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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49화 (48/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49화

49. 잘 먹는 마법사(4)

상혁의 생각 역시 이선호와 비슷했다. 내부 사정은 잘 모르겠으나 돌아가는 상황이 딱 그 꼴이었기 때문이다.

“백도현은 신중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러니 아마 자신의 승기를 굳히기 전까지 계속해서 제 형제들을 물어뜯으려고 할 겁니다.”

“재기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예.”

백도현은 끈질긴 맹수다. 목줄을 물어뜯었다고 해서 방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물고 놓지 않는 성격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양송은 백도현의 오른팔로 후원금 명목으로 막대한 뇌물을 지원받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작자 때문에 완전히 뒤집힌 판결문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백혈병 관련 판결 말하는 겁니까?”

“예. 공장에 문제가 있다는 걸 증명하려면 환경 평가가 필요한데 장관이라는 작자가 매번 SG 측 참고인으로 법정에서 그들의 무고를 증명했습니다. 물론 조작한 증거로요.”

“흠…… 그 작자가 이번에는 여기에 나타났다는 건 그럼?”

“백도현의 의지일 겁니다.”

“돈이 좋긴 좋은 모양입니다? 그런 노인이 태안까지 직접 무거운 엉덩이를 떼서 움직일 정도면.”

“돈의 노예가 된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선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SG를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할 때 그렇게 돈에 넘어가 배신을 하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봐 왔다.

절대적이라 생각했던 법도 법정에서 돈의 힘에 굴복해 그 절대성을 잃는데 사람이라고 어찌 그 돈의 힘을 이겨 내겠는가.

“이양송이란 사람, 온양 공장에도 온 적이 있습니다.”

오승택도 본 적이 있다며 한 손 거들었다.

“그 사람이 오고 간 후로 뉴스에 온양 반도체 공장이 환경 규범을 잘 따르는 모범 공장으로 뽑혀 뉴스에까지 났습니다.”

“그 공장이?”

“예. 사실상 조작한 것이지요.”

상혁이 직접 본 온양 공장은 마나 천지였다. 마나가 천지에 깔려 있다는 건 그만큼 오염이 심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모범 공장이라니.

“거, 돈으로 막 주물러대는구만. 언론부터 시작해서 정부까지.”

이선호와 오승택은 상혁의 말에 놀랍지도 않다는 듯 쓰게 웃었다.

“그런데 만약.”

그때 상혁이 이선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우리가 여기 사장을 도와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계속해서 온양에서부터 사는 곳 주변을 시끄럽게 만들고 상혁까지 건드리려고 했던 백도현이다. 상혁의 원한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귀찮고 무서운 일인지 백도현은 알게 될 것이다.

상혁은 백도현에게 받은 빚을 잊지 않았으니까.

“그러면…… 아마 후계자 구도에서 라이벌이 굳건한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모양새일 테니까 곤란하겠죠?”

“그럼 정해졌네.”

상혁이 씩 웃었다.

“그 환경 평가라는 거. 여기가 정말 깨끗하다고 나오면 되는 거죠?”

* * *

태안 SG호텔에 비상이 걸렸다. 원래 그날 파티를 끝낸 후 서울로 올라갈 예정이었던 백정연은 호텔에 그대로 남았고 서울에서 간부들이 태안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긴급회의가 열렸다.

“최규태 팀장은요?”

“어젯밤 최규태 팀장이 운전하던 차가 차량 결함으로 인해 폭발하면서 현장에서 즉사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냥 갑자기 그렇게 갔다고요?”

백정연은 그럴 리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이번 사건은 의도적으로 환경관리팀에서 결과를 조작하여 환경부에 보낸 것이 문제가 된 일이다.

그리고 백정연은 이 일의 배후에 누군가의 사주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백도현의 스타일이야.’

백도현의 스타일이 딱 이랬다. 백도현은 정면 승부를 절대로 하지 않았다. 백도현은 항상 권모술수와 계략으로 목표를 말려 죽이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는 그런 사건.

백정연은 절로 이가 갈리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녀가 여태껏 염원했던 외국 진출이 바로 눈앞에서 휘청거리고 있었다. 몇 년간 공을 들인 이 사업안이 이대로 쓰러진다면 백정연도 그냥 참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녀가 좌우명처럼 여기는 그걸 잠시 내려놓고 백도현이 원하는 대로 진흙탕 싸움을 한번 거하게 벌여 줄 생각이었다.

‘나는 네 약점이 없을 줄 알아?’

백정연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본부장에게 말했다.

“그날 사고 시각으로부터 5시간 내외에 출국자 명단에 최규태 팀장의 이름이 있는지 확인해요. 그 시각에 공항으로 가고 있었다면 그대로 한국을 뜰 준비를 마쳐 놓았다는 뜻이니까.”

“예, 대표님.”

백정연은 바쁘게 판단을 내리고 지시를 내렸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간부들을 보니 내부적으로는 아직 결속이 단단한 듯 보였다.

‘다 믿을 수는 없겠지.’

백도현은 뱀이다. 뱀 같은 간사함을 가진 백도현은 어떻게든 사람을 흔들고 빈틈을 찾아 그곳을 공략한다.

백정연이 이를 악물고는 지시를 내리고 있는 와중에 비서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대표님. 밖에 대표님과 약속을 했다며 기다리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그, 상혁 씨라고…….”

* * *

“어잇차.”

상혁의 손바닥 위로 광채가 떠오르며 정령 사탕이 만들어졌다. 초아가 그것을 보고 달려들려고 하자 상혁이 주먹을 쥐어 정령 사탕을 삭 숨기고는 빙긋 웃었다.

“자, 우리 초아 착하지?”

뽀로로!

초아가 작은 가지를 미친 듯이 끄덕였다. 상혁은 강아지 꼬리처럼 살랑거리는 나뭇잎을 보면서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자. 저기 한번 가 보자.”

둥실!

그러자 초아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초아는 풀의 정령이다. 정령은 물리적인 법칙을 무시하는 일종의 반 사념체다.

허공으로 떠오른 초아가 천장에 가서 납작 달라붙었다. 그러고는 상혁이 손가락을 튕겼다.

“동화.”

뿌드득!

스스슥!

자연계 정령은 기본적으로 자연과 동화할 수 있는 특질을 가지고 있었다. 엘프들에게는 당연하게 알려진 상식인데 인간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상식이었다.

“멍청한 정령사들이 정령들을 전투용으로만 쓰니까 그렇지.”

자연의 일부인 정령이 주변 환경과 동화하지 못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령과 유대감이 깊을수록 정령은 훌륭한 척후대나 감시 카메라의 역할을 해 준다.

지금 상혁이 하고 있는 연습도 그것의 일환이었다.

3서클에 도달하면서 초아의 활동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을 정도의 마나가 모였기 때문이다.

“오케이! 잘했어!”

시야까지 공유해 성공을 확인한 상혁이 손가락을 탁하고 튕기자 초아가 뽀르르 날아들었다. 상혁이 손에 들려 있던 정령 사탕을 내밀자 초아가 가지로 그것을 소중하게 안아 들고는 상혁의 어깨 위로 날아가 앉았다.

“그렇게 좋아?”

끄덕끄덕.

정령 사탕은 정령과의 유대감을 끌어올리는 데 즉효를 가지고 있었다. 단지 마나에서 가장 순수한 정령력을 정제하기 위해서는 상혁 정도의 마나 제어력이나 엘프 정도의 친화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즉, 이 방법은 인간 중에서는 유일하게 상혁만 가능한 방법이었다.

“들고 있기만 해도 향기에 홀려서 정령들이 모여들었는데.”

지구에서는 아직까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정령들이 형체조차 유지하지 못 할 정도로 자연 상태가 최악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그렇게 자연을 파괴한 인간이 만들어진 오염물질에서 마나가 느껴지니 상혁은 수수께끼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초아와 놀고 있던 상혁이 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허공에 손을 허우적대고 있으니 미친놈처럼 보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진짜로 왔어요?”

백정연이 그런 상혁을 찾았다. 상혁을 발견한 그녀는 진짜 올 줄 몰랐다는 듯 놀란 눈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견학하고 싶다고 했는데요.”

“아니, 냄새나는 곳을 왜 견학하고 싶다고…….”

백정연은 어제 그 일로 인해 그 모든 평가서가 거짓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환경관리팀에서 손 놓고 있었다면 말 그대로 SG호텔은 어마어마한 양의 오염물을 그냥 방류하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그건 재벌가로서 프라이드가 높은 그녀가 도저히 용납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걸 외부인에게 보여 주고 싶지도 않았다.

“설마 약속한 걸 무르진 않겠죠? 대표라는 분께서?”

그런 백정연의 말을 상혁이 중간에 잘랐다. 그러고는 빙글거리며 웃는 얼굴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한 번 한 약속을 깨는 건 백정연에게 더 못 할 짓이기 때문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가죠.”

백정연은 지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환경부에서 다시 사람을 보내온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리고 환경오염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등 해결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속은 약속이다.

“이쪽으로 오세요.”

다른 사람의 안내는 필요 없었다. 태안 SG호텔은 그녀가 설계 단계부터 직접 참여해 완공한 호텔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모든 지리를 다 훤히 꿰뚫고 있었다.

“원래 이 호텔을 지으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신경 쓴 곳이 오·폐수 방류 정화실이에요. 특히 호텔과 리조트는 생활 오·폐수들이 많고 컨트리클럽은 골프 코스의 잔디 관리 때문에 농업 오·폐수를 따로 분리해야 했거든요.”

타박, 타박.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어디선가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상혁은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마나의 향이 공중에 떠다닌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점점 더 짙게 풍겨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약간의 문제가 생기기는 했지만 제대로 정상화만 시켜도 환경에 영향을 줄 정도의 오염물질은 바깥으로 나가지 않을 거예요. 그게 여기.”

백정연은 환경관리팀이 늘 주기적으로 관리하도록 메뉴얼까지 만들어 놓았던 정화실의 문을 손으로 짚었다. 그리고 목에 건 카드를 가져다 댔다.

지잉-!

“하, 이걸 만들어 놓고 그냥 놀리고 있었다는 거지. 그냥 약물만 풀어서 대충 깨끗해 보이게 만들고.”

환경관리팀의 장부를 조사하자 그들이 지난 세월 동안 감사팀의 눈을 은밀히 피해 탁한 오·폐수의 투명도만 맑게 해 주는 약을 풀어 그냥 무단 방류하였음이 드러났다.

즉, 잔뜩 오염된 오염수가 그냥 바깥으로 흘러나가고 있었다는 뜻이다.

기름 유출 사고를 딛고 지어진 태안 SG호텔이 사실은 기름 유출 사고로 인한 오염보다 더 심각한 오염을 주변에 초래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콸콸콸.

상혁은 사방에서 쏟아져 내리는 오염수들을 보면서 전율했다. 이건 말 그대로 노다지 중의 노다지였다. 이곳에서 쏟아져 내리는 오염수들이 온양 공장보다 마나 함유량이 족히 1.5배는 더 짙었다.

그만큼 더 오염이 돼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자부한 대로 시설이 최신식 설비로 구비되어 있어 냄새는 온양 공장처럼 심하지 않았다.

상혁은 그게 아쉬웠다.

“맛보고 싶은데…….”

“네?”

“오염수를 직접 볼 수는 없나요? 이렇게 유리 너머로 보는 것 말고.”

백정연은 이 괴짜 같은 남자가 또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들 같으면 유리 너머로 보는 것만 해도 거북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생활 오·폐수라는 것은 곧 화장실에서 내려오는 오수도 포함이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이걸 왜요?”

“궁금한 게 있어서요.”

“저쪽으로 가면 되기는 하는데…….”

오·폐수의 성분 등을 분석하기 위해 채취할 수 있는 곳이 있기는 했다. 백정연이 꺼림칙한 얼굴로 상혁을 그쪽으로 데려갔다.

“여기예요.”

상혁은 그곳을 보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상혁의 오른쪽 눈이 찬란한 빛에 뒤덮이더니 상혁의 손에서 마나가 올올이 풀어져 나왔다.

“언락.”

철커덕!!

“어?”

상혁의 한마디에 샘플을 채취하는 구멍이 덜컥 하고 풀렸다. 그리고 백정연이 말릴 새도 없이 상혁이 그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꺄아아악!!”

그런 상혁을 본 백정연의 입에서 뾰족한 비명이 절로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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