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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29화 (28/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9화

029. 개막장(4)

시골에는 놀만 한 것이 많이 없었다.

엄마와 아빠는 시내에서 일을 한다고 바빴다. 그래서 맨날 심심하면 시골 애들이 으레 그렇듯 동네 친구를 찾아 놀았다.

그런 점에서 앞집에 살던 한 살 많은 오빠는 전아영에게 언제나 놀기 딱 좋은 오빠였다.

그 오빠네 부모님도 바빠 오빠도 심심해 보였으니까.

그래서 맨날 논이고, 밭이고, 둑길이고 쏘다녔다. 얼굴이 까맣게 타고 콧물을 흘리면서 그렇게 열심히 오빠를 졸졸 따라다녔다.

어린 나이에 한 살은 대단히 어른 같아 보였으니까.

그리고 어른 같아 보이는 건 다 따라 하고 싶었던 나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오빠를 따라 꽃망울 안의 꽃을 따먹겠다고 꽃을 따다가 노랗고 검은 줄무늬를 가진 앙증맞은 벌에 손을 톡 하고 쏘였다.

[으아아앙.]

앙증맞은 벌이었는데 침은 매서웠다. 그 때문에 그녀는 눈물을 쏙 빼면서 앙앙거리며 울었다. 그러자 그 울음소리를 듣고 온 앞집 오빠는 그녀의 손을 붙들고는 집으로 뛰어갔다.

그녀는 아직 키가 작아 열지 못하는 냉동실 문을 끙끙거리며 열더니 그 안에서 얼음을 톡 꺼내서는 그녀의 손등에 문질러 주었다.

그 차가움에 히끅대는 그녀의 입에 얼음 하나를 넣어 주고는 헤 하고 웃은 그 오빠는 얼음을 우물거리는 입으로 손등을 호 하고 불어 주었다.

그게 꽤 시원했다.

그 시원한 마음이 어리디어린 소녀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으니까.

호오오오.

그런데 그 시원한 입김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 시원함에 전아영이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눈을 뜬 순간, 그녀의 눈앞에 그 오빠가 눈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의 그 모습이 아닌, 커질 대로 커서 이제는 더 클 것 같지 않은 얼굴이 들어온 것이다.

“……!”

전아영의 눈이 커졌다.

* * *

긁적긁적.

상혁은 뒷머리를 긁적이는 척을 하면서 손을 털어 냈다. 그러자 미약한 소독 효과를 가지고 있는 1서클 마법, 큐어의 빛이 훅 하고 꺼졌다.

“일찍 정신을 차렸네요?”

“나한테 무슨 짓 했어요?”

상혁의 손이 전아영의 손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상혁은 얼른 그 손을 놓았다. 전아영이 쓰러지면서 손등이 쓸렸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어 닦아 주고 있던 참이었다.

워터 마법과 큐어 마법을 썼으니 손등이 차가웠으리라.

“그냥. 좀 쓸렸길래요. 그냥 놔두기도 뭐 하잖아요.”

상혁이 멋쩍게 웃자 전아영은 그런 상혁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팍 하고 털었다.

그런 전아영이 작게 ‘이게 무슨 꼴이냐’라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상혁은 그녀가 창피해한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맞다!”

그러다 전아영은 자신이 오승택의 습격을 받고 쓰러졌음을 기억해 냈다. 동시에 상혁이 그런 오승택을 물리치고 자신을 구해 줬다는 것도.

물론 백마 탄 왕자는 아니었다.

“내, 내가 본 게 뭐죠?”

전아영은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제 귀로 듣고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오히려 더 의연하게 물어야 했는데 몸이 이성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그런 전아영의 속도 모르고는 상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차피 숨길 생각도 없지만.”

“……네?”

딱히 크게 숨겨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차피 소문이 날 만한 건 사전에 차단하는 것도 있었고, 이렇게 봤다고 하더라도 남들에게 말해 봤자 미친놈 취급을 받을 테니.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겨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 이건 상황이 다른가?

“마법입니다.”

“마법이요?”

그건 확실히 마법이라고 부르는 것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상혁이 당연하다는 듯 숨기지도 않고 그렇게 대답하자 더 믿기가 힘들었다.

“마법이 어디 있어요.”

“음, 여기?”

화르륵!

상혁의 손가락 끝에 라이터 최대 화력만 한 크기의 불꽃이 화르륵 피어올랐다가 피식하고 꺼졌다. 전아영은 입을 뻐끔거렸다.

직접 두 눈으로 봤으니 없다고 할 수도 없었다.

쿵쿵쿵.

전아영의 심장이 미친 듯이 펌프질을 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눈앞에서 본 사람의 흔한 반응이었다.

상혁은 그런 전아영이 패닉에 빠지기 전에 재빨리 말했다.

“거, 어쩌다 봤으니까 약속 하나만 합시다.”

“약속이요?”

“네. 그쪽 구하려다가 내가 마법 쓴 거니까 어디 가서 발설하지 않는 걸로.”

“비밀이네요?”

“그런 셈이죠.”

“그런데 나한테는 왜 순순히 밝혀요?”

상혁은 그런 전아영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자신에게 무슨 대답을 원하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나가기로 했다.

“죽여서 입 막는 게 더 힘들어서요.”

“마법이라고 하는 것도 믿기 힘든데, 사람도 죽인다구요?”

“아직 죽인 적은 없어요.”

‘적어도 지구에선’이라는 말을 삼킨 상혁이다. 하지만 마법사라는 사람이 그렇게 담담하게 말하니 그게 더 무서웠던 모양이다.

전아영이 패닉에 빠지기 전에 얼른 확답을 받아 놓기 위해 다그쳤던 상혁이지만 전아영이 다시 횡설수설을 했기 때문이다.

“마법사…… 오 팀장, 아니 그 개자식이 날 습격한 것도 놀랐는데 마법사라니. 앞집 오빠가 마법사였다니.”

“앞집 오빠?”

상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말에 전아영의 눈에 빛이 살짝 돌아왔다.

“어릴 때. 많이 놀았잖아요. 벌에 쏘였을 때 치료도 해 줬으면서.”

상혁에게는 한 60년 전쯤의 일이다. 일 갑자 정도 되는 일이니 자연히 흐릿할 수밖에. 게다가 부모님과 살았던 그 행복했을 때의 기억은 의도적으로 잘 꺼내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기억을 되살리자 그 기억 속에 있었다.

귀찮게 자신을 쫓아다녔던 꼬마 계집애가.

‘얘가 걔라고?’

한 살 밖에 차이 안 나면서 얼마나 애 같이 징징거리던지. 그때도 생각해 보면 또래보다 조숙했던 것 같다. 그래도 어린애한테 매몰차게 대할 수 없어서 많이 데리고 돌아다녔었는데.

인연이란 게 참 묘했다.

그때의 꼬마가 여전히 여기 살고 있었고, 가나안에서 돌아오자마자 돌아온 고향에서 그 애를 다시 만나다니.

‘뭐 그건 그거고.’

그러나 그게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코흘리개 시절에 같이 뛰논 사이라고 해서 뭐 갑자기 절친을 맺을 것도 아니고. 그냥 지금처럼 그대로 지내면 된다.

“짜잔. 옛날 알았던 앞집 오빠가 마법사가 되어 돌아왔답니다.”

상혁이 영혼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전아영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전아영의 기색을 살피니 패닉에서는 간신히 빠져나온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말을 계속해서 해도 된다.

“……일단 마법이 진짜라고 치고, 그거 소문나면 딱 어디 팔려 가서 생체실험 당하기 좋을 것 같아서 그러는 거예요.”

“지금이 15세기도 아니고…… 그리고 마법도 진짜 맞아요.”

“안 그럴 것 같아요?”

상혁은 권력의 추악함을 잘 안다. 또한 힘 없는 신비란 것이 어떠한 취급을 받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상혁도 마나안을 개안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도 인체실험의 대상이 됐었으니까.

전아영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천재지변이라고 생각하세요.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렇게 된 거는 아니니까.”

그렇게 쿨하게 말한 상혁을 전아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봤다. 하지만 상혁은 그보다 먼저 전아영에게 물었다.

“반도체 공장에 경비팀장이 왜 그쪽을 납치하려고 했던 겁니까?”

“댁과의 관계를 묻던데요.”

“저요?”

상혁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전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해가 안 돼요. 저 개자식이 그렇게 나올 이유가 없는데. 안 그래도 반도체 공장 털려서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한데 며칠 동안 보이지도 않더니…….”

그렇게 중얼거리던 전아영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설마, 당신이었어요?”

“뭐.”

긁적긁적

상혁은 한 번 더 긁적거렸다. 전아영은 짝 소리가 나게 자신의 이마를 쳤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설마 그 범인이 자기 동네에 있었을 줄이야.

“그럼 개자식이 여기 왔다는 건 댁을 의심하고 있다는 뜻이네요?”

“대충 정리는 해 놨는데. 한 명이 더 있었네요.”

상혁은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는 전아영을 서둘러 쫓아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이제 일어나셨으면 이만 들어가세요. 부모님이 걱정하십니다. 여기 문제는 저한테 맡겨 놓으시고요.”

“…….”

전아영은 찜찜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전아영을 상혁이 열심히 등 떠밀었다. 그렇게 쫓겨나듯이 마당으로 나온 전아영이 멈칫했다.

오승택이 바닥에서 기어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릅!

정신을 차린 오승택이 전아영을 보면서 눈을 부릅떴다. 출근하면 오승택을 또 봐야 한다는 사실에 전아영이 무언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상혁 씨.”

“네.”

“제가 내일 출근하면 저 사람을 계속 봐야 하거든요.”

“네.”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그게 걱정일까 싶어 상혁이 전아영에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아마 내일 되면 고분고분하게 바뀔 테니까.”

어떻게 그렇게 할 것이냐는 묻지 않았다. 전아영은 대신 상혁이 상상치도 못한 말을 했다.

“그 전에 한 대만 때릴게요.”

“네?”

부웅!

퍽!!

“커억!!”

부르르르,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가장 소중한 부위를 손으로 가렸다. 전아영이 쓰러진 오승택에게 달려가 싸커킥을 그 부위에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당연히 가리거나 방어할 수단이 없던 오승택의 두 눈에 핏줄이 불거졌다. 남자에게 있어 그곳의 통증은 그 어떠한 고통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후, 됐다. 제가 당하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전아영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상혁을 보면서 말했다. 그게 마치 경고처럼 들렸기 때문에 상혁이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마법사여도 남자의 취약점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고 걷어차는 잔인한 전아영의 모습에 기가 눌린 것이다.

“근데 당신.”

전아영이 몸을 돌려 상혁을 쳐다봤다.

“산업스파이, 뭐 이런 건 아니죠? 그러니까 범죄를 저지르고 막 그러는 범죄자는 아닌 거죠?”

전아영의 말에 상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중요합니까?”

“중요하죠. 범죄자랑 얽히면 나도 고달파지는데요. 그리고 그런 사람이면 친하게 지낼 생각도 없고.”

“뭐 지금도 친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말입니다. 그런 건 아닙니다. 범죄를 저지를 정도로 궁한 건 아니라.”

“역시, 그렇죠?”

상혁의 말에 혹시나 하는 표정을 짓던 전아영의 얼굴에서 드리워져 있던 그늘이 사라졌다.

“게다가 제가 범죄를 저질렀으면 댁 같은 사람한테 들킬 정도로 허술하게 처리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뭐예요? 진짜, 사람이 일관적으로 재수가 없으시네요.”

전아영이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럼 공장에는 왜 들어왔던 거예요?”

전아영의 흥미에 오승택이 고통 속에서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 느껴졌다. 상혁은 어차피 설명해 줘봤자 알아듣지 못할 사람들에게 길게 설명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필요한 게 있었거든요. 그냥 그 정도만.”

“범죄는 확실히 아니구요?”

“반도체 기술을 내가 훔쳐 가서 뭐합니까. 고시생이었는데. 다른 데 관심이 있어서 들어가 본 겁니다. 정확히는 저 양반이 데리고 들어간 거지만.”

오승택이 움찔했다. 전아영은 그런 오승택을 보며 아직도 분이 안 풀린 듯 훅 하고 콧바람을 내뿜었다. 그러고는 오승택을 넘어 대문을 손으로 밀었다.

다시 한번 더 찰 줄 알고 오승택이 쫄았다가 수치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끼익.

“반찬통은 내일 돌려줘요. 우리 집에도 반찬통 없거든요.”

그러면서도 내일 만날 빌미는 남겨 두고 사라지는 전아영이었다. 그렇게 폭풍처럼 휩쓸고 사라진 그녀를 보던 상혁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전아영을 보낸 상혁이 오승택의 앞에 다가와는 쭈그리고 앉았다.

“참을성이 좋아. 입을 막은 건 아닌데 지금까지 다물고 있었으니까.”

“…….”

사일런스 마법은 4서클의 마법이다. 아직 2서클인 상혁은 오승택의 입을 막진 않았다. 하지만 오승택이 침묵을 유지했다는 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뭐 얻어 갈 게 없을까 귀를 기울인 거야? 기특하네. 아주 충심이 높아.”

상혁의 정보를 하나라도 더 빼내겠다는 것. 상혁이 피식 웃고는 그런 오승택 앞에 앉았다.

“내가 솔직하게 말해 줄까? 내가 그 공장에 들어갔던 이유는 말이야.”

상혁은 그런 오승택에게 자신이 마법사이고, 마나를 쌓기 위해 공장 폐수가 필요했다는 것까지 전부 다 말해 주었다.

그러자 오승택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못 믿겠지? 그래도 상관없어.”

“그걸 왜 나에게…….”

“왜냐고?”

상혁이 히죽 웃었다. 그와 동시에 상혁의 손에서 잿빛의 촉수가 꿈틀거리는 둥그런 단환이 생겨났다. 보기만 해도 역겹게 꿀렁대는 수백 개의 가느다란 촉수가 달린 단환을 보는 오승택의 눈이 촉촉하게 젖었다.

“알려 줘도 넌 말을 못 할 거거든. 내 허락이 없으면.”

“우우웁!!”

상혁이 그 무형의 촉수가 오승택의 눈과 코, 귀와 입으로 촉수를 뻗으며 안으로 파고드는 모습과 그것을 보고 기겁하는 오승택을 보면서 낄낄거리면서 웃었다.

그렇게 상혁에게 흑태양파와 조진만에 이은 세 번째 똘마니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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