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7화
017. 유통기한(2)
“중독이라니 그 무슨…….”
이선호는 상혁이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끝을 흐렸다. 상혁의 말을 듣는 순간 혹시나 하던 의심이 둑이 터진 것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머리가 자주 아프고, 가슴이 답답했으며 자주 토했다. 눈 밑이 푸르게 물들고 손톱이 검붉어졌지만 그게 피곤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도 나이를 먹었으니까.
그러나 그게 그냥 건강이 나빠졌기에 몸이 보내는 적신호가 아니라는 것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고등학교 동창 중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에게 찾아가 은밀히 자신의 피를 뽑아 피검사를 했다.
아직 그 결과가 오기 전이지만 상혁은 그런 이선호의 의심을 한 방에 뒤흔들어 버렸다.
잔뼈가 굵은 변호사인 이선호이지만 상혁의 한마디에 완전히 흔들린 것이다.
정확히는 상혁의 눈 때문이었다.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 변호사로 수많은 피의자와 피해자를 만나 본 그지만 상혁 같은 눈빛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현자라면 저런 눈을 가질 수 있을까.
그렇기에 그 눈빛 앞에서 이선호는 자신도 모르게 당황해 속내를 숨기는 데 실패했다.
찌릿!
이선호는 자신의 어깨에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정확히는 상혁이 손을 얹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선호는 자신의 몸으로 무언가가 흘러들어온다는 것을 느꼈다. 그 불쾌한 느낌도 잠시, 이선호는 상혁의 손이 닿은 어깨를 통해 자신의 몸속에 무언가가 쭉 빨려 나간다는 것을 느꼈다.
“억!!”
강제로 몸속의 무언가가 빨려 나가는 기분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소설 속 뱀파이어에게 피를 빨린다면 이런 기분일까.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불쾌한 느낌이 사라지고 나면 시원한 느낌이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마치 쾌감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그 이율배반적인 느낌에 이선호는 팔다리의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뚝.
그런 이선호의 다리가 풀리려는 찰나 상혁이 어깨에 얹은 손을 딱 뗐다. 그러자 이선호는 떨리는 눈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내, 내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글쎄. 굳이 표현하자면.”
상혁이 히죽 웃었다.
“댁 몸속에 있는 그 독성 들을 내가 일부 빼낸 겁니다. 내가 당신 목숨을 살렸다는 뜻이지. 당신은 지금 빵빵하게 부풀어 있는 풍선 같은 상태였거든.”
“풍선?”
이선호의 눈빛이 흔들렸다. 지금에야 영락한 변호사가 되어 이 시골에 내려와 이혼 전문 변호사 노릇을 하고 있었지만 한때 검찰에서 수많은 범죄자를 잡아넣었던 호랑이 검사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불가해.
이선호에게 상혁은 자신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유형의 인간이었다.
확실한 것은 자신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 정도.
“왜, 바늘이 아주 조금만 닿아도 펑!”
상혁이 두 손으로 펑 하는 포즈를 취하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렇게 터질 뻔한 풍선이었다는 거지. 내가 그 풍선 안의 바람을 조금 빼 주었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 * *
그 말에 이선호가 재차 되물었다. 이번에는 확신을 담아서.
“내가, 정말로 중독됐었다는 뜻입니까?”
상혁은 그런 이선호를 보면서 재밌다는 듯 웃었다. 이선호에게 자신은 응급실에서 처음 본 타인일 뿐이다. 그런데 이선호는 상혁이 말을 하면 믿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의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 벌어졌고,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 사람을 믿는다는 건.
상혁은 그것이 고도로 발달된 사람의 육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나안 대륙이라면 마법사로 꽤 재능이 있었겠어.’
소위 말하는 육감이란 것은 말 그대로 눈으로, 코로, 피부로, 입으로 느낄 수 없는 어떠한 감을 느끼는 감각을 뜻한다.
그리고 그걸 가나안 대륙에서는 이렇게 부른다.
마나 친화력.
지구에는 없는 마나를 가나안 대륙에서는 육감으로 감지하고 느낀다. 얼마나 그 마나를 잘 느끼느냐, 육감이 발달되었느냐가 마법사와 기사가 되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런 점에서 이선호는 꽤 감이 발달해 있었다.
‘여럿 감방 보낸 사람인 모양이야.’
상혁은 한눈에 이선호의 성정을 파악했다. 겉보기에는 공부만 했을 전형적인 샌님이나 그에게서는 타협할 수 없는 길을 걸어온 이들만의 독특한 기상이 느껴졌다.
‘검사.’
법으로 죄인을 단죄하나 심연으로 괴물을 들여다보면 자신도 괴물이 될 수 있다는 니체의 말처럼 스스로가 괴물이 되기 쉬운 자들.
그러나 그 권력의 중심에서 탐욕에 빠지지 않고 자신만의 정도를 걸어온 자의 기상이 이선호에게서 느껴졌다.
‘아직 쓸 만하네.’
상혁은 피식 웃으면서 마나안을 칭찬했다. 마나안은 모든 것의 본질을 읽어 낸다. 그중에는 사람의 기질도 있었다.
“아마도요. 그런데 반응을 보니 예상은 하셨던 모양이네요. 확인 중이셨으려나?”
그러자 이선호의 동공이 커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상혁은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그러자 이선호가 상혁의 손을 덥썩 붙잡았다.
“저 좀 살려 주십쇼.”
“예?”
드높은 기상이 느껴진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올 말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상혁의 귀는 잘못되지 않았다.
자신을 살려 달라, 처음 본 상혁에게 구걸하는 이선호의 모습은 낯설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상혁을 이용하려는 것이라면 대성공을 한 셈이었다.
드높은 기상을 가졌으나 목숨을 구걸하는 이선호의 모습에 마법사 상혁의 호기심이 강하게 발동했으니까.
“내 말을 믿으십니까?”
“뭐가 됐든, 난 내 감을 믿습니다.”
이선호는 자신의 감을 믿었다. 자신이 찰나에 느꼈던 그 불쾌함과 시원함이 환각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런 이선호의 생각이 상혁의 눈에 뻔히 들어왔다.
빙긋 웃은 상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선호 몸속에 있는 마나 덩어리들은 상혁으로서도 꽤 탐나는 덩어리들이었다.
무엇보다도, 그것들이 인간의 몸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그것을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니 상혁은 이선호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살려 드리죠.”
상혁이 이선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이선호가 상혁의 손을 굳건히 잡았다. 기묘한 조건을 내걸고 손을 맞잡은 두 남자가 뜨거운 눈빛을 교환했다.
* * *
“본사 보안팀까지 지원을 나갔는데 흉수를 잡지 못했다?”
“그, 그게…….”
“그러니까, 한마디로 무능들 하셨다는 거군요.”
“…….”
오승택은 자신을 힐난하는 호리호리한 남자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임무에 실패했고, 흉수조차도 찾을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능들 하셔서야. 드리는 월급이 아까울 지경이군요.”
말을 하는 남자도 기껏해야 누군가의 명령을 받은 것에 불과했지만 앞에서 이죽대며 비웃는 모습이 마치 화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즉 여기 오기 전에 명령권자에게 어지간히도 욕을 들어먹었으리라.
대개 이런 경우엔 화가 아래로 내려오는 법이다. 오승택은 입을 꾹 다물었다.
“오승택 씨. 댁이 달에 받는 월급이 얼만지 압니까?”
꾹꾹
오승택의 이마를 남자가 손가락으로 밀었다. 자존심이 상하고 수치스러웠지만 오승택은 꾹 참았다. 임무에 실패했기에 입이 백 개여도 할 말이 없었다.
“스파이가 아무것도 훔쳐나가지 못해서 망정이지, 만약에 아산공장을 노리고 테러를 하려고 했으면 그냥 공장 하나가 망가졌겠어요. 네?”
“…….”
“그러면 또 사장님이 네덜란드까지 가서 머리를 조아리셔야 했을 거고. 당장 SG에서 수급하는 반도체 중 30퍼센트가량이 줄어들었겠네요. 그렇죠?”
“…….”
“잘합시다. 잘.”
짜악!!
SG 반도체 공장에서 일어난 스파이 사건 때문에 서울 본사에서 사장의 명령을 받고 내려온 비서가 오승택의 뺨을 후려쳤다.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 이선호도 대체 얼마나 처먹여야 뒈지려나.”
오승택이 모르는 이름이 나왔지만, 이 순간 그는 들었어도 못 듣는 농인이었다. SG그룹의 규모는 방대했고 동시에 추진되는 은밀한 작전은 이 시간에도 수십 개가 넘었다.
그중 하나일 것이다.
“이 얼굴. 찾아내세요.”
그때 비서가 핸드폰에서 얼굴 하나를 확대해서는 내밀었다. 작은 사진을 크게 확대한 듯 윤곽이 무너져 있었지만, 전문가의 손을 거친 것인지 이목구비는 흐릿하게 알아볼 수 있는 정도였다.
“그날 아침. 공장 인근에서 카메라에 찍힌 남자 얼굴입니다. 기자가 가지고 있던 카메라에 찍혔던데.”
오승택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본사의 능력은 오승택의 상상 이상이었다. 설마 기자의 카메라에서 용의자를 찾아낼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런 깡촌은 비 오는 날이나 어두운 날이면 사고가 많이들 난다고 들었어요. 논둑에서 미끄러져서 떨어져서 목도 부러지고 그런 참혹한 사고가 많이 난다고. 직원들 출퇴근할 때 그런 사고가 벌어지지 않을까 사장님께서 걱정이 많으시던데.”
비서의 두 눈은 살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오승택은 비서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오승택이 고개를 꾸벅 숙이자 비서가 그런 오승택을 한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고는 등 돌렸다.
“두 번의 실패는 용서하지 않습니다. 잘하세요.”
오승택은 그런 비서가 사라질 때까지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그리고 비서가 사라지자 오승택이 허리를 들었다.
그런 오승택의 얼굴은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놈.”
오승택이 핸드폰 속의 상혁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이를 까득하고 갈았다.
* * *
최영숙은 누가 봐도 나이롱 환자였지만 그럼에도 전 씨와 전아영은 최영숙을 병간호하겠다며 병원에 남았다.
그 때문에 이선호가 상혁을 집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서울에서 오셨다구요?”
“네?”
그런데 이선호는 상혁이 서울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자 이선호가 손을 내저었다.
“김 사무장님이 걱정이 많으시더라구요. 갑자기 동네에 다 허물어진 집에 예전에 서울로 갔던 그 집 아들이 돌아와서 산다니까.”
“음…….”
“딸 걱정이 많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하신 거니까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민감한 곳까지는 조사하지 않으셨습니다.”
최영숙이 상혁의 뒷조사를 했다는 뜻이었다. 상혁은 볼을 긁적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뒤를 파봐도 나올 게 있을 리 없다.
가나안 대륙에 갔다 왔다는 게 조사로 알아낼 수 있을 리 만무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하신 겁니까?”
이선호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상혁에게 물었다. 상혁은 궁금증이 가득 담긴 이선호의 눈에 피식 웃었다.
“마법입니다.”
“마법이라. 그렇군요.”
이선호가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끄덕이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상혁이었다. 설마 자신의 말을 이렇게 쉽게 믿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믿으십니까?”
“플라세보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전 느꼈습니다. 전 상식보다는 제 감을 믿는지라.”
이선호는 그러면서 자신이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원리로 몇 번이나 구사일생했던 일화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꿈에서 자신이 다치는 꿈을 꿔서 그날 버스를 타지 않았는데 그 버스가 전복되었다든가, 배가 차가워서 집에서 배에 뜨끈한 전기온돌을 올려놨는데 괴한이 집을 습격해 배를 찔렀다가 칼이 막혀서 살았다든가.
“제게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살려 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믿겠습니다.”
“뭐…….”
애초에 믿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던지라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잠시 후, 다 무너져 가는 상혁의 집 앞에 도착한 이선호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 제가 살던 집입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집인가요?”
상혁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구멍이 난 지붕과 벽은 마법으로 고쳤다. 그래도 집이 집처럼 되는 데는 많은 단계를 거쳐야 했다.
“잘 만은 합니다.”
이선호는 몇 개 안 되는 가재도구들을 슥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여기서 살겠습니다.”
그러고는 그가 폭탄선언을 했다.