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48화 (47/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48화

48. 잘 먹는 마법사(3)

타락 정령이 달려들자 초아가 화들짝 놀라며 상혁의 가슴팍을 타고 등 뒤로 넘어갔다. 상혁은 달려드는 타락 정령을 향해 혀를 찼다.

“에휴. 불쌍한 녀석.”

타락한 정령들은 대개 기구한 운명이었다. 주인이 죽거나, 버림을 받고, 혹은 자연이 훼손되고 망가져 저렇게 변한 존재였으니 말이다.

“이리 오렴.”

상혁의 마나안이 완전히 개안하며 오색찬란한 서기가 상혁의 눈에 서렸다가 사라졌다. 그 순간 상혁에게 날아오던 타락 정령이 허공에서 멈춰 섰다.

“홀드.”

바인드보다 한 단계 윗줄의 구속 마법인 홀드는 마나로 만들어진 유형적인 매개체가 필요한 바인드와는 달리 무형의 마나로 정령체마저 정지시킬 수 있는 마법이다.

정지시키는 상대가 얼마나 크냐, 그리고 격렬하게 반항하느냐에 따라 들어가는 마나가 달라진다. 상혁은 마나가 고갈되는 속도를 느끼며 혀를 한 번 더 찼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아이구나.”

타락 정령은 자연을 다룬다. 정령은 어떻게 보면 원소를 사용하는 마법사의 카운터다. 같은 원소는 아예 먹히지도 않을뿐더러 원소 마법보다 정령이 훨씬 더 빨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타락 정령은 약해질 대로 약해졌다.

“이리 오려무나.”

상혁이 허공을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그러자 타락 정령의 주변으로 마나가 모여들더니 타락 정령을 스윽 감싸 안았다.

꿈틀.

타락 정령은 상혁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꿈틀거렸지만 상혁의 마나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보통의 3서클이라면 불가능했겠지만, 날 만난 게 너에게는 불행이구나. 물론 불행 중 다행이고.”

3서클 마법사라면 타락 정령을 이렇게 붙든다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상혁도 마나안을 개안하지 않았더라면 3서클로는 정령을 보고 느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법사가 정령을 보기 위해서는 최소한 5서클에 도달해야 한다.

아니면 정령 친화력이 매우 뛰어나거나.

그러나 상혁에게는 마나안이 있었다.

상혁이 손을 끌어당기자 타락 정령이 둥실 하고 상혁이 있는 곳으로 가까워졌다. 그러자 초아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상혁의 셔츠 사이로 타락 정령을 보는 것이 느껴졌다.

“네 친구다, 초아야.”

초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저런 친구는 둔 적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쿡 하고 웃은 상혁은 타락 정령을 눈앞까지 끌어당겼다.

다라란~ 다라란~

주변에는 여전히 평화로운 음률이 흘렀고 사람들이 와인잔을 든 채 떠드는 데 여념이 없었다. 자신들의 주변에 타락한 사념이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자, 봐 봐.”

상혁이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마나가 일어나 타락 정령을 감싸고 있던 희뿌연 검은 안개 같은 것을 밀어냈다. 저 검은 안개는 상처받은 정령의 원한이다. 안개가 꿈틀거리면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상혁은 꿀렁대는 안개를 보며 씩 웃었다. 저 검은 안개는 부정적인 마나의 정수다. 그리고 저런 부정적인 마나는 아주 좋은 에너지원이 된다.

물론 잘 거르면 말이다.

“고맙다.”

안개가 꿀렁이며 상혁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상혁은 마나안을 통해 안개가 움직이려는 방향을 미리 알고 있었다.

아예 그쪽으로 마나의 통로를 만들어 그 끝을 자신의 몸에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흡입하자 검은 안개가 마나의 통로를 통해 쭉 하고 상혁의 몸으로 빨려들었다.

[#$^#%$&@!!]

그러자 타락한 정령이 비명을 질렀다. 검은 안개가 빠져나가는 것은 꽤 고통스럽다. 감정에 뿌리내린 부정적인 마나가 강제로 뽑혀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타락한 정령은 정화가 된다.

“정화.”

상혁은 검은 안개가 빨려 들어오는 마나 통로 안에 몇 개의 필터를 이미 깔아 놓았다. 그 필터를 거치면서 검은 안개는 순수한 마나로 변모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화 마법을 통해 정화하면 된다. 상혁은 두 눈을 감고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마나가 빨려 들어오면서 세 번째 고리가 더 튼튼해졌다. 들어온 마나를 섬세하게 한 올의 실로 잘 꼬아서 고리에 더하고, 또 실을 만들어 고리에 더했다.

[이름 : 상혁

직업 : 3서클 마법사

상태 : 근력/1, 민첩/1, 체력/1, 마나/345]

타락한 정령의 사념을 흡수해 마나가 올랐다. 그것도 무려 5나 올랐다. 상혁은 씩 웃으며 입을 살짝 벌리고는 트림하는 척을 했다.

“잘 먹었습니다.”

부정한 사념체가 사라졌다. 그러자 사념에 뒤덮여 있던 정령의 몸체가 드러났다. 손바닥이 따끈따끈해졌다. 상혁은 똬리를 튼 채 웅크리고 있는 작은 도마뱀을 보며 웃었다.

“불의 정령.”

호빵을 손에 얹은 것처럼 따끈한 불의 정령은 작고 약했다. 하지만 정령 자체가 품은 영혼은 놀라울 정도로 깨끗했다.

본래 정령이란 이런 존재였다.

가장 순수하고 깨끗한 혼을 가진 존재. 자연 그 자체가 낳은 존재인 정령은 원래 이랬다. 상혁은 빙긋 웃었다.

“난동을 부렸으면 꽤 큰일이 났겠는데.”

대개 근원지를 찾을 수 없는 화재가 일어나면 이런 불의 정령이 타락해서 불을 지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게 지구였으면 그런 게 대참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가나안과는 달리 지구는 아주 작은 불에도 거대한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휘발성 물질이 곳곳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상혁은 예견된 재앙을 막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시 정령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테니까. 좋은 골렘이 되겠어.”

따끈한 온기를 내뿜는 불의 정령이 작은 보석으로 변했다. 정령이란 가장 순수하고 깨끗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타락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 상혁 같은 마법사가 정령사가 사념체를 걷어 내면 그들은 작은 보석이 된다.

정령석.

정령의 영혼을 품은 보석.

그리고 정령석은 마법사에게 아주 좋은 재료가 된다.

골렘 등의 마법 생물체를 만들어 낼 때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정령석이기 때문이다.

“정령석 좋고.”

상혁은 보석을 주머니에 쏙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초아가 숨은 곳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불이었네. 풀인 너랑은 사이가 안 좋을 법도 하겠다.”

꼬물꼬물.

셔츠 사이로 가지 하나가 쏙 나와서는 상혁의 손을 간질였다. 피식 웃은 상혁이 혹시 주변에 이런 애들이 더 없나 두리번거렸다. 4서클에 오르면 만들고 싶은 애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상혁의 눈에 백정연이 들어왔다.

순백에 수정이 반짝거리는 드레스를 입은 백정연은 어딜 가든 눈에 띄었다. 그런데 그런 백정연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머리가 허옇게 센 노인은 비열하게 웃고 있었고 외국인 부부가 심각한 표정으로 노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딱 봐도 백정연에게 뭔가 곤란한 상황이 벌어진 것 같았다.

“또 뭐야? 궁금해지게.”

마법사란 본래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족속 아닌가. 상혁이 귀에 음성 증폭 마법을 걸었다.

* * *

“환경부 장관인 이양송입니다. 대사, 부인.”

백정연은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환경부 장관을 보면서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원래 장관 정도 되면 미리 그 보좌관에 의해 의전이나 이런 것들이 의논이 되기 때문이다.

즉 이건 사전에 알려지지 않은 방문이었다.

“장관님.”

“백 대표님. 여기 계셨군요. 꼭 말씀드릴 일이 있어 직접 왔습니다.”

이양송의 말에 백정연의 표정이 슬쩍 변했다. 내자불선선자불래(來者不善善者不來)라고 했다. 오는 사람은 착하지 않고 착한 사람은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양송은 착한 사람일까?

“지난해 저희 환경부에 SG호텔&리조트에서 보고해 주신 환경 평가 보고서 있지 않습니까?”

환경은 최근 몇 년간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최대 화두였다. 지구의 환경오염이 극에 달하고 탄소 배출 규제 등 지구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대두됨에 따라 정부에서도 기업들을 대상으로 환경상 등을 선정하여 주고 있었다.

한마디로 국가에서 공인하는 상인데 환경보호에 동참했다는 것을 국가에서 인증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백정연은 여기에 꽤 신경을 썼다.

해외 진출에 늘 목마르던 백정연은 한국보다 더 환경에 관심이 많은 유럽 국가 등에 이런 국가 인증 수상 경력 같은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 내다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지금 장관이 대사 부부가 있는 앞에서 꺼내 든다?

‘설마 도현이가.’

이런 방식으로 견제를 하는 건 백도현의 방식이다. 백정연이 서둘러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찰나 이양송이 말했다.

“그게 조작되었다는 투서가 접수됐습니다. 실질적인 조사 결과는 다르다고요. 그래서 곧 검찰 고발이 이뤄질 예정입니다.”

“고, 고발이요?”

이양송은 얄밉게도 이 이야기를 대사 부부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굳이 영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대사의 얼굴이 굳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의 고향인 메라노에 세워질 호텔에 그런 문제가 있다는 건 대사가 결코 용납하지 못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럴 리가요. 분명 환경관리팀에서 엄격한 기준을 거쳐…….”

“저흰 투서가 들어왔으니 절차대로 조사를 진행할 겁니다. 그걸 미리 알려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백정연은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양송이 그냥 왔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건 거대한 그림이었다.

백정연을 곤경에 빠뜨리고 SG호텔&리조트의 평가를 깎아 먹게 만들려고 하는 누군가의 계략이었다.

‘백도현!’

이런 걸 할 사람은 동생인 백도현밖에 없었다. 물증이 없지만 심증은 확실했다. 백정연이 이를 뿌득 갈았다.

“다시 조사하면 명백하게 밝혀질 일이 아니겠습니까.”

“수치가 조작되었다고…….”

“명확한 증거는요?”

이양송은 백정연을 보면서 비웃었다. 지금 그녀는 엔딩이 정해진 극 안에서 발악하고 있었다. 이미 SG호텔&리조트의 환경 평가서는 실제와는 다르게 조작된 것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시 조사한다고 해 봤자 그녀의 목에 올가미를 거는 일에 불과했다.

“다시 환경 평가원을 보내서 검사하세요. 그렇게 해서도 제가 조작했다는 결과가 나오면 달게 벌을 받겠습니다.”

이양송은 웃었다. 그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이렇게 하면 오히려 백도현이 기뻐할 것이라 생각하며 이양송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그때까지 유예하도록 하겠습니다.”

백정연은 그런 이양송을 보며 속으로 치를 떨었지만 겉으로는 웃었다. 그러고는 대사에게 말했다.

“무언가 오해가 있었던 듯합니다.”

“재조사 결과가 나오면 그때 다시 이야기를 하시죠.”

좋은 분위기가 깨졌다. 대사는 SG호텔의 말을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고 백정연은 속으로 이를 까득 깨물었다.

그러나 끝까지 웃는 얼굴로 백정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해라는 걸 금방 아시게 될 겁니다.”

* * *

“어딜 다녀오시는 길이십니까?”

“파티요.”

“갑자기 가신 곳이 파팁니까?”

이선호가 묻는 질문에 상혁은 자신이 백정연을 만났노라고 고백했다. 그러자 이선호가 눈을 크게 떴다.

“백정연? SG의 공주가 지금 여기 있습니까?”

“네. 그런데 공주요?”

이선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SG 일가 중에서는 사람답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죽고 살고 한다고요. 꽤 인간적이라고 하더군요.”

상혁은 가만히 듣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그 소리가 맞는 듯했다.

“그리고 환경부 장관도 있었습니다.”

상혁은 백정연과 이양송 사이에서 오간 대화를 전부 다 들었다. 그리고 백정연이 곤경에 빠졌다는 것도 눈치챘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백정연을 공격하려 한다는 것도.

“이양송? 어째서. 이양송이면 백도현의 오른팔입니다.”

이선호의 말에 상혁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했다.

“후계자 싸움이네요.”

“후계자?”

상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