 마법사

상태 : 근력/2, 민첩/2, 체력/2, 마나/400]

퀘스트 보상으로 근력과 민첩, 체력이 1씩 증가했다. 근민체가 두 배가 된 것이다.

“게임처럼 스텟이 늘어나면 곧바로 반영…… 응?”

뭐가 달라지는지 느낌이 하나도 나지 않아 고개를 갸웃한 상혁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끄아, 아아아악!!”

온몸이 불타는 것처럼 아파지기 시작했다. 이 고통은 마법사에게 노예로 팔려 가 인체실험을 당할 때 정도의 고통이었다.

살과 뼈, 근육을 찢고 강제로 늘리는 듯한 느낌.

풍덩!

고통에 결국 마법이 해제된 상혁이 물속으로 떨어졌다. 상혁은 차가운 물이 전신을 적시는 것을 느꼈지만 그대로 가라앉았다.

온몸을 생으로 뜯고 째는 것처럼 아팠다. 상혁은 물속에서 발버둥을 치면서 속으로 비명을 질러 댔다.

‘아프다면 아프다고 말을 해 줘야지 지구 이 개X끼야아아아!!’

* * *

“…….”

환경부에서 SG호텔 내부고발자의 투서를 받고 재조사를 하기 위해 파견된 조사팀은 할 말을 잃었다.

“어서 시료 채취들 하셔야지요.”

백정연이 그런 그들을 보면서 태연하게 재촉했다.

콰콰콰콰!!

오수처리장 중 한 곳에 그들은 들어와 있었는데 그곳에는 깨끗한 물이 위용을 뽐내듯 콸콸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오수라고 하기에는 안 쓴 물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깨끗했다. 저건 굳이 시료를 채취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거의 완벽하게 정화된 물이란 것을 말이다.

‘말이 다르잖아.’

조사팀의 팀장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건 장관이 말한 것과 완전히 달랐다. 가서 FM대로 하면 된다고 몇 번이고 강조하더니, 여기서 뭘 더 조사하란 말인가.

“팀장님.”

“채취합시다.”

“예…….”

조사팀이 어기적거리면서 시료를 채취하기 시작했다. 백정연은 그들을 보면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상혁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다. 첫 만남에서 자신에게 떡볶이 소스를 들이부었다는 것은 이제 생각나지도 않았다.

그때 그 일이 없었다면 상혁을 만날 일도 없었을 테니 오히려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 행운이었다.

하지만 그런 백정연에게도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다.

‘그 자식이 얼마나 썼을까.’

상혁이 이번 일을 해결해 주는 대가로 받기로 한 돈. 백도현이 백정연을 제치기 위해서 뿌렸을 돈의 두 배를 보상금으로 주겠다는 그 약속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살짝 잔머리를 굴린 것이기는 했다.

상혁이 제아무리 마법사라고 해도 백도현이 얼마나 썼는지까지 알아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적정한 선에서 자신이 마무리 지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혁은 단순 마법사가 아니었다.

정화 마도구.

자신의 무지로 인해 사람을 잘못 뽑은 대가로 오염된 바다를 다시 정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상혁과 백정연의 거래가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닐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발성 거래가 아니면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그 말인즉슨 백정연은 상혁과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선 그 돈을 정확하게 줘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그게 100억이건, 1,000억이건 무조건.

“결과는 닷새 후에 나올 예정입니다. 그 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아. 참고로 우리도 따로 조사 의뢰를 할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예?”

조사팀장이 백정연의 말에 고개를 휙 돌렸다. 백정연은 그런 조사팀장을 눈빛만으로 압박했다.

“제가 믿었던 사람에게 호되게 배신을 당했어서요. 누구도 믿을 수 없네요. 팀장님을 못 믿는다는 게 아니라 제 문제이니 그렇게 알아 주세요.”

백도현의 사주를 받아 벌어진 일이다.

한 번 조작된 결과가 두 번이라고 조작되지 말란 법 없다. 그래서 백정연은 사비를 들여 사기업에도 맡기겠다고 말한 것이다.

조사팀장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만. 바빠서.”

백정연은 그런 조사팀장에게 목례를 한 뒤 그들을 배웅하라 비서에게 일러놓고서는 오수처리장에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무사히 재조사를 통과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데 직원 중 하나가 다급히 달려왔다.

“대표님!”

“무슨 일이죠?”

얼른 대표의 가면을 뒤집어쓴 백정연이 고고한 표정으로 직원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직원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골프 코스 인근 해변에 호텔 투숙객이 파도에 실려 떠내려온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가 들어갔다고 합니다. 자살 아니냐고 투숙객들이 불안해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해변에 떠내려왔다고?”

자살이면 큰 문제지만 백정연은 해변에 떠내려왔다는 소리를 듣고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렸다.

해변가에서 만났던 남자, 백상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털었다. 물 위도 걸을 줄도 아는 마법사가 왜 바다에 빠져 파도에 실려 온다는 말인가.

“연유를 소상하게 파악하는 게 우선입니다. 기자들이 몰려오지 못하게 관리해 주세요.”

“예, 대표님.”

백정연은 자신이 직접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직원에게 말했다.

“제가 직접 가 보는 게 빠르겠군요. 어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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