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31화
031. 남의 눈에 눈물 낸 놈(1)
한덕광은 이를 으득 깨물었다. 어제 마신 술이 다 깨지도 않았는데 아침부터 짜증 나는 일들이 우르르 몰렸기 때문이다.
“누구?”
“박광인. 나이 49세. 5년 전까지 친모랑 함께 살다가 혼자 살고 있으며 마을 토박이입니다. 젊었을 적에 아산 쪽에서 노가다를 하면서 지낸 기록도 나옵니다. 노름에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전과 5범입니다. 성추행 두 번에 절도 세 번. 출소 후 늙은 노모에게 빌붙어 살아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옆집에 드나들었다고 하고 반쯤 맛이 간 상태에서 비교적 정확하게 진술을 하는 것으로 봐서는 맞는 것 같습니다.”
“진범이다?”
“예.”
“이런 미친.”
쿠웅!!
한덕광의 입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 하지만 조사관들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그들은 잘 훈련된 충견들이기에 이런 일로 감정을 내색하지 않았다.
“이미 시나리오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예. 이미 농약 막걸리 사건으로 뉴스를 통해 보도됐습니다. 용의자로 남편인 김 씨와 딸이 공모한 것으로…….”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지금! 진범이 나오냐는 말입니다!”
한덕광이 인상을 썼다.
“하지만 박광인이 찾아온 즉시 경찰서의 강 형사가 손을 써서 유치장에 가뒀답니다. 기자들이 냄새를 맡지는 못했는데…….”
“그게 자랑입니까? 경찰서에 뒀다는 게? 그대로 두면 시간문제이지 않습니까.”
기자들의 일과 중 하나는 자신이 맡은 관할 내 경찰서를 쭉 돌아다니는 일이다. 그들을 막을 권리는 경찰들에게 없었다.
그러니 이 사실이 경찰에게 알려지면 끝이다.
“강 형사라고 했죠?”
“예, 검사님.”
“당장 풀어 주라고 하세요.”
멈칫.
조사관이 멈칫했다. 그를 본 한덕광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왜요. 진실을 밝히고 범인을 잡는 데 관심이 많습니까? 이런 시골에서 일어난 사건 따위에??”
“아, 아닙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우린 큰일을 해야 합니다. 큰 범죄자를 잡아야 하는 겁니다. 이런 곳에서 썩었다고 해서 품은 야망까지 작아지진 마세요.”
범죄를 징벌해야 하는 검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뻔뻔한 말이었다.
그러라고 월급을 혈세로 받으면서 범인을 잡는 게 자신의 일이 아니라니.
하지만 한덕광의 그런 말에 동요하는 조사관은 없었다.
어차피 다들 끼리끼리 모인 놈들이기 때문이다.
“백 씨 더 압박하세요. 정신 못 차리게 몰아치란 말입니다. 조서 작성이면 10시간이고 20시간이고 못 자게 붙잡아 놓으세요. 원하는 말이 나올 때까지 조집시다.”
“예, 검사님.”
“그 박광인인지 뭔지 하는 놈은 더 이상 내 귀에 안 들렸으면 좋겠네요.”
한덕광의 말에 조사관 하나가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눈이 살기로 번들거리는 것이 한덕광 밑의 조사관 중에서도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는 자였다.
그를 보고 흡족한 미소를 지은 한덕광이 박수를 짝 하고 쳤다.
“어서어서 끝내고 집으로 갑시다. 서울, 거기 가야 두 발 뻗고 자지 않겠습니까?”
“예!!”
대한민국의 법을 집행한다는 천안지청의 한 검사실에서 대놓고 흘러나오는 소리였지만 그걸 듣고 분개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 * *
“진짜인 모양이네.”
상혁은 핸드폰으로 뉴스를 들어가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어제 자신의 집에 쳐들어왔던 그놈의 기사는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터넷 강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거기에 이번처럼 농약 막걸리 사건이라면서 한적한 시골 마을을 경찰과 기자들이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면 더더욱 그랬다.
김 씨와 그 딸.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온 부녀가 그 관계를 눈치챈 엄마를 죽였다는 자극적인 소재만 뉴스 이곳저곳에 또 다른 찌라시가 재생산되어 돌고 있을 뿐이었다.
진범에 대한 것은 단 한 줄의 기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재밌어. 그렇지 않아?”
부글부글.
상혁은 보기만 해도 질식할 것만 같은 더러운 폐수 안에서 노천탕을 즐기듯 머리를 담갔다가 빼며 고개를 돌리고 있는 오승택에게 말했다.
“…….”
오승택은 상혁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상혁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방독면을 쓰고 있어도 다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죽상이면 나도 기분이 별로 안 좋아질 것 같은데.”
상혁은 오승택을 괴롭히고 있었다.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려고 했고 그러기 위해 무고한 전아영까지 습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혁은 그 앞에서 계속해서 깐죽거렸다.
푸하하!!
오승택은 상혁이 손만 닿아도 썩을 것 같은 폐수를 헤엄치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몇 번이고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참아 냈다.
방독면을 쓰고 있어도 독한 냄새가 파고드는데 저 안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다니.
마법까지 쓰는 괴물이라 저런 행동이 딱히 특별해 보이진 않았지만 그게 놀라운 것은 별개의 이야기였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저 더러운 말에 몸을 담그는 것인지. 분명 자신과 똑같은 사람인 것 같은데 저런 곳에 들어가다니 그 마법이란 것을 쓰면 그래야 하는 것인지 복잡한 생각이 오승택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본사에서 추궁해 올 텐데, 어떡하지?’
원래 오승택은 상혁을 기습하여 그가 반도체 공장을 습격한 주범이란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이곳에서 도망쳐 종적을 감출 생각이었다.
그는 말이 보안팀이지 사실상 비밀리에 키워진 부대처럼 운영되는 보안팀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돌아가는 상황이 그랬다.
마법이란 미친 방법으로 그런 짓을 저질렀을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상황에서 상혁에게서 의문점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자신이 의심받을 것을 오승택은 직감했다.
그렇다면 끌려가서 죽을 때까지 자신이 하지 않은 짓을 증명하기 위해 처절하게 발버둥을 치다가 결국 죽었을 것이다.
SG그룹의 일 처리는 원래 그런 방식이었으니까.
거기에 반도체를 관리하고 있는 사람이 백도현이었기에 오승택은 그가 얼마나 잔인한 인물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상혁에게 잡혔다.
‘그 이상한 촉수가 내 뱃속에…….’
그것을 빼내기 전까지는 도망을 가더라도 산 것이 산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도망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어차피 죽는 것이라면 그래도 사람답게 죽고 싶었으니까. 자신의 뱃속에서 괴물이 자라나 죽는 엔딩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흡!!”
그런 오승택의 눈앞으로 상혁이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그러자 놀란 오승택이 뒤로 뒷걸음질을 치다가 턱에 걸려서는 비틀거렸다.
“그러다 빠진다 너?”
뚝, 뚝.
상혁의 턱을 타고 독하디독한 폐수가 뚝뚝 떨어졌다. 그런데 상혁은 마치 온천을 즐긴 것처럼 그렇게 개운해 보일 수가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따악.
그 상태로 상혁이 손가락을 튕기자 상혁의 몸에 묻어 있던 더러운 폐수가 싹 씻겨져 나가면서 피부가 보송해졌다. 그리고 젖었던 옷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오승택은 눈을 질끈 감았다.
무서웠다.
그래서 상혁이 다짜고짜 공장에 찾아와 폐수처리장으로 자신을 안내하라는 말에 거절하지 못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상혁을 데려오느라 진땀을 뺐던 오승택이다. 오승택은 침을 꿀꺽 삼켰다.
“너도 한번 해 볼래? 끝내주는데.”
상혁이 살기를 띠고는 방긋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통에 오승택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가로젓는 오승택을 보며 상혁이 까르르 웃었다.
“아쉽네. 진짜 좋은 건데.”
그런 상혁의 어깨 위로 초아가 뽀르르 날아들었다. 폐수처리장에 오자마자 기겁을 하면서 사라졌던 초아가 여전히 싫어 죽겠다는 티를 내면서도 상혁에게 매달렸다.
정령사탕 때문이다.
“한 번도 안 먹어 볼 수 있어도, 한 번만 먹고서는 못 산다는 건가.”
그렇게 맛있는 것이 있다니. 상혁은 초아가 부러워질 지경이었다. 인간은 뭘 먹더라도 언젠가는 그 맛에 질리고 마니까.
식도락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 잘 알고 있기에 상혁은 입맛을 쩝 하고 다셨다. 초아가 정령사탕을 달라고 조르는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상혁의 핸드폰이 아니었다.
오승택의 것이었다.
‘이익현.’
오승택의 표정이 굳었다. SG그룹 오너일가 백도현의 비서실에 속한 이익현이었다. 동시에 그는 오승택에게 상혁을 찾아내라며 다그쳤던 인물이기도 했다.
“오승택입니다.”
[이익현입니다.]
“예, 이 비서님.”
[그러니까 결국 아니라구요?]
상혁의 귀가 쫑긋했다. 오승택은 상혁이 흥미를 보이는 것을 보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예.”
[흐음. 그러면 곤란한데요?]
“…….”
무엇이 곤란하다는 것인지 오승택은 알고 있었다. 오승택을 범인으로 삼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맙시다. 주가 떨어지는 거, 간신히 방어했어요. 그런데 이걸 어째. 진범이 없네? SG전자 일인데 그래도 범인은 잡아야죠. 그래야 사장님이 너그러워지실 겁니다.]
오승택에게 범인이 아니어도 범인이 되라는 소리였다.
이유는 백도현의 기분과 SG전자의 주가를 위해서.
그러기 위해 한 사람의 인생을 저당 잡겠다는 당당한 말에 오승택은 한마디도 받아치지 못했다. SG그룹이 대한민국에서 못 하는 짓이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다녀오세요. 그동안 가족은 잘 봐 드릴게. 입 다무는 조건으로 5억 드리죠.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알고 조사 잘 받으세요. 영치금도 많이 넣어 드리겠습니다.]
비서는 자신이 할 말만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어지자 상혁이 오승택을 쳐다봤다.
“그래. 네가 다 뒤집어쓰게 된 모양이지?”
“…….”
오승택은 대답하지 않았다.
“안타까워서 어쩌나. 거기 들어가면 뱃속에 든 건 어쩌고. 내가 면회를 가야 하나?”
상혁의 말에 오승택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상혁에게 말했다.
“가서 죗값을 치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거, 빼 주십시오.”
“이야. 당당해. 누가 보면 내가 악당이야. 그렇지?”
지금 구도만 봐도 딱 상혁이 악당처럼 보였다. 하지만 오승택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쿵!
무릎이 아플 테지만 오승택은 눈가를 찡그리지도 않았다. 상혁은 흥미로운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이대로 들어가면 죽을 겁니다. 그렇게 죽게 하려고 그런 걸 나에게 먹이진 않았을 테니까. 만약 그렇다면 여기서 그냥 죽이십쇼.”
오승택은 비장한 표정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그날 밤의 일은 그 전아영 씨에게도 미안한 마음입니다. 이것도 다 내가 당신에게 졌으니까 하는 말이겠지만 난 감옥에서 죽고 싶지 않습니다.”
“왜?”
“내가 죽으면 가족도 죽습니다. 치매 걸린 어머니가 있고 동생이 있습니다. 내가 벌어서 병원비 냅니다. 내가 죽으면 끝입니다.”
자신의 목숨에 두 사람의 목숨이 더 걸렸다. 오승택은 적어도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안타깝네. 하지만 그런 사정을 가진 게 너뿐일까?”
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오승택이 상혁을 겁 없이 공격하려고 한 것 자체가 문제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진 것뿐이다.
“만일.”
오승택의 눈빛이 그 순간 변했다.
“제 뱃속의 그것을 없애 주신다면 원하는 것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
오승택은 바보가 아니다. 거기에 죽음의 순간에서 그의 머리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빨리 회전했다. 따라서 그는 상혁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유추해 낼 수 있었다.
“SG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다른 지역의 공장 중에, 이런 폐수들이 많은 곳을 알고 있습니다.”
“흠?”
상혁이 구미가 당기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SG그룹의 보안팀은 주기적으로 SG그룹의 주요 공장들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을 다닙니다. 웬만한 공장은 다 다녀봤습니다. 해외에 있는 공장까지 전부.”
“그리고?”
“SG그룹은 환경보호에 별 관심이 없는 그룹입니다. 정부의 비호와 막대한 뇌물로 환경법들을 우습게 만들고 있으니까요. 이런 폐수가 가득한 곳. 많습니다.”
오승택의 승부수였다.
상혁은 강한 흥미를 느끼며 히죽 웃었다. 그때 상혁의 눈앞에 또 다른 퀘스트가 떠올랐다.
[퀘스트 : 냄새나는 대기업
내용 : SG그룹에서 생산하는 오·폐수 일천만 리터 정화(0/10,000,000)
보상 : 근력/민첩/체력 스텟 +1]
두 번째 퀘스트였다.
“콜.”
상혁이 콜을 외치며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그 순간 오승택의 몸에서 빠직 소리가 나면서 기계가 망가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을 깨달은 오승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기분 좋으니까 봐준다. 이거.”
오승택은 그 와중에도 꾀를 썼다. 상혁과 마법을 영상에 담아 살길을 궁리했으니까. 오승택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