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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51화 (50/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51화

51. 발 담근 마법사(1)

상혁은 백정연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상혁이 백정연의 말에 넘어갔느냐? 그건 당연히 아니었다.

“캄.”

화아악!!

감정적으로 고무된 사람의 감정을 차분하게 만드는 마법이 상혁의 손에 시전됐다. 마나가 상혁의 손바닥을 통해 백정연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백정연은 상혁의 바짓자락을 놓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상혁은 헛웃음을 지었다.

“한 번은 들어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연기는 여기까지 하시죠.”

스윽.

“그럴까요, 그럼?”

백정연은 잡고 있던 상혁의 바짓가랑이를 자연스럽게 손에서 놓았다. 마법을 시전한 순간 상혁은 자신이 완전히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백정연이 진짜로 감정적으로 행동한 것이라면 진정 마법에 곧바로 차분해졌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그녀는 상혁의 다리를 끌어안은 손을 계속해서 놓지 않았다.

왜?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눈치채셨어요?”

“당장 살려고 발악하느라고 이성을 잃은 게 아니라는 건요.”

“아쉽네. 그것도 마법인가요?”

백정연은 하나도 아쉬워 보이지 않는 얼굴로 강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 행동이 전부 다 연기였다는 것에 상혁은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차라리 할리우드로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일흔 살 이상을 살았다고 해도 상혁은 남자다. 여자가 다리를 끌어안고 우는 모습에 헷갈리는 건 당연했다. 백정연은 그걸 알고 의도적으로 다리를 붙잡고 매달린 것이다.

“그쪽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그리고 제 위치가 위치인지라 연기는 기본이죠. 뭐, 대신 상혁 씨랑 대화할 수 있게 됐으니 이득이긴 하네요. 그렇죠?”

상혁은 졌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그녀가 그러지 않았다면 상혁은 백도현과 백정연의 싸움에 휘말리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지만 어쨌건 백정연은 기지를 발휘해 상혁을 붙잡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상혁 씨도 백 씨네요. 우리 같은 동성동본, 그러니까 뭐 사촌이나 남매인 거 아닐까요?”

백정연은 쓸데없는 소리를 하며 상혁의 눈치를 살폈다. 상혁은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분위기 풀려고 안 해도 됩니다. 화 안 났습니다.”

“진짜요?”

“네. 어차피 칼자루는 제가 쥐고 있으니까.”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상혁이다. 백정연도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상혁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게다가 상혁은 자신의 포지션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백정연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왜 살려 달라는지,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말해 봅시다.”

상혁의 요청에 백정연은 최대한 간결하게, 하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백도현과의 경쟁 관계를 풀어서 설명했다.

“설마, 회장이란 작자가 사자는 제 새끼를 절벽에서 민다는 지어낸 말을 믿는 건가?”

백도현과 백정연의 아버지, 그리고 지금 이 후계자 쟁탈전을 부추긴 SG그룹의 백성철은 야수의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다.

승자독식.

그는 적자 계승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는 철저한 성과주의자였다. 그에게 있어 사람을 판단하는 건 오로지 그 사람이 이룬 커리어와 성과뿐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후계자도 그런 구도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무한경쟁.

같은 집에서 나고 자란 형제자매들이 피 튀기는 싸움을 벌여 그의 인정을 받는 자식만이 SG그룹의 회장이 될 수 있도록 설계를 해 놓은 것이다.

그건 마치 사자가 절벽 위에서 제 새끼를 민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문제는 그 어떠한 사자도 제 새끼를 절벽에서 밀지 않는다.

제 새끼 귀한 건 짐승도 안다는 뜻이다.

‘오크면 모를까.’

SG그룹의 회장이라는 사람이 자식들을 모아 놓고 하는 짓은 마치 오크 같았다. 가나안의 오크는 실제로 자신의 자식이 태어나면 절벽에서 떨어뜨린다.

오크는 인간과 유사한 외형을 가진 종족인데 녹색 피부에 덩치가 크지만 지능이 부족한 종족이다. 그들은 인간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으로 무리 지어 생활하는 전투 종족인데 오크들 사이에서 약하다는 것은 곧 버림을 받을 확률이 높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철저한 강자생존.

그곳에서 오크는 자식을 절벽으로 밀어 떨어뜨린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오크의 번식력은 인간의 열 배 수준이고 막 태어난 오크가 전사로 무기를 잡을 때까지 걸리는 기간은 인간의 1/5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니 그럴 수 있었던 것인데, 지구에서는 대기업 회장이란 양반이 오크처럼 굴었다.

“그러니까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어요. 반드시 대사가 있는 앞에서 환경 평가를 잘 받아야 하니까요. 제 모든 게 걸려 있어요. 그러니 제발.”

백정연은 다시 상혁의 바짓가랑이를 움켜쥘 기세였다. 그 기세에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 상혁이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잠깐, 그러니까 나보고 여기 흘러들어오는 오수를 정화해 달라?”

“네. 분명히 봤어요. 당신 몸을 거쳐 간 오수가 깨끗해지는걸.”

“내가 왜요?”

상혁에게 있어 그건 아주 좋은 제안이었다. 어서 4서클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이곳의 마나가 필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곧장 드러낸다는 것은 하수나 하는 짓이다. 칼자루는 상혁에게 있고 백정연은 상혁이 없으면 절망적인 상황이다.

“필요하시잖아요.”

그러나 백정연은 눈치가 빨랐다. 그녀는 아직도 마법사인지 믿기지 않는 상혁에게 오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게 왜 오수처리장을 보여달라고 하나 싶었는데 여기 와서 오수를 이용하는 걸 보고 확신한 것이다.

“필요하긴 한데. 이제 어떻게 오는지 알았으니까 나 혼자 오면 되는데요?”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한 번 와 본 길을 까먹을 정도였다면 상혁은 대마법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백정연 없이 오면 된다.

“글쎄. 제가 가만히 있지 않겠죠? 제가 필요했던 걸 보면 그 마법이란 거, 아직 만능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니까 마법이란 게 있는데도 백정연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자신의 도움이 더 필요할 것이란 말도 된다.

“기억을 지워 드리죠.”

상혁이 손가락 끝에서 짙은 푸른 운무 같은 마나를 뿜어냈다. 그것을 본 백정연이 움찔했지만, 그녀도 물러서지 않았다.

절박했기 때문이다.

“오수처리장이 한 곳이라고 말한 적 없어요.”

“…….”

“이런 곳이 세 곳은 더 있죠. 거긴 가는 방법을 모르실 텐데요?”

콰콰콰콰!

상혁은 너머로 흐르는 거대한 오수 줄기를 보며 이마를 탁 짚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백정연을 쳐다봤다.

“그거론 부족합니다.”

“백도현이 이번 일을 조작하기 위해 제 회사 환경관리팀과 환경부 장관 이양송에게 뿌린 뇌물. 그 뇌물의 두 배를 보수로 드릴게요.”

“두 배요?”

상혁의 눈이 커졌다. 돈이다. 이선호를 군식구로 맞이하면서 생활비의 압박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났다. 하지만 집을 고칠 정도의 목돈은 아직이었다.

그런데 백정연이 약속한 금액이라면?

“그게 얼맙니까?”

“알아봐야죠.”

백정연의 말에 상혁이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장난치시네요?”

“안전장치죠. 아직 상혁 씨와 저 사이에는 그런 것 없이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된 것이 아니잖아요?”

백정연은 상혁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었다. 백도현이 이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 돈을 얼마나 썼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상혁이 직접 알아보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면 백정연이 주는 돈을 그냥 받아야 한다.

“그 말. 지키길 바랍니다?”

상혁이 씩 웃었다. 백정연이 그렇게 나온다고 해서 거절할 상혁이 아니다. 상혁이 백도현이 공작에 쓰려고 했던 돈을 몇 배나 부풀려도 백정연은 할 말이 없다는 뜻이다.

백정연도 백도현에게 그 돈을 물어봐서 알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니까.

백정연의 안색이 슬쩍 변했다. 상혁은 마법사다. 그걸 한발 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말은 내뱉었고 기차는 떠났다.

“그럼 안내하시죠.”

“예?”

“이렇게 찔끔찔끔 나오는 곳 말고. 오수가 모이는 곳으로. 처리장이라면서요. 그러면 처리장으로 들어가는 곳도 있겠지.”

“아.”

상혁은 할 일을 미뤄 두는 성격이 아니었다. 상혁의 성화에 백정연이 상혁을 첫 번째 오수처리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 환경 평가라는 거. 언제 이뤄진다고요?”

“당장 내일, 아니 오늘 늦게 사람이 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에요.”

백도현은 결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조사단을 다시 꾸려 내려보낼 것이다.

백정연이 SG호텔과 리조트를 엉망으로 운영하고 있었다는 것을 밝혀내기 위해서.

“내일까지는 붙잡아 놔 봐요.”

상혁이 그렇게 말하고는 오수 속으로 뛰어들었다. 백정연은 자신도 모르게 놀라 한 번 더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간신히 꾹 참았다.

‘저건 도통 적응이 안 될 것 같은데.’

오수 사이로 상혁의 머리통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백정연이 헛구역질을 했다.

* * *

‘지금까지야 양을 조절하느라 한 번에 많은 양을 흡수하지 못했지만.’

지구의 환경은 유일한 마법사인 상혁에게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마법사란 이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마나를 모을 때는 주변을 항시 살펴야만 했다.

그런 긴장한 상태에서는 마나를 제대로 모을 수 없다.

시간제한도 있고, 여러모로 제한이 있는 상황에서 마나를 모았기 때문에 상혁은 단 한 번도 마음 놓고 편한 장소에서 마나를 모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도달한 곳이 겨우 3서클 중반.

하지만 백정연은 상혁에게 제대로 멍석을 깔아 주었다.

‘누가 올 걱정 안 해도 되는, 온전히 안전한 곳.’

그렇다면 다른 곳으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마나를 흡수해 심장에 고리로 형성하는 과정은 대단히 섬세한 작업이라 극도의 집중력이 필요한데 처음으로 그 집중력을 모조리 쏟아부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

‘원래 일란이었다면 온양 공장의 폐수 정도로도 3서클 후반까지는 무난하게 올랐겠지. 하지만 지금 나는 고작 3서클 중반. 그 이유는 고리를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지만.’

고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데에는 기존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마나가 필요했다. 상혁은 온몸의 모공을 활짝 연다는 느낌으로 마나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내게 오라고.

나를 살려 달라고.

상혁은 마나를 부리지 않았다. 그는 인체실험을 당하는 노예일 때부터 마나에게 자신을 살려 달라고 빌었다.

우웅!!

상혁의 오른쪽 눈에서 서기가 치솟으며 자연스럽게 마나안이 개방됐다. 그러자 오수가 마나의 빛깔로 물들며 마나가 회오리치듯 상혁의 몸을 휘감고 가는 것이 보였다.

상혁은 그 마나에 자신의 의념을 담아 간청했다. 그러자 마나가 상혁의 몸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물길을 댔다.’

맨 처음 물길을 대는 것이 어려운 법이다. 상혁은 그 순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마나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어마어마한 양의 오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혁은 그 속에서 섬세하게 마나를 추출해 심장에 쌓기 시작했다.

한 올, 두 올, 세 올.

그리고 어느 순간 상혁의 눈에 마나의 흐름이 옅어지더니 점점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 돼!”

그 모습을 밖에서 보고 있던 백정연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상혁의 귀에 들렸다. 상혁은 두 눈을 번쩍 떴다.

탁하기 그지없던 오수가 어느새 투명한 물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몇 시간 지났죠?”

“하, 한 시간…….”

고작해야 4서클을 채울까 말까 한 정도의 마나다. 물론 상혁의 3서클이란 것이 마나 통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마나 통은 아니었다.

마나를 꼬아 실로 만들어 고리를 형성한다는 것.

8서클 대마법사이던 시절 이론으로만 만들었던 걸 직접 하는 입장이니 비교 대상이 없는 것이다.

아, 있긴 있었다.

‘인간이 아니라 이종족으로 대상을 넓히면.’

다크엘프.

정령의 축복을 받은 엘프가 아닌, 드래곤 다음으로 마법에 탁월한 자질을 갖고 태어나는 종족인 다크엘프.

인간보다 월등하나 드래곤보다는 못한 다크엘프와 견줄 수 있을 정도의 마나 고리를 상혁은 가지게 된 셈이다.

그리고 상혁은 인간의 몸으로 신화 속 드래곤을 제외한 대륙 마법의 정점에 도달했던 대마법사. 그 대마법사가 이종족에 비해 유일한 약점이던 마나량의 단점마저 고치게 된 셈이다.

[이름 : 상혁

직업 : 3서클 마법사

상태 : 근력/1, 민첩/1, 체력/1, 마나/365]

마나도 3서클 중반을 넘었다. 남은 두 개의 오수처리장까지 해치운다면 능히 4서클에 오를 준비를 마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섰다.

물 밖으로 나온 상혁의 몸이 저절로 말랐다. 상혁은 넋이 나간 것 같은 백정연을 보면서 말했다.

“나머지 두 곳도 갑시다. 그냥 오늘 다 끝내 버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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