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52화
52. 발 담근 마법사(2)
[있는 대로 하면 돼. 어디 눈치를 보거나 그런 것 없이. 딱 조사 결과 나오는 대로만. 오케이?]
장관인 이양송이 한 말이다.
그 때문에 재조사를 위해 파견된 인원들은 오히려 바짝 긴장했다. 대개 윗선에서 정석대로 해라, 라는 말이 내려올 때면 이미 그들이 조사해야 할 곳에 공작이 끝났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대상이 무려 SG호텔&리조트였다.
SG그룹의 오너 일가 중 한 명이 대표로 있는 곳. 그리고 바로 재조사 평가단 중에는 작년에 SG호텔&리조트의 환경 평가서를 직접 작성한 공무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봐주는 것이 아니라 가서 그냥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조지면 되는 일이었다.
“팀장님. 혹시 백정연 대표가 안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도 대상이 무려 SG의 오너 일가 중 하나인 백정연이었다. 만약 그녀가 대로해서 안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할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냥 밀어붙이란다.”
“그냥이요?”
“그래. 위에서 그렇게 지시가 내려왔어. 다른 쪽에서 커버 쳐 준다는 소리야.”
백이현 아니면 백도현.
대외적으로 SG그룹의 후계자를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나머지 두 명의 형제 중 한 명이 이 일에 개입한 상태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조금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도 된다.
“작년에 거기 수치 장난 아니지 않았습니까?”
“말도 마라. BOD(생물학적 산소요구량)랑 COD(화학적 산소요구량)만 봐도 생물이 살지 못하는 수준이었어. 그걸 그대로 방류했으면…….”
SG호텔은 곧바로 태안 바다와 인접해 있다. 만약 SG호텔에서 그 오수를 그대로 바다에 방류했다면 이건 심대한 환경 파괴 행위다.
“국제적으로도 문제가 될 일이죠. 외교적인 마찰이 있을 수도 있고.”
만약 그게 사실로 밝혀지고 세간에 알려진다면 SG호텔은 전 국민의 질타를 받을 것이다. 거기에 바로 이웃 국가인 중국에서 당장 들고일어날 것이다.
중국과 한국이 공유하고 있는 바다에 오염수를 그대로 들이부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걸 백정연이 설계했다?
아니다.
그 사실을 지금 태안으로 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알았다.
“자, 자. 쓸데없는 생각들 하지 말고. 가서 간만에 우리 일이나 제대로 하자고.”
팀장의 말에 정신을 퍼뜩 차린 팀원들이 험험 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런 그들의 눈에 차창 너머로 SG호텔이 점점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 * *
샘플을 채취하고 오염도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닷새 정도가 걸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시료를 채취하러 오는 바로 그 시기였기 때문에 백정연은 불안한 표정으로 출렁이는 오수처리장의 오수를 쳐다봤다.
그 속에 상혁이 있었다.
‘지금쯤이면 벌써 조사단을 꾸려서 내려보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시간이야. 시료 채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적고.’
생각할수록 전 환경관리팀장인 최규태에 대한 분노가 끓어 올랐다. 백도현에게 돈을 얼마나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결국 제 발로 죽을 길을 찾아간 것이다.
백도현이 최규태를 살려 둘 리 없으니까.
‘도현이가 SG그룹의 회장이 돼서는 안 돼.’
그랬다가는 자신에게도 무슨 일이 닥칠지 알 수 없었다. 백도현에게는 재벌로서 가져야 할 품위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백도현이 오로지 신경 쓰는 것은 이익뿐이었다.
사람을 죽여서라도 회사 매출이 오르면 백도현은 얼마든지 그 길을 택할 사람이었다.
그때 오수처리장 속의 오수가 부글거리면서 끓어올랐다. 그러더니 안쪽에서부터 투명한 물이 솟아오르며 겉에 남아 있던 탁한 오수와 섞여 오수를 희석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탁하던 물이 마저 깨끗해지면서 오수처리장 안의 물이 깨끗한 물로 뒤바뀌었다. 그 안에서 상혁이 부드럽게 허공으로 떠올랐다.
자박.
윈드 마법을 이용해 물 위에 발판을 만든 상혁이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백정연이 얼른 기계를 조작해 문을 열었고 그곳으로 상혁이 걸어 나왔다.
“흐음.”
상혁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가슴팍을 두드렸다. 묵직한 마나가 심장 어림에서 느껴졌다.
‘조금 욕심을 부렸나.’
욕심을 부렸다는 건 상혁이 과도하게 마나를 흡수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름 : 상혁
직업 : 3서클 마법사
상태 : 근력/1, 민첩/1, 체력/1, 마나/399]
‘4서클까지 딱 한 올이 부족하네.’
고리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 고리를 구성하는 마나가 더 많이 필요했다. 그리고 상혁은 고리를 마나로 각각 백 올의 실을 만들어 그것으로 고리를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고리는 일반 서클보다 족히 세 배는 더 많은 마나량을 자랑했다.
그래서 계산이 빗나갔다.
원래라면 4서클을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마나량이 필요했던 것이다.
뽀르르!!
그런 상혁의 머리 위를 초아가 기쁘다는 듯 날아다녔다. 풀의 정령인 초아는 상혁이 오수를 깨끗하게 정화하자 상혁에게 날아들어 아낌없이 애정 표현을 퍼부었다.
[퀘스트 : 냄새나는 대기업
내용 : SG그룹에서 생산하는 오·폐수 일천만 리터 정화(9,600,000/10,000,000)
보상 : 근력/민첩/체력 스텟 +1]
그리고 퀘스트도 거의 완료 직전이었다.
부족한 건 40만 리터.
이곳에서 세 개나 되는 오수통을 정화한 덕분에 상혁은 퀘스트 완료에 성큼 다가갔다.
‘남은 40만 리터와 한 올을 어디서 채운담.’
마침 40만 리터의 오수나 폐수를 정화하면 딱 부족한 한 올의 마나가 만들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다 된 건가요?”
“지금까지 만들어진 건, 대충요?”
“아.”
백정연은 다리가 풀린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행이다. 살았다.”
살았다는 말이 그녀의 입에서 절로 흘러나왔다. 사람을 잘못 본 탓에 하마터면 모든 계획이 무너질 뻔하고 집안에서 쫓겨날 뻔한 것을 간신히 막았다.
“그러면 조사팀이 와서 시료를 채취해도 깨끗한 물로 나오겠죠?”
“뭐, 마셔도 무방할 수준의 물은 아닐 겁니다.”
“2급수면 기준은 만족시킬 수 있어요.”
1급수는 사람이 식음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질을 가진 물이다. 그걸 상식적으로 이미 사용한 오수를 정화시켜 만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2급수 정도만 돼도 사람이 씻는 데 사용하는, 인체에 무해 한 정도의 수질로 내보내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제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뭐 그 정도는.”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수질은 갖춰졌다. 이제부터 새롭게 생산되는 오수만 정상적으로 관리하면 SG호텔에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방류된 건요?”
“아.”
백정연은 입을 벌렸다. 그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껏 SG호텔에 방류한 오수만 해도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게 자연에 미치는 영향은?
‘SG호텔은 애초에 태안 기름 유출 사건 이후 태안의 발전을 위해 많은 혜택을 안고 지어진 호텔. 만약 여기서 방류한 오수가 자연을 오염시켰다는 연관성이 발견된다면…….’
SG호텔은 전 사회적인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백정연이 상혁을 쳐다봤다.
“오염이 심한가요?”
“그럼요.”
상혁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SG호텔에 도착했을 때 바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마나의 향에 아찔했던 기억이 선명했다.
상혁에게야 그게 아찔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아찔할 것이다.
“그거까지는 저도 못 합니다.”
상혁은 딱 잘라 말했다. 대자연의 힘은 8서클 대마법사의 힘을 가볍게 상회한다. 애초에 자연을 모방하여서 만든 것이 마법이라고 해도 무방하니 마법으로 자연의 힘을 넘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니 바다에 넘실거리는 저 오염은 상혁이 혼자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알겠어요. 그건 제가 감당할게요.”
백정연은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럴 때 피하지 않고 부딪치고 책임을 지는 것은 그녀가 생각하는 재벌이 해야 할 일이었다.
“솔직하게 인정을 하고, 재발 방지와 개선을 위해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을 해야겠어요.”
“오수가 방류됐고, 그걸 다시 되돌리기 위해 SG호텔 차원에서 나서겠다?”
“응당 할 일을 해야 하는 거죠. 실수를 되돌리려고 노력하고 책임을 지는 것도 재벌이 해야 할 일이니까.”
“흐음…….”
상혁은 백정연을 달리 쳐다봤다. 그냥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운 좋은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보여 주는 모습들이 의외였기 때문이다.
그건 개인의 성공과 영달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구는 것이 아니었다.
혜택과 책임.
그녀는 자신이 받은 혜택을 책임으로써 돌려주기 위해 의무를 다하겠다 소신을 밝혔다.
그리고 그건 마법사를 만족시켰다.
‘진짜 귀족이구나.’
귀족.
신분제가 철폐된 대한민국 사회이지만 재벌들은 신귀족으로써 일반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회적이나 법적으로 귀족이라고 인정해 주지 않는 것뿐이지 그들은 귀족이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귀족으로서의 마음가짐이나 책임감은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당장 상혁 옆에 이선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가 평생을 싸워 온 백도현이란 놈이 백정연의 반만 닮았어도 그렇게 지독하게 외로운 싸움을 이어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좋아. 도와줄게요.”
“네? 조금 전에는 분명…….”
“그건 아까였고. 마법사는 늘 방법이 있기 마련이거든요. 문제는 당장 못 쓰는 방법이라서 그렇지.”
상혁이 씩 웃었다. 그러자 백정연의 눈가에 희망이 서렸다. 하지만 사람의 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하는 법이다.
“그건 뭐 해 줄래요?”
“…….”
백정연의 머리가 구르는 소리가 상혁의 귀에까지 들리는 듯했다. 상혁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백정연은 열심히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당장 생각하라는 건 아니에요. 나도 시간이 좀 필요하니까.”
물을 정화하는 마법?
반드시 마법사가 모든 마법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대단한 인력 낭비다. 마법사는 비단 마법만 쓰는 사람이 아니다.
마도구.
마법사는 마법사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선구자이자 선각자다. 단순히 마법을 마법사의 전유물로만 남겨놨다면 가나안의 모든 마법사들은 과로로 죽었을 것이다.
‘마도구를 만들려면 4서클에는 올라야지.’
마도구를 만드는 시점이 바로 4서클이다. 마법을 쓰며 1인분을 하던 마법사가 본격적으로 10인분, 100인분을 할 수 있게 되는 시점이 바로 그 시점이다.
마법진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마법사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법이니까.
“일단 난 좀 나갔다 올게요.”
40만 리터와 1의 마나.
그 마지막 퍼즐 조각들을 채워 완성해야 그다음을 내다볼 수 있다. 그때 마침 백정연의 비서가 들어와 조사팀의 도착을 알렸다.
“부탁드릴게요.”
대답 대신 어깨를 한 번 들어 보인 상혁과 백정연이 각자 나름의 목표를 가진 채 헤어졌다.
* * *
오승택은 멀리서 멍하니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어머니의 얼굴을 봐야만 했다. 당장에라도 달려가 자신이 저 옆에 있어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도망자.
오승택은 지금 SG그룹으로부터 쫓기는 신세였으니까.
태안까지 온 김에 어머니가 입원한 SG충청병원에 매일 같이 출석 도장을 찍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첫날 드론이 오승택도 모르는 사이 추적하고 있었다는 것에 사람의 눈에 띄는 일을 철저히 삼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둘, 셋…….”
오승택은 대신 어머니의 주변을 감시하고 있는 SG그룹의 사냥개들을 관찰했다. 항상 세 명 이상이 주변에서 감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멀리서 이른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지켜보고 있던 오승택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음?”
오승택은 잠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사람이 언뜻 얼굴을 보였기 때문이다. 금세 그 주변으로 수행원으로 보이는 듯한 이들이 붙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오승택은 확신했다.
한국 사람이면 모를 수 없는 얼굴이 방금 보였다가 사라졌다.
백성철 회장.
재벌 중의 재벌, 재벌왕이라 불리는 SG그룹의 회장이 서울이 아닌 SG충청병원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