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37화
037. 파이어 볼(2)
미래현석파 두목, 김현석의 오른팔인 마석은 부하 하나만을 대동한 채 작고 조용했던 마을에 도착했다.
“경찰들이 많습니다, 형님.”
그 부하가 마을의 동태를 살핀 뒤 마석에게 보고했다. 마석은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경찰에게 다가갔다.
“고생들이 많으십니다.’
마석은 넉살 좋게 넙죽 고개를 숙이며 경찰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경찰 중에서 마석을 알아본 고참이 나와 마석에게 말했다.
”쓸데없는 소란은 피우지 마.”
“예, 걱정 마십쇼.”
한덕광의 지시를 받은 일이다. 그러니 경찰들도 눈감아 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일선의 말단 경찰이 알 리 없었다.
마석이 사람을 죽이러 왔다는 것도 저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소란만 안 피우면 돼.”
마석은 사납게 웃으면서 주먹에서 뚜둑 소리를 냈다. 인정사정없어 보이는 마석의 흉악스러운 미소에 부하는 땀을 삐질 흘렸다.
“처, 처리하신 다음에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어떻게 하긴. 본 놈이 있으면 똑같이 죽여야지. 어차피 뒤처리는 형님이나 검사님이 해 주시겠지.”
마석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무식할 정도로 무모했기 때문에 김현석은 이런 일은 믿고 마석에게 시켰다.
그리고 마석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김현석이 시킨 일을 실패한 적이 없었다.
190에 달하는 거구와 120이 넘는 지방과 근육이 뒤섞인 몸은 힘쓰는 일에는 웬만해서는 뒤지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제 경찰의 비호까지 얻었다.
소란을 피우지 말란 말은 시끄럽게만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어디라고?”
“파란 대문이 있는 집입니다.”
“파란 대문이라. 얼른 끝내고 돌아가서 요리에 고량주 한잔하자고. 어때?”
“저야 좋습니다, 형님.”
마석은 거칠 것 없이 인적이 드문 해가 진 밤의 마을 길을 걸었다. 그러고는 파란 대문이 보이는 집, 상혁의 집에 도착한 마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72마XXXX. 맞네.”
“예, 형님.”
“나 혼자 들어갈 테니까 밖에서 망보고 있어.”
“혀, 형님 혼자요? 적어도 둘은 살고 있는 걸로 아는데…….”
“그러니까 혹시 모를 놈 대비해서 네가 있어야지.”
마석이 스읍 하고 소리를 내자 부하가 움찔했다. 그런 부하를 못 미덥다는 눈으로 쳐다보며 혀를 쯧 하고 찬 마석이 겉에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부하에게 맡겼다.
“안 구겨지게 잘 들고 있어.”
“예, 형님.”
그렇게 재킷까지 벗은 마석이 파란 대문을 슥 밀고 들어갔다. 그렇게 마석이 사라지자 부하는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무식하다 무식해, 진짜.”
마석은 부하에게는 그리 좋은 상사는 아니었다. 그가 너무 폭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마석을 화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뼈가 부러져 몇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진 동료가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같은 편에 서서 싸울 때는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는 동료이기도 했다.
그가 혼자서 칼 들고 덤비는 다섯 명의 양아치들을 쓰러뜨린 것은 유명한 일화였다. 맨손으로 칼 든 양아치 다섯을 쓰러뜨린 공로로 미래현석파에 들어갔다.
그렇기 때문에 부하는 마석이 성공하고 나올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변수가 있다면 같이 산다는 고시생 출신의 젊은 남자가 하나 있다는 것이다.
그놈이 만약에 하나 도망쳐서 빠져나온다면 자신이 처리해야 한다. 부하는 품에 사시미 한 자루를 품은 채 눈을 부라렸다.
저벅.
그런데 그때 부하의 뒤에서 사람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웬만해서 이 정도로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이 시간에 누가 돌아다니지 않는다.
바로 얼마 전 농약 사건 같은 강력 범죄가 일어나면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발소리에 부하가 뒤를 돌아봤다.
“어?”
분명 발소리가 들렸는데 뒤에 아무도 없었다. 부하가 고개를 갸웃한 순간 무언가 붕 하고 부하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콰직!!
“……!”
사람의 신체 중 팔꿈치 다음으로 가장 단단한 무릎이 부하의 경추를 그대로 내리찍었다. 우득 소리와 함께 부하와 오승택이 한 덩어리가 되어서는 바닥을 굴렀다.
발소리를 내 주의를 끈 다음 이선호의 차를 밟고 올라가 그대로 무릎으로 목을 내리찍은 것이다.
부하가 팔다리의 경련을 일으켰다. 하필이면 무릎이 꽂힌 곳이 목이었다. 하지만 오승택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사람을 죽이러 온 놈들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들이 마을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추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에서도 알고 있었다. 오승택은 하필이면 그 악마 같은 놈이 도사리고 있는 이 집에 온 조폭들에게 심심한 명복을 빌며 기절한 조폭 부하의 뒷덜미를 붙잡고는 질질 끌었다.
그러면서 오승택은 다른 한 손에 전화기를 쥔 채 전화를 걸었다.
“시작하자.”
[드디어?]
박선웅이었다.
* * *
마석은 무성하게 자란 안마당의 풀을 해치며 불이 켜진 방을 향해 걸어갔다. 다 쓰러져 가는 건물을 본 마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미한 불빛이 안에서 비치는 것을 보니 분명 사람은 있었다. 마석은 자신이 온몸으로 부딪히면 무너질 것 같은 벽보며 문을 열었다.
끼익
기름칠이 안 된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그렇게 발소리를 죽이며 불빛이 비치는 곳을 향해 가고 있던 마석은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대문이 열리는 소리부터 해서 기름칠 안 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두 번이나 났는데 너무 조용했다. 그렇다고 그 소리가 묻힐 만큼의 다른 소리가 방 안에서 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는 모양이군.’
차라리 자고 있다면 편안하게 죽을 수 있을 것이다. 마석은 주머니에서 너클을 꺼내 손에 찼다. 묵직하게 금속으로 만들어진 이 너클은 마석의 괴력과 조합했을 때 막강한 파괴력을 발휘했다.
건장한 성인 남성의 약점을 때리면 한 방에 즉사시킬 수 있을 정도.
대상이 샌님 같은 변호사라면 더더욱 자신 있었다.
덜컥.
마석은 한 마리의 곰처럼 문을 열고는 빛이 흘러나오는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자리를 펴 둔 채 자고 있던 이선호를 덮친 뒤 마운트 자세를 취하고는 그대로 주먹을 내리찍었다.
퍼억!!
마석의 주먹에서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석은 제대로 충격이 주먹 위로 온 것을 느끼며 주먹을 두어 번 더 꽂아 넣었다.
퍽, 퍽!
이선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석은 그대로 절명했으리라 확신하고는 주먹을 들어 올렸다.
스윽.
마석의 주먹이 가볍게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후두둑 거리며 피 같은 액체가 떨어지지 않았다. 마석이 그에 이상함을 느끼려는 찰나 죽은 줄 알았던 이선호가 손을 뻗어 마석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컥!”
멱살이 잡혔을 뿐인데 숨통이 턱하고 막혔다. 그때, 마석의 멱살을 잡은 이선호, 아니 상혁이 씩 웃었다.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막 죽이려고 드네.”
자리에는 이선호가 아니라 상혁이 누워 있었다. 근데 이 멧돼지 같은 놈은 누워 있는 게 이선호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도 구분하지도 않고는 그냥 무작정 주먹을 꽂아 넣었다.
최소한의 확인도 하지 않는 정말로 무식한 놈이었다.
“컥, 커걱!!
보조 마법인 스트렝스를 자신의 몸에 건 상혁의 근력은 마석의 괴력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지금 상혁의 몸에 스트렝스를 걸면 30kg짜리 철로 만든 대검을 레이피어처럼 휘두를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니 가볍게 멱살을 쥔 것만으로도 마석의 숨통이 턱 하고 막힌 것이다.
퍽! 퍽!!
마석이 주먹을 휘둘러 상혁을 후려쳤다. 숨이 막히니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을 친 것이다.
하지만 상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체급에서부터 말이 되지 않았지만 지금 그런 일이 버젓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때 상혁이 마석의 주먹을 보면서 아프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으으, 아프지도 않아?”
“…….”
숨이 막히는 와중에 마석은 주먹이 부서진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근데 그건 같은 통증이 아니라 진짜로 주먹이 부서진 것이었다.
너클을 찬 마석의 손이 상혁의 몸과 부딪치자 말 그대로 부서진 것이다.
“스톤스킨이라는 마법이야. 말 그대로 몸을 돌처럼 만들어 주지. 마력이 아니면 칼로 찔러도 흔적도 안 남지.”
3서클이 오른 상혁은 마법으로 자신의 피부를 돌처럼 만들었다. 그러니 마석은 처음부터 전력으로 그냥 바위를 후려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당연히 주먹이 부서질 수밖에.
“컥, 커거걱!!”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손이 아니었다. 숨통이 막혀 오자 마석의 얼굴이 검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퍽, 퍼버벅!!
이제는 주먹질이 아니라 숫제 발버둥을 치는 것처럼 손발을 휘두르기 시작한 마석이다. 그렇게 발버둥 치는 마석의 거구를 한 손만으로 받치고 있던 상혁이 씩 웃으며 손을 놨다.
털썩
“쿠웨에엑!! 쿨럭!”
흰자가 나오기 직전까지 몰고 갔기 때문에 마석은 구토를 하듯 거칠게 숨을 들이마셨다. 상혁이 그 앞에 양반다리로 털썩 주저앉았다.
“어때 기분이?”
“너, 너 이 개X끼!!”
마석이 와락 일어나서는 양반다리로 앉은 상혁을 어깨로 밀쳤다. 거의 질식사 직전까지 갔음에도 굴하지 않고 상혁을 공격하려는 깡다구 하나만큼은 인정이었다.
“끄으응!!”
하지만 상혁은 마치 그 자리에 뿌리내린 것처럼 뒤로 넘어가지 않았다. 마석이 밀치는 힘을 앉은 다리를 하고 앉은 상태로 그냥 버틴 것이다.
“뭐 해. 나 좋아해?”
상혁이 씩 웃으며 마석의 이마에 손가락 하나를 올려놓고는 죽 밀었다. 그러자 마석의 고개가 뒤로 뽑힐 것처럼 덜컥하고 휘더니 마석이 뒤로 그대로 밀려났다.
털썩.
그러고는 그 힘이 남아 마석의 몸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뒤로 넘어간 마석의 눈에 공포가 서렸다.
마석이 태어나서 처음 겪어 보는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혁은 손가락을 딱하고 튕겼다.
텔레키네시스.
본래 1서클에 불과한 마법이지만 소모하는 마나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는 염력 마법에 마석의 상체가 들어 올려졌다.
그렇게 해서 자신과 눈이 마주칠 수 있도록 마석의 몸을 조종한 상혁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이제 조금 마음에 드는 눈이 됐네.”
성난 멧돼지 같은 마석도 머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상혁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이 기이한 힘 때문이란 것을 눈치채자 눈에 공포가 서린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너희들. 누구 명령 받았어?”
상혁이 손톱 아래 낀 때를 벗겨 내면서 지나가듯 말했다. 마석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상혁은 그가 자신의 말에 거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답 안 해도 돼. 뭐, 어차피 말하게 될 테니까. 그래도 난 사지 멀쩡한 사람을 더 좋아하거든.”
중얼중얼.
마법 수인과 영창을 끝낸 상혁의 두 눈에서 마나가 시퍼런 안광처럼 쭉 하고 뿜어져 나왔다.
화르륵!!
그와 동시에 상혁의 머리 위로 사람 머리통만 한 화염구가 떠올랐다.
“파이어 볼.”
마법사가 본격적으로 전장에 동원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판가름이 나는 대표 마법이 지구에서 발현됐다.
“……!!”
마석의 입술이 푸들거리면서 떨리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화염구의 열기가 또렷하게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열기는 가스레인지나 그냥 불이 났을 때 정도의 열기가 아니었다. 불도 여러 번 질러 본 적이 있는 마석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말할 수 있었다.
저걸 맞은 순간 자신은 재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에 가장 끔찍한 게 바로 불타 죽는 거래.”
화르륵!!
화염구가 마석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자 치익 소리가 나면서 마석의 머리카락이 오징어 타는 냄새를 만들어 냈다.
“그러니까 우리 쉽게 가자. 너만 한 덩치 태우려면 또 한참 걸리잖아. 자. 다시 물을게.”
상혁이 마석에게 물었다.
“한덕광이 시켰지?”
마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어렵지 않았다.
“미래현석파? 그 농약 막걸리 사건 진범 빼돌린 것도 너희지? 장기 밀매하는 조선족들이랑은 무슨 관계고. 어, 어 그래? 이야, 이거 완전 조직적인 놈들이네.”
상혁은 마석에게서 궁금한 것들을 전부 다 빼냈다. 그러고는 미래현석파의 위치까지 알아낸 뒤 손가락을 딱하고 튕겼다.
스르륵.
마석이 눈을 감고 옆으로 쓰러졌다. 상혁은 그런 마석에게 강 형사에게 걸었던 마법을 걸었다.
그때보다 더 많은 마나를 담아서.
“망각하라.”
정신 마법의 일종인 망각은 잘못 쓰면 사람을 백치로 만들 수 있는 마법이다. 고문에 능한 왕국 마법사들이 애용하는 마법인데 잘 쓰면 얼마간의 기억을, 잘못 쓰면 사람을 백치로 만든다.
그리고 지금 상혁은 후자의 용도로 사용했다.
잠시 후 상혁은 자신의 방에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선호에게 가서는 말했다.
“자, 대충 그물 안에 물고기가 들어온 것 같은데. 아직도 고민하십니까?”
이선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시죠.”
한덕광이라는 먹잇감을 눈앞에 둔 이선호의 두 눈이 사냥꾼의 그것처럼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