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6화
026. 개막장(1)
원래라면 평온해야 하는 한밤중의 시골 마을이 경찰차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대한민국 경찰의 출동 시간은 경이로울 정도로 빨랐기 때문에 이선호와 상혁이 비명이 터져 나온 곳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 앞에는 경찰차와 구급차가 서 있었다.
당연히 이곳에서 일어난 소란에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잠시 후 경찰차 두 대가 더 도착했다.
“무슨 일이야?”
“아이고 아지매. 집에 계시지 왜 이 시간에 여기까지 나오셨어요.”
“이렇게 소란스러운데 어떻게 집에 있는담?”
당연히 시골인 만큼 경찰들과 동네 사람들도 안면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덜커덩 소리가 나더니 안에서 구급대원이 들것에 사람을 실어 나왔다.
“아이고!”
안색이 시퍼렇게 변한 채 입가에 거품을 매달고 있는 할머니였는데 그 할머니를 알아본 옆집 사람들이 입에서 안타까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그 할머니뿐만이 아니었다.
그 뒤로도 똑같이 뽀글파마를 한 할머니들 세 명이 더 실려 나온 것이다.
“심상치 않은데요.”
이선호가 상혁 옆에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상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보더라도 이건 집단 중독 증상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고인지 아니면 고의적인 범죄인지가 문제다.
“그러게요. 이미 죽었던데.”
“네?”
“아, 돌아가셨다고 해야 하나?”
“…….”
이선호의 낯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사람이 죽는다는 건 희귀한 일이다. 자연사가 아니라 그것도 중독 증상에 의해서는 더더욱 희귀했다.
구급대원이 들것에 실어 갔지만 상혁은 이미 그들이 나올 때 그들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잔존 마나가 몸속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소위 영혼이라 말하는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들것에 실려 나온 사람들의 몸에서 순도 높은 마나가 느껴졌다.
영혼이 보유한 마나와는 전혀 다른 재질이었다. 외부에서 주입이 된 마나라는 뜻이다. 이 지구에서는 그 정도 마나를 품을 수 있는 건 인체에 해로운 물질뿐이다.
독.
‘아니, 무슨 시골에서 독살이 일어나?’
상혁은 주변을 슥 훑었다. 조용한 곳이라 힘을 회복하고 난 뒤 한번 제대로 살아 볼 생각이었는데 전혀 조용한 곳이 아니었다.
대기업 소유 공장과 얽혀서 얼굴이 팔리더니 마음에 드는 변호사는 독살을 당할 뻔했고, 옆집에서는 실제로 독살이 일어나다니.
“변호사님!”
“아영 씨?”
그때 전아영이 나타났다. 그녀의 집도 상혁이 사는 곳과 같으니 이 소란을 들은 것이리라. 전아영이 상혁을 보고 움찔했다.
“댁, 댁도 왔네요?”
“같이 삽니다. 변호사님이랑.”
“아 맞다.”
전아영이 황급히 변호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상혁과 눈을 마주치기가 부담스러워하는 모양이었다.
‘왜 피해?’
상혁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 여자의 변덕이 하루 이틀인 것도 아니고. 애초에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으니 그냥 신경을 끄기로 했다.
“무슨 일이에요?”
“여기 사시던 분들이 구급차에 실려 가셨어요.”
“할머니가요??”
전아영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시는 분이세요? 혹시…….”
“아, 아니요. 친할머니는 아니세요. 그냥 오래 봤으니까.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전아영이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때 저 안에서 아이고, 하는 소리가 나면서 우당탕탕 거리는 소리가 났다.
“여보, 여보!!”
실려 나간 할머니 중 한 명의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손이 나무껍질처럼 거칠게 변한 농부의 손을 가진 남편이었다.
“자, 자. 일단 다들 집으로 돌아가셔요. 저희는 조사를 해야 하니까. 들어가세요.”
경찰들이 주민들을 달래서는 집으로 보냈다. 상혁과 이선호, 전아영도 발걸음을 돌렸다.
“어떻게 해요. 김 씨 할아버지가 얼마나 할머니를 아끼셨는데. 어떻게 해…….”
전아영이 안타깝다는 듯 발을 동동 굴렀다. 오지랖이 넓은 여자답게 동네 주민들의 신상을 다 꿰뚫고 있는 듯했다.
“딸도 있는데. 그 언니는 이제 누가 돌봐…….”
“딸이 있어요?”
“네. 그런데 조금 불편한 언니거든요.”
전아영이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던 시골 마을에 있는 가구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곳에 비극이 일어나다니.
“전 먼저 갈게요. 아빠한테도 말씀드려야겠어요.”
“네, 조심히 가세요.”
이선호가 전아영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지만, 상혁은 그냥 고개만 까닥거렸다. 전아영이 그런 상혁을 쳐다보다가 이내 멀어져 갔다.
그렇게 전아영이 멀어지자 이선호가 상혁을 불렀다.
“상혁 씨.”
상혁은 이선호가 쳐다보는 눈빛만으로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을 해독하는 것처럼 그 할머니들도 살릴 수 있지 않으냐는 뜻이었다.
‘측은지심도 비슷하네.’
삼왕자와 비슷한 눈빛을 볼 때마다 가슴이 간질거렸다. 하지만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돌아가신 분을 살릴 능력은 없습니다.”
“정말 돌아가신 겁니까?”
“네.”
이미 늦었다. 상혁의 단호함에 이선호는 가슴이 무거운 듯 후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상혁이 이선호에게 말했다.
“꽤 원한이 깊은 관계에서 일어난 사건 같던데요.”
“원한이요?”
“네. 우리가 비명을 듣고 그곳에 도착한 게 한 5분 정도 걸리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그 사이에 사람이 죽었으니까요. 그 정도로 극독을 썼다면 원한이 깊지 않겠습니까?”
이선호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5분 만에 죽게 만드는 치명적인 극독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걸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준비도 철저하게 한 모양입니다. 제가 농약을 사려고 했는데 잘 파시지도 않더라구요. 그런데 사람이 한 명도 아니고 네 명이나 죽었을 정도의 극독을 쓰려면…….”
“…….”
“그리고 비명 소리. 여자 비명 소리지 않았습니까? 그 집에 딸이 있다고 했으니 딸이겠네요.”
이선호가 상혁을 쳐다봤다.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설마, 범인으로 남편과 딸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뭐, 제가 경찰도 아닌데 의심이라니요. 그냥 정황이 그렇다는 소리죠. 정황이.”
사람의 죽음이란 것 앞에서 이선호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상혁에게 죽음이란 익숙한 삶의 일면일 뿐이었다.
누구나 다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는다.
가나안 대륙에서 상혁이 본 죽음만 해도 일 만을 가볍게 넘긴다. 그중에는 상혁이 직접 한 것도 있고 옆에서 본 것도 있었다.
죽고 죽이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세상이었으니까.
그런 상혁에게 사람 넷이 죽었다고 잔뜩 심각하게 무게를 잡고 있는 이선호가 퍽이나 신선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반응이 이곳이 평화롭고 안전한 지구라는 것을 새삼 실감 나게 해 주었으니까.
“아함, 이제 잡시다.”
상혁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이선호의 시선을 뒤로한 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약간 텀을 둔 후에 이선호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를 들은 상혁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뭐, 그쪽에서 오래 살다 왔으니 나도 어딘가 망가졌으려나?”
* * *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초유의 사건은 생각보다 더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다음 날.
동네가 시끌벅적한 소리에 잠에서 깬 상혁은 아침 마실 삼아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고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뭐야. 웬 기자에, 방송국에. 그나저나 경찰이 왜 이렇게 많이 온 거야?”
사고가 난 집에 경찰 통제선이 깔렸다. 그리고 그 주변을 경찰들이 열 명이 넘게 지키고 있었다. 동네는 기자와 방송 카메라들이 들쑤시고 다녔고 그 때문에 조용해야 할 동네가 아침부터 시끄러웠다.
“이 양반은 출근했고.”
이선호는 당연히 출근을 했기 때문에 집에 없었다.
뽀르르!!
초아가 반갑다는 듯 상혁의 볼에 자신의 이파리를 비벼댔다. 말 잘 듣는 애완동물이 하나 생긴 것 같아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상혁은 그게 반가워서 그런 것이 아니란 것을 조금 뒤늦게 깨달았다.
“빨리 퀘스트 완료하라고?”
뽀르르!
가로수 100그루의 오염 정화. 아직 그 퀘스트를 완료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상혁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초아가 잡아당기는 것을 보고는 그제야 그걸 떠올렸다.
“귀찮은데.”
뽀르르!
상혁이 귀찮다고 벌러덩 드러눕자 초아가 뽀르르 날아올랐다. 하지만 상혁도 할 말은 있었다.
“여긴 오염된 가로수가 없어.”
이곳은 조용한 시골 마을이다. 서울처럼 차가 쌩쌩 지나다니며 매연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거기에 애초에 가로수라고 불릴 만한 것이 없었다.
온통 논이고 밭에 무슨 가로수란 말인가.
그런 가로수를 찾으려면 온양 시내까진 나가야 할 것이다.
뽀르르!!
그러면 빨리 나가라면서 초아가 주변을 날아다녔다. 상혁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놈의 세계 같으니라고.”
자기 혼자서도 강해질 수 있는데. 제멋대로 사도로 삼으려고 하지를 않나, 귀찮은 퀘스트를 내려 주지를 않나.
찰싹.
상혁이 중얼거리자 초아가 줄기로 상혁의 이마를 찰싹 내리쳤다. 상혁이 자리에서 투덜거리면서 일어났다.
“배도 고프니까 나간다.”
아침 먹을 시간이 지나 배가 꼬르륵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공장 옆 내림천에 가는 것도 당분간은 조심해야 하니 마나를 충전할 곳을 찾으러 시내에 겸사겸사 나가보기로 한 상혁이었다.
끼익
“히익!”
상혁이 푸른 대문을 열고 나오는데 그때 문 앞에서 히익 거리는 소리가 났다. 상혁이 고개를 갸웃하자 놀랐던 사람이 그런 상혁을 보고 되레 화를 벌컥 냈다.
“뭐, 뭐 하는 겁니까! 사람 놀라게! 그리고 여기 빈 집인데 언제부터 사람이…….”
“내 집에 내가 산다는데. 남의 집 문 앞에서 뭐 하는 겁니까?”
상혁이 받아치자 남자가 움찔했다. 상혁은 그 남자가 무언가 눈치를 잔뜩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덥지도 않은 데 앞머리가 땀으로 젖어 있는 것을 보니 더더욱 그런 의심이 들었다.
“나, 저기 사는 사람인데.”
남자가 그런 상혁의 의심의 눈초리에 저쪽에 사는 사람이라면서 집을 가리켰다.
“주변에 하도 시끄러워서 나와서 산책하고 있는 거니까 신경 끄쇼.”
“…….”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도망치듯 멀어졌다. 남자가 가리킨 저 집은 어제 독살 사건이 일어난 바로 옆집이었다.
상혁은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왜 이렇게 수상해?”
수상한 남자의 거동에 상혁이 의심했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한 상혁이었다. 자신이 경찰도 아니고, 뭐 하는 짓인지 현타가 온 것이다.
“간다 가. 간다고.”
그 와중에도 자신을 재촉하는 초아를 귀찮다는 듯 손가락으로 퉁하고 튕겨 보낸 상혁이 주머니에 손을 꽂고는 휘적거리며 걸어갔다.
* * *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
그곳의 한 검사실에서 시린 눈빛을 가진 검사 하나가 자신의 조사관들을 불러다 놓고는 팔짱을 끼고 있다가 풀면서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자, 박수!”
짝짝짝!!
성격이 더럽기로 검찰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검사, 한덕광이 손뼉을 치기 시작하자 조사관들이 그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열심히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우리가 드디어 서울로 돌아갈 때가 됐습니다들.”
한덕광의 말에 영문을 모르던 조사관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드디어 가는 겁니까?”
“예.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분께서 다시 부르셨습니다.”
“와!! 축하드립니다, 검사님!!”
한덕광이 씨익 웃었다. 그는 올해 마흔으로 서른다섯에 평검사가 된 후 모종의 일로 좌천을 당해 천안지청에 와있었다.
“그래도 그냥 올라갈 수는 없으니까. 명분 하나 제대로 만들어서 올라오라고 아주 쉬운 케이스를 던져 주셨어요.”
한덕광이 손에 들고 있던 파일철을 조사관 중 제일 고참에게 넘겼다. 고참부터 시작해 차례대로 파일철을 넘긴 조사관들이 눈빛이 번뜩였다.
“시골 무지렁입니다. 언론 최대한 시끄럽게 만들고, 깔끔하게 자백으로 사건 종결시키면 됩니다. 불쏘시개는 언론에서 제대로 쑤셔 주기로 했으니까. 하실 수 있으시죠?”
“저희 전문입니다.”
시골 무지렁이 하나 말빨로 조져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은 그들의 전문이다. 다시 서울로 올라갈 수 있다는 말에 의욕 백배가 된 한덕광이 히죽 웃으며 박수를 짝하고 쳤다.
“자. 그럼 긴급체포 들어가시고. 모자란 딸년도 하나 있다고 하니까 엮어 봅시다. 좋은 아이디어 있으시면 언제든지 나눠 주시고.”
“예.”
한덕광과 검찰 조사관들이 얼굴에 비슷한 웃음이 맺혔다. 그 웃음은 무고한 사람 하나의 인생을 완벽하게 파괴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섬뜩한 웃음이었다.
“움직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