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33화
033. 남의 눈에 눈물 낸 놈(3)
상혁은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오는 오승택의 기척에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가족은?”
“……저를 찾기 전까지 백도현은 쉽게 가족들을 건드리지 않을 겁니다.”
잃을 것이 없는 놈들이 제일 무섭다는 것을 백도현은 잘 알고 있었다. 치밀하고 신중한 놈이 오승택을 완벽하게 제 수중에 넣기 전까지 가족들을 건드릴 도박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은 안 들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그래. 그런데 왜 나를 따라오냐고.”
오승택은 눈앞에서 기적을 목도했다. 자신이 마법의 대상이 되었을 때는 그렇게 공포스러울 수 없었던 상혁이 그렇게 믿음직스러울 수 없었다.
“그게 마법입니까?”
“어. 최면이랑 망각 마법.”
“역시…….”
물 위를 걷는 예수를 보고, 불치병을 앓던 이를 멀쩡히 치료했으며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예수를 봤던 이들이 과연 이런 기분이었을까.
오승택은 눈앞에서 살기등등하게 나타났던 검찰 조사관과 형사가 촌극을 벌이는 것을 봤다.
형사는 자신이 형사라는 것을 기억하지 못했고 검찰 조사관은 진짜 오승택을 눈앞에 버젓이 둔 채로 형사를 체포했다.
그 형사가 오승택이라면서.
사람의 의식을 그리도 쉽게 조작하는 상혁을 보면서 오승택은 전율을 느꼈다. 동시에 확신이 생겼다.
‘내 동아줄은 이 사람밖에는 없다.’
그 누구도 이 대한민국에서 SG그룹으로부터 자신을 구해 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 마법사라면 다르다. 마법이라면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살고 싶습니다. 살려 주십쇼.”
“알아. 그래서 살리러 간 거잖아.”
“모든 것을 다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발?”
“백도현을…….”
“기각.”
상혁은 더 듣지도 않고서는 오승택의 말을 대번에 끊었다. 그러고는 끔찍하다는 듯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미쳤어? 나보고 대기업 후계자를 없애 달라고?”
“아니면 최면을 걸어서 적어도 제가 죽은 걸로 생각할 수 있도록…….”
“최면 그거, 영원히 유지되는 거 아니야.”
마나가 얼마나 많이 드는 마법인데. 유지하고 싶은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기하학적인 양의 마나가 들어간다.
‘그걸 쓰느니 차라리 5서클에 서번트 마법을 쓰고 말지.’
서번트 마법은 5서클 마법으로 충성심을 자연스럽게 길러 내는 주문이었다. 주로 꿍꿍이가 많고 비밀이 많은 마법사들이 믿을 만한 심복을 길러 내기 위해 사용하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관계여야만 서번트 마법이 효과를 발휘한다.
백도현은 그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게 아니면 7서클에 정신지배밖에 없는데.’
이 속도로 어느 세월에 7서클에 도달할지 알 수 없었다. 상혁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그럼…….”
오승택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한덕광이 조사관을 보내 곧바로 오승택을 구류하려 했다.
그렇다는 건?
“한덕광이라고 알아?”
“잘 모릅니다.”
“천안지청 검산데. 아까 온 조사관이 그놈 똘마니거든. 시내에서 한 번 봤어.”
“음…….”
오승택은 검사가 나오자 신음했다. 한덕광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SG그룹이 대한민국 각계각층에 끼치는 영향력은 더욱 컸다.
일개 검사가 아니라 부장검사나 고검장, 아니면 검찰총장까지도 SG그룹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양반이 막걸리 사건 담당자야.”
“예?”
“보아하니 그 한덕광이란 놈을 서울로 올리려는 누군가 있는 것 같더라고. 막걸리 사건이 그놈이 여기서 맡는 마지막 사건이고.”
오승택의 눈빛이 변했다. 이 정도만 설명해도 오승택은 이해했다. 그리고 동시에 눈치가 빠른 그는 상혁이 그 케이스에 관심이 많다는 것도 눈치챘다.
“조작이군요.”
“그렇지.”
짝.
상혁이 손뼉을 쳤다. 마음에 든다는 뜻이다. 오승택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상혁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 백도현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를 구하러 오신 것도, 한덕광이 백도현과 연결고리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니야?”
“맞는 것 같습니다.”
백도현의 비서인 이익현은 백도현의 개인 한덕광을 움직여 오승택을 체포하려고 했을 것이다. 확실히 말을 듣는 사냥개가 있으니 한덕광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농약 막걸리 사건. 진실을 밝히고 싶으신 겁니까?”
“진범을 내가 이미 경찰로 보냈어. 그런데 경찰에서 빼돌린 모양이야. 뉴스에서 본 적 없지?”
오승택은 금시초문이었다. 하지만 검사가 껴 있다면 이야기가 가능하다. 그 검사도 보통 검사가 아니라 SG그룹의 비호를 받는 검사면 더더욱 말이 된다.
“그 사건 때문에 마을이 시끄러워. 진범이 자꾸 안 나오니까 여기저기 기자들이나 경찰들이 들쑤시고 다닌다는 말이지. 난 조용해지길 원하거든.”
오승택은 상혁이 무엇을 원하는지 눈치챘다.
“진범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경찰이 안 하겠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어떻게?”
“경찰이 움직일 수밖에 없게끔. 아는 기자가 몇 있습니다.”
오승택이 눈을 반짝였다. 그러자 상혁이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오승택이 멈칫했다.
“하지만 SG그룹 때문에 제가 직접 움직임이기에는…….”
“음.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상혁이 히죽 웃었다.
“넌 지휘만 해. 이번 일 어떻게 마무리 짓나 보고 네 처우를 생각하지.”
“가, 감사합니다!!”
상혁이 빙글거리며 웃었다. 흑태양파와 조진만이 상혁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라면 아주 적절한 손발이 되어 줄 것이다.
* * *
“아나 미치겠네.”
김태양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비슷한 표정으로 그날 그 사무실에 있던 다섯 명의 요원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닐 수도 없고. 답답해 죽겠어, 진짜.”
“그러니까요. 그리고…….”
요원 중 하나가 거북스러운 표정을 짓고 배를 쓰다듬었다. 눈만 감으면 촉수가 꿀렁이던 그 끔찍한 형상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괜찮겠죠, 진짜?”
“아직까진 멀쩡하잖아. 애초에 마법사가 있다는 게 말이나 돼?”
“후…….”
다른 동료들에게도 말하지 못하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말해 봤자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것이고, 뱃속의 무언가가 요동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배를 뚫고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건 영화 속의 소재로 충분했다.
“어때. 소득은 있었어?”
“아니요.”
그 때문에 그들은 일단 마법사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국정원 DB에 접근했다. 그러고는 그들의 보안 레벨에서 가능한 모든 범위의 정보를 뒤졌다.
한 국가의 정보기관인 만큼 방대한 양의 정보가 그 안에 존재했다. 하지만 거의 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갔어도 마법에 대한 건 없었다.
“미국 쪽에서 70년대랑 80년대에 슈퍼 솔져 만든다고 설친 기록은 있는데요.”
“그것도 실패지?”
“예.”
만약 그때 슈퍼 솔져 같은, 영화에서 나올만한 이들이 나왔다면 아마 지금쯤 각국은 슈퍼 솔져를 개발한다며 난리를 치고 있을 것이다.
“완벽하게 엎어진 건 아니에요. 계속해서 예산은 잡혀 있던데요?”
“아직도 하고 있다고?”
“네.”
과학 기술로 무장한 군인이 아니라 인체 본연의 잠재력을 이끌어 내 군인을 강화시킨다는 슈퍼 솔져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마법에 대한 자료는 없었다.
“영국에 마법학회 같은 게 있기는 한데요.”
“그런데?”
“그냥 취미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빌어먹을.”
김태양은 마른세수를 했다. 꺼끌꺼끌한 수염이 마치 피로한 그의 상태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김태양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잘 지냈어?]
사근사근하지만 듣는 순간 소름이 쭉 끼치는 목소리였다. 김태양은 그때부터 어버버 거리면서 말을 절기 시작했다.
* * *
“하…… 미치셨어요, 박 조사관님?”
“죄, 죄송합니다.”
“약 하셨어요? 왜, 서울에서 요새 약이 유행이라던데 한 방 거하게 하셨나 봐?”
한덕광이 조사관을 향해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조사관은 고개조차도 들지 못한 채 바닥만 내려다봤다.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녹화된 영상 속 자신은 강 형사를 오승택이라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취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말 좀 해 봐요! 장난이었다고! 연극이었다고!!”
쾅쾅쾅!!
한덕광이 주먹을 쥐고 책상을 내려쳤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 되돌려지지는 않았다. 검찰 조사관은 오승택을 찾아 공장까지 갔다가 거하게 똥을 펐다.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엄연하게 벌어진 현실이었다.
“이걸 뭐라고 말하냐고! 서울에!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이때 이게 무슨 일이냐고요!!”
쾅쾅!!
한덕광은 조사관들을 갈궜지만 그런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한덕광은 이를 까득 깨물었다.
“박 조사관님. 찾아오세요. 오승택. 위성을 뒤지든 해서어! 공장 CCTV가 다시 나갔다는 변명 같은 거 대지 말고요. 찾아오시라고요, 오승택!”
그래서 뒤늦게 조사관은 공장부터 오승택의 행방을 찾기 위해 CCTV를 보려고 했지만 공장 전역의 CCTV가 또다시 고장 나 있다는 것만 발견했다.
즉, 오승택은 그 자리에서 증발해 버린 것이다.
“기지국 가서 핸드폰 위치추적을 하건, 아니면 탐지견을 동원해서 수색하건!! 빨리!!”
“예, 옛!!”
검찰 조사관들이 개미처럼 흩어졌다. 한덕광은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후, 하고 뜨거운 바람을 내뿜었다.
“김 씨, 내가 직접 취조할 겁니다. 녹화 끄세요.”
“예, 검사님.”
한덕광은 더 이상 시간이 지연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서울로 올라가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결국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에 한덕광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나, 나가게 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에이, 시끄러워.”
문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나자 농약 막걸리 사건의 진범은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자신이 자수를 하러 경찰서에 찾아갔단다.
그런데 경찰서가 아니라 어딘가 냄새도 퀴퀴한 창고 같은 곳에 끌려와 있었다. 그리고 밖에는 경찰이 아니라 조폭들이 지키고 있었다.
“왜, 왜 내가…….”
진범은 자신이 무언가에 홀렸다고 생각했다. 그의 마지막 기억은 청산가리를 탄 막걸리를 가져다 상혁에게 건네준 것까지였다.
자신을 봤기 때문에 만약을 대비해 죽이려고 했는데, 거기서부터 기억이 뜨문뜨문 났다.
경찰에 가서 자신이 김 씨의 아내를 죽였다고 자수를 했고, 그리고 끌려와서는 정신을 완전히 차리니 자신이 감금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으으으…….”
그리고 경찰이 아닌 조폭이 자신을 한 번씩 들여다봤다. 그럴 때마다 진범은 이를 딱딱거리며 떨었다.
[야! 저 새끼 처분 결정 났다! 통나무 작업 들어가!]
그때 밖에서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조폭 둘이 들어와 히죽 웃으며 진범의 양어깨를 붙잡고는 들어 올렸다.
“자 아저씨. 얌전히 갑시다.”
“으, 으으,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에이. 왜 이러실까. 사람 죽이셨다면서. 넷이나. 그러면 아저씨도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셨어야지.”
“으아아! 사, 사람 살…….”
퍽!
조폭의 주먹이 진범의 배때기에 틀어박혔다. 진범이 입을 벌리면서 꺽 소리를 냈지만 조폭들은 진범을 끌고 나갔다.
그러고는 냉동창고 같은 곳으로 끌고 가 문을 연 순간 진범의 팔에 소름이 돋았다.
추웠다.
냉동창고 안은 절로 어깨가 떨릴 정도로 추웠다. 그런데 창고 중간에 뿌연 비닐 같은 것이 사방에 깔려 있었고 피딱지가 진 수술용 침대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으아아아!!”
피딱지가 붙은 수술용 병상과 주변의 도구들. 진범은 통나무가 무슨 말인지를 깨달았다.
장기 적출.
자신의 죽음이 그렇게 정해진 것이다.
“에이 씨, 왜 이렇게 팔딱거려.”
“그런데 햄. 이런 아재도 가져가 팔 게 있슴까?”
“있지. 눈부터 시작해서 싹 다. 이런 거 원하는 사람들이 몇 살인지 알 게 뭐야. 기능만 제대로 작동하면 되지.”
버둥버둥.
진범의 팔다리가 수술용 침대에 묶였다. 진범이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재갈을 그의 입에 물렸다. 이내 진범은 몸통까지 묶여 옴짝달싹 못 하는 상태가 됐다.
그 상태로 조폭 중 하나가 칼을 집어 들었다.
“흐흐흐. 조금 따갑습니다, 아재.”
사람의 살을 그냥 두부처럼 가를 수 있는 메스다. 그 메스가 배 쪽으로 다가오자 진범의 입가에 거품이 맺혔다.
죽고 싶지 않았다.
푹!
그리고 메스가 진범의 살을 살짝 갈랐다. 너무나도 아팠다. 진범이 재갈을 물어뜯으면서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창고 안의 불이 확 하고 꺼졌다.
“뭐, 크악!”
“습격이다!!”
불이 꺼진 순간 사방에서 주먹다짐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진범이 눈을 껌벅이는 사이 주변이 조용해지더니 이내 불이 다시 들어왔다.
“에이 씨. 뭐야. 눈 버렸네.”
그리고 그곳에는 김태양이 주먹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서 있었다. 그의 뒤로 흑태양파의 조직원들이 주변에 장기 적출을 한 흔적을 보면서 치를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