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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32화 (31/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32화

032. 남의 눈에 눈물 낸 놈(2)

“그러니까 이 모든 게 SG그룹의 오너 일가인 백도현 사장과 관련이 있는 거다?”

“예.”

오승택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전까지는 어떻게든 호시탐탐 상혁의 눈길을 피해 무언가를 하려고 했다면 이제는 완전히 협조적인 눈빛으로 바뀐 것이다.

상혁이 아니면 오승택 자신의 인생은 끝이다.

그렇기에 오승택은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상혁에게 말했다.

“반도체 공장에 내가 들어갔다가 나오긴 했는데, 그것 때문에 SG전자의 주가가 떨어졌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범인이 필요하고?”

“그렇습니다.”

SG전자는 내부 기밀이 유출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반드시 범인이 필요했다. 기밀이 가장 중요한 첨단기술인 반도체 공장의 보안이 뚫렸다는 것은 파운드리 사업에 있어 치명적인 약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널 범인으로 만들 생각이고.”

“예.”

오승택은 새삼 배신감이 치밀어 오르는지 턱 근육이 불룩하게 튀어나왔다. 상혁은 이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국정원이 움직인 거구나?”

“구, 국정원이요?”

“어.”

흑태양파와 조진만.

백도현이란 놈은 상당히 치밀하고 신중한 놈이었다. 게다가 의심이 많아 한 명에게만 일을 맡기지 않고 여러 명에게 맡겨 크로스체크를 하는 놈이었다.

공장 근처에서 상혁이 찍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범한 고시생인 상혁에게 국정원의 비밀 조직과 전직 군인에게까지 조사를 맡긴 것을 보면 딱 그랬다.

그 사실을 몰랐던 오승택은 백도현의 치밀함에 치를 떨었다. 상혁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방법이 하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방법은 하나네.”

“…….”

“너, 그냥 감방 가라. 그거 꺼내 줄게.”

상혁은 오승택을 위해 땀을 한 방울이라도 흘릴 용의가 아예 없었다. 그러자 오승택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그, 그게 무슨. 분명 아까와는 말이 다른…….”

“빼 주지 않을 거면 도와달라면서. 근데 그냥 도움 안 받을게.”

미쳤다고 대기업과 고작 2서클로 맞선다는 말인가. 상혁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러자 오승택이 상처받은 얼굴로 상혁을 쳐다봤다.

“제가 감옥에 가면 분명…….”

“아, 아픈 어머니가 있고 돌봐야 할 동생이 있다? 그럴 거면 열심히 노동해서 정직하게 돈을 벌지 그랬어. 재벌가 뒤처리하는 일 말고.”

“…….”

“네가 뿌린 씨앗, 네가 거두는 법이야.”

상혁은 그렇게 말한 뒤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그러고는 오승택을 향해 손가락을 따악 하고 튕겼다.

쑤와아악!!

그러자 오승택의 칠공에서 잿빛 연기가 스멀거리면서 빠져나왔다. 오승택이 그 연기에 정신 못 차리고 있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

상혁은 이미 그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

오승택은 복잡한 눈으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 * *

“어후. 큰일 날 뻔했네.”

상혁은 하마터면 똥 밟을 뻔했다고 중얼거리며 팔을 벅벅 긁었다. 대기업이라니. 국정원과 오승택을 동원해 자신의 뒤를 캔 건 기분이 나빴지만 상혁은 숙여야 할 때 숙일 줄 아는 남자였다.

“5서클이나 6서클 정도 되면 모를까, 그전에는 무리야.”

대기업을 건드린다는 것은 곧 그들과 연결된 권력까지 건드린다는 소리다. 그렇다는 건 상혁이 아무리 마법사라고 해도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오승택을 위해 그렇게까지 해 줄 마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게 조금 아쉽기는 하네.”

오승택이 그 대신으로 내걸었던 SG공장들이 아쉽기는 했지만 또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뽀르르르!!

“할 수 있겠어?”

초아가 이파리를 부비적거리다가 이내 축 하고 시들었다. 상혁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의 유일한 장기가 그거 아니야?”

오염 탐지.

하지만 초아는 풀 죽은 표정으로 상혁의 뒷덜미에 스윽 숨었다. 그래도 염치는 있는 것인지 보채지는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퀘스트 빨리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

가로수를 정화하는 퀘스트는 초아의 성화 때문에 끝낸 상혁이다. 그 덕에 마나가 213까지 늘어났다.

3서클까지 필요한 마나는 87이나 남았다. 그것도 오늘 폐수에 풍덩 뛰어들어 오랜만에 소모된 마나도 싹 채우고 마나 고리에도 더 마나를 쌓아서 늘어난 수치가 저 정도였다.

“이제 공장에 다시 들어가는 건 문제가 없고.”

대신 이제 공장에 들어가는 문제는 해결됐다. 오승택이 거절당한 것에 복수를 하겠다고 다시 CCTV를 돌려놓을 수도 있지만 그러면 공장 손해다.

‘지지면 끝이니까.’

이미 지난번 공장 침입 때의 경험으로 CCTV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완벽하게 체득한 상혁이다. 대신 그렇게 한 번 건드리면 회선 자체를 뇌전으로 지지는 것이기 때문에 공장 전체의 CCTV가 나간다는 것이다.

뭐 자신이 돈 내는 것이 아니니 상혁은 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부아아앙!!

웨에에엥!!

그런데 그때 상혁의 옆으로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빨간 경광등을 단 차가 매섭게 지나갔다. 옆으로 잠시 비켜섰던 상혁은 윈드 마법으로 흙먼지가 오는 것을 막은 뒤 고개를 갸웃하며 뒤를 쳐다봤다.

이 길을 가면 공장이 나온다.

그런데 차 안에는 지난번 시내의 중국집에서 봤던 검찰 조사관이라는 양반이 타고 있었다.

“검찰 조사관이 왜?”

그러자 상혁의 머릿속에 그럴듯한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그런데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안과 관계가 이렇게 맞아떨어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억측이 아닐까 싶은 정도.

상혁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이거.”

오승택의 가치가 상혁의 머릿속에서 바뀌었다. 만약 상혁의 가설이 맞다면 오승택은 꽤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치밀하신 재벌가 도련님을 엿 먹이는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헤이스트.”

상혁의 신형이 한 줄기 바람을 품은 채 검찰 조사관의 차가 향한 곳을 향해 나아갔다.

* * *

[이체 불가능]

콰악.

오승택은 핸드폰을 꽈악 쥐었다. 그러자 핸드폰이 부서질 것처럼 우드득 하는 소리를 냈다. 오승택은 핏줄이 선 눈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벌써 막았네.”

오승택의 계좌는 이미 막혔다. 누가 막았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오승택의 도주도 원천 차단하겠다는 백도현의 지시일 것이다.

정확히는 그의 의사를 미리 파악하고 움직이는 비서실에서 취한 조치일 것이다.

아직 재판도, 그 어떠한 혐의도 오승택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미 법의 포위망이 그를 범인으로 결정짓고 몰려들고 있었다.

그런 거대한 힘 앞에 오승택은 무력한 개인일 뿐이었다.

뚜르르.

오승택은 힘없이 의자에 걸어앉아 전화를 걸었다. 놀라시지 않게 어머니와 동생에게 전화라도 할 참이었다.

하지만 전화는 다른 사람이 받았다.

[오승택 씨.]

오승택의 표정이 굳었다. 아까 전에 전화를 걸었던 이익현이었다. 오승택이 주먹을 쥐고는 부르르 떨었다.

“예.”

[어머니는 잘 계십니다. 동생인 승환 군도 어머니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

백도현은 치밀하기 그지없었다. 오승택의 가족에게까지 찾아간 것이다. 그랬다는 건 오승택에게 다른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뜻이다.

오승택은 피가 나올 정도로 이를 으득 깨물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얌전히 들어갔다가 나오십시오.]

“예.”

오승택의 입가에서 끝끝내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이익현의 차가운 목소리가 오승택의 귓전을 울렸다.

여기서 자신이 도주한다면.

‘어머니와 동생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겠지.’

자신의 미래는 결정된 셈이다. 자신에게 이런 운명이 찾아올 줄이야.

‘어머니랑 동생의 목소리라도 한번 듣고 싶었는데.’

잠시 후 공장 밖에 사이렌 소리를 내면서 차가 들어오는 것이 창을 통해 보였다. 오승택은 경찰이나 검찰로 보이는 자들이 차에서 내리자 두 눈을 감았다.

반항?

할 수 있으나 부질없었다.

‘살아나오면 다행이겠지.’

이익현이 가족에게 보상이라도 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교도소에 들어간 자신이 무사히 살아서 나올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오승택은 자리에 우두커니 앉았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바람이 한 줄기 불어왔다.

‘바람?’

창문과 문은 전부 다 닫혀 있었다. 그럼에도 불어온 바람에 오승택이 눈을 떴을 때, 오승택은 방금까지 닫혀 있었던 창문이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야.”

그리고 그곳에는 땀을 뻘뻘 흘리는 상혁이 서 있었다. 그를 본 오승택은 구세주를 본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너, 혹시 한덕광이라고 아냐?”

헤이스트의 부작용으로 체력이 떨어져 헥헥거리면서 상혁이 오승택에게 물었다.

* * *

“저, 전 모릅니다. 모른다구요.”

“아, 진짜.”

검찰 조사관은 한숨을 내쉬면서 치고 있던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그러고는 짜증 난다는 듯 인상을 쓰고는 자꾸만 아니라고만 말하는 오승택에게 언성을 높였다.

“자꾸만 같은 말씀하실 거예요? 증거가 다 나왔다니까! 오승택! 당신이 SG 반도체 공장에 무단침입한 범인이지!!”

“오승택이라니. 전 오승택이 아니에요.”

“하. 진짜. 여기 검찰이 장난으로 보여요? 예?”

오늘 낮 공장에서 끌고 온 오승택은 자꾸만 한 가지 말만 되풀이했다. 자신은 억울하다, 그리고 자신은 오승택이 아니라는 말만 계속 되풀이한 것이다.

하지만 오승택이 아닐 수는 없었다.

그곳에 조사관 한 명만 간 것도 아니고 만약을 대비해 형사도 동행했기 때문에 그들 모두가 오승택이란 것을 확인했다.

“후. 이러면 당신이나 우리 모두 다 힘들어져요. 위에서 들었을 것 아닙니까. 빨리 인정하고 조금이라도 형량이나 깎을 궁리를 해 봅시다. 예?”

조사관은 녹화를 멈추고 오승택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원래 취조하는 동안 모든 영상은 녹화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것이 이곳에는 가볍게 무시됐다.

“진짜 아닙니다. 난 오승택이 아니라구요!”

“아 진짜!!”

탕!!

조사관이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그러자 오승택이 화들짝 놀랐다. 조사관은 인상을 쓰고는 오승택에게 말했다.

“밥이나 먹고 계속합시다.”

“바, 밥이요?”

“그래. 밥.”

뚝.

그러더니 다시금 녹화를 멈췄다. 원래는 밥 먹는 시간에도 영상은 계속해서 기록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끈 조사관이 오승택을 끌고 나갔다.

그러고는 밥 먹는 내내 오승택에게 옆에서 압박을 가했다. 검찰에서 흔히 쓰는 수법인데 검찰에 끌려 들어가면 먼지 한 톨까지 탈탈 털린다는 것이 이것 때문이었다.

과거처럼 고문을 한다든지 하는 과격한 방법은 쓰지 않지만 그것 말고도 사람의 혼을 빼놓을 수 있는 방법은 여럿 존재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다시 취조실로 돌아와 앉은 조사관은 고개를 모니터에 고정하고는 키보드를 쳤다.

“자. 그럼 갑시다. 그때, 공장에 들어갔죠?”

“…….”

“들어가서 어떻게 했습니까? 상황실로 가서 테이저건으로 쐈죠? 예?”

“…….”

조사관이 신경질을 내면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차피 저렇게 버텨도 조서는 위에서 원하는 대로 나올 것이다. 하지만 버티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버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개를 든 조사관의 표정이 멍한 표정으로 변했다.

“강 형사님?”

“…….”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앞에 있던 오승택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현장에 동행했던 강 형사가 억울하다 못해 눈물을 쏟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강 형사의 눈빛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 난 오승택이 아니라 강철형! 이제 기억났다, 내 이름! 흐헝헝헝.”

강 형사가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아 오승택이 아니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게 얼마나 억울했던지, 눈물을 흘리는 강 형사를 보면서 조사관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무언가에 홀린 것도 아니고, 오승택이 갑자기 강 형사로 바뀌다니.

“그럼…….”

그렇다면, 진짜 오승택은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검찰 조사관이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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