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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50화 (49/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50화

50. 잘 먹는 마법사(5)

더러운 물이다.

상혁의 의식은 오수를 입에 담는 즉시 두 개로 나뉘었다. 더블 캐스팅 같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의식을 쪼개면 되는 것일 뿐.

‘진정해. 네 몸에 필요한 오염물이야.’

‘마나 정제, 흡수하고 독성과 오염물을 내보내고.’

‘정화로 신체 기관 보호하고.’

마나는 제집에 들어온 불청객을 감지하면 곧바로 노도처럼 달려가 밀어낸다. 한 번 자리를 잡은 마나는 그만큼 배타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혁은 마나가 난동을 부리지 않도록 한편으로는 진정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오수 속 순수한 마나를 흡수할 준비를 했고 그동안 육체를 정화할 준비를 했다.

오수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똑같은 일이었다.

“으음.”

상혁은 한 줌의 오수에서 순도 높은 마나가 뽑혀 나오는 것을 느끼며 씩 웃었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당신 미쳤어요?”

하지만 그걸 옆에서 보는 백정연에게는 아니었다. 백정연은 오수를 그냥 삼킨 상혁을 보면서 혐오와 경악이 섞인 눈빛을 지어 보였다.

“안 미쳤습니다.”

“그런데 거기다 손을 왜 넣어요!!”

“그럴 이유가 있어서요.”

상혁은 태연했다. 백정연은 그런 상혁에게서 자신도 모르게 물러났다. 미친놈 옆에 있기가 꺼려졌기 때문이다.

백정연의 눈빛에서 그런 것이 다 느껴졌지만 상혁은 그런 백정연이 안중에도 없었다.

슥, 슥.

“뭐, 뭐 하는 거예요!!”

상혁은 그 앞에서 옷을 홀딱 벗었다. 그 모습을 보고 백정연이 더 뒤로 물러서면서 자신의 옷매무새를 움켜쥐었다.

저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나 싶었지만 상혁은 백정연에게서 관심을 껐다. 지금 눈앞에 이토록 군침이 도는 만찬이 차려져 있는데 백정연의 반응 따위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어차피 웬만하면 혼자 들어올 수 없는 곳이기도 하고, 그냥 딱 한 번만 미친놈이 되면 된다.

첨벙!

상혁은 샘플을 채취하기 위해 연 작은 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오수 안에 거침없이 손을 담근 뒤 눈을 감았다.

저 안에 뛰어들 수 없다면 저 안의 물길을 지금 상혁이 서 있는 곳으로 틀어 버리면 된다.

문제는 호텔 전체에서 오수가 모여드는 통로인지라 그 물살이 장마 기간의 계곡물처럼 엄청나게 거세다는 것이었다.

‘스톤스킨. 스트렝스.’

상혁은 팔의 외피를 딱딱하게 만들고 근력을 높이는 마법을 이용해 거센 물살에 팔이 밀리지 않도록 딱 중심을 잡았다.

‘실드. 워터.’

상혁의 심장에 있는 고리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3서클의 방어 마법인 실드는 원래 반원의 형태로 날아오는 공격을 막는 데 애용되는 마법이었다.

마법사가 제대로 1인분 몫을 할 수 있게 되는 게 3서클이란 소리를 듣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3서클에서 배우는 실드와 파이어 볼에 있었다.

그 정도는 돼야 다른 마법사나 기사에게 통하는 마법의 위력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인을 상대로 하면 1서클 마법만 해도 충분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실드는 그렇게 반원형의 형태로 아주 오랫동안 고착화되어 있었다.

그 누구도 반원형의 실드의 형태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실드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공격을 막아 내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혁이 최초로 당연히 반원형인 줄 알았던 실드의 형태를 변형했다.

피잉-!!

마나안이 발동하면서 실드의 마나 구조가 상혁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상혁은 그 마나 구조를 섬세하게 주무르면서 형태를 바꿔 나갔다.

웅웅웅!!

그에 사용되는 마나는 오수 속에 박아 넣은 손을 통해 벌충했다. 반원형의 실드가 지점토처럼 구겨지더니 상혁의 섬세한 마나 컨트롤에 따라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오수 채취 구멍부터 이어지는 투명한 관처럼 실드의 모양이 바뀌더니 엿가락처럼 쭉 늘어나 상혁의 몸 전체를 튜브처럼 감싸 안았다.

외부와 내부를 차단하는 형태로 실드의 모양이 변화한 것이다.

그리고 상혁은 워터 마법을 이용해 물길을 막고 틀었다.

물을 뿜어내는 단순한 1서클의 마법인 워터는 물을 뿜어내기 때문에 지금처럼 강하게 뿜어내면 일시적으로 물길을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실드로 그 물길을 받쳐주자 변형한 실드 안으로 오수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콸콸콸!!

거센 물줄기가 실드를 때렸지만 실드는 파이어 볼에도 견디는 방어 마법이다. 물줄기 정도는 얼마든지 버텨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상혁의 발부터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상혁의 머리끝까지 물이 차올랐다. 상혁의 모습이 어느새 사라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상혁은 전력을 다해 마나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3서클.

마나를 300올의 실로 만들어 단단하게 짠 마나의 고리는 튼튼했다. 그 튼튼한 기초를 바탕으로 마나를 흡수하기 시작하자 그 위로 4서클로 가기 위한 마나 실들이 서서히 고리를 형성해 가고 있었다.

만들고 엮고 만들고 엮고.

상혁이 그렇게 마나를 흡수하느라 무아지경에 빠진 사이 백정연은 입을 쩍 벌리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갑자기 오수를 마시고 옷을 벗길래 미친놈인 줄 알았다. 여차하면 뛰쳐나가 경비를 부를 생각이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마법에 그녀는 그 타이밍을 놓쳤다.

갑자기 물길이 바뀌더니 오수가 구멍으로 흘러나오고, 그 오수가 바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상혁의 몸 주변을 돌며 상혁의 모습을 가렸기 때문이다.

오수는 계속해서 흘렀다.

상혁이 변형한 실드는 오수를 들어오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오수가 나가는 문까지 정해 두었기 때문이다.

“지, 진짜 마법사라고?”

백정연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상혁은 자신이 마법사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상혁이 드레스를 마치 막 만든 것처럼 깨끗하게 만들어 주었을 때 상혁에게 무언가 특별한 비법이 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상혁은 자신이 말한 대로 진짜 마법사였다.

마법사라니. 백정연은 자신이 살아온 세상의 기준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건 어디 미국의 유명한 히어로 영화가 아니었다.

그런데 진짜로 마법사가 있었다.

손짓 한 번으로 오염된 드레스를 깨끗하게 만들고 오수를 조종하는 마법사가.

“세, 세상에.”

하지만 상혁은 영화 속 마법사와는 확실히 하는 짓 자체부터가 달랐다.

놀란 백정연은 투명한 통에 담겨 있는 것처럼 흘러나오지 않는 오수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탄탄한 무언가가 만져졌다.

진짜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오수를 잡아 놓고 있다는 뜻이었다.

콸콸콸.

백정연은 오수가 흘러들어오는 곳과 나가는 곳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상혁이 하는 행동에 의도가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법사다.

기존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그 본질은 인간인 마법사.

그러니 같은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판단하고 유추해 낼 근거가 있으리라 그녀는 믿었다.

“……어?”

그렇게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백정연의 눈이 커졌다. 오수가 흘러들어와 상혁의 몸을 한 바퀴 휘감고 다시 흘러나가는 길에 그녀는 작은 변화를 눈치챘다.

그건 바로 색. 오수는 탁했고 불결했다. 보기만 해도 그럴 정도의 색을 가지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빠져나가는 오수의 색은 그 전보다 훨씬 덜 탁했다. 심지어 어느 정도 투명해지기까지 했다.

백정연은 놀란 눈으로 그것을 되짚어 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발견할 수 있었다.

상혁의 몸을 휘감은 오수가 상혁의 머리에서 발끝으로 가는 동안 그라데이션으로 뿌린 것처럼 그 색이 점점 더 옅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옅어진 것이 다시 돌아나갔다.

“정화한다고? 오수를?”

백정연의 두 눈이 커졌다.

* * *

“어리석네요.”

“아가씨께서 고집을 부리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어리석은 누님이 아니신데. 아니 눈앞에서 자신의 염원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 같았을 테니 판단력이 흐트러졌을지도.”

백도현은 피식 웃었다. 그는 지금 이양송에게서 그 호텔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 보고를 받은 후였다.

“절대로 조작 같은 소리가 나오지 않게 모든 것을 FM대로 진행하라고 전해 주세요. 신경도 써 주시고.”

“예, 사장님.”

박정철은 고개를 숙였다. 백정연은 쓸데없는 고집을 부렸다. 백도현은 차라리 자신이었다면 거기서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누나인 백정연은 결국 그런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건 최악이었다. 백도현 자신이 펼쳐 놓은 그물에 완전히 잡혔다는 뜻이니까.

“누님이 고래가 아닌 다음에야 그물을 빠져나가진 못할 겁니다. 애초에 고래라면 내가 그물만 준비했을 리도 없고.”

박정철은 그런 백도현에게 말했다.

“SG호텔&리조트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브랜드 사업과 관련해서 준비하여 보고토록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백도현의 목적은 단순히 백정연을 후계자 쟁탈전에서 뒤처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신중한 대신 한 번 움직이면 상대의 모든 것을 빼앗아 왔다.

백도현은 백정연에게서 호텔 사업권을 아예 빼앗아 올 생각이었다. 그녀가 고집을 부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되었다는 걸 회장이 알게 된다면 그녀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쉽네요, 누님.”

백도현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 *

후우욱!!

흘러들었던 오수가 상혁이 생성해 낸 깨끗한 물에 모두 다 씻겨져 나갔다. 상혁은 실드 안에 깨끗해졌다는 것을 확인한 뒤 또 다른 마법을 시전했다.

“클린.”

우우웅!!

혹여나 밖으로 한 방울이라도 샐까 봐 상혁은 완벽하게 모든 오수를 내보낸 뒤 마지막으로 유지하고 있던 실드를 캔슬시켰다.

“후아.”

[이름 : 상혁

직업 : 3서클 마법사

상태 : 근력/1, 민첩/1, 체력/1, 마나/348]

그리고 스텟창을 보니 그 새 마나가 3이나 늘어나 있었다. 상혁은 휘파람을 휙 하고 불었다. 한 시간 정도 그러고 있었던 것 같은데 마나가 3이나 늘다니.

확실히 노다지였다.

“……시원하게 잘하셨나요?”

그런데 그때 백정연이 더할 나위 없이 정중하고 공손한 자세로 상혁에게 말을 걸었다. 상혁은 놀라서 자빠지거나 도망쳤을 줄 알았던 백정연이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계속 거기 계셨어요?”

“네.”

그런 백정연의 얼굴에서는 놀란 기색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상혁은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마치 마법사를 본 적이라도 있는 듯한 차분한 신색이었기 때문이다.

“……진짜 마법사이신가요?”

상혁은 단 한 번도 자신이 마법사가 아니라고 한 적이 없었다.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네. 뭐 이제 와서 숨길 것도 없고, 애초에 숨길 생각도 없었지만.”

자신에게 해가 되거나 할 사람이 아니기에 상관없었다. 그리고 그걸 밖에 말한다고 해도 믿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상혁은 노렸다.

그러니 굳이 힘들게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 것 같았어요.”

“드레스 때는 믿어 주지도 않았으면서.”

“내 눈앞에서 저 더러운 물이 살아 움직이는 걸 봤는데도 안 믿을 수는 없죠.”

상혁은 차분한 백정연을 보면서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그녀는 수상할 정도로 침착했다. 마치 침착한 것을 연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흔까지 살았던 대마법사 상혁은 거기서 위화감을 느꼈다.

“원하는 게 뭡니까?”

상혁이 백정연의 의중을 짚어 내자 백정연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털어놓을 거라면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유심히 지켜봤는데 설마 저 오수를 정화하실 수 있는 건가요?”

상혁이 오수의 마나를 흡수하면서 오수 속의 오염과 독성도 함께 흡수된다. 그것을 상혁은 정화 마법으로 걸러내면서 마나만 흡수하는 형태를 취한다.

그렇다면 남는 오염이나 독성?

몸속에서 태워 버리거나 몸 밖으로 배출한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정화라고 할 수 있었다.

“뭐, 결과적으로는 그거랑 비슷하죠?”

그걸 들은 순간 백정연이 털썩하고 무릎을 꿇었다. 상혁이 놀라서는 눈을 크게 떴다. 백정연은 잽싸게 상혁의 바짓자락을 붙잡았다.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백정연은 상혁을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사력을 다해 상혁의 바짓자락을 움켜쥐었다. 상혁은 화들짝 놀라 바지춤을 붙잡았다. 바지가 흘러내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뭐, 뭡니까!!”

“도와달라구요. 그 마법으로 저 좀 도와주세요. 아니, 살려 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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