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3화
023. 환경미화원(3)
데구루루
“스읍! 떨어뜨리지 말고!”
빠지직!
“예, 옙!!”
병이 데구루루 구르자 상혁이 도끼눈을 뜨고 흑태양파 조직원을 쳐다봤다. 그와 동시에 상혁의 머리 위에 둥실 떠 있던 라이트닝 애로우가 빠직하고 뇌전을 토해 내자 움직임이 더 빠릿빠릿해졌다.
“이게 다야?”
상혁은 자신의 앞에 가지런히 쌓인 세 개의 상자를 쳐다보면서 흑태양파 조직원, 정확히는 국정원의 위장 요원들을 쳐다봤다.
사람을 발가벗기는 듯한 그 눈빛에 요원들이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명색이 최고의 훈련을 받은 국정원 요원들이지만 상혁 앞에서 그들은 순한 양이 됐다.
온갖 고문을 참는 훈련도 받고,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는 훈련도 받은 현장 요원들이지만 불꽃 화살과 뇌전 화살이 번쩍거리는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한 것이다.
저게 환각이 아니라 실제로 불태우고 감전시킬 수 있는 것이란 것을 기절한 동료들이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에 죽기 싫은 요원들은 얌전히 상혁의 말대로 따랐다.
“흐음.”
달그락.
상혁은 상자 세 개 안에 담긴 갈색 병들을 슥 훑어보았다. 마나안으로 보자 상혁이 온양 집에 침입한 괴한에게 빼앗은 독과 같은 성분의 독이었다.
뽀르르!!
파닥파닥!
그 위를 풀 정령이 보기만 해도 싫다는 듯 빙글거리면서 돌았다. 싫으면 가지 않으면 될 것을, 상혁은 오염을 감지하는 데 아주 민감하다더니 제 역할을 처음으로 하는 풀 정령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달그락.
상혁은 그 안에서 갈색 병을 꺼내 들었다. 그런 상혁의 모습에 김태양을 비롯한 요원들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나 자신들에게 저걸 실험한다고 나올까 봐 불안해진 것이다.
‘망할 놈의 김석문.’
‘절대로 불지 않는 게 불문율인데.’
‘저런 괴물이면 어쩔 수 없었을지도…….’
국정원 요원들은 포로로 잡혀도 절대로 진실을 불지 않게끔 철저한 훈련을 받는다. 그러나 상혁이 갈색 병의 존재도, 이 장소도 알고 있다는 뜻은 그들의 동료가 사실을 전부 다 불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억울한 것은 있었다.
‘반출 자체가 금지된 품목인데. 그걸 김석문이 언제 챙겼지?’
저 갈색 병들은 국정원 본부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는 물품이다. 흑태양파에서는 오로지 김태양만이 접근할 수 있도록 보안이 설정된 것이기도 했다.
독이란 것은 함부로 사용했다가는 화기만큼이나 위험한 것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내가 관리하고 있던 보유분에서 사라진 건 없다. 그렇다는 건 다른 루트가 있었다는 소리인데.’
김태양은 직접 저 상자들을 확인하고 수량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김석문이 저 독 병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다른 루트와 연관이 있었다는 소리다.
즉, 이곳의 내부자가 김석문이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김태양의 명령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명령을 받는.
‘SG인가…….’
지금의 국정원은 원장부터가 SG그룹의 장학생으로 국정원 전체가 SG그룹의 충직한 사냥개 노릇을 하고 있었다.
국정원이 수집한 해외 정보를 SG그룹에 넘기는 것은 약과였다. 이번처럼 SG그룹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SG의 장학생들을 통해 직접 처리하는 것도 국정원이 하고 있었다.
그 꼴이 보기 싫어 반항하다가 좌천을 당한 김태양이다.
그런데 이 안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 줄이야.
SG그룹의 손이 대체 어디까지 또 뻗쳐 있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뽕!
그때 상혁이 독 병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김태양을 비롯한 요원들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저 독은 기화성이다.
그 말인즉슨 그냥 공기만으로 마셔도 중독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상혁이 허옇게 변한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왜 그런 표정들이야?”
상혁이라고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마나안으로 보면 다 보인다. 뚜껑을 열자마자 그 안에 차 있던 기화된 독성이, 마나가 빠져나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뒀다.
바깥으로 아까운 마나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단지 저들은 이런 사실을 꿈에도 모를 뿐이다.
“위, 위험한 물건인데…… 잘못하면 싹 다 죽, 죽…….”
김태양은 마지막 자존심인지 죽어도 존댓말을 하지 않았다. 상혁은 그런 김태양을 보며 코웃음을 친 다음 갈색 병을 냉큼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허, 허어어억!!”
“히익!”
김태양을 비롯한 요원들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그들의 눈에는 영락없이 상혁이 자살 기도를 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상혁은 그들을 상관하지 않았다.
뽕, 뽕, 뽕.
갈색 병을 연달아 따더니 마치 박카스를 먹는 것처럼 차례대로 병을 비워나갔다. 그러자 채 1분이 지나기도 전에 한 박스의 독이 상혁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뽀르르르!!
팔락팔락!!
그걸 보고 놀란 것은 비단 요원들만이 아니었다. 세계가 상혁에게 선물해 준 풀 정령도 화들짝 놀라 작은 가지로 상혁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 안달이었다.
부글부글.
상혁은 위 속으로 들어간 독들이 부글거리며 끓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열이 훅하고 뻗쳐오르는 것을 느꼈다. 독성이 제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그 안의 마나가 분리되기 시작했다.
독성과 섞여 있었던 마나가 분리되자 자연스레 흡수된 독성이 인체에 해가 되지 않는 성질로 변했다.
인간에게 유해한 영향을 끼치는 그 화학 성분에서 마나가 분리되면서 성질이 아예 바뀌어 버린 것이다.
“후음!”
상혁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상혁의 코로 희뿌연 연기가 훅하고 새어 나왔다. 그 모습이 마치 용이 불을 뿜기 전에 연기를 흘리는 것 같아 요원들의 눈이 커졌다.
스윽
상혁은 손을 들어 풀 정령을 옆으로 밀었다. 풀 정령이 상혁의 손등에 떠밀림과 동시에 상혁이 눈을 번쩍하고 떴다.
화르륵!!
상혁의 입에서 커다란 불꽃이 쏘아져 나왔다. 차력사가 입에 기름을 머금고 불을 뿜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화력이었다.
독성을 기화시켜 입 밖으로 내뿜고 거기에 마법으로 불을 붙여 아예 독성 자체를 태워 버린 것이다.
상혁에게는 별로 이상할 것이 없는 행동이었지만 지켜보고 있는 이들에게는 아니었다.
이 불로 네놈들을 통구이로 만들어 버리겠다.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마왕이 눈앞에서 협박해 대는 것 같았으니까. 무엇보다도 그 독한 독을 한 박스나 입안에 밀어 넣고도 상혁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저건.’
김태양의 두 눈이 사시나무 떨리듯했다.
DMZ를 넘어 북한에 들어갔을 때도, 납치된 한국인을 쫓아 시리아를 뒤질 때도 이런 공포는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그래도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저건 사람이 아니다.
대체 어느 사람이 입에서 불을 내뿜고 극독을 먹어도 멀쩡하며 불화살과 뇌전 화살을 뽑아낸단 말인가.
악마, 혹은 신선, 뭐가 됐든 인간은 아니다.
그리고 인간이 아닌 것과 직면한 사람의 반응은 한 가지뿐이다.
“사, 살려 주십쇼.”
넙죽.
살려 달라고 비는 것뿐.
“조용히 해 봐.”
그런 김태양을 상혁은 쿨하게 무시했다. 그러고는 마저 두 상자의 독을 깡그리 다 먹어치웠다.
상혁이 멀쩡한 것을 봤기 때문인지 난리를 피우던 풀 정령도 이번만큼은 가만히 있었다. 아니, 두 눈이 반짝거리며 상혁을 경외하듯 쳐다보는 것이 달라진 점이라면 달라진 점일 것이다.
화르륵! 화르륵!
그렇게 불 쇼를 두 번쯤 더 하고 난 다음에 상혁은 스텟창을 불러냈다.
[이름 : 상혁
직업 : 2서클 마법사
상태 : 근력/1, 민첩/1, 체력/1, 마나/205]
‘4 정도 오른 건가?’
독성이 강한 독이니 제법 효과가 좋았다. 그렇게 주억거린 상혁은 김태양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그런데 이제는 김태양만이 아니라 나머지 요원들까지도 머리를 땅에 처박고 있었다.
“단체로 뭐야?”
“사, 살려 주십쇼.”
상혁은 볼을 긁적였다.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으나 저러면 말은 제대로 통할 것이기 때문이다. 상혁이 다리를 꼰 채로 김태양에게 말했다.
“나랑 거기 온양 주변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하나도 숨기지 말고 싹 다 말해 봐.”
상혁은 딱 그 정도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김태양은 상혁의 말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나라에 대한 애국심?
정권이 뒤바뀔 때마다 국정원을 말 잘 듣는 사냥개 정도로 생각하는 정권에 대한 충성심은 없었다.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면 몰라도.
그리고 SG그룹이 공무원인 자신들에게 공무가 아니라 자기네들 이권에 관련된 일만 시키는데, 자신은 국정원 요원이 되면서 그런 것에 의리를 지키라고는 배운 적이 없었다.
“SG그룹에서 의뢰했다?”
“예. 이유는 모릅니다.”
“내가 대충 아니까 됐고. 그럼 변호사 양반은?”
“그건.”
김태양이 이선호 변호사와 SG그룹 간의 악연을 전해 들은 상혁은 혀를 쯧쯧 하고 찼다.
“거 돈도 많은 양반들이.”
제 공장에서 사람이 일하다 죽었으면 합의금을 두둑하게 챙겨 주었을 것이다. 돈이 없는 곳도 아니고, 무려 SG그룹이 아니던가.
물론 죽은 유족들의 마음은 그런 것으로 해결될 것이 아니었으나 돈으로 보상을 해 주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 이런 악연까지 생길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걸 숨기고, 부정하다가 오죽 억울했으면 한 명이 분신까지 했을까.
작열통이 얼마나 끔찍한지 인체 실험을 통해 잘 알고 있는 상혁이었기 때문에 SG그룹의 어리석은 선택에 혀를 끌끌 하고 찼다.
“대륙의 폭군들도 그렇게는 안 했다만.”
적국이 아닌 다음에야 폭군들도 제 백성들에게는 좋은 성군이 되려 애를 썼다. 그것이 귀족의 의무이기도 했고. 특권층이 돼서 백성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그냥 무시하면 그놈은 바로 사교계에서 묻힌다.
귀족이 귀족답지 못했고, 왕족이 왕족답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런데 SG그룹은 가나안 대륙보다도 더한 놈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모양이었다. 그러니 그걸 입을 싹 닦았겠지.
“우리 변호사님. 깡 세시네.”
그것을 알면서도 이선호 변호사가 SG그룹과 싸우고 있었다는 것에 상혁은 감탄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지만 그래도 그 용기가 가상했다.
“쓰읍. 마음에 들려고 하네. 그런 사람들 좀 좋아하는데.”
그리고 상혁은 그런 사람들을 좋아했다. 안 되는 일에 부딪히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과거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살려고 발버둥 치던 자신도 딱 그랬으니까.
“그래서.”
그리고 마침 자신의 일과도 관련이 있었다. 상혁도 SG 반도체 공장과 얽혔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상혁은 한 번쯤 착한 일을 하기로 했다.
“이 일의 책임자가 누군데?”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병졸 천 명, 만 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지휘관만, 그러니까 머리 노릇을 하는 놈 하나만 쳐 내면 백만 명이 모여 있어도 오합지졸이 된다.
흑태양파가 겨우 하부 조직이란 것은 흑태양파를 조지고 다시 돌아가도 머리는 멀쩡하다는 뜻이다. 그러면 언제든 상혁 자신에게도 귀찮은 일이 다시 일어날 것이다.
“SG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조진만 부장입니다.”
“조진만?”
“예.”
김태양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눈앞의 괴물에게서 몸 성히 살아나려면 그게 유일한 길임을 깨달은 것이다.
상혁이 씩 웃은 뒤 김태양의 어깨에 손을 턱하고 얹었다.
“부탁 하나만 할까?”
화르륵!
웃는 상혁의 머리 위로 화염이 성성한 불화살이 뜨끈한 열기를 풍겨내면서 생겨났다. 김태양은 흔들리는 눈으로 고개를 재빨리 끄덕였다.
“무, 무엇을…….”
“조진만이라는 놈 말이야.”
“예? 예.”
“팬티가 몇 장인지까지 싹 알아 왔으면 좋겠어. 할 수 있겠지? 난 믿어. 감히 나를 건드린 간 큰 놈들인데…….”
김태양은 자신을 마법사라고 하는 상혁을 보면서 속으로 소리 없이 절규했다.
‘알면 안 건드렸지!!’
하지만 눈앞의 마법이 더 무서웠다, 김태양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싹 알아 오겠습니다.”
“아 참. 우리 사이에 신뢰 관계가 충분하겠지만 말이야.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상혁이 악마처럼 웃었다. 그러고는 손바닥을 쭉 폈다. 상혁의 손바닥 위에 콩알만 한 작은 환단이 생겼다.
“자, 쓰읍!!”
“예?”
“숨 쉬라고.”
김태양이 두 눈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하지만 상혁 앞에서 그를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상혁의 말대로 숨을 쉰 순간.
쑤욱!!
“컥!”
상혁의 손바닥 위에 올라가 있던 환단이 김태양의 콧속으로 쑥하고 빨려 들어갔다. 김태양이 두 눈을 부릅떴다.
“별거 아니야. 흑마법인데, 마수의 알이라고 1서클의 쉬운 마법이야. 지금 당장 아픈 것도 없다? 단지 나한테 도망가거나, 나한테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상혁이 손을 쥐었다가 펑 하는 소리를 내면서 손가락을 쭉 폈다.
“에일리언 봤지? 그게 현실이 될 거야.”
김태양이 얼굴이 하얗게 변한 채 자신의 배를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