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45화
045. 사치스러운 마법사(5)
디자이너는 사기꾼을 쳐다보는 눈빛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그녀의 상식 안에서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하얀 천에 오염이 된 떡볶이 소스를 무슨 수로 깨끗하게 지워 낸다는 말인가. 그것도 묻고서 바로 발견한 것도 아니고 시간이 흘렀다.
“불가능해요. 한 번 오염된 천은 절대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구요.”
디자이너는 앞에 백정연이 있다는 것도 잊고는 상혁에게 따져 물었다. 상혁은 자신에게 열을 내는 디자이너를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할 수 있다니까요?”
“어떻게요!”
“음, 마법으로?”
상혁이 씩 웃었다. 그러자 디자이너가 혐오 섞인 눈빛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자신을 모욕한다고 느낀 것이다.
하지만 상혁은 진심이었다.
“대표님. 절대로 이런 사람한테 맡기면 안 돼요. 저 예술 작품을 망칠 겁니다.”
디자이너는 이제 백정연에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백정연에 데려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곤란해진 것은 백정연이었다.
“어떻게, 해요 말아요.”
“절대 안 됩니다! 그건 저 예술품에 대한 모욕입니다!!”
백정연은 갈등했다. 그녀에게는 저 드레스가 꼭 필요했다. 오늘 같은 중요한 자리에 맞춰 준비한 드레스이기 때문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상혁이 없애지 못한다면?
백만 달러를 물어내겠다고 했다. 이내 백정연의 눈이 차분해졌다.
“김해선 디자이너님.”
“예, 대표님.”
“디자이너님은 완벽하게 저 흔적을 지우지는 못한다는 소리죠?”
“예.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옷을 다시 만드는 게 아니라면요. 최대한 얼룩을 지우되 그걸 티가 나지 않게 조치는 취할 수 있습니다.”
상혁은 귀를 후비적거렸다. 자신한테 맡기던 저 디자이너에게 맡기듯 전혀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만약 티가 난다면요?”
“네?”
“그러고서도 흔적이 남는다면요?”
“…….”
그걸 왜 자신에게 묻는다는 말인가. 자신은 백정연이 부탁한 일을 최선을 다하면 됐지 그다음에 뭐 어쩌란 말인가.
“됐습니다. 저분한테 맡길게요.”
백정연은 상혁을 가리켰다. 그러자 디자이너가 펄쩍 뛰었다. 하지만 백정연의 말에 디자이너는 입을 다물었다.
“완벽하게 못 지운다면 백만 달러를 배상한다고 했어요.”
“…….”
자신이 못 지운다면 백만 달러를 내놓겠단다. 그러는데 게다가 대고 무슨 소리를 한단 말인가. 그리고 이 드레스의 주인은 백정연이다.
백정연이 그러겠다고 하면 그러는 것이다.
“대신 완벽하게 지워졌는지 아닌지는 디자이너님이 판단해 주세요.”
“네.”
디자이너가 어디 두고 보겠다는 듯 두 눈에 불을 켜고 상혁을 노려봤다. 상혁은 그 따가운 눈빛에 볼을 긁적였다.
“사람이 의심은 참 많아서. 자, 거기 백도현이 누님.”
“백도현?”
상혁의 호칭에 백정연이 눈을 치켜뜨자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사이에 공통으로 아는 사람이 백도현이라서요.”
“도현이를 알아요?”
백정연이 상혁을 쳐다봤다. 상혁은 아무 말 없이 씩 웃었다.
“자. 내가 마법사라고 했죠? 잘 보세요.”
상혁은 드레스에 다가가 손을 얹었다. 그러고는 가볍게 마나를 끌어 올리며 마법의 수인을 맺고 영창했다.
“클린.”
그러고는 손을 스윽 하고 내리자 선명하게 남아 있던 붉은 떡볶이 소스가 싹 사라졌다. 난생처음 보는 기사(奇事)에 백정연과 디자이너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짜잔.”
드레스를 순식간에 떡볶이 소스가 묻기 전처럼 새하얗게 만든 상혁이 능청스럽게 두 손으로 드레스를 가리켰다.
눈을 몇 번을 비비고 봐도 드레스의 얼룩이 사라졌다.
“이, 이게…….”
백정연도, 디자이너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옷을 한두 해 본 것이 아니라 저게 눈속임이 아니란 것쯤은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장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잠깐만, 잠깐만요.”
디자이너가 헐레벌떡 뛰어와 드레스를 이리 보고 저리 봤다. 하지만 어딜 봐도 눈속임 따위가 아니었다.
정말로 드레스의 얼룩이 사라졌다.
“당신…….”
“내가 어떻게 지웠을 것 같습니까?”
씩 웃은 상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 백만 달러는 없었던 걸로. 그리고 휴게소에서의 일도 깨끗하게 지우고.”
상혁의 말에 백정연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은 나가려다가 멈칫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이것도 인연이라고 한마디 해 줄까 하는데요.”
“네?”
“저 드레스. 어디 유명한 귀족이나 왕실 테일러가 만든 것 같던데. 맞아요?”
백정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 디자이너의 과거 선조가 이탈리아에서 왕실 테일러였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왕실 드레스에 저런 수정이라. 뭐, 화려하긴 하지만 그리 고급지게 보이진 않네요. 요새는 그런 게 유행인가? 어쨌든 만약 저걸 입는다면.”
상혁은 스윽 백정연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화장은 최대한 연하게. 모든 액세서리는 빼요. 뭐, 머리에 백합으로 만든 장식 정도는 괜찮겠네. 그럼.”
과거 대마법사로 왕실 사교 파티 등 온갖 화려한 자리를 다녔던 상혁의 눈썰미가 발동했다. 백정연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고 상혁은 그 길로 사라졌다.
그렇게 상혁이 사라지고 난 뒤 디자이너는 한참이 지나고서야 백정연에게 말했다.
“완벽…… 해졌습니다.”
“정말 다 지워진 거예요?”
“예. 믿기진 않지만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요.”
디자이너의 목소리는 풀 죽어 있었다. 그렇게 말도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는데 말이 안 되는 것은 바로 그녀의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단 말이죠…….”
“그분 연락처 혹시 아시나요? 네?”
디자이너가 백정연에게 물었다. 하지만 백정연이 상혁의 연락처를 알 리 없었다. 그렇게 디자이너가 축 처진 채로 사라진 뒤 백정연은 홀로 남아 중얼거렸다.
“대체 그 남자는 뭐 하는 사람이지?”
* * *
“오셨군요.”
“네. 어디 다녀오셨어요?”
상혁이 방에 돌아갔을 때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간만에 마법에 대한 심상 수련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저녁 여섯 시가 다 돼선 이선호가 나타났다.
“예. 잠시 근처에 동문이 있어 보고 왔습니다.”
“동문이요?”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친구인데 오늘 대사를 모시고 이곳에 왔다고 하더군요.”
“대사?”
“네.”
상혁은 백정연의 화려한 드레스가 떠올랐다. 그 정도의 드레스라면 대사 정도가 참여하는 파티에서 입을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이 호텔에서 이탈리아 관광에 관련된 세미나가 열린답니다. 그 자리에 대사께서 참석하시기로 했고. 애프터 파티도 있다고 하더군요.”
“세미나라.”
상혁은 빙긋 웃었다. 문득 가나안이 생각났다. 상혁은 마탑주로 발전을 위해서는 건설적인 토론이 필수라고 생각했고 그 때문에 조선 시대의 경연을 비슷하게 베껴 와 세미나와 학회를 열었다.
마법사들이 자신의 지식과 노하우를 교류하는 그런 자리였는데 새로운 지식에 대한 갈망이 큰 마법사답게 한 번 세미나가 열리면 밤이 새는지 모르고 토론을 했던 기억이 있었다.
“재밌겠네요.”
“그런 쪽에 관심이 있으셨습니까?”
“뭐, 공부하는 걸 싫어하지는 않아서. 그나저나 오승택은 어디 있습니까?”
알아서 오겠다고 했던 오승택이 아직까지 연락 두절이었다. 이선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서 상혁은 오승택의 몸에 심어 놓은 마나를 추적했다.
똑똑똑.
그때 방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그리고는 문이 열리고 룸서비스라며 누군가 카트를 밀고 들어왔다. 상혁은 직원을 슬쩍 보고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뭐 어디 코스프레 대회라도 나가는 모양이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건 됐고, 그렇게 해야 안전한 거 맞지?”
다름 아니라 카트를 밀고 들어온 직원은 바로 오승택이었다. 이제는 변장까지 한 것이다. 이선호는 놀랍다는 얼굴로 오승택을 쳐다봤다.
“감쪽같군요. 전혀 몰랐습니다.”
오승택이 우쭐해했다. 하지만 상혁은 인상을 쓰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칭찬해 주지 마십쇼. 버릇 나빠집니다.”
가장 어린 상혁이 그런 소리를 하자 오승택과 이선호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오승택은 불만 있느냐는 상혁의 질문에 얼른 표정을 바꿨다.
“병원에 좀 다녀오느라 늦었습니다.”
“감시자가 있었을 텐데?”
“간호사로 위장했습니다.”
상혁은 잠시 머릿속에 오승택이 여자 간호사로 변장한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자 오승택이 황당하다는 듯 부인했다.
“당연히 남자 간호사였습니다.”
“그래서 안 들켰고?”
“예.”
오승택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험해 볼 만큼 경험해 본 오승택이 저 정도의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위기는 언제나 방심할 때 찾아오는 법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이란 없고 그래서 매사 신중해야만 한다.
“정말이야?”
“…….”
무언가를 아는 듯한 상혁의 말에 오승택은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상혁이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긴 순간 창문 밖에서 스파크가 튄 것이다.
“드론이야.”
드론이 창문 밖을 유영하고 있었다. 상혁은 일렁이는 마나를 통해 그것을 눈치챘다. 만약 심상 수련을 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상혁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방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이었으니까.
‘마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이 확실히 많군.’
사람이 없어도 늘 같은 곳을 24시간 내내 쳐다보고 있는 CCTV나 저런 드론이 그에 해당했다. 마법으로는 마나량이나 집중력 등의 이유로 그런 것이 사실상 힘들기 때문이다.
“그곳에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행을 붙이는 모양이군.”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만큼 백도현이 너를 범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반도체 공장이면 SG전자의 사활이 달린 문제니까. 뭘 가져갔는지 궁금한 거야.”
그러나 오승택은 가져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상혁만 그곳에서 마나를 얻어 갔다. 하지만 그걸 백도현이 알 리 없으니 오승택만 죽어라 쫓는 것이다.
“괜히 나다니지 마. 그게 네 가족들까지 위험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예, 명심하겠습니다.”
“말해 둔 곳이나 가는 길 생각하고 있어. 나중에 밤에 갈 테니까.”
바다로 흘러나간 호텔&리조트의 오·폐수도 중요하지만 오승택은 그 오·폐수들이 모이는 곳을 알고 있다고 했다.
무려 60만 원을 넘게 주고 숙박하는 곳이었기에 상혁은 제대로 뽕을 뽑을 생각이었다. 비록 상혁이 낸 돈이 아니어도 미안한 건 미안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끄응.”
끄응 소리를 내는 오승택을 두고 상혁과 이선호는 밥을 먹기 위해 나왔다. 한 가지 좋은 점이라면 이곳은 호텔 숙박비에 음식값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선호는 60만 원을 진짜 제대로 끝까지 뽑아먹을 생각이었다.
“많이 드세요.”
“저 많이 먹습니다. 아시잖아요.”
“그래서 더 기대가 됩니다.”
기이한 곳에서 불타오르는 이선호를 보면서 피식 웃은 상혁이 로비를 가로질렀다. 그때 저쪽에서 비슷비슷하게 생긴 유럽인들이 몇 명씩 짝을 지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세미나 참석자들인 것 같습니다.”
“태안에서 열리는 세미나에까지 오다니.”
“대사의 힘인 것 같습니다.”
어디나 높은 사람이 온다면 그 아랫사람들이 억지로 와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어깨를 으쓱한 상혁은 그들에게 금세 흥미를 잃었다.
“줄은 어딥니까?”
“저기로 가시면 됩니다.”
SG 호텔&리조트의 저녁 뷔페는 서울의 특급호텔과 같은 가격이었다. 1인에 12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지만 언제나 예약이 꽉 차 있었다.
“뭔 음식에 금칠을 해서라도 나오는 건가?”
혀를 내두른 상혁은 줄 뒤에 가서 슬쩍 섰다. 그러느라 상혁은 미처 보지 못했다. 백정연의 비서로 보이는 사람이 상혁을 찾아 로비에서 목이 돌아가라 열심히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을 말이다.
“오늘 제가 백만 달러 벌 뻔한 거 아십니까?”
“백만 달러요?”
이선호와 잡담을 하느라 정신이 팔린 상혁을 백정연의 비서도 미처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