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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25화 (24/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5화

025. 환경미화원(5)

이선호는 불안한 표정으로 터미널을 떠나지 못했다. 언제 온다고 말을 해 놓지도 않았기에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었지만 시간이 늦어짐에 따라 이선호의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

‘말렸어야 했어.’

그와 함께 죄책감이 커졌다. 마법사라고는 하지만 상대는 SG그룹이고, 그 사주를 받았을 조직, 혹은 국정원의 하부 조직이었다.

SG그룹의 저력은 그에 맞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해 온 이선호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이선호가 불안감에 손톱을 딱딱 물어뜯었다.

“하아. 제대로 추태를 부리는구나, 이선호.”

그러던 이선호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 자신이 기약 없는 대답을 기다린 적이 있던가. 항상 스스로 움직여 답을 찾아내 왔던 자신이다.

설령 그게 마법사라고 할지라도 이선호는 그냥 기다리고만 있을 생각이 없어졌다.

‘누구한테 연락을 해야 하지.’

이선호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 안에 이선호가 학창 시절부터 변호사까지 하면서 쌓아왔던 인맥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변호사의 연락처와는 달랐다.

대부분 약자들의 연락처.

그것도 이선호가 늘 섰던 피해자, 약자들의 연락처가 대부분이었다. 가끔 지난번에 연락했던 형사 같은 친구가 있기는 했지만 그들마저도 약자였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이선호와 같은 기질을 타고 태어난 친구들은 조직에서 항상 바른말을 해서 밖으로 맴돌았기 때문이다.

“얘한테 한번 해 볼…….”

“뭘 그렇게 봅니까?”

“우악!!”

이선호가 놀라서 핸드폰을 하늘로 집어 던졌다. 그 핸드폰을 잡아챈 상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이선호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오, 오셨습니까.”

“네. 방금 왔습니다. 그런데 계속 기다리셨어요?”

“퇴, 퇴근하고 왔습니다.”

상혁은 시계를 확인했다. 시계의 시침이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퇴근 시각이 6시인 것으로 아는데, 5시간이나 기다렸다는 소리다.

“고생하셨습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상혁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멀쩡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그런 상혁의 멀쩡한 모습에 이선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못 붙잡아서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SG그룹은 절대로 혼자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닌…….”

“SG그룹 파운드리 사업부의 조진만이라는 양반이었습니다.”

“아, 네. 네?”

“아마도 SG그룹의 메신저 노릇을 하던 사람 같던데요. 내 얼굴은 공장 CCTV에서 찾았고 뭐 변호사님은.”

상혁이 그의 아래위를 훑었다.

“SG그룹의 살생부에 계속해서 올라 계셨다네요. 그간 화려하게 사셨던데.”

이선호의 눈이 커졌다. 서울로 알아보기 위해 다녀오겠다던 상혁이 정말로 모든 것을 알아 왔기 때문이다.

“변호사면 그냥 편하게 사셨을 수도 있는데. 뭐 대단하십니다.”

가나안 대륙에서 질서를 지키는 방법 중 첫 번째로 꼽히는 것은 바로 무력이다. 질서를 지키기 위한 무력 중 최고로 꼽히는 것이 바로 기사들이다.

자신의 검을 갈고닦아 충성을 맹세한 주군에게 바치는 기사들.

그들은 영지의 신이나 법을 관장하는 영주의 뜻을 대신하는 대행자들이다.

지구,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그러한 무력에 의한 통치는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법치에 의해 법을 대행하여 질서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검사와 변호사다.

그러니 가나안의 기사가 지구에서는 변호사와 검사들인 것이다.

그리고 가장 부패의 첨병에 서 있는 이들 역시 그들이다.

그런데 이선호는 부패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약자의 편에 서서 말도 안 되게 거대한 세력과 싸워 왔다.

비록 대부분의 싸움이 그의 패배로 끝났다고는 하나 포기하지 않고 그는 계속해서 싸우고 있었다.

편하게 살 수 있음에도 말이다.

상혁도 인정할 만한 근성이었다.

“할 일이기에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조진만이라니. 어떻게 그 사람까지 만나신 겁니까?”

SG그룹을 오랫동안 추적해 온 이선호다. 그가 수년에 걸쳐 찾아낸 사람이 조진만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접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는데 상혁은 하루 만에 만나고 온 것이다.

“어떻게 만나긴요. 그냥 가서 데려왔지. 흑태양판지 뭔지, 게네들한테 데려오라고 하니까 데려오던데요?”

* * *

“입 다물어야 합니다.”

멍 때리고 있던 김태양이 불쑥 말을 꺼냈다. 그러자 똑같이 멍 때리며 앉아 있던 조진만이 정신을 차렸다.

“당연하지요.”

“평생 우리만 알고 가야 하는 비밀입니다.”

김태양과 조진만은 둘 다 상혁 앞에서 SG그룹과 국정원에 얽혀 있던 모든 것을 실토했다. 상혁이 너무나도 무서웠기 때문이다.

총구를 이마 한가운데 겨누고 있는 것보다도 더 무서운 경험이었다. 게다가 아직 그 무서움은 현재진행형이었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김태양이 뒷말을 끝내지 않고는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얼굴이 그렇게 창백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삼킨 것 때문에 머리에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그럼요. 암, 그래야죠.”

조진만은 정신이 반쯤 나간 것처럼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에게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굴복한 둘은 어느새 솟아난 식은땀을 닦았다.

“그런데 위에서 내려온 명령은 어떻게 합니까?”

김태양의 말에 조진만의 안색이 허옇게 질렸다.

윗선.

이상한 것을 자신에게 먹인 상혁이란 괴물도 무섭지만, 윗선도 무서웠다.

밥줄부터 시작해 모든 것이 윗선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혁의 말을 듣지 않으면 뱃속에서 자신이 먹은 이상한 촉수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결국 진퇴양난이다.

하지만 조진만의 결정은 빨랐다. 괜히 그가 처세술에 능해 그 나이까지 SG그룹에서 부장으로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그는 최선의 결정을 내렸다.

“뭘 어떻게 해요. 우리…… 앞으로 둘 다 그 줄들을 타야 합니다. 어느 쪽도 우린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없어요.”

“…….”

김태양은 사직서를 일찍 내야 했다고 속으로 절규했다. 하지만 조진만의 말이 맞았다.

“이중 첩자입니까?”

“살려고 발버둥 치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명령 내려오면 전달해 드릴 테니 곧바로 그분…… 께 전달해 드리세요.”

“하아…….”

두 남자의 한숨 소리만이 방 안에서 애처롭게 한참을 흘러나왔다.

* * *

알싸한 소주가 목을 넘어갔다.

끄윽 하는 소리가 절로 올라왔지만, 상혁은 눈을 감고는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확실히 공장에서 확실한 공정을 거쳐 대량으로 생산된 술은 하나하나 조잡하게 손으로 빚은 가나안 대륙의 그것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물론 최상급으로 올라가면 가나안 대륙의 것이 월등할 것이다. 마나에 각종 희귀한 영초로 만든 것이 가나안 대륙에서 왕족이나 귀족들만 먹는 술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주조에 능한 종족인 엘프주도 있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네요.”

하지만 그런 산해진미보다 한 병에 몇 천 원 하는 싸구려 소주도 나쁘지 않았다. 이선호가 그런 상혁을 보면서 재밌다는 듯 웃었다.

“꼭 처음 먹어 보는 것처럼 말하네요.”

“저 이제 스무 살입니다.”

“아.”

이선호가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건 이선호 잘못이 아니었다. 상혁이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은 누가 보더라도 스무 살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숙했다.

‘작년에 고3이었다고?’

상혁이 불과 1년 전에는 미자, 그러니까 미성년자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상혁이 히죽 웃었다. 속은 일흔 살이 넘은 노괴지만 겉으로는 스무 살이라니.

“마치 다른 세상에 살다 온 사람 같습니다.”

“그거 맞습니다.”

상혁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가 마법사란 것도 이선호에게 처음부터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선호가 파하하 하고 웃었다.

“재밌네요. 마법을 쓰시니까, 뭐 다른 차원에 가서 배워 오신 겁니까?”

“오, 어떻게 아셨어요?”

“판타지 소설에 나옵니다.”

“어쩌면 그 작가들도 다 다녀온 걸지도 모르겠네요. 아니, 상상력이 꼭 몽상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까.”

마법사의 상상력은 현실이 된다. 그리고 과학자의 상상도 현실이 된다. 세상을 발전시키는 것은 한때 몽상이라 손가락질을 받았던 상상력이다.

“어, 진짭니까?”

“마법을 어디서 배워 왔을까요?”

“…….”

이선호는 말이 없어졌다. 상혁이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그도 알고 있어서다. 하지만 그것과 상혁이 하는 말을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었습니다. 뭐. 거기까지만 하죠. 알아 봤자 좋을 게 없지 않습니까?”

상혁이 피식 웃었다. 이선호는 그런 상혁을 보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적응되지 않는 것이다. 어쨌거나 상혁은 그런 이선호의 얼굴을 보면서 웃었다.

“안색이 좋아지셨네요.”

“다 상혁 님 덕분입니다.”

이선호는 상혁이 스무 살이란 것을 알아도 절대로 말을 놓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분위기가 절대로 스무 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상혁에게 한 번 더 해독 마사지 비슷한 것을 받은 이선호는 놀라보게 컨디션이 좋아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독.

정말로 자신은 죽음의 목전에서 돌아온 셈이다. 점점 더 나아지는 건강이 그것을 증명했다.

SG그룹은 이선호에게 겨눈 칼을 거두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제가 편히 살 수 있는데 힘들게 산다고 하셨지요?”

상혁은 소주를 한 잔 더 마시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름한 집이지만 이제는 제법 사람 사는 온기도 도는 집이었다.

“제가…….”

그리고 이선호가 변호사로 살아온 세월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이선호가 소주가 오른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 정도입니다. 뭐 대단한 영웅심리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냥 사람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게 돈이 많다고 해서 당연해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려고 내가 법을 공부한 것도 아닌데.”

“이상주의자시네요.”

“흐핫핫핫.”

이선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상주의자. 맞는 말이었다. 그가 법을 공부한 이유는 법이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리라 믿었던 순진한 낭만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낭만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이런 바보도 하나쯤은 있어야 살맛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러겠네요. 변호사님에게 도움받으신 분들은 더더욱이요.”

“그렇슴다. 그 재미로 삽…….”

쿵.

이선호가 말하다 말고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술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상혁은 그런 이선호를 보면서 누군가를 떠올렸다.

삼왕자.

제페토 보나파르트.

이름을 부를 일은 없었지만 상혁에게 인체 실험을 했던 마법사 일란을 도와달라며 찾아왔던, 거기서 막 탈출한 상혁이 처음으로 봤던 사람이었다.

거기서부터 일란으로 살아가기 시작한 상혁은 바보같이 이상주의를 꿈꾸던 삼왕자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모두가 평등해지는 곳.

가나안 대륙의 불평등을 누구보다도 피부로 겪은 상혁은 삼왕자의 포부에 감격했고 마법사로 개화하기 시작하며 그를 도와 삼왕자를 왕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인자했고 덕망이 높았으며 경우가 있는 왕족이었으니까. 그리고 제일 사람 같은 왕족이기도 했다.

왕족이나 귀족이 아닌 모든 자를 버러지처럼 여기는 다른 왕족들과는 다르게 그는 진정으로 고귀한 뜻을 품었으니까.

하지만 그랬던 그는 암살당했다.

평민들에게까지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는 말에 기득권이 줄어들까 걱정한 심복에게.

그 복수를 상혁이 대신해 주었고, 그의 아들을 다시 왕으로 올려 킹메이커가 되고, 제국을 세운 위대한 대마법사가 되었지만 상혁은 그때 깨달았다.

아무리 좋고 고귀한 뜻이라도 이상주의를 꿈꾸는 자는 일찍 죽고 만다는 것을.

모두에게 인정받는 이상이란 없다는 것을.

그런 삼왕자의 모습이 이선호에게 겹쳐 보였다.

“흐흐. 너무 오래 살았나. 별 기억이 다 떠오르네.”

수십 년 전의 기억이다. 그게 지구에 와서 떠오를 줄이야. 그래도 상혁에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이선호를 살린 것.

그게 마치 그곳에서 자신의 주군이자 왕을 지키지 못한 마법사의 한이 조금이라도 풀린 것 같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그때.

꺄아아아악!!

오밤중의 고요해야만 할 온양의 시골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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