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42화 (41/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42화

042. 사치스러운 마법사(2)

백정연은 부잣집 딸내미다.

그것도 그냥 부잣집 수준이 아니다.

SG그룹.

대한민국 재계 서열 순위에서 늘 1위 자리를 고수한 채 20년째 내려올 생각이 없는 명실공히 재벌들의 총수인 SG그룹의 백성철 회장의 그녀의 아버지였다.

즉, 로열패밀리란 소리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어려서부터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고급이 아닌 것 없이 살아왔다. 어려서부터 집사와 유모가 있는 것이 당연했고 밖을 나다닐 때는 경호원들이 함께하는 것이 당연했다.

백화점에 가면 당연히 그곳의 임원이 나와 그녀를 VVIP 실로 안내하고, 호텔에 가면 지배인이 나와 맞이하는 것이 당연한 삶을 그녀는 살아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은 백정연에게 기념비적이 날이었다.

백정연은 휴지로 손가락을 돌돌 말아 자신의 손가락이 변기를 직접적으로 만질 수 없게끔 하고는 변기 뚜껑을 열었다.

손가락을 길게 쭉 뺀 것이 고상하게 커피잔을 들 때와 비슷했지만 백정연은 눈살을 절로 찌푸렸다.

‘더러워.’

그러나 변기는 더할 나위 없이 하얗고 반짝거렸다. 그녀의 눈에만 더러워 보이는 것이다. 당장 최신식으로 지어 작년에 휴게소 대상까지 받은 휴게소의 화장실이지만 백정연의 눈에는 더러웠다.

하지만 더러워도 어쩔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볼일을 보지 못하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밖에서 화장실을 거의 쓰지 못하는 백정연이 휴게소 화장실로 뛰어들어와야 했을 정도로 그녀는 급했다.

후다닥!

배에서 한 번 더 신호가 왔다. 이 안에 해결하지 못하면 신도 도울 수 없는 대참사가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무리 부자고 예쁘고 잘 생겨도 결국 똑같은 피가 흐르고 같은 내장을 가진 사람이다. 아무리 좋고 고급스러운 것을 먹어도 가끔 탈이 나는 건 마찬가지이다.

세계 3대 진미라고 불리는 푸아그라지만 백정연에게는 통 맞지 않았다. 너무 기름진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리가 자리여서 안 먹을 수는 없어 대충 먹는다고 먹었는데, 그게 오는 길에 이 사달을 냈다.

‘창피해 죽겠어.’

급한 와중에도 이걸 보여 주고 싶지 않아 경호원들에게도 절대로 따라오지 말라고 엄명을 내린 그녀였다.

덕분에 그녀를 바로 옆에서 경호하는 경호원과 뒤차를 타고 온 경호원들이 멍하니 차 속에 있을 테지만 경호한다고 이곳까지 따라와 서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우욱.”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백정연은 그녀를 괴롭혔던 복통에서 벗어났다.

‘셰프가 잘못 조리한 거 아니야?’

미슐랭 스타를 받은 셰프를 초빙하여 만든 요리였다. 하지만 백정연은 그 셰프를 의심했다. 어쨌거나 잠시 후 일을 치른 백정연은 화장실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무슨 화장실에 비데도 없어?”

급이 떨어지는 휴게소 화장실이기에 많은 것을 바라진 않았다. 하지만 비데도 없어 휴지로 해결을 해야만 했다.

단 한 번도 그런 거친 휴지를 써본 적이 없던 백정연은 짜증을 내며 선글라스를 깊게 눌러썼다.

혹시라도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봐 쓴 것이었다.

선글라스를 쓴 백정연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차로 돌아가기 위해 코너를 딱 돌았다. 그런데 그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백정연이 휘청거렸다.

“어, 어어어?”

그런데 옆에서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백정연의 머리 위로 따끈한 무언가가 철퍼덕하고 떨어지더니 스윽 흘러내렸다.

빨간 소스.

꾸덕한 국물.

그리고 하얀 떡과 그 속의 어묵.

철푸덕, 철푸덕!

그게 한 번이 아니었다. 백정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머리에 엉겨 붙은 떡볶이 소스가 미끄러져 내리는 것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다 현실감이 든 백정연의 입이 벌어졌다.

“꺄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 * *

“클…….”

비명을 지르는 백정연을 보고 상혁이 순간 마법을 쓰려는 순간 손이 멈췄다. 여기서 마법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이 떠오른 것이다.

“괜찮으세요?”

“꺄악! 꺄아아아악!!”

백정연은 미친 사람처럼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상혁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휴지를 발견하고는 달려가 휴지를 통째로 집어 왔다.

“좀 쓸게요!”

핫바집에 그렇게 소리친 상혁은 휴지를 꺼내 백정연에 묻은 떡볶이 소스를 닦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우르르 발소리가 들리더니 상혁의 몸이 뒤로 날았다.

“상혁 씨!”

놀란 이선호가 상혁을 불렀다. 상혁은 누군가 자신을 집어던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날아가면서 자신을 지나쳐 백정연에게 달려가는 정장 덩치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스톤스킨.”

상혁은 본능적으로 마법을 이용해 엉덩이를 돌과 같은 경도로 바꿨다. 그리고 상혁의 몸이 바닥에 떨어졌다.

지이익!

상혁은 엉덩이로 떨어졌다. 바닥에 닿은 엉덩이가 그대로 50cm 정도 뒤로 쓸렸다. 하지만 엉덩이에만 스톤스킨을 걸었기 때문에 아무런 고통 없이 상혁이 벌떡 일어섰다.

스윽.

그런 상혁 앞에 정장 덩치가 나타나 앞길을 막았다. 상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순간 정장 덩치가 고개를 꾸벅하고 숙였다.

“죄송합니다. 일이 급박해서 손이 조금 과하게 나갔습니다.”

사과할 줄은 몰랐던 상혁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잘못한 것은 상혁이지 여자가 아니다. 상혁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남자였다.

“아니에요. 제가 실수를 한 건데. 괜찮으세요?”

비명을 질렀다고 정장 덩치들이 우르르 뛰어나오더니. 떡볶이 소스를 뒤집어쓴 여자가 대단한 여자였다고 생각하며 상혁이 경호원의 어깨너머로 뒤를 쳐다봤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이만.”

경호원은 상혁에게 눈빛만으로 이만 물러나라는 신호를 보냈다. 상혁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으세요?”

“네, 뭐. 그런데 누구길래 경호원들을 저렇게 많이 데리고 다닐까요?”

상혁은 어느새 경호원들이 벽을 치고 선 휴게소 상황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선호도 알 리 만무했다.

여자가 누군지 알아보기 전에 떡볶이 소스로 뒤덮였기 때문이다.

“사 놓은 건 어떻게 하죠?”

25만 원어치의 음식들이 그대로 깔려 있었다. 이걸 인제 와서 포장해 간다는 것도 웃긴 이야기다. 그 때문에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안타깝지만 먹을 사람은 먹어야죠. 괜찮다고 하는데 제가 억지로 뭘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상혁은 자리에 앉았다. 이선호는 설마 이 상황에서 먹고 갈 생각이냐는 눈으로 상혁을 쳐다봤지만 상혁은 이미 먹기 시작했다.

우걱우걱.

“대신 빨리 먹고 가죠.”

상혁의 입이 분쇄기처럼 음식들을 분쇄하여 흡입하기 시작했다. 이선호는 그런 상혁을 보면서 입을 쩍 벌렸다.

“어, 움직인다.”

이선호가 이러다 자신이 먹을 것도 안 남을 것 같은 위기감에 음식을 잡은 순간 인의 장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안에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겠다는 듯 그들 사이로는 빈틈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상혁은 알 수 있었다.

떡볶이 소스를 뒤집어쓴 여자가 가는 길을 따라 바닥에 떡볶이 소스가 이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어디 씻을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럴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으적으적.

못난이 핫도그를 한입에 넣고 씹어 대며 그것을 보고 있던 상혁과 순간적으로 누군가의 눈이 마주쳤다.

인의 장벽 안에 있는 여자, 백정연이었다.

* * *

“이 상황에 지금 뭘 처먹고 있는 거야. 날 이 꼴로 만들고 음식이 들어가?”

백정연이 순간적으로 상혁과 눈이 마주치고는 씩씩댔다.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지금 당장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샤워.

“최악이야, 진짜.”

난생처음으로 경험해 본 서민의 삶은 최악이었다. 이래서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 살아가라는 뜻인 모양이었다.

날 때부터 로열패밀리였던 백정연에게 이번 경험은 최악이었다.

그곳의 방점을 상혁이 찍어 주었다.

자신을 이 꼴로 만들고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 씹는 태연한 모습이라니. 백정연이 이를 갈고 있을 때 경호원 중 하나가 말했다.

“손봐 줄까요?”

그러자 백정연이 신경질적으로 손에 묻은 떡볶이 소스를 털어 내면서 버럭 화를 냈다.

“뭘 자꾸 처리해요!! 정신 사납게!!”

“죄, 죄송합니다.”

“그 버릇 고치라고 했죠?”

“예, 예.”

백정연의 말에 믿음직스럽게 말을 꺼냈던 경호원이 찔끔했다.

“뭘 처리해. 여기가 미국인 줄 아나. 이런다고 사람 처리하면 어디 대한민국에 사람이 남겠냐고.”

백정연의 히스테리를 느낀 기사가 최대한도로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켰다. 그렇게 백정연을 태운 차가 태안으로 향했다.

* * *

“오?”

태안은 과거 기름 유출 사건으로 인해 완벽하게 황폐화가 되었던 곳이다. 하지만 또 대한민국 국민들이 어떤 국민들이던가.

나라가 해 준 것이 없음에도 이 땅을 위해 알아서 똘똘 뭉치는 생계형 의용병들 후손의 나라가 아니던가.

그 때문에 수백만 명의 도움으로 태안은 정상화됐다. 그리고 SG그룹은 그런 태안을 돕기 위한 차원에서 관광객들을 부르기 위해 태안에 SG호텔&리조트를 지었다.

바다와 맞닿은 태안의 자연환경은 호텔과 리조트, 골프 부지로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에서도 흔쾌히 허락해 주었고, 그 덕에 SG에서는 거대한 부지를 낙점받아 그곳에 최고급 호텔과 리조트, 그리고 골프 코스를 만들었다.

“시원하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선호는 넓게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숨을 스읍 하고 들이마셨다.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그런데 서해 쪽은 물이 탁해서 이런 고급 리조트가 많이 없지 않습니까?”

서해는 뻘이 많고 물이 얕았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물이 흙탕물이었다. 더럽지 않음에도 물이 탁해 보며 동해보다 선호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선호는 어깨를 으쓱했다.

“기름 유출 사건이 터지고 정리하면서 뭔가 변한 건지, 인근의 물이 아주 깨끗하다고 하네요. 밑이 보일 정도라고. 햇살을 잘 받으면 제주도처럼 새파랗게 변한답니다.”

“그래요?”

상혁은 신기하다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바닷속이 들여다보일 정도면 되게 깨끗하다는 소리겠죠?”

“아마도요?”

“흐음…….”

상혁은 턱을 연신 쓰다듬었다. 그런 상혁을 보며 이선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세요?”

“아니에요. 아무것도.”

상혁은 안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깨끗하기 그지없다는 바다에서, SG반도체 공장보다 더 짙은 마나의 향이 느껴지는 것에 히죽 웃었다.

뽀르르!!

그런 상혁의 예상이 맞다는 듯 상혁의 머리 위에 둥지를 튼 초아는 어느새 뛰쳐나와 흥분한 듯 미친 듯이 상혁의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오승택의 말이 맞았네?”

상혁의 심장이 기대감으로 뛰었다.

* * *

“후우.”

백정연은 두 번 샤워하고 한 번 목욕을 한 뒤 최고급으로 스파까지 싹 받았다. 그런 백정연에게 호텔 지배인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사장님. 오늘 저녁에 말씀하셨던 만찬 준비가 끝났습니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백정연은 SG호텔&리조트의 사장이다. 그녀가 오늘 태안까지 내려온 이유는 오늘 이곳에서 중요한 만찬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죠. 일단 코스 리스트부터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태안에 있는 SG호텔&리조트는 충남의 명물이었다. 서울에 밀리지 않는 서비스와 시설을 자랑하는 6성급의 호텔과 리조트를 갖추고 있었고 태안의 자연환경이 어우러져 충남지역의 관광명소가 된 것이다.

특히나 호캉스 같은 걸 즐기는 젊은 층이 늘어나면서 이곳의 명성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는 추세였다.

“게스트분들 못 드시는 거 있으신지 마지막으로 체크 한 번 더 하세요. 그리고 여기, 제가 해야 되는 부분이죠?”

건배사를 말하는 것이었다. 지배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장님.”

“좋아요. 내가 오늘 입을 가지고 왔는데…….”

백정연은 오늘 그 자리에서 입을 옷을 특별히 공수해 왔다. 프랑스의 장인이 만든 드레스로 10만 개의 스와로브스키 수정을 하나씩 수작업으로 붙인 드레스였다.

그런데.

“저, 저기, 저기 왜 붉은 점이 있어!! 아아아악!!”

그 위에 백정연이 호텔 방에 들어오자마자 벗어서 냅다 집어던진 옷이 걸쳐져 있었다. 그 때문에 순백의 드레스에 떡볶이 소스가 제대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