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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44화 (43/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44화

044. 사치스러운 마법사(4)

“네, 네가 왜 여기에…….”

백정연의 목소리 뒤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느라 백정연은 방금 물에서 나온 상혁의 옷이 바짝 말랐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고작 한 시간 만에 마나가 풍족하게 쌓인 것을 느낀 상혁은 나른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수영하지. 바다 아닌가?”

“어떤 미친놈이 이 날씨에 찬물에서 수영을 한다고!”

“할 수도 있는 거지.

상혁이 태연자약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얄미웠던지 백정연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왜 반말이야!”

“그쪽이 먼저 너라고 하지 않았나?”

상혁은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그게 더 사람을 얄밉게 만들었기 때문에 백정연이 쉭쉭 콧바람을 내뿜었다.

“여기 사장이 왜 그러고 다녀?”

상혁은 바닷바람을 받아 옷이 휭 하고 날리는 백정연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상혁이 이곳에 온 것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백정연이 이상하다고 한 것처럼 이 날씨에 바다 수영을 하는 것이 이상해 보일 것이라는 건 강하도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어서 4서클에 오르든지 해야지.’

4서클에 오르면 투명화 마법을 쓸 수 있게 된다. 마나 소비가 극심하기는 하나 귀찮은 일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내가 여기 대표란 것도…….”

“눈썰미가 좀 좋아서. 휴게소에서 봤던 직원이 발등에 불 떨어진 것처럼 로비를 뛰어가던데. 눈물 자국도 있고.”

백정연은 아까 전 자신이 너무 예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예민하게 소리를 지른 것이 직원에게 상처를 준 모양이었다.

잘근.

백정연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SG그룹이라는 거대한 재벌가의 일가로서 그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따랐다. 재벌은 재벌답게, 가진 자는 가진 자답게 굴어야 하는데 그걸 참지 못해서 다른 사람에게 모진 점을 보였다는 소리다.

“끄응.”

백정연은 앓는 소리를 냈다. 바로 올라가서 사과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상혁이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그럼 난 간다.”

“어딜 가!”

“여기 투숙객이야. 손님인데 아무리 대표라고 해도 반말 계속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

“긋…….”

화가 난다고 해서 맨 처음 무작정 반말을 지르고 시작했던 게 원인이었다. 게다가 어쩜 그렇게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얄미운 것인지.

하지만 백정연은 감정을 최대한 다스렸다.

‘손님이다. 손님이야.’

백정연은 가까스로 화를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상혁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했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으니 쌤쌤으로 합시다. 내가 당신한테 떡볶이도 쏟았으니까.”

그때 백정연의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 합당한 방법으로 눈앞에 뻔뻔한 저 남자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줄 방법이 떠오른 것이다.

“마침 잘됐네요.”

“……?”

상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바닷바람이 쉭쉭 불어왔다. 백정연은 그런 상혁에게 말했다.

“그쪽이 쏟은 떡볶이 소스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직접 공수한 드레스가 이염됐다네요. 아주 중요한 드레스라. 물어 주셔야 될 것 같은데요.”

“물어 달라고요?”

“네.”

상혁은 턱을 슥 쓸었다. 머릿속으로 잠시 백정연의 말에 허점이 없나 생각했지만 없었다.

분명 사실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래서 얼만데요?”

“스와로브스키 수정 10만 개를 이탈리아 장인이 한땀 한땀 손으로 붙여서 만든 세계 유일의 드레스예요. 제작하고 공수하는 데만 약 30만 달러가 들었죠. 그걸 판매한다고 생각하면…….”

100만 달러, 한화로 12억을 불러도 모자랄 것이다. 옷 하나에 그 정도 가격이 가능했다. 이건 단순한 드레스가 아니라 실제 수정이 붙은 예술품이었기 때문이다.

“100만 달러?”

“네.”

백정연은 상혁이 입을 크게 벌리는 것을 보고는 통쾌함을 느끼며 씩 웃었다.

원래 이렇게 돈으로 누군가를 압박하는 것을 백정연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재벌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벌로서의 프라이드가 강한 그녀는 돈 자랑을 혐오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게 이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 돈은 없는데…….”

그러나 상혁의 반응은 백정연이 바란 것처럼 그렇게 극적으로 터져 나오지 않았다. 조금 당황한 것은 맞았으나 그렇다고 난색을 표하거나 절망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백만 달러라니까요? 당신 그럴 돈 없다면서요.”

“그런데요. 그렇다고 못 갚지는 않을 것 같아서요.”

백정연이 말하는 상대는 전직 대마법사다. 비록 지구로 돌아와 3서클에서 방황하고 있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법사다.

‘12억? 큰돈이기는 하네.’

고시생이던 시절 이런 일을 마주했으면 아마 상혁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을 것이다. 원룸이나 오피스텔에서 지낼 돈도 없어 고시원 생활을 몇 년이나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은행을 털어도 되고. 아니면 뭐 너튜브 같은 거라도 찍을까? 그래. 미국에는 초능력 사냥꾼도 있다면서. 백만 달러 준다고.’

마법사가 지구에서 돈을 벌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다.

“못 갚지는 않는다고요? 갚을 수 있다고 그걸?”

백정연이 재차 상혁에게 물었다. 지금 입은 옷이나 그런 걸로 봐서는 도저히 그럴 돈이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걸로 골려 준 뒤 재벌로서의 자비를 베풀어 얄밉게 군 대가를 받아 내려고 했는데 반응이 전혀 예상 밖이었다.

“그런다니까요.”

“그…….”

“뭐야. 갚으라는 겁니까 갚지 말라는 겁니까?”

백정연이 계속해서 같은 걸 묻자 짜증 난 상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자 백정연이 멈칫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마음에 안 들어.”

백만 달러.

큰돈이지만 그녀의 수준에서는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다. 상대가 이렇게 나오니 이제 재미도 없어졌다.

“됐어요. 그냥 당신 곤란해하는 것 좀 보려고 장난친 거니까.”

“그래요? 뭐, 받으셔도 되는데.”

“끝까지 얄미우시네. 휴게소에서도 그렇고, 사람이 곤경에 처했는데 그 음식이 넘어가요?”

상혁은 아까 휴게소에서의 일로 따지는 백정연의 모습에 볼을 긁적였다. 생각해 보니 백정연에게 사과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뭐. 그걸 버릴 순 없었으니까요. 생각해 보니까 내가 미안하다는 소리도 안 했네. 미안합니다.”

상혁의 사과에 백정연의 미간이 살짝 풀렸다. 이내 백정연은 한숨을 내쉬면서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과는 받을게요.”

“음…….”

“전 여기 더 있을 테니까 먼저 들어가세요.”

백정연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상혁은 그런 백정연의 뒷모습을 보면서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이내 그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 탓에 머리가 까치집이 된 상혁이 가려다가 말고 뒤를 돌아 백정연에게 말했다.

“드레스에 떡볶이 국물 튄 거. 그거 지워 주면 되죠?”

백정연이 고개를 돌려 상혁을 쳐다봤다.

* * *

상혁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휘적휘적 걸었다. 그런 상혁을 뒤에서 백정연이 따라붙으며 재차 되물었다.

“지울 수 있다고요?”

“네.”

“어떻게요? 그거 절대로 안 지워질 것 같던데.”

백정연은 수도 없이 많은 드레스를 입어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배우진 않았어도 많이 입어 봤기 때문에 감이 딱 왔다.

새하얀 그 드레스에 묻은 떡볶이 소스는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저 색을 옅게 만들 수는 있어도 절대로 완벽하게 지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상혁은 그게 가능하다 호언장담했다.

“다 방법이 있습니다.”

“말도 안 돼.”

“사실 저, 마법사라서 그런 거 가능합니다.”

큭큭대면서 말하지만 상혁은 늘 진실을 말한다. 하지만 그걸 믿는 것은 듣는 사람의 자유다. 백정연이 인상을 와락 찡그렸다.

“마법사요? 지금 저랑 장난해요?”

“뭐, 그건 마음대로 생각하시고. 내가 내 시간 들여가면서 당신이랑 장난해서 얻는 게 뭐 있습니까? 그래도 미안해서 도와주려는 건데.”

“뭐 그건 그렇지만…….”

“계속 그렇게 뒤에서 쫓아 올 겁니까?”

백정연은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어느새 호텔 안에 있었다. 상혁을 쫓아오느라 주변을 미처 살피지 못한 것이다.

백정연의 그런 모습을 보고 호텔 직원들이 눈이 커져 있었다. 백정연이 남자를 쫓아가다니. 저 남자는 누구인가와 함께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쏟아진 것이다.

“흡.”

백정연은 놀라 허리를 곧게 폈다. 상혁은 그런 백정연의 보폭에 맞추지 않고 휘적거리며 걸어 나갔다.

다시 거리가 확 멀어지자 백정연은 고상하게 걷던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 진짜! 천천히 좀 가요!”

“한시가 바쁜데 뭔 여유를 부립니까.”

재벌은 재벌답게. 그 공식이 호텔에서 깨졌다. 백정연은 그런 상혁을 도끼 눈을 뜨고 쳐다봤지만 상혁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지금 상혁은 이곳의 마나를 흡수하는데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도 시원찮을 판이었다. 괜히 마음이 약해져서는, 상혁은 속으로 후회했다.

그렇게 호텔리어들, 직원들, 그리고 경호원들의 놀람에 찬 시선까지 받아 낸 상혁은 백정연이 이곳에 오면 머무르는 방에 도착했다.

“으리으리하네.”

대표가 오면 머무는 곳이었기 때문에 이곳의 가장 비싼 프레지덴셜 스위트룸보다도 방이 더 좋았다.

그곳의 숙박비가 하룻밤에 최소 800에서 시작하니 이곳은 그보다도 비싼 곳이라는 소리였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그런 티가 났다.

“누가 디자인한 겁니까?”

상혁이 감탄하자 백정연의 어깨가 슬며시 올라갔다.

“독일의 토니 슈바인슈타이거라는 디자이너가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으신 분이에요. 공간 디자인도 함께 하셔서 이런 분위기가 나왔죠.”

“토니 슈바인슈타이거…….”

상혁은 그 이름을 되뇌었다.

“나중에 디자인 맡겨야겠다.”

“풉.”

백정연이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다. 무슨 동네 인테리어 업자도 아니고, 무려 토니 슈바인슈타이거에게 디자인을 맡기겠다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온 것이다.

하지만 상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마탑 디자인도 끝내주게 잘하겠지? 연구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살 환경은 돼야지.’

마탑은 마법사의 정수가 담긴 장소다. 마법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바로 마탑이다.

그리고 상혁은 이 지구에서도 마탑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서울시 한복판에 그런 빌딩도 서는데.’

잠실에 있는 높다란 그 빌딩도 있는데 마탑이라고 세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백정연은 자신의 콧방귀에 반응도 하지 않는 상혁을 보면서 그가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체 뭐 하는 남자지?’

그 정도가 되자 이제는 순수한 호기심이 들었다.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백만 달러를 듣고도 무덤덤하고, 토니 슈바인슈타이거에게 디자인을 맡기겠다는 것도 진심이었다.

대체 이 자신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대표님.”

그런데 방 안에는 선객이 와있었다. 상혁이 로비에서 봤던 그 직원의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그리고 그녀의 뒤로한 여자가 서 있었다.

“말씀하신 대로 지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리조트에 디자이너분께서 계셔서 모시고 왔습니다.”

“오, 그래요?”

백정연이 반색했다. 옷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는 디자이너다. 디자이너라면 상혁이 지울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보다 훨씬 더 믿을 만한 전문 지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작년 한국디자이너 패션 어워즈에서 최고 디자이너 상을 받으신 김해선 디자이너님이십니다.”

백정연의 눈이 반짝 빛났다. 마침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부탁드려요. 반드시 필요한 드레스예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지우기는…….”

디자이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은 높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옷도 아니고 보는 것만으로도 손이 떨리는 예술품 같은 드레스면 더더욱 솔직해야 한다.

잘못하다가 인생 말아먹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때 뒤에 가만히 서 있던 상혁이 입을 열었다.

“아니. 난 할 수 있다니까요?”

디자이너가 불신의 눈빛을 담아 상혁을 쳐다봤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백정연의 시선이 상혁과 디자이너 사이를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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