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2화
022. 환경미화원(2)
꿀렁.
꿀렁.
꿀렁.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가로수 한 그루에서 오염을 뽑아내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인체와는 달리 식물이라 내부가 단순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단순 반복을 하다 보니 그 짓이 숙달됐기 때문이다.
살랑살랑.
그 때문에 상혁의 주변으로 날아다니는 풀 정령의 몸짓은 더욱더 현란해졌다. 가로수들이 감사 인사를 보내는 것을 풀 정령은 마치 자신 덕분인 것처럼 뿌듯해하기까지 했다.
‘그냥 뿌듯해하는 건 아니지.’
상혁의 눈이 푸르스름하게 빛을 발했다. 마나안으로 보이는 풀 정령의 기운이 미약하게나마 조금씩 불어났다.
정화된 가로수에서 보내는 자연력이 풀 정령의 기운을 북돋아 주었기 때문이다.
[마나가 1 상승하였습니다]
버스를 타야 했지만 걸어가면서 가로수를 서른 그루 정도 정화를 하고 나니 마나가 상승하였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른 그루에 1의 마나.
200인 마나가 300이 되면 3서클이 되는 형태인 것 같았으니 가로수에서 얻는 마나의 양이 미미하다는 뜻이었다.
정확히는 2서클이나 됐으니 가로수를 정화하는 것 정도는 극적인 변화를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100그루 정화를 하면 마나를 5나 올려 준다고?’
그런데 퀘스트를 완료하면 마나를 5나 올려 준다. 3서클이 되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마나량의 5퍼센트를 보상으로 제공해 준다는 뜻이었다.
‘나쁘진 않네.’
들이는 시간 대비 보상이 나쁘진 않았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하더니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따라와?’
상혁은 먼 곳에서 꾸물대는 놈을 지켜보다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더럽게도 신중하게 같은 길을 몇 번이고 돌아가는 놈은 바로 김태양이었다.
흑태양파의 두목.
하지만 그가 두목인지 알 리 없는 상혁은 간 크게 마법사의 집에 함부로 침입했던 석문이란 놈과 비슷한 특질을 지닌 놈이 자꾸 꾸물대는 것이 슬슬 거슬리기 시작했다.
살랑살랑.
그때 그런 상혁의 기분을 눈치챈 것처럼 풀 정령이 눈앞에서 나뭇잎을 흔들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에 작은 나무가 팔다리가 달려 돌아다니는 듯한 모습.
모 영화의 나무 캐릭터가 떠오른 상혁이 픽 하고 웃었다. 짜증이 나던 상황에 풀 냄새를 맡으니 조금 진정이 되는 듯했다.
“뭐, 잡아 보면 되지.”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계속해서 루트를 다르게 하면서 이동하는 것을 보니 퍽이나 신중한 놈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그냥 뒷골목의 깡패 같은 놈은 아니었다.
‘전문 훈련을 받은 놈이 확실한데.’
전문가의 냄새가 났다. 그것도 숙련된 전문가의 향기가 났다. 그렇다는 건 얽히면 피곤한 곳에 속한 놈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상혁은 그냥 일직선으로 가면 되는 길을 다섯 번이나 꼬아서 가는 놈을 지켜보다가 결국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그렇게 김태양이 인적이 드문 곳으로 들어가는 순간, 상혁의 손에서 마법이 발현됐다.
“바인드.”
2서클 속박 마법.
마법의 끈이 허공에서 튀어나와 김태양의 전신을 포박했다. 그러자 김태양이 성난 멧돼지처럼 꽤액 거리면서 바닥이 쓰러졌다.
“누, 누구…….”
가로등 밑에서 상혁이 스윽 하고 모습을 드러내자 김태양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그는 이내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못 알아본 것처럼.
하지만 상혁은 김태양의 눈빛만 보고도 그가 하고 있는 생각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들킨 거였구나. 되려 내가 뒤를 밟혔다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뻔히 보이는 눈을 한 번 보고는 상혁은 그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풀 정령이 옅은 풀 냄새를 풍기면서 상혁의 눈 주변을 뽀르르 날았다.
자연의 정령들은 폭력을 싫어한다.
그러니 주인이 된 상혁을 말리려고 하는 것이겠지.
“저리 가라.”
상혁은 손에 마나를 담아 풀 정령을 밀어냈다. 그러자 풀 정령이 종이처럼 나풀거리면서 저쪽으로 날아갔다.
풀 정령을 치운 상혁이 김태양을 응시했다.
“누, 누구세요. 왜 이러시는지…… 겨,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이, 이게…….”
김태양은 꽤 숙련된 연기자였다. 연기까지 전문적으로 배운 티가 났다. 단지 그게 상혁의 눈에 훤히 보일 뿐이다.
“어디 소속이야? 경찰? 군인?”
상혁은 김태양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애초에 김태양에게 듣고 싶은 것은 정해져 있었다.
“나랏일 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무고한 시민을 사찰하고 주거침입을 하고 그러면 안 되지. 혹시 김석문이라고 알아?”
김태양의 눈이 찰나의 순간 잘게 떨렸다. 상혁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아는 모양이네? 너랑 같은 곳에 있는 놈인가 보네? 잘됐다.”
상혁은 싱글거리며 웃었다. 답답했던 것이 한 방에 뻥 뚫리는 듯했다. 세상이 참 묘했다. 천만 명이나 사는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가려고 했던 곳과 관련이 된 놈을 만나다니.
그것도 자신을 감시하던 놈을.
“날 감시하고 있던데. 내 집에 들어온 놈은 변호사님을 감시하고 있는 것 같았고. 아니, 암살이었지? 독을 바르고 있던데.”
김태양의 눈이 커졌다. 독이라는 소리를 처음 들어 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상혁은 저쪽에도 말하지 못할 복잡한 사정들이 있다는 것을 단박에 눈치챘다.
“호오, 모르는 모양이야? 재밌네. 흑태양파라고 하던데. 같이 가 보면 알겠지. 그치?”
상혁은 꽁꽁 묶인 김태양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김태양을 포박하고 있던 바인드 마법을 풀었다. 그 순간 김태양이 몸을 뒤로 돌리며 주먹을 뻗어 왔다.
깔끔한 주먹의 투로.
방심하고 있는 적이라면 그 한 방에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실린 주먹이었다. 하지만 그게 상혁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바인드.”
애초에 상혁은 김태양에게 건 속박 마법을 풀 생각이 없었다. 옮기기 귀찮으니 상체에만 다시 걸 생각이었다.
우뚝!
바인드 마법에 걸린 김태양의 주먹이 정확히 상혁의 눈에 5cm 정도만 남기고 멈춰 섰다. 닿지 못한 것이다. 김태양의 관자놀이에 땀이 주륵 하고 흘러내렸다.
갑자기 마취총을 맞은 것처럼 몸이 굳었다.
상혁은 자신의 눈앞에 멈춰 선 주먹 옆으로 고개를 슥 빼면서 씩 하고 웃었다.
“야.”
부르르.
김태양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니!
그리고 지금껏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상혁은 혼자 묻기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혁은 자신이 원하는 답을 다 가져갔다.
정확히는 김태양에게 한마디 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얌전히 가자. 너희 본거지로.”
화르륵!!
빠지직!!
상혁의 머리 위로 불화살, 파이어 애로우와 뇌전 화살, 라이트닝 애로우가 살벌한 소리를 내면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순간 김태양의 두 눈은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마법을 처음 본 사람의 흔한 반응이다.
그건 가나안이나 지구나 똑같다면서 상혁이 킬킬거리면서 웃었다. 이선호 변호사가 이상한 것이라는 것이 이것으로 증명이 됐기 때문이다.
“아, 가짜처럼 느껴지려나?”
그리고 상혁은 인간이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쉬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상혁은 친히 불화살과 뇌전 화살을 김태양의 눈 옆으로 가져다 댔다.
치이익!!
불화살과 뇌전 화살에 김태양의 머리카락이 타고 꼬불꼬불해지면서 오징어 타는 냄새를 피워댔다.
“나 믿지?”
상혁이 해사하게 웃자 김태양이 공포에 질린 눈으로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씩 웃은 상혁이 그런 김태양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뻥!
“어서 가자. 안내해.”
상혁이 어기적거리며 걷기 시작한 김태양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폴폴폴.
그런 상혁의 뒤를 멀리서 나뭇잎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던 풀 정령이 잽싸게 따라붙었다.
* * *
김태양은 흑태양파에 도착할 때까지 입 한 번 열지 못했다.
정확히는 그럴 정신이 없었다.
‘내 몸을 묶은 것은 무엇이고, 그 화살 같은 건…….’
사실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단지 그게 말이 되지 않을 뿐이었다.
‘마치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마법.
하지만 김태양은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의 소속이 국정원이란 것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미국에서 슈퍼 솔져 연구를 한다는 소리는 들어 봤지만.’
그것마저도 다 실패로 끝났다. 그 이후는 모두가 알 듯 과학의 시대였다. 그런데 마법이라니. 김태양은 지극히 혼란스러웠다.
“여기야?”
김태양은 자신의 뒤에 선 괴물, 상혁이 하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
“…….”
“주소는 맞네. 그런데 언제까지 말 한마디 없을 거야?”
상혁이 뒤에서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김태양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들은 끝까지 조직폭력배로 남아야 한다.
그래야 하는데, 그 마법을 떠올리면 자꾸만 마음이 약해졌다.
“상관없지. 나야 알아낼 것만 알면 되거든.”
상혁은 김태양의 등을 떠밀었다. 건물은 작았다. 거기에 산 초입부에 자리하고 있어 경사가 심했다.
“무슨 조폭들이 주택에 살아?”
“…….”
“아, 조폭 아니지? 경찰이나 군인 쪽인 것 같은데. 철밥통들.”
상혁은 계속해서 조잘거리면서 김태양의 정신을 흔들었다. 그냥 조잘거리는 것이 아니라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김태양과 흑태양파의 비밀을 정확하게 찔러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김태양의 멘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총도 가지고 다니려나? 딱 봐도 신분 숨기고 조폭으로 위장한 것 같으니까. 추적당한다는 걸 알자마자 빙빙 돌아가는 모습도 그랬고…… 정보 쪽인데.”
김태양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상혁이 짙게 웃었다. 돌아온 기억에 따르면, 정보 쪽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이라면 딱 한 곳이 있었다.
“혹시 국정원이야?”
“…….”
“말 안 해도 돼. 어차피 말하게 될 테니까.”
상혁의 목소리에 묘한 한기가 서려 있었지만, 김태양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상혁은 현판 하나 붙어 있지 않은 곳의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언락.”
김태양이 안에 그 어떠한 신호도 보낼 수 없게끔 마법으로 해결해 버린 것이다. 눈앞에서 일어난 이적에 김태양의 눈이 커졌다.
“자.”
상혁이 김태양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김태양은 상혁보다 덩치도 컸고 키도 컸지만 상혁은 그의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집어 던지겠다는 것처럼 말이다.
“스트렝스.”
버프 종류의 마법 중 가장 근본이 되는 근력 강화 마법을 건 상혁의 두 팔에 힘이 들어갔다.
[이름 : 상혁
직업 : 2서클 마법사
상태 : 근력/1(+4), 민첩/1, 체력/1, 마나/201]
세계가 준 스텟창을 확인하자 근력이 4가 상승했다. 그리고 상혁은 곧바로 김태양을 들어 올렸다.
“어, 어억?”
설마 자신을 진짜 들어 올릴 줄이야. 김태양이 자신도 모르게 두 다리를 허우적거렸지만 땅에 닿지 않았다.
그리고 상혁은 그대로 김태양을 집어 던졌다.
“신병 받아라!!”
우당탕탕!!
문이 통째로 부서지면서 김태양의 눈앞에 번쩍거렸다. 그런 김태양의 눈에 안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수하들이, 정확히는 요원들이 몸을 일으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파바밧!!
그리고 그들의 움직임은 기민했다. 괜히 피땀을 흘려 가며 국정원에서 반복 숙달로 훈련을 시킨 것이 아니었다.
이런 경우에도 안가가 들통이 나는 때를 대비한 프로토콜이 있었다. 김태양은 그런 요원들을 보면서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안 돼! 움직…….”
‘이지 마!’ 까지 소리를 치려고 했지만 상혁이 더 빨랐다. 상혁은 사방으로 퍼져 각자 주어진 임무대로 움직이는 흑태양파 조직원들을 보면서 히죽 웃었다.
“너부터.”
이내 쇼크란 소리와 함께 국정원으로 비상 신호를 보내려고 했던 이가 풀썩하고 무너져 내렸다. 서른 명 중 스물다섯 명이 임무 차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다섯 명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 와중에 상혁을 제압하기 위해 달려든 세 명이 상혁의 지척까지 달려들었다.
‘어쩌면!’
김태양이 지척까지 접근한 세 명을 보면서 눈을 빛냈다. 그 정도 거리라면 훈련을 받은 요원은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법사는 본래 준비하는 자이다.
상혁이 그런 것도 대비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리스.”
1서클 마법이 약하다 손가락질을 받지만 그건 정직하게 마법을 사용하는 놈들이 많기 때문이다. 상혁은 마법을 더럽게 사용하기로 소문이 난 대마법사다.
그렇기에 적재적소에 정확하게 펼쳐진 그리스에 세 명이 쭉쭉 미끄러지면서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윈드.”
위에서 아래로. 바람을 불러일으키자 떠올랐던 요원들이 낙법도 치지 못하고 그대로 등으로 바닥에 처박혔다.
김태양의 두 눈에 암담한 빛이 맴돌았다.
마지막 한 명.
한 명은 만들어 놓은 비밀 통로로 도망가게 되어 있었는데 그 안에서 꽤액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을 확인한 것이다.
“흐흐흐.”
상혁이 바닥에서 꿈틀대고 있는 이들을 선 채로 내려다보면서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이 왠지 모르게 섬뜩했다.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요리사가 요리 전 재료를 손질하는 것 같은 눈빛을 보내오는 상혁을 보면서 김태양은 눈을 질끈 하고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