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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30화 (29/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30화

030. 개막장(5)

오승택이란 말 잘 듣는 노예 하나를 하나 더 얻은 상혁은 콧노래를 부르며 전아영이 가져다준 반찬통과 함께 싸준 밥통의 밥을 꺼내 근사한 한 상을 차렸다.

“와.”

쩝쩝.

상혁은 맛깔스러워 보이는 붉은 반찬들의 환영에 눈물을 글썽거리다가 참지 못하고 반찬을 집어 먹었다.

“이 맛이야…….”

이제 지구의 음식에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먹을 때마다 쓰나미 같은 감동이 밀려왔다. 가나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 맛깔나는 빨간색이 너무나도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귀영화가 다 필요 없었다.

마탑의 탑주에 대륙 최고의 대마법사라고 불려 봤자 뭐 하겠는가.

붉은 김치 한 조각이 그리워도 그 맛을 재현하지 못해 늘 향수병만 깊어졌거늘.

상혁은 그렇게 마모되었던 영혼이 지구의 음식으로 치유를 받는 기분이었다. 상혁이 콧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그의 눈에 방구석에 토라져 있는 초아가 눈에 들어왔다.

“풀떼기야.”

흥!

초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작은 그 정령이 등판만 보인 채 토라져 있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살아온 세월은 상혁과 비교해 백배는 더 길 테지만 그래도 하는 행동이 귀엽기 그지없었다. 솔직히 보고 있으면 힐링이 되는 점도 없지 않아 있기에 초아에게 어느새 익숙해진 상혁이었다.

‘신기하네.’

마법사로 살면서도 단 한 번도 애완동물이나 제자 같은 것을 키워 본 적이 없던 그였다. 그런데 애완동물 비슷한 저 정령 하나에 금방 이렇게 친밀감을 느낄 줄이야.

자연과 가까운 정령이고, 영혼으로 계약을 맺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었지만 저러고 있으니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후읍.”

상혁이 마나를 끌어모으며 코에 힘을 주자 잠시 후 상혁의 손바닥 위에 풀빛의 작은 구가 생성됐다.

“엘프들에게 물어보니 이거에 그렇게 환장한다고 하던데.”

가나안에서 엘프들과 소통을 하며 정령에 대해 연구하며 얻었던 것 중 하나였다. 본인이 보유하고 있는 친화력을 캔디처럼 만들어 정령에게 주면 환장한다는 게 떠오른 것이다.

토라진 초아를 달래 주기 위해 상혁은 사탕을 만들었다.

정령사탕.

살랑.

그러자 등을 돌리고 있던 초아의 이파리가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초아의 감정이 저 이파리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상혁은 빙긋 웃었다.

“아, 이거 어쩐다. 정령사탕을 만들었는데. 먹을 사람이 없네? 초아야 삐져서 먹지도 않을 테니까.”

살랑살랑.

상혁이 너스레를 떨자 이파리가 더 흔들렸다.

“에이. 이대로 놔둬 봤자 다시 흩어질 테니까 내가 먹어야겠다. 삐진 초아는 먹지도 않을 거니까.”

살랑살랑살랑.

초아의 이파리가 더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금 심적으로 심하게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초아가 그렇게 삐진 이유는 간단했다.

상혁이 첫 번째 퀘스트를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있어서다.

세계의 의지가 상혁에게 지구의 정화를 위해 부탁한 일이지만 상혁은 사실 도와줄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해 퀘스트를 하는데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곁다리 느낌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초아에게는 그게 당면과제요 인생 과제였기 때문에 상혁과 초아가 느끼는 간절함의 차이가 있었다.

초아로서는 상혁이 움직여 주지 않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니 저렇게 삐지는 것이고.

“빨리 밥 먹고 나가려고 했는데. 에이, 그럼 내가 먹는다? 아아~”

상혁이 정령사탕을 손가락으로 집어 입을 벌리고는 소리를 냈다. 그 순간 향긋한 풀 내음과 함께 상혁의 손가락에 있던 정령사탕이 뽕 하고 빠져나갔다.

푸르릉.

결국 초아가 유혹에 굴복했다. 초아는 자신이 유혹에 굴복했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정령사탕이 좋아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혁이 피식 웃었다.

“그거 먹고 나가자. 퀘스트 마저 할게.”

뽀로롱.

그러자 초아가 자신이 져 주겠다는 듯 이파리를 살랑거리면서 정령사탕을 양손으로 쥔 채 상혁의 어깨에 자리를 잡았다.

무언가를 먹는 행위가 필요 없는 정령이지만 저 정령사탕이 정령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고 주인과의 유대를 끈끈하게 해 준다고 해서 저 정령사탕을 정령들이 좋아한다고 했다.

오물오물.

초아가 먹는 것을 보며 전아영이 싸다 준 반찬과 밥을 해치운 상혁은 깨끗하게 빈 반찬통을 챙겨 넣으면서 꺼억 하고 트림했다.

“잘 먹었다.”

냉장고도 없어 보관하기가 까다로운 반찬이었지만 상혁은 그럴 필요가 없이 한 끼에 다 해치웠다.

아침부터 거하게 한 상을 차려 먹은 상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누군가 바깥에서 대문을 탕탕 두드렸다.

“아침부터?”

동네에 농약 막걸리 사건 때문에 기자나 경찰 등 외지인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다 허물어져 가는 상혁의 집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그 대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누구세요?”

“어흐흠!”

상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나가자 밖에서 누군가 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문을 열어 보니 낯이 익은 사람이었다.

어제 문 앞에 서성거리며 초조하게 어딘가를 쳐다보던 사람이었다.

이 마을 사람이라고 했던가?

“뭡니까?”

상혁은 심드렁하게 그 사람을 쳐다봤다. 별로 느낌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무언가 쫓기는 듯한 초조함이 영 거슬리는 사람이었다.

“그, 지난번 앞에서 본 사람인데.”

“압니다.”

“어험. 내가, 그 말이 너무 심했던 것 같아서. 미안해서 사과하려고.”

상혁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얼굴에 미안함이라고는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하는 말과 표정이 그렇게 상반되니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상혁이 그렇게 쳐다보는 것을 아는지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우리 집이, 험. 탁주를 파는데, 험. 이거나 먹고 기분 풀라고. 그, 같은 마을 사람이니까. 응?”

상혁은 미심쩍은 얼굴로 그를 보면서 비닐봉지를 받았다. 그러자 그 남자가 은근히 물었다.

“이쪽에서 기자나 경찰이 찾아왔는가?”

“아니요.”

왔어도 상혁이 사는 집에는 오지 않았다. 그러자 남자가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거참. 장사하고 늦게 들어와서 다시 나가려면 푹 자야 하는데, 바로 옆집이라고 어지간히도 기자랑 경찰들이 괴롭혀서 말이야. 막걸리 파는 게 죈가?”

막걸리를 파는 집을 하는데 농약 막걸리 사건이 터져서 경찰에게 여러 번 불려 간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쌓인 것이 많아 보였는데 남자가 슬쩍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그, 나중에 기자나 누가 와도 나 봤다는 건 말하지 말아줘.”

‘호오.’

상혁의 눈이 뱀처럼 가늘어질 뻔했지만 상혁은 얼른 눈빛을 바꿨다. 순진무구한 청년의 그것으로.

“왜요?”

“내가 말했잖나. 괜히 귀찮아서 그래. 귀찮아서.”

험험, 하고 그가 헛기침을 했다. 상혁이 그 남자를 빤히 보고 있다가 이내 목소리를 낮추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말이에요.”

남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그날 밤에 뭘 보긴 했거든요.”

상혁의 집은 농약 막걸리 사건이 났던 집과 눈앞의 남자가 사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집 지붕에 올라가면 훤히 보일 정도였다.

“뭘 봐?”

남자의 눈빛이 변했다. 하지만 상혁은 모른 척하고는 말했다.

“왜, 그 사고가 일어났던 밤 말이에요. 제가 그날 지붕에 뚫린 구멍 막고 있었거든요.”

“그 늦은 밤에?”

남자가 말하자 상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비 올지도 모르는데 그럼 놔둬요? 낮에는 일 때문에 바쁘니까 어두워지기 전에 올라간 건데.”

상혁이 손으로 지붕을 가리켰다. 상혁의 집은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멀쩡한 곳이 없었다.

남자의 눈에 일말의 불안감이 깃들었다.

“그래서?”

“왜, 그 꽤액 하고 비명이 나오기 전에요. 어떤 사람이 그 집에 들어가는 걸 봤거든요. 어둡고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는데…….”

남자의 눈에 깃든 불안감이 더 짙어졌다. 그것을 본 상혁의 입가가 쭉 벌어졌다.

“너지?”

“……!!”

남자의 눈이 커졌다. 상혁이 그렇게 물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상혁이 손을 까닥하고 흔들자 남자가 들어왔던 대문의 문이 쾅 하고 닫혔다.

“락.”

철컥!!

“뭐, 뭐야!!”

남자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그가 들어왔던 문은 다시 열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남자가 상혁을 보자 상혁이 씩 웃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네가 아니면. 왜 여기 독을 타 왔어?”

상혁이 비닐봉지를 들어 올렸다. 상혁이 남자를 의심한 이유는 남자가 사 왔다며 내민 비닐봉지 속 막걸리에서 마나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독.

남자는 자신을 본 상혁을 죽이기 위해 온 것이었다. 혹여라도 자신의 꼬리가 밟힐까 봐 우연히 마주친 사람까지도 죽이려고 한 것을 보면 충분히 사이코였다.

게다가 그 불안감.

상혁은 수도 없이 많은 인간 군상들을 봐 왔다. 그들 중 범죄자는 다 세면 만 명을 넘어갈 정도로 많았다.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인 사람도 살인범으로 볼 수 있다면 말이다.

거기에 마탑인데, 도둑들이 좀 많이 왔겠는가. 그들을 붙잡아 놓고 직접 심문을 했던 것이 바로 상혁이었다.

“자. 어디 한번 개막장스러운 일이 진짜 일어나는지 한번 보자고.”

마침 시내에 나갔다가 심히 수상쩍은 대화를 들은 김에 진짜 그게 진실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눈앞에 진범이 짠하고 나타났으니 이게 웬 떡이냔 말인가.

“아, 그런데.”

상혁이 무언가를 하기 직전에 생각이 난 듯 남자에게 물었다.

“그 사람들은 왜 죽인 거야?”

상혁이 묻자 남자의 눈에 광기가 돌았다. 정신을 차린 것이다. 남자가 벌떡 일어나 상혁에게서 멀어지면서 소리쳤다.

“그게 뭐! 사람 죽일 수도 있지! 내가 그 집 딸년을 나한테 달라고 그 할매한테 얼마나 지랄했는데. 어차피 그 집 딸년도 나 없으면 못 사는 몸이란 말이지. 크헤헤.”

남자가 침을 쭉 흘리면서 웃자 상혁이 짧게 웃었다. 진성으로 단순한 미친놈이라는 것 때문이다.

“어이구. 그것 때문에 이웃집 할매를 죽였어? 네 명이나?”

“누가 같이 마시랬나? 그러니까 딸년을 줬으면 되잖아. 크히히히.”

그 집 딸이 30대라던데, 눈앞의 남자는 딱 봐도 40대 후반이었다. 그리고 저 눈을 보고 누가 딸을 보내고 싶어 했겠는가.

“어차피 모자란 년이야. 어차피 할매 할배들 다 뒈지면, 내가 돌봐줘야 하잖아? 내가 잘 돌보겠다고 했지. 예뻐해 주면서. 크히히. 이미 예뻐해 줬지만.”

이미 일을 저지른 모양이었다. 한 여자를 짓밟은 놈치고는 너무나도 광기에 물들어 있으면서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을 조금도 안 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본성을 쉽게 드러내는 것이 더 웃겼지만 상혁은 이해했다.

“그러면 어디, 네 발로 경찰서 가서 자수해 봐. 그러면 아마 네 솔직함과 남자다움에 반해서 그 집 딸이 너한테 시집온다고 할지도?”

상혁 앞에서 정상인 행세를 곧잘 잘하던 남자다. 그런 남자가 갑자기 미친놈처럼 저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우웅.

마법.

이미 상혁은 남자에게 힙노시스, 최면 마법을 건 상태였다.

1서클의 간단한 마법으로 웬만한 일반인도 정신이 건강하다면 걸리지 않는 마법이다. 하지만 유독 살인 같은 강력 범죄를 저지른 놈들은 잘 걸린다.

미쳐 있는 놈들의 정신이 건강할 리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나도 없으니 1서클 최면 마법으로도 충분한 정도.

‘마나 소모가 심하지만.’

인간의 정신에 개입하는 마법은 전체적으로 마나 소모가 심했다. 그 때문에 며칠 동안 제대로 충전을 못 해 상혁의 마나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어쨌거나 상혁이 그렇게 말하자 남자가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침을 줄줄 흘렸다.

“좋아! 그거지! 그렇게 하면 되지. 응? 크히히히히.”

상혁이 손을 들어 문을 가리켰다. 잠겼던 문은 어느새 열려 있었다.

“자, 그럼 경찰서로 가자.”

“두고 보라고. 그 집 딸년은 내 것이 될 테니까. 내 남자다움을 보게 될 거라고.”

최면에 당해 스스로 경찰서에 자수하러 가는 남자의 발걸음은 꽤 급해 보였다. 그만큼 몸이 달아올랐다는 증거다.

그렇게 손쉽게 진범 하나를 보낸 상혁이 히죽 웃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하는지 지켜볼까?”

과연 이 사건을 놓고 뒤에서 일어날 더러운 거래가 진실일지 아닐지, 상혁은 관조자가 되어 지켜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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