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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43화 (42/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43화

043. 사치스러운 마법사(3)

덜덜덜.

신용카드를 내미는 이선호의 손가락 끝이 벌벌 떨렸다. SG호텔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방이 없을 때가 많았다.

하룻밤 방을 빌리는 가격이 50만 원에 육박했고 봉사료와 부가세를 합치면 60만 원 중반에 달했다.

이 정도면 서울 한복판에 있는 5성급 호텔과 똑같은 가격을 받는 셈이다.

그 정도로 인기가 있고 인정을 받는다는 뜻이었다. 소문에는 이곳 사장이 가장 공을 들인 호텔과 리조트 중 하나가 바로 태안이라고 했다.

그만큼 애정이 많다는 뜻이다.

“화려하네.”

그 때문인지 호텔 로비는 화려했다. 리조트는 휴양 컨셉이라 완전히 다른 분위기라고 하는데 호텔은 럭셔리함의 끝이었다.

미술관을 모티브로 한 듯 로비 중간에 유명 작가들이 만든 비싼 조형물들이 사람들의 동선을 만들었고 천장에는 20m 길이의 거대한 수정 고래가 떠 있었다.

수정 고래의 설명란에 이탈리아의 유명 미술가가 만든 작품으로 그 가격이 30억대에 달한다는 것에 상혁은 입을 떡 벌렸다.

“확실히 태가 나.”

그냥 비싸기만 한 걸 늘어놓는다고 해서 이런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고풍스럽고 우아한 럭셔리란 건 생각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조건들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난다는 건 사장과 그 휘하의 직원들이 정말 진심으로 이곳에 정성을 많이 들였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공작가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겠는데?”

가나안에서는 그런 고풍스럽고 우아한 럭셔리함을 내는 것이 곧 그 귀족의 권세이자 소양이었다.

인맥을 바탕으로 한 사교가 곧 전부나 다름없는 수도의 귀족들은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예술품들을 사들여 저택을 꾸몄다.

어떤 저택에 무슨 예술품이 있다더라, 저 저택은 누가 공간 디자인을 한 것이더라 하는 등의 소문이 사교계에 나는 것 자체가 영광이자 명예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돈이 많고 명문일수록 더 유명했다.

상혁은 이 호텔 로비가 가나안의 공작가 수준의 럭셔리함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왕가?

그들은 차원이 다르다.

한 나라를 다스리며 계급의 최정점에 선 왕가의 화려함은 다른 곳과 비교를 불허한다.

“돈지랄이지.”

돈이 적당히 있어서는 안 된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말 그대로 돈으로 지랄을 해야 이런 분위기가 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귀족이 그러지는 않았다.

수도에 있는 귀족들이야 그게 낙이요 자신들의 권력의 수단이었지만 수도에만 귀족이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당장 상혁만 해도 귀족 중에 가장 존귀하다는 대공이었다.

그러나 상혁의 저택은 마탑이었고 마탑이 곧 저택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마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게다가 그런 명예 놀음을 싫어했기 때문에 사람을 초대한 적도 없었다.

어쨌거나 상혁은 이선호가 떨리는 손으로 카드키를 받아오는 것을 보면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가, 가시죠.”

변호사면 돈도 잘 버는 양반이었지만 이선호는 그런 종류의 변호사가 아니기는 했다. 돈보다는 정의를 더 좇았으니 SG그룹에 계란으로 바위를 쳤다가 천안으로 쫓겨 내려온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하룻밤 60만 원짜리가 부담이 될 수밖에.

“덕분에 좋은 구경하겠네요.”

“아닙니다. 뭐 이 정도로.”

상혁의 말에 이선호는 짐짓 허세를 부렸다. 하지만 허세를 부리기 전에 식은땀으로 젖은 등줄기는 식히라고 다음에는 말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후다닥!

그런데 그때 누군가 다급한 발걸음으로 로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뛰어서는 안 될 분위기에 누군가 뛰었기 때문에 더 시선이 갔다.

그렇게 뛰는 사람을 본 상혁의 눈두덩이가 꿈틀거렸다.

“……저 사람은?”

마법사의 관찰력은 범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마나는 전신을 자극하고 특히 그중 뇌를 집중적으로 자극한다.

마법을 영창하고, 수식을 계산하는 등 이 모든 행위에 마나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연히 뇌의 기능이 발달한다. 기억력은 가장 먼저 발달하는 것 중 하나다. 마나로 기억력이 증폭되지 않는다면 그 복잡한 영창과 수식은 범인의 머리로는 외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혁은 가까운 시일 내에 본 것들은 아무리 사소한 것들이라도 전부 다 기억한다. 그 뒤에야 비로소 망각이 찾아온다.

그런 점에서 로비를 가로질러 뛰어가는 저 사람은 똑똑히 기억났다.

아마 임팩트가 커서 마법사가 아니라도 누구나 기억하겠지만.

“휴게소. 떡볶이.”

자신에게 부딪쳐 떡볶이를 뒤집어쓴 여자를 옆에서 보좌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발걸음이 다급하기 그지없었고 눈에는 눈물 자국까지 보였다.

‘왜?’

상혁은 궁금증에 청력을 돋웠다. 그렇게 콘시어지로 뛰어간 여자는 그곳에 앉은 직원에게 헐떡이면서 말했다.

[사장님 드레스에 이물질이 튀었어요. 붉은 소스 같은 건데. 당장 전체에 수배해 주세요. 그거 지울 수 있는 세제나 방법이 있으면 전부 다 튀어 오라고. 사장님 엄명이에요!]

‘사장?’

떡볶이 소스를 뒤집어쓴 채 인의 장벽과 함께 사라졌던 백정연이 떠올랐다. 이제 보니 그 여자가 이곳의 사장이었다.

“백도현의 가족?”

“예?”

상혁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이선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상혁이 이선호에게 물었다.

“여기 사장이면 백도현의 가족 아닙니까?”

SG그룹의 계열사라고 했다. 여기 사장이 오너 일가라고 하는 것도 들었기 때문에 상혁이 물었다.

“네. 백정연이라고, 백도현의 누나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이선호는 본의 아니게 반 SG 전문가가 됐다. 백도현이 그의 주적이지만 그러면서 백도현의 일가에 대해서도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몇 없는 여성 기업가이기 때문에 꽤 주목을 받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태안에 전격적으로 SG호텔&리조트를 공격적으로 건설해서 큰 호평을 받았으니까요.”

여기를 바탕으로 중국이나 일본 등지까지 호텔 사업을 늘렸다고 한다.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떡볶이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서요.”

드레스에 튄 이물질. 그게 떡볶이 소스 때문이라면 상혁에게도 아예 과실이 없는 건 아니다.

“뭐. 이미 신경 끄라고 했으니까.”

그래도 그게 상혁만의 잘못도 아니고. 쌍방과실이다. 상혁은 아예 신경을 끄기로 하고는 이선호에게 말했다.

“지금 바다에 들어가도 됩니까?”

“이 날씨예요?”

“좀 그런가?”

아직 여름이 오려면 멀었다. 이 날씨에 바다에 들어가면 차가워서 30분도 있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선호는 상혁이 마법사란 걸 알고 있었다.

“들어가실 수 있다면 막지는 않을 겁니다.”

“좋았어.”

상혁이 씩 웃었다.

* * *

백정연은 얼굴을 한껏 찡그렸다. 평소라면 주름이 져서 얼굴 찡그리기는 금지였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화가 풀릴 것 같지 않았다.

오늘 저녁 만찬을 위해 백정연은 많은 공을 들였다.

특히 떡볶이 소스가 튄 드레스. 이탈리아에서 직접 공수한 그 드레스는 가격대도 가격대지만 이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드레스였다.

오늘 이 자리의 주최자로서 자신을 빛내줄 수 있는 드레스를 고른 것인데, 그게 수포로 돌아갔다.

“그놈 때문에!”

자신에게 떡볶이를 들이부어 놓고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 대던 상혁의 얼굴이 잊히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정말 마음 같아서는 아까 경호원을 다시 보내 손이라도 한번 봐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아. 곤란한데.”

오늘 저녁 만찬은 그녀가 SG호텔&리조트의 대표로서 또다시 새로운 도약을 할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서울에서 이 태안까지 주한 이탈리아 대사 내외를 초청하여 SG호텔&리조트가 이탈리아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기 위한 자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완벽해야만 했다.

이탈리아 장인이 만든 그 드레스를 공수한 것도 대사 부인이 그 장인과 깊은 인연이 있다는 첩보 때문에 공수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입을 수 없다니.

“망가진 예술품을 보이는 것처럼 상대를 무시하는 건 없으니까.”

특히나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아주 작은 흠도 용납하지 못하는 법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게 뭔 대수냐고 하겠지만 대사 부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은 그런 니즈를 맞출 줄 알아야 하고.

“그 빌어먹을 놈만 아니면!”

벌컥!

결국 백정연은 상혁 때문에 뜨거운 홍차를 한입에 들이켰다.

“바람이라도 쐬어야겠어.”

이대로 안에 있다가는 화병으로 죽을 것만 같았다. 시원한 바람이라도 쐬면 좀 나을까 싶어 그녀는 옷을 챙겨 일어났다.

“따라오지 마!”

화를 풀러 가는 데 사람을 주렁주렁 달고 가는 것은 화를 더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그 때문에 그녀의 경호원들은 일어나려다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굳었다.

“호텔 안이야. 경호 필요 없어. 위화감 조성 자꾸 할 거야?”

손님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는 순간 호텔의 이미지는 끝장난다. 그것도 대표란 사람이 그런다? 그건 자격 미달에 수준 미달이란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었다.

백정연은 SG호텔&리조트에 한 사람이라도 손님을 더 늘릴 수 있다면 접객도 할 수 있었다.

쏴아아!!

빈 골프 카트를 골프장에서 빌린 그녀는 홀을 가로질러 해변가로 향했다. 그곳으로 가면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만 아는 스팟이기도 했다.

달칵.

카트를 세워 놓는 백정연은 신발까지 벗고 맨발로 차가운 모래사장에 발바닥을 내디뎠다. 시원한 것이 가슴속이 울화가 조금 풀리는 듯했다.

그녀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러다 잠시 후 눈을 뜨고는 파도가 밀려오는 곳까지 걸어갔다.

말라 있던 모래가 바닷물을 머금어 축축하고 딱딱한 곳까지 가자 또 느낌이 달랐다. 그녀는 숨을 몇 번 들이마신 뒤 짠내를 입에 머금고는 숨을 잠시 참았다.

“후우우.”

울화가 씻겨 나가길 바라며 심호흡을 한 백정연은 기지개를 쭉 켰다.

“역시 바다가 최고야.”

산이냐 바다냐 물으면 그녀는 1초의 고민도 없이 바다를 선택한다. 그래서 그녀는 호텔&리조트 사업을 받았을 때 뛸 듯이 기뻐했다.

어푸어푸.

그런데 그때 그녀만의 상념을 방해하는 이상한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파도 소리를 뚫고 들려온 소리기 때문에 백정연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뭐지?”

이 근처는 사람이 오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사람 소리라니. 백정연은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물귀신이라도 나온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후 그녀의 눈에 파도를 뚫고 저 멀리 작은 포말 같은 것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더 지켜본 후 그것이 사람이란 것을 깨닫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이 날씨에 수영을 한다고?”

분명 포말을 일으키며 팔을 휘젓는 것이 수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날씨에 바닷물에서 수영하는 미친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호, 혹시 빠진 거 아니야?”

수영이 아니라면 물에 빠진 사람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데 그때 그녀의 눈에 기이한 모습이 비쳤다.

물속에서 팔을 허우적대던 사람 주변으로 파도가 치는 바다의 물결이 소용돌이치듯 모여드는 것 같은 모습이 보인 것이다.

“무슨…….”

꾸르륵!!

바다가 분명 꾸르륵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파도가 몰아치는 것에 반항이라도 하듯 물결이 소용돌이를 치면서 남자 주변으로 돌고 있었다.

그렇게 남자를 보고 있던 백정연은 화들짝 놀랐다. 저 멀리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 듯한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리가 멀었다.

‘눈코입도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어.’

그런데 눈이 마주치다니. 저 사람이 눈이 있는지도 잘 보이지 않는 판국에.

저 멀리 있던 남자가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속도가 올림픽 수영 선수 뺨치도록 빨랐다.

분명 멀리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육안으로 생김새가 식별될 정도의 거리까지 남자가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백정연은 한숨과 함께 날려 보냈던 울화가 다시 훅 하고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깊이가 얕아져 쫄딱 젖은 몸으로 걸어 나오고 있는 남자는 백정연을 방금 전까지 분노에 치를 떨게 했던 장본인이었으니까.

“어, 휴게소 떡볶이?”

상혁이 백정연을 보고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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