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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24화 (23/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4화

024. 환경미화원(4)

조진만은 SG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에 있는 수많은 부장 중 한 명의 부장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부장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같이 입사한 동기들 중 조진만처럼 부장까지 올라온 사람은 100명 중 한 명도 되지 않는다. 그만큼 반 임원인 부장 정도가 되면 어떤 라인을 붙들고 있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조진만은 라인을 아주 잘 잡아 온 케이스였다.

본인의 능력이 뛰어나다기보다는 처세술이 능하고 시류를 읽는 눈이 제법이었기 때문에 지금껏 큰 고비 없이 부장직까지 승승장구한 것이다.

그리고 조진만에게는 뛰어난 장점이 하나 있었다.

그는 결코 능력 이상의 것을 탐하지 않았다.

부장을 넘어 그다음 임원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라인만이 아니라 본연의 능력이 뛰어나야만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그럴 만한 깜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진만은 부장으로 가늘고 길게 해 먹기 위해 임원으로 올라가는 길을 포기했다. 그런 조진만의 모습에 윗선에서 접근해 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조직의 생리를 잘 알면서도 자기 분수는 잘 아는 조진만은 윗선에서 가장 좋아하는 성격의 사냥개였기 때문이다.

“쓰읍, 왜 연락이 안 돼?”

SG전자 내에서 반도체 사업부는 노른자 중의 노른자다. 매년 성과금으로 연봉의 200퍼센트, 300퍼센트까지를 받기 때문에 다들 들어오기를 희망하는 곳이었다.

그중에서 조진만은 파운드리 사업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파운드리는 말 그대로 반도체를 생산해 내는 공장을 뜻하는 말이다.

정확히는 위탁 생산.

반도체 설계도를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그것을 생산해 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업체에서 보유하고 있는 설계도를 의뢰를 받아 위탁 생산을 하는 곳이 파운드리였다.

그리고 SG전자 반도체 사업부에서 가장 큰 곳이 바로 파운드리 사업부였다.

SG전자가 매년 호실적을 내는 사업의 대부분은 그런 위탁 생산을 통해 생산되는 반도체에서 나오는 매출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SG전자의 온양 반도체 공장에서 불미스런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SG전자에서 조사 결과 그 주변에서 찍힌 스무 살짜리 고시생을 조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조진만은 파운드리 사업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랐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이런 정보 수집이었다. 그것도 그가 직접 수집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윗선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전달하는 메신저일 뿐.

언제든 잘라낼 수 있는 꼬리였지만 조진만은 한 번도 잘라 내는 그 대상에 포함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시류와 상황을 읽어 내는 그의 눈이 좋다는 뜻이었다.

“불안한데?”

그런 그가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럴 때 이용하라며 위에서 내려온 업체 중 한 곳인 흑태양파에 접촉했지만, 전문가인 그들에게 아무런 콜백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대상을 찾아내어 감시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이상한 불안함이 들었다.

“다른 곳에도 연락해 봐야겠어.”

이런 육감은 대개 들어맞았다. 조진만은 그 특유의 육감 때문에 이번에도 옳은 결정을 내렸다.

상대가 상혁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여보, 나 왔어.”

덜커덩.

강남에 마련한 30평짜리 아파트는 조진만이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다는 증거물이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을 보는 것이 그의 인생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런데 집이 조용했다.

“여보?”

어딜 나가면 꼭 나간다고 미리 연락하는 아내에게서 온 연락이 없었다. 이상함에 조진만이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전에 그의 눈앞에서 불꽃이 번쩍하고 튀었다.

빠지직!!

“끄으윽!!”

쿵!

조진만의 몸이 통나무처럼 옆으로 넘어졌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진땀을 흘리며 김태양이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는 테이저건이 들려 있었다.

“후우우.”

김태양은 사실 이래도 되는지 걱정이 산더미 같았지만 상혁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 괴물이 이상한 것을 자신에게 먹였기 때문이다.

‘에일리언을 보게 될 것이라니.’

사실 김태양이 본 영화 중에서 가장 끔찍했다고 생각했던 것이 하필이면 에일리언이었다. 그것도 사람의 배를 찢고 에일리언 새끼가 튀어나오던 바로 그 장면.

슥슥.

김태양은 자신의 배를 문질렀지만 배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상혁이 불과 뇌전을 불러내 빙빙 돌리던 것은 머릿속에 또렷했다.

‘그 미친놈이면 불가능이 아닐지도 몰라.’

김태양이 울상을 지었다. 상혁이 하라는 대로 김태양은 조진만을 조사했다. 그 결과 조진만이 SG그룹 윗선의 메신저라는 것까지는 수월하게 파악했다.

하지만 그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까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SG그룹의 보안은 국정원에 필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것을 상혁에게 알리자 상혁은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김태양에게 말했다.

조진만을 데려오라고.

김태양은 조진만을 어깨에 둘러업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인생이 어디서부터 꼬인 것인지, 풀릴 구멍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아, 진짜. 퇴사 마렵네.”

* * *

뽀르르.

빙글빙글.

풀 정령이 계속해서 상혁 주변을 정신 사납게 날아다녔다. 풀 정령은 말을 하지 못했지만 신기하게도 그 감정이 느껴졌다.

정령과 상혁이 계약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나중에. 지금은 아니야.”

뽀르르.

오염이 느껴지는 곳으로 상혁을 자꾸만 데려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 상혁이 거부하자 풀 정령이 저 멀리 떨어져서는 토라졌다는 듯 등을 돌리고 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픽하고 웃은 상혁은 문득 풀 정령에게 이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아.”

뽀르르?

상혁이 초아라고 부르자 풀 정령이 토라져서 등을 보이고 있는 와중에도 달린 나뭇잎이 살랑거렸다.

그게 마치 강아지의 꼬리 같았기 때문에 한 번 더 웃은 상혁이 말에 뜻을 담아 풀 정령에게 전달했다.

“네 이름은 초아다.”

뽀르르!!

파앗!!

정령에게 이름이란 것은 대단히 중요했다. 자연의 일부일 뿐인 그들이 이름을 얻는 순간 비로소 하나의 존재로서 인정을 받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혁의 영혼은 위대한 대마법사의 영혼이다.

그 영혼과 격을 가진 상혁의 말이 가진 힘은 일반 정령사의 그것보다 더 컸다. 그렇기 때문에 힘을 가진 상혁의 언령에 의해 풀 정령의 이름이 초아로 정해진 순간, 눈 부신 빛이 초아로부터 새어 나왔다.

뽀르르!

빛은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빛이 사라진 다음 날아오른 초아도 이전과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하지만 상혁은 심장께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너무한 거 아니냐?”

순간적으로 2서클을 이룩한 마나 고리에 저장된 마나 중 절반의 마나가 초아에게로 빨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정령은 주인의 마나를 먹고 성장한다.

그러나 방금 정령이 처음 이름을 받으며 대마법사의 영혼에 의해 급속도로 성장을 이룬 것이다.

겉보기에는 다르나 초아는 단숨에 최하급에서 하급으로 가는 길의 절반을 넘었다.

단지 상혁이 준비되지 않아 심장에 뻐근함을 느꼈을 뿐이다.

오들오들.

달달달.

그때 상혁이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조폭으로 위장한 요원들을 쳐다봤다. 그러자 상혁과 눈이 마주친 이들 중 심약한 몇이 히익 하면서 엉덩이로 기었다.

“…….”

갑자기 허공에서 빛이 튀어나오고, 상혁이 허공에 대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니 저런 반응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말도 안 되는 것을 먹이면서 거짓말을 거하게 쳤으니 자신을 향한 공포가 더욱 커진 것이다.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무협지에 많이 나오는 고(蠱), 벌레가 생각이 나서 블러핑을 쳐 봤다. 자신이 마법이란 이적을 보여 주었으니 통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더 잘 통했다.

마법에 대한 면역력은 가나안 대륙의 노예들보다도 없었다.

얼토당토않은 말을 그렇게 쉽게 믿을 줄이야.

‘그래도 능력은 있는 놈들인데.’

조진만이란 놈에 대해서 이들이 상혁이 요구한 것처럼 팬티 하나까지 다 조사하는 데 걸린 시간은 딱 두 시간이었다.

개인에 대해 먼지 한 톨까지 탈탈 털어 알아내는 데 필요한 시간은 딱 두 시간이었다는 뜻이다.

‘가나안 대륙에서는 웬 놈 하나 찾으려면 한 달은 걸렸는데.’

모든 것이 사람의 기록과 기억에 의존해야 하는 가나안 대륙과는 효율 자체가 달랐다. 하지만 상혁은 스멀거리며 기어 올라오는 다른 잡생각들을 원천 차단했다.

‘필요 없어. 마탑을 세울 것도 아니고, 전쟁을 할 것도 아닌데.’

이곳은 가나안 대륙이 아니다. 상혁은 자신이 서울에 온 이유를 잊지 않았다. 이 일이 원만하게 마무리가 되면 온양으로 내려갈 것이니 굳이 쓸데없는 생각을 할 필요는 없었다.

마법사는 생각만 하기 보단 그것을 실제로 하는 존재였으니까.

“너희 두목은 어디래?”

“오, 오시고 있답니다.”

“그래?”

상혁은 조진만을 데려오라는 자신의 명령을 벌써 완수하고 데려오고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 처리 속도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잠시 후, 김태양이 웬 중년 아저씨 하나를 어깨에 둘러메고는 들어왔다. 상혁이 고갯짓을 하자 김태양이 물을 조진만의 얼굴에 뿌렸다.

“어푸푸푸!”

조진만이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자신 앞에서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진만을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당신……!!”

조진만이 직접 김태양을 만나 윗선의 의사를 타진했으니 그를 모를 리 없었다. 김태양은 어색하게 손을 들어 올렸다.

“안녕하시오?”

“안녕하긴!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나 조진만이야! SG의 조진만!!”

“나도 이럴 사정이 있소.”

“가족, 내 가족들은!”

“적당히 영화관람권 당첨되게 해 드렸소.”

조진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가족이라면 끔찍하게 아끼는 모양이었다. 그런 조진만을 보면서 상혁이 비릿하게 웃었다.

“남의 귀한 집 아들은 죽여도 되고, 너희 가족들은 살아야 하는 모양이지?”

“다, 당신은 또 누구…….”

조진만의 눈이 커졌다. 상혁의 얼굴을 알아본 것이다. 상혁에 대해서 뒷조사를 한 것은 조진만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다.

이미 윗선까지도 저 얼굴을 알고 있었다.

“바, 박상혁…….”

“날 알아보네?”

“고, 고시생이라 들었는데. 김태양 씨! 저, 저 사람을…….”

김태양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상혁은 그런 조진만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와 동시에 상혁의 손바닥에서 잿빛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작은 단약 같은 것이 올라왔다.

움찔.

그것을 본 김태양과 요원들이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끔찍한 악몽이 불과 몇 시간 전에 일어났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처음 본 조진만은 아니었다.

“이게 무슨. 장난 같은 짓거리를…….”

“자. 잘 봐봐.”

상혁이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그러자 상혁의 손바닥 위에 올라와 있던 작은 단약이 불길하게 꿀렁이더니 이내 그 안에서 촉수 수십 개가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것을 본 김태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뱃속에서 저런 것이 튀어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니 속이 메슥거렸다.

꿈틀거리는 그것을 손에 든 상혁이 씩 웃었다.

“진만아.”

상혁은 친근하게 조진만을 불렀다. 조진만의 나이가 상혁보다 스무 살은 더 많았지만 상혁이 그를 낮춰 부르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들렸다.

“내가 귀찮은 걸 좀 싫어해.”

상혁이 그것을 손에 들고는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마왕처럼 조진만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조진만은 허옇게 질린 안색으로 그것과 상혁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이, 이게, 무, 무슨…….”

조진만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현실을 깨달을 것이다. 상혁이 그것을 조진만의 입에 가져다 댔다.

극도로 세밀하게 마나를 제어하는 것은 상혁이 가나안 대륙에서도 대륙 제일이었다. 드래곤의 화신이라는 소리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것을 증명하듯 수백 개의 촉수가 튀어나온 단약이 조진만의 입으로 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의 진실은 색을 입힌 바람 마법에 불과했지만, 진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아니었다. 조진만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비명을 질렀다.

“으악, 으아아악!!”

하지만 바람 마법은 발이 달린 것처럼 촉수를 꿈틀거리며 조진만의 입속으로 들어가서는 사라졌다. 상혁이 고개를 돌려 김태양을 쳐다봤다.

“잘 봤어?”

“예, 옙!!”

김태양이 군기가 바짝 든 신병처럼 공포에 질린 눈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상혁이 조진만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말만 잘 들으면 돼. 그러면 그게 발작할 일은 없으니까. 응?”

조진만의 안색이 시퍼렇게 죽었다. 상혁은 조진만과 김태양을 지그시 쳐다보면서 빙긋 웃었다.

“자. 내가 귀찮은 걸 매우 싫어해. 그런데 내 사진이 이상한데 돌고 있었거든. 그러니까 만약 나에 대해서 누가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상혁의 까만 두 눈이 조진만과 김태양을 응시했다. 그 둘은 마치 자신의 영혼을 집어삼키려는 악마를 본 것처럼 공포에 질린 얼굴로 현실에 순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쳤구만.”

깔끔하게 김태양과 조진만의 정신교육을 마친 상혁이 홀가분하게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이선호에게 약속한 대로 오늘이 가기 전에 온양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함이었다.

“으그그극, 당분은 괜찮으려나?”

초아가 목덜미에 들러붙는 것을 손가락으로 떼어 내며 상혁이 입을 쩍 벌리고 하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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